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진짜 감긴다. 막내라서 다나까 가장 많이 쓴 김나은 하사 말투 계속 곱씹고 어설프게 따라하는 중인데 왜일까.
그동안 남자들의 군대 화법에 공감할 여지가 없었지. 그게 또 자기들만 아는 세계의 문법이라서 때로는 꼴사납게 때로는 우습게 여겨왔던 것 같아. 개고생이든 비밀스러운 것이든 우리만 다 해왔다고 거드름 피우는 인간이 있다면 걍 관심을 주지 맙시다 쪽에 가까웠다고 해야 할까.
그 세계가 마침내 파괴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에 해방감을 얻은 것일까?
배우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여성 군인을 연기하는 상황도 아니고
그냥 내가 퇴근길에 스쳐갔을 법한, 혹은 운동하러 갔다가 지나쳤을 법한 또래 일반인 여성이 딱 그 말투를 쓰고 쩍벌로 앉고 삽을 들고 혹은 삽을 내던지고 개처럼 땅을 파고 진짜 개저 스타일로 샤우팅하고 허세를 부리고 그들만의 전문용어를 찰지게 쓰고(관물대, 생활관, 화생방, 연막탄 등등)
그런 걸 보면서 아 이게 남자들만 독점하는 세상이 아니라는 걸 뒤늦게나마 확인했다는 데서 오는 놀라움과 쾌감?
그래 그런 언어를 여성이 가질 수도 있는 건데 그게 가능하다는 걸 몰랐던 거야 너무 오래
영화에서든 현실에서든 군인이고 여성인 사람들의 문화를 접할 일은 너무 희소하니까
여기서부터는 스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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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에피 있잖아
군인팀 수세에 몰렸을 때 이현선 중사 막 눈 똥그랗게 뜨고 자기가 먼저 뽑았다고 우기고 강은미 중사도 정정당당 개소리하면서(ㅋㅋ) 여기에 힘을 실어주고
게다가 상대는 존댓말하는데 이 둘은 반말하면서 덤빔 와 ㅋㅋㅋ
이건 모의전쟁이고 어디까지나 룰에 따라 움직이는 승부전이니까 완전 부적절한 처사가 맞는데 왜 안 밉지???
왜 내가 갑자기 빌런과 히어로, 선과 악 개념이 붕되됐지??
현실에서 그렇게 정의롭지 못하고, 무식하고 뻔뻔한 여성을 내가 얼마나 봤나
나라면, 또 내 친구라면 저렇게 올바르게 행동하는 적이 훨씬 많은 상황에서 과연 기죽지 않을 수가 있는가
목표 중심적이고 승부욕에 미친 사나운 여성 인간상은 극에서만 봤지 그것도 엄청 과장되고 미움 사는 캐릭터로
현실에서 때때로 교활하거나 짜증나는 여성을 보기야 하지만 사회적 압박에 따라서 다들 적당히 브레이크 걸고 사는데
반면 남성의 악은 극에서 쓸데없을 정도로 다채롭게 연출되기도 하고 보도되는 수많은 강력범죄가 말해주듯 그 자체로 쓰레기 같은 현실이지만
여성으로서 여태 못 봤던 악의 모델을 접하니까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는 거야 그것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캐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실 속의 인물이야
물론 언젠가는 이런 태도를 특출한 여성이라서 다르게 볼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그 직업군은 원래 그렇지 뭐 하고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 그들은 소수일지언정 함께 입대한 남성과 똑같이 인간병기로 훈련된 특전사 출신들이니까.
궁극적으로는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위반인지 분명하게 인식하고 평가하는 게 바람직하겠지만
지금이야 넘 신기하고 반갑고 매력까지 느끼니까 왜 내가 계속해서 군인팀한테 이끌렸는지, 내가 악을 두둔하기까지 하는 이유가 뭔가를 천천히 따져보게 되네
하여간 여성이 '그럴 수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할 기회를 이제라도 얻었다
지금보다 나은 미래로 가는 길 하나를 찾은 기분
울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