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작품 중에 사마리아라는 영화가 있어. 친구가 아저씨들과 원조교제를 하다 죽자, 그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친구와 잔 아저씨를 찾아가 차례로 같이 자면서 그 돈을 돌려주며 힐링을 한다는 줄거리야. 여고생들과 원조교제를 하는 중년 남성의 추악함보다는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주인공의 정신적인 충격에 초점을 맞추면서 얘가 하는 기이한 일들을 미학적으로 표현하고 탐미하는 작품이지.
토주를 읽으면서 이 영화에서 느꼈던 환멸감을 똑같이 느낀건 주인공의 행위를 미학적 시선에서 소비하기 위해 주어지는 매커니즘이 유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윤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중 주인공이 택한 건 결국 추한 현실을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당하는 성행위에 대한 공포심을 s 성향 애인의 사랑을 받으면서(ㅋㅋ) 경감시키며 사는 것이니까. 서사는 주인공 두 명 사이의 관계에 어떤 감정적 교류들이 오고가는지 탐미할 뿐이고, 공은 성상납을 받으면서도 끊임없는 자기연민과 합리화에 도취되어 있는 게 마치 모 드라마에 나오는 40대 아저씨 주인공같아.
한동안 이 책을 보고서도 그 불쾌한 기분이 몇 개월동안 가시지 않은게 참 신기했어. 가벼운 마음으로 읽는 bl소설에서 이런적은 처음이었거든. 사실 성폭행당한 수와 s성향 공의 조합은 그 전에도 별 거부감 없이 봤는데도 말이지. 그래서 그 이유를 생각해봤더니 역시 사건과 배경 설정, 그리고 공의 대사가 타 작품에 비해 실제 현실과 큰 괴리감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 꼽히더라. 아예 황제와 노예, 아니면 재벌과 기초수급자라는 설정이었다면 마음편히 보았겠지만 작가는 회사에서 팀장과 신입사원, 성희롱 당하는 여직원을 위해 나서다 나가리 된 상황, 이럴거면 인권변호사나 하라는 하이퍼 리얼리즘적 대사들을 넣어두었지. 그리고 이 둘 사이의 사랑을, 실제 우리가 사회 생활에서 직장인으로서 느끼는 정신적인 피로감을 대비시켜서 그 쌍방위로적이고 애절한 성격을 부각시켜. 소설 속에서만 미화될 수 있는 퇴행적이고 역겨운 관계가 판타지적인 bl 세계를 넘어서 현실 잣대로 들어오는 순간 느끼는 매스꺼움이 아마 내가 경험한 감정이었나 해. 작가가 이 글을 힐링물이라고 여기면서 썼다는 인터뷰를 보니 더 그런 기분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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