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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대로 ‘공진져스’라 부르는 배우들, 다른 작품에서 다시 만나게 될 터인데도 떠나보내기 아쉬운 건 그들이 탄생시킨 정감 깊고 따뜻한 인물들 때문이다. ‘캐릭터 탐구’ 코너로 소개해야 할지 ‘배우발견’으로 쓰는 게 맞는지 고심했는데, 같은 극본에 같은 인물이었어도 이 배우들이 생명력을 불어넣었기에 사랑하게 됐으므로 후자를 선택했다.
가장 눈길을 뺏긴 배우는 차청화다. 다양한 작품에서의 감초 역할 덕에 통통 튀는 공처럼 탄력성 좋고 어떤 모습도 소화 가능한 배우인 것은 익히 알려 왔지만, 동네방네 소문 퍼뜨리는 ‘확성기’ 조남숙이 결코 흉하게 보이지 않은 건 차청화 배우가 지닌 자체발광 매력 덕이다.
개성 넘치지만 어떤 작품, 어느 장면에도 녹아들 줄 알고 매 장면 표정과 몸짓, 의상과 헤어스타일에 과장이 있어도 작품에 해가 되기는커녕 보탬이 되는 배우. 톡 쏘는 와사비 같은 색과 맛 덕에 행복했다.
마음을 홀딱 뺏긴 배우는 이봉련이다. 차청화 배우처럼 지난 2005년 데뷔했는데 연극계에서는 ‘햄릿’으로 백상예술대상에서 여자연기상을 바로 올해 받을 만큼 인정받고 있지만,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지난 10년 이렇다 할 배역을 받지 못했다. 물론 주인공의 언니로 또 친구로, 퇴직한 회사 선배로 등장해 짧은 등장에도 ‘오, 내공 대단한데’라는 생각이 들게 잘했지만. 역으로 그 내공에 비해 맡겨지는 역이 작아 그의 연기를 더 보고 싶은 ‘갈증’이 일기도 했다.
드라마 ‘내일 그대와’(연출 유제원, 극본 허성혜)를 함께했던 유제원 감독이 이봉련을 믿고 공진마을 5통 통장, 속정 깊고 무게감 있으면서도 부끄럼 타는 여화정을 맡겼고 완벽하게 해냈다.
여화정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된 것에는 배우 이봉련이 통장으로서, 이준이(기은유 분) 엄마로서 잘한 것도 있지만 전 남편 장영국 역의 인교진 배우와 환상의 호흡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현실 이혼 부부이자 소꿉친구의 애증을 두 배우가 담백하게 잘 보여줬다.
가장 놀란 배우는 바로 그 인교진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설마, 인교진?’, 눈을 의심하며 출연진 검색을 했을 정도다. 솔직히 배우 인교진에게 사과해야 할 만큼,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지 몰랐다. 그저 반듯하게 잘생긴 연기자, 현실 ‘딸 바보’에 육아와 가사노동을 분담하는 좋은 남편으로만 여겼나 보다.
‘엄지척’을 하게 된 이유는 잘생긴 얼굴이 가려질 만큼 내려놓고 연기를 해서도 아니고, 매회 크고 작은 웃음을 줘서도 아니다. 코미디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장영국 캐릭터를 정확히 인식하고 반 숟가락 모자란 듯 선량하고 우직한 공진의 사내를 표현했고, 그것이 자연스레 웃음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영민한 캐릭터 이해이고, ‘나는 정극 연기를 하는데 웃음이 만들어지는’ 보기 좋은 희극 연기를 우리에게 선물했다.
가장 사랑스러운 배우는 공민정이다. 어른 나이에 아이 같은 미소를 지닌 그가 한없이 귀엽고, 개구쟁이 같은 솔직한 표정이 연기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연기가 아니라 그냥 내 친구랑 수다 떠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할 줄 아는 재능, 카메라 앞에서 들키지 않고 예쁜 척할 줄 아는 센스가 좋다.
자신이 연기 잘하는 것도 알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까칠하고 도회적인 ‘치과’ 윤혜진의 유일한 친구 표미선, ‘여신’이라 불리는 신민아에 조금도 기울지 않게 동등해 보여야 하는데 그것도 조연이면서 주연과 대등해 보여야 하는데 자신만만하다. 영화에서나 TV 드라마에서나 통하는 공민정의 딕션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존경심이 절로 이는 배우는 김영옥이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태극기 건곤감리에서 이름을 딴, 홍 반장이 ‘감리 씨’라 부르는 김감리 여사를 연기했는데 그냥 그 인물 같다. 반세기 뒤에 태어난 김선호와의 연기 호흡이 찰떡이고, 사라져가는 옛날 강원도 사투리 연기도 인상 깊다.
무엇보다 공진 최고의 어른으로서 극에 무게중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욕쟁이 할머니 연기보다 좋고, 가수 임영웅이 좋아 진심 설레는 모습도 보기 좋지만 역시 배우일 때 카리스마 있다. 85세에도 변함없이 제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것, 다사다난 사건 사고가 잦은 후배들이 본받아야 할 덕목이다.
(중략)
준비된 배우는 역시 기회가 오면 잡는다. 기회를 잡은 배우들이 많은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많은 배우에게 기회를 준 ‘갯마을 차차차’. 악당이 없어도 드라마가 잘될 수 있음을 알린 선례로 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