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그들은 잘 모르겠지만 강두 저 놈, 갓 태어나서 무지 똑똑했어.
아닌 게 아니라 상계동 신동 났단 소리 들으면서 컸단 말이지, (중략)
그러다가 남주 태어난 다음 해에, 니들 어미마저 저 세상 가고,
니들 둘은 대전 큰고모 댁에 임시방편으로 가 있을 동안,
그래두 강두 이놈은 나랑 있겠다구 상계동에 남아가지고 말여,
내가 새벽부터 야밤까지 일 나갔다 들어와 보면,
이놈이 빈속으루 하루 종일 어딜 그러케 삘삘거리면서 돌아다녔는지, (중략)
그러구선 상계동서 와르르 쫓겨나가지구, 강변에서 장사 시작하고,
몇해쯤 지나선가 강두 나이 스물셋 됐을 땐가, (중략)
이 자슥이 태어난 지 며칠두 안 된 핏덩이 하날 뜩 델꾸 들어와,
그게 현서, 애엄만 벌써 어디루 날라버렸고…(중략).”
그런 다음에도 이 처량한 이야기는 새벽에 매점 앞에 괴물이 나타날 때까지 이어진다. 이 대사는 박희봉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자 서울 도시 빈민의 연대기이다. 그의 대사를 따라 다시 구성해보자.
달리 배운 것 없고 몸이 재산인 박희봉은 아마도 대전에서 살다가 도시 근대화가 이루어지던 1970년대 그 어느 날 무허가 판자촌이 즐비하던 서울 외곽 상계동에 둥지를 틀었을 것이다. 그는 낮밤으로 일을 했고, 하지만 그에게 집은 생기지 않았다(말하자면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올림픽을 앞두고 상계동은 재개발에 들어갔고, 거기 살던 박희봉 일가는 쫓겨났을 것이다(김동원의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 그리고 그와 그의 아들과 그의 손녀는 이제 한강 강변에서 먹고, 살며, 잔다.
여기는 그와 그의 가족의 의(衣), 식(食), 주(住)의 무대이다. 물론 세상은 그들 가족에게 관심이 없다. 그건 올림픽이 끝나고 이제 월드컵마저 끝난 지금 그때 상계동에 살던 이들이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과 같다. 현서는 그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왜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알 리가 없다.
하지만 그들의 가난은 현서가 매일, 학교가 끝나면, 한강에 와야만 하는 운명을 안겨준다. 부모의 가난은 자식에게 운명이다. 이게 이 영화의 납치를 끔찍하게 만든다. 여의도 매점에서 살고 있는 현서는, 한강 원효대교 북단에 살고 있는 괴물이 나타났을 때 마주칠 수밖에 없는 바로 그 자리에서 매일 살고 있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다. 만일 현서가 잡혀가지 않았다면 그녀는 '운이 좋은 것이다.'
(중략) 현서의 합동분향 영결식장에는 많은 화환이 놓여 있다. 그런데 웃지 못할 화환 중의 하나. ‘대구 지하철 유가족 일동.’ 그게 왜 거기에 놓여 있을까? 한강에 나타난 괴물과 대구 지하철에서 불이 난 것은 무슨 동병상련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봉준호의 인터뷰. “(중략) 이 사람들은 시스템으로부터 소외되고, 도움은커녕 방해만 받지만 아무도 시스템 탓 안 하고 자기들끼리 보듬으며 재앙을 '개인화'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지 않나? 예를 들자면 대구 지하철 참사도 구조적 모순을 탓하기보다 내가 돈 잘 벌었으면, 대학입학했을 때 차 사줬으면, 안 당했을 변을 당했다, 는 식의 반응이 많았다. 이런 게 한국적이고 사실적이다. 재앙은 훨씬 더 구조적인 것에서 온 건데, <괴물>의 식구들도 마찬가지다.”
훨씬 더 구조적인 결과로서의 재앙. 하지만 재앙의 개인화. 봉준호의 이 말의 방점. “이런 게 한국적이고 사실적이다.”
괴물은 거기 훨씬 구조적인 결과로 나타나 현서를 납치하지만, 박강두 가족은 그 재앙을 개인화한다. 그런데 그게 박강두 가족만일까? 혹시 영화를 보는 당신도 그 재앙을 개인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중략) 그러므로 봉준호는 현서의 죽음을 놓고 내기를 한다. 무슨 내기? 피할 수 없는 질문(의 내기). 현서의 죽음 앞에서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걸 괴물에게 떠넘길 것인가?
(..) 나에게 현서의 죽음은 사실상 현서가 매일,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와야만 하는, 봉준호의 말을 빌리면 “훨씬 더 구조적인 데서 온 재앙”, 즉 그녀의 계급적 운명의 결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야 옳다. 현서의 죽음에 대해서 우리 모두가 정치적으로 죄를 지었다. 이것이 정치적 정의의 죄의식이다.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40622
예전에 정말정말 인상적으로 읽었던 정성일 평론가의 영화 <괴물> 비평 중 일부인데...
반지하에서 모두 숨진 일가족 기사 때문이었을까. 그냥 오늘 이 글이 엄청 떠올라서 공유해봄..
그것이 단지 '운이 나쁜' 죽음이었을까...를 계속 묻게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