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남사친이랑 어쩌다 타이타닉 보러갔고 (내가 판단미스였음. 이런 명작을 XY랑 보러가지는 말았어야 했는데.)
어렸을 때랑 다르게 보고 나니까 왜 전 세계 여자들이 당시 타이타닉에 열광했는지 알았어.
1. 잭은 사람을 본다
로즈가 잭이 그린 그림을 볼때 '잭, 당신은 사람을 보는군요.' 같은 말을 함. 근데 그 말이 진짜임.
잭은 로즈가 떨어져 내릴 때 로즈라는 '사람'을 봤고, 재치있게 로즈를 구한 뒤 소동이 났을 때도 '거의' 구했다고 해. (아마도 였나?)
로즈의 거짓말에 말을 맞춘 거긴 한데, 저 말에는 동시에 로즈가 뛰어내리려고 한 근본적인 원인은 구하지 못했다는 말로도 들림.
자기가 그럴 주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는 듯 주저하는 것도 이제는 보이더라ㅜㅜㅜ
잭은 정말로 '로즈'라는 사람의 내면을 봤음.
로즈 내면의 열망과 짖궂음, 자유의 갈망을 영화 내내 유일하게 꿰뚫어 보고 있던 사람이 잭이더라고.
내가 여기 '살아' 있다는 걸 알아봐주는 그 사람을 어떻게 놓칠 수 있었겠어.
2. 순수, 헌신, 성공적
ㅅㅂ로즈와 잭 관계에서의 '잭'을 단어로 표현해야 한다면 순수와 헌신뿐일것임.
잭 진짜 순수함 그 자체더라. 로즈랑 대화할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그 마차에서의 씬에서도 영혼의 순수가 느껴짐.
이건 손등 뽀뽀할 때 그 퐉스 눈빛과는 약간 다른 건데, 본질적으로 로즈에게 감정을 부딪힐 때 순수하다는 말임.
마차에서 떨 때도 그렇고, 로즈를 기다릴 때도 그렇고, 정말 온 몸으로 '나는 너가 좋아!' 를 외치는 기분ㅠㅠㅠ 순수 청년미 미쳤더라...
그리고 로즈에게 헌신하는 모든 순간이 정말 돌았음.
놀랍게도 잭은 로즈에게 자기 감정을 단 한 번도 들이민 적이 없더라고; 늘 선택을 기다리는 입장임.
심지어 로즈가 떠난다고 할 때도 '나는 세상을 잘 알고, 돈도 없고 줄 수 있는 게 없지만, 널 사랑해' 라고 안함;;; (난 사실 이럴 줄 알았음)
그때 잭이 로즈한테 한 말은 '당신이 괜찮다는 걸 확인하기 전에는 갈 수 없어요.' 임.
기억해? 잭은 로즈가 자살하려고 하는 걸 본 사람임.
자기가 이 사람이랑 이어질 수 없다는 것 보다도 이 사람이 메말라가는 걸 더 걱정하는 게 내가 본 헌신이었음.
심지어 당신의 그 불씨가 사그라들거라는 걸 말해주면서도 '나한테 와요, 내가 해결해줄게요.' 라는 말은 안하더라?
여주의 해결책이 되어주는 저 대사는 로맨스의 클리셰나 다름없는데도.
정말 온전히, 그 누구보다도 로즈의 주체성을 인정해주는 기분이라서, 내가 더 울컥하더라고.
3. 죽어서 더 완벽했던 잭
잭..... 님의 죽음이 슬퍼 엉엉 울면서도 한쪽 발로는 관뚜껑 꽉 밟고 있어서 미안....
그렇지만, 죽음이야말로 잭의 로즈에 대한 사랑을 완벽하게 만드는 서사임.
왜냐면 이런 말 참 그렇지만, 객관적으로 잭은 로즈와 경제적 사회적 수준이 맞는 사람이 아니었잖아.
로즈에 대한 헌신이 절벽 위의 꽃을 가지기 위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는 그런 쇼인지 어케 앎. 심지어 둘은 만난 시간도 짧은데.
약혼자가 다이아로 구라쳤지만, 언젠가 로즈 등처먹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꽃뱀이 아닌지 어떻게 확신하느냐 이 말이야.
그런데 이게 찐사란 걸 죽음이 증명해줬읍니다.
잭은 재난이 닥친 모든 상황에서 로즈를 가장 먼저 우선했음. 로즈를 살리는 게 최대 목표고 자기도 같이 살아남는 건 약간 덤인 느낌.
심지어 물리적 목숨말고 감정적인 부분에서도 그랬어. 특히 열쇠장면에서 그걸 많이 느꼈는데, 도중에 갇혀서 열쇠로 빨리 문 따야했던 씬 있잖아.
거기 보면 로즈가 다급해져서 잭 빨리! 빨리! 하고 엄청 채근하거든?
성격 좋은 사람도
물 닥침 + 예민한 상황 + 열쇠 끼임 + 옆에서 소리치면서 닦달함 = 아 조용히 좀 해!!!
하고 큰 소리 한 번은 칠 법함.
잭? 네버.
구조정 올라가게 할 때도, 잭은 로즈가 불안해할까봐 내내 미소짓고 있음.
약혼자 놈은 쟤도 살고 나도 살걸 알아서 뒷배가 있다는 감정에서 나오는 거짓말이라면, 잭은 찐으로 '로즈만을 위한' 미소였지. 자긴 죽을 테니까.
마지막에 그 말도 많은 '문' 씬 말이야. 나 거기 되게 유심히 봤는데, 되려 잭의 태세전환이 진짜 사람 미치게 하는 포인트더라고ㅎ휴ㅠㅠㅠㅠ
로즈 올린 뒤에 잭, 자기도 올라가려고 문을 잡거든? 근데 균형이 안 잡히고 기우뚱 하면서 물에 가라앉아서 로즈가 떨어짐.
그거 보자마자 바로 '!!!' 상태 되더니 로즈 올리고 자기는 올라가는 걸 포기하더라.
'같이 살아나간다' 에서 '로즈는 살린다'로 빠르게 태세를 바꿔서 한 치의 주저도 없이 행동하고, 본인이 죽은 뒤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게 말까지 남긴 점이
잭의 찐사를 보여줬어
(실제로 로즈는 살기를 거의 포기한 상태였는데 -잭 죽은 뒤에 울다가 구조정 멀어지는 거 두고 보며 눈 감던 씬- 잭이 남긴 유언에 그제야 정신차리는 묘사가 이제는 보이더라고ㅋ큐ㅠ)
여러모로 잭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고
잭 역시, 로즈를 만나고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는 걸 정말 운명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어.
+) 약혼자에 대한 인식 180도 바뀐 거 실화냐;;;
어릴 땐 그래도 '아.. 그래서 로즈를 사랑하긴 했나봐ㅜㅜ' 이랬거든?
근데 지금 보니까 눈에 딱 보이더라고ㅋㅋㅋㅋㅋㅋ 로즈 쫓아갔던 그건 사랑이 아니야...
이곳에서 약혼자 없이 혼자 살아나갔을 때 주위의 시선, 결혼 해야 받을 수 있는 이익을 어떻게 포기하느냐는 욕심, 500통이 넘게 뿌려진 약혼 소식, 자긴 다이아 가져다 바쳐도 못 얻었는데, 뭣도 없는 놈은 가졌다는 굴욕감, 본인의 공식적 '실패'를 용납할 수 없는 집착 (실제로 그게 도무지 용납이 안 되어서 총들고 둘 중 누구라도 뒤져라 하고 무차별 총쏘잖아. 로즈가 다칠 수도 있다는 건 안중에 없음)
이게 섞인 지독한 자기애적인 모먼트였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ㅋㅋㅋㅋㅋㅋㅋㅋ
로즈 생존헀는지 찾으러 왔을 때 로즈가 기쓰고 피한 거 ㄹㅇ 그럴만함. 그걸 옆에서 보는데 어떻게 소름이 안 끼치겠음.
하, 아무튼 다 커서 보니 감상이 달라지는 타이타닉 너무 잘 봤고요
전 세계 여자가 픽한 잭은 그럴 이유가 있는 벤츠남이었음을, 잭 못 살아나게 관뚜껑 위에 앉아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ㅎㅎㅜㅜ
내 기준 대장금 나으리랑 투탑 남주임.
허미 별점도 안주고 등록해서 '별점도 아깝다' 됐네ㅋㅋㅋ 급히 수정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