내용이 길어서 후반부만 가져왔어
https://m.entertain.naver.com/read?aid=0002196490&oid=047&lightVersion=off
(중략)
조선왕조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당시 유생들
대중과 신지식인의 힘을 빌릴 수 없게 됐다면, 전통적 지식인인 유생들 쪽은 어땠을까? 입만 열만 충군(忠君)을 열변하는 그들이 정부를 도와 나라를 살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들 상당수가 지주계급이었으니,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활용해 나라를 도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 시대에는 유생들이 주축이 된 의병 활동이 많았다. <미스터 션샤인> 속의 고애신도 유생은 아니지만 의병 활동을 하고 있다. 유생 출신 의병들은 지역사회에 대한 지배력을 바탕으로 일반 농민들을 구국 투쟁에 동원했다.
하지만, 고종은 이들도 믿기 힘들었다. 동학과 독립협회를 바라보는 그 시선으로 고종이 의병들을 바라볼 만한 사정이 있었다. 유생 출신 의병들이 겉으로는 충군을 표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상반된 행동들을 했기 때문이다.
을미년인 1895년의 명성황후(민비) 시해에 격분해 일어난 을미 의병 때도 고종이 의병들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적지 않았다. 사단법인 '의병정신 선양중앙회' 부설 의병연구소장인 역사학자 이태룡의 "한국 의병사" 하권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의병 투쟁이 전국적으로 일어나던 시기에 거처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기고 일제의 공포로부터 한숨을 돌리던 국왕은 춘천부·충주부 관찰사, 안동부 관찰사·경무관, 강릉부 경무관, 해주부 경무관·총순, 진주부·함흥부 참서관, 나주부 참서관·총순과 각지의 군수 등 30여 명, 일본인 40여 명이 의병들에 의해 참수되었다는 소식에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총순'은 경찰 직책이었다. 관찰사와 군수를 포함한 지방관 수십 명이 피살된 사건은 의병들이 읍성 점령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다. 관찰사와 군수는 지방에서 왕명을 대표하는 관직이었다. 이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을 유생들이 무기를 들고 지방관을 죽였다는 것은, 그들이 상황 전개에 따라서는 왕조 전복을 시도할 수도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위험성을 간파했기에, 고종은 의병들의 힘이 더 커지기 전에 신속히 의병 해산령을 내렸다.
나라를 위해 일어섰다는 선비들이 왕명을 받은 신하들을 죽였다는 것은, 선비들 역시 조선왕조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농민들과 신지식인들에 이어, 사회의 동량인 유생들조차도 왕조에 희망을 걸지 않았던 것이다. 대중을 꽉 붙들어줘야 할 지식인들조차 자기 시대에 마음을 붙이지 못했던 것이다. 이 시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심한 공황을 겪었을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래서 1904년 직전의 조선 대중은 2018년의 대한민국 SNS에서 표출되는 것보다 훨씬 더한 고민과 방황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밖에서는 일본이 세차게 밀려오고 안에서는 개혁의 동력을 상실한 그들이 겪었을 정신적 고통은 분명히 우리 시대의 고통을 초월했을 것이다.
"미스터 션샤인"은 그런 시대 분위기를 거시적 차원에서 조명하겠다며 출발한 드라마다. 총칼을 든 무사들의 낭만적 만남으로는 그런 분위기를 담을 수 없다. 잉글리시·알사탕·전차를 신기해하는 눈길로도 그런 분위기를 담을 수 없다. 세상의 운명을 걱정하고 생존 문제를 염려하는 당시 대중의 걱정 어린 시선을 드라마에 담지 않으면 안 된다.
(+) 청와대 청원 올라왔더라
드라마 <미스터션샤인>과 같은 역사왜곡 드라마/영화에 대해 강력히 조치해주십시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307927?page=2
https://m.entertain.naver.com/read?aid=0002196490&oid=047&lightVersion=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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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당시 유생들
대중과 신지식인의 힘을 빌릴 수 없게 됐다면, 전통적 지식인인 유생들 쪽은 어땠을까? 입만 열만 충군(忠君)을 열변하는 그들이 정부를 도와 나라를 살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들 상당수가 지주계급이었으니,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활용해 나라를 도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 시대에는 유생들이 주축이 된 의병 활동이 많았다. <미스터 션샤인> 속의 고애신도 유생은 아니지만 의병 활동을 하고 있다. 유생 출신 의병들은 지역사회에 대한 지배력을 바탕으로 일반 농민들을 구국 투쟁에 동원했다.
하지만, 고종은 이들도 믿기 힘들었다. 동학과 독립협회를 바라보는 그 시선으로 고종이 의병들을 바라볼 만한 사정이 있었다. 유생 출신 의병들이 겉으로는 충군을 표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상반된 행동들을 했기 때문이다.
을미년인 1895년의 명성황후(민비) 시해에 격분해 일어난 을미 의병 때도 고종이 의병들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적지 않았다. 사단법인 '의병정신 선양중앙회' 부설 의병연구소장인 역사학자 이태룡의 "한국 의병사" 하권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의병 투쟁이 전국적으로 일어나던 시기에 거처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기고 일제의 공포로부터 한숨을 돌리던 국왕은 춘천부·충주부 관찰사, 안동부 관찰사·경무관, 강릉부 경무관, 해주부 경무관·총순, 진주부·함흥부 참서관, 나주부 참서관·총순과 각지의 군수 등 30여 명, 일본인 40여 명이 의병들에 의해 참수되었다는 소식에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총순'은 경찰 직책이었다. 관찰사와 군수를 포함한 지방관 수십 명이 피살된 사건은 의병들이 읍성 점령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다. 관찰사와 군수는 지방에서 왕명을 대표하는 관직이었다. 이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을 유생들이 무기를 들고 지방관을 죽였다는 것은, 그들이 상황 전개에 따라서는 왕조 전복을 시도할 수도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위험성을 간파했기에, 고종은 의병들의 힘이 더 커지기 전에 신속히 의병 해산령을 내렸다.
나라를 위해 일어섰다는 선비들이 왕명을 받은 신하들을 죽였다는 것은, 선비들 역시 조선왕조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농민들과 신지식인들에 이어, 사회의 동량인 유생들조차도 왕조에 희망을 걸지 않았던 것이다. 대중을 꽉 붙들어줘야 할 지식인들조차 자기 시대에 마음을 붙이지 못했던 것이다. 이 시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심한 공황을 겪었을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래서 1904년 직전의 조선 대중은 2018년의 대한민국 SNS에서 표출되는 것보다 훨씬 더한 고민과 방황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밖에서는 일본이 세차게 밀려오고 안에서는 개혁의 동력을 상실한 그들이 겪었을 정신적 고통은 분명히 우리 시대의 고통을 초월했을 것이다.
"미스터 션샤인"은 그런 시대 분위기를 거시적 차원에서 조명하겠다며 출발한 드라마다. 총칼을 든 무사들의 낭만적 만남으로는 그런 분위기를 담을 수 없다. 잉글리시·알사탕·전차를 신기해하는 눈길로도 그런 분위기를 담을 수 없다. 세상의 운명을 걱정하고 생존 문제를 염려하는 당시 대중의 걱정 어린 시선을 드라마에 담지 않으면 안 된다.
(+) 청와대 청원 올라왔더라
드라마 <미스터션샤인>과 같은 역사왜곡 드라마/영화에 대해 강력히 조치해주십시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307927?pag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