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정원
(옮김글)


정수민

생각해보면, 
발길질이 일으킨 파문이 뭍으로 번져나가듯 
너에게 가 닿고 싶었을 뿐.


길을 잘못 들었다. 그 말이 맘에 들었다.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한 게 아니라 잠깐 헤매고 있을 뿐, 언제든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처럼 들렸다. 길을 헤매는 정도는 누구든 하니까.
.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 애가 상처 받을 것을 알고 있었다.
.
네가 상처 입은 얼굴을 할 때마다 세상에 힘든 사람은 나 하나 뿐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어, 좋았다.
.
나는 정오가 헤엄치는 것을 딱 한 번 보았지만,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물속에서 그렇게 쏜살같던 너는 뭍에 내려서자 중력을 한꺼번에 짊어진 사람처럼 휘청거렸다.
.
수영을 계속하면 네가 나를 보게 되리라는 걸 알았다. 너는 수영을 좋아하니까.
무언가를 좋아하면 사람은 상처 입는구나. 그에게 중요한 것만이 그처럼 손쉽게 사람을 울릴 수 있었다.
.
어쩌면 아무에게도 부릴 수 없는 어리광을 네게 부리고 싶었던 것에 불과하다. 네가 날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알아줬으면 했다. 네가 나를 봐줬으면 좋겠다. 네게 칭찬받고 싶었다.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나를. 나를.
네가 상처받으면 꼭 네가 내 것 같았다.
.
내 어깨를 쥐고 힘껏 흔든 다음에는 어머니는 내 몸을 꽉 껴안았다. 수민아, 엄마는 수민이 사랑해서 그래. 그러니까 내가 아픈 건 어머니 잘못이 아니었다. 누굴 좋아한다면 조금 아프게 해도 되는 것이다.
.
인정받으면 기쁠 줄 알았다. 끝날 줄 알았다. 혹시 내게 실망할까 봐 나날이 두려워질 뿐이라는 걸 몰랐다.
.
나는 항상 말에 서툴렀다. 설명할 수가 없다. 수영장을 돌며 내가 견뎌야 하는 아픔에 대해서. 그리고 무엇이 그것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지도. 이제는, 견딜 수가 없다는 말마저.
.
시합이 아니라고 말해줬으면 한다. 일 초를 아끼느라 숨을 참아야 하는 시합이 아니라, 레인을 벗어나도 계속 헤엄치기만 하면 되는 물놀이 같은 거라고. 반드시 이길 필요는 없다. 지는 것이나 무서운 건 잘못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 그렇게 믿고 싶다.



최정오

어차피 물속에 잠긴 듯 숨 막히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물속에서는 바닥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걸 배웠다. 
숨 쉬지 않는 동안 나아갈 수 있다. 
아무 생각도 할 필요 없다. 
그러다 다시는 위로 올라올 수 없게 돼도 상관없었다. 


  너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어설프게 꽂힌 주먹 탓에 터진 입가를 문지르면서 정수민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불쌍해서. 
그때 왜 눈물이 났을까. 아무 말 못하는 나를 정수민은 오래 쳐다보았다. 내가 얼마나 부서졌는지 가늠하는 것처럼 오래.
.
나쁜 놈이어도 좋으니까 흔들리지 않는 인간이 되고 싶다. 잘못을 저질러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 차라리 내가 그런 인간이었으면 좋겠다. 아버지 같은 인간은 되고 싶지 않다. 
.
혼자 울다 보면 슬퍼서 혼자 울게 된 건지, 아니면 혼자 우는 게 슬픈 건지 구분이 어려워진다. 가끔은 우는 데도 다른 사람의 이해가 필요하다. 울 만한 일이라는 걸 인정받고 나면 이상하게 개운해진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자 나는 전보다 훨씬 힘껏 울음을 참게 되었다. 
.
잘 될 리가 없다는 말은 주문 같다. 실망하지 않기 위한 주문.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 어차피 잘 안 될 줄 알았다고 말해버리면 된다. 그렇다고 상처받지 않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괜찮은 척 할 수 있다. 나는 내게 내 인생에 아무 기대가 없었으면 좋겠다. 나 자신에게 실망하는 건 지긋지긋하다. 
.
가벼워지고 싶을 뿐이다. 도망치기 위해선 가벼워야 한다. 가능한 한 나를 보잘것없이 여기고 싶다. 내 삶을. 그러면 더 편하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놈이라고 생각하면 굳이 발버둥 칠 필요가 없다. 흘러가버리면 된다.
.
혼자 살 수 없다는 건 알지만, 난 버려지고 싶지 않다. 그건 무섭다. 누군가에게 나를 내맡기는 것. 나를 버릴 기회를 주는 것. 
.
나는 엉망이고 보잘것없다. 누군가의 가슴에 자리 잡을 만한 사람은 아니다. 분수에 맞지 않는 자리에 앉으면 불편하듯 누군가 나를 좋아하는 건 이상하다. 
.

기차 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정수민이 내 손에 가만히 자기 손을 붙였을 때, 나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눈에 담으며 내 손에 닿은 정수민의 새끼손가락을 머리에 그려 보았다.
기차에 탔을 땐 내가 정수민의 손을 잡았다. 몰래 잡았다가 금세 놓았다. 정수민은 나를 보다 웃었다. 역에 도착하면 내려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기차에 앉아있는 지금은 기차가 끊임없이 달릴 것만 같다.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 발췌



물밖에는 내 자리가 없다는 수민이랑

물속에서 영원히 올라오고 싶지 않았다는 정오의 이야기


첫작이라 그런지 작가가 쓰고 싶었던 감정들을 다 쏟아부은? 그런 게 느껴짐 나잘못 보면...

마음이 요동쳐서 자주 복습하긴 힘들어도 정말 좋아하는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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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1 2018.06.26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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