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참함은 너덜너덜해진 남루함이며,
처절함은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괴로움이며,
처연함은 그 두 가지를 받아들이고 승인했을 때의 상태다.
처참함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정황이라면,
처절함은 차마 손 댈 수 없는 정황이며,
처연함은 눈 뜨고 볼 수도 있고, 손을 댈 수도 있지만, 눈길도 효력도 없으리란 걸 알고 있는 상태다.
처참함은 입맛을 잃어 물조차 삼킬 수 없는 지경이라면,
처절함은 밥솥을 옆구리에 끼고 전투적으로 숟가락질을 하게 만드는 지경이며,
처연함은 한 그릇 밥 앞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경지이다.
누군가가 우리를 처참하게 했을 때, 우리는 행동할 게 없어지고 말이 쌓인다.
하지만, 누군가 우리를 처절하게 했을 때, 우리는 말이 없어지고 대신 처신할 것만 오롯이 남는다.
그 누구 때문에 우리가 처연해진다면, 그때는 말도 필요 없고 행동도 필요치 않은 상황이다.
처참함 때문에 우리는 죽고 싶지만,
처절함 때문에 우리는 이 악물고 살고 싶어진다.
처연함은 삶과 죽음이 오버랩되어서 죽음처럼 살고, 삶처럼 죽게 한다
출처
김소연 <마음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