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씨네 21에서 김혜리 기자와 임수정 배우가 진행한 인터뷰야.
전문은 꽤 긴 편이라 인상적이었던 몇 부분만 가져왔어. 그런데 내용이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빼놓을 부분 없이 다 좋아서 꼭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
영화 <당신의 부탁>에 관한 내용 말고도 채식(임수정 배우는 완전 채식을 하고 계심)이나 영화계 내 젠더 불균형 같은 주제에 관한 생각도 나와 있는데 임수정 배우가 생각이 굉장히 깊을 뿐더러 단순히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실천해나가는 사람이구나 느껴져서 멋있더라.
임수정 배우는 팟캐스트 김혜리의 필름클럽 들으면서 호감도가 상승했었는데 이 인터뷰로 완전히 팬 될 듯해..
-<당신의 부탁>은 어찌 보면 죽은 남편을 닮은 소년의 보호자가 되어 죽은 남편의 영향 속에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지만 한발 물러서서 보면 결혼 없이 아이만 갖고 싶어 하는 일부 여성들의 로망을 충족시키는 이야기 같기도 해요.
=실제로 시사회 마치고 어머니가 셋이었다는 한 50대 남성이, 종욱의 사연이 본인 이야기라고 했어요. 영화와 달리 어머니라는 호칭을 강요받았던 것이 차이라고. 영화와 다른 점이라고. 어느 여성 지인은 내가 낳고 싶진 않지만 아이를 원할 때 이미 아이 있는 남자와 같이 사는 걸 충분히 고려해볼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대화가 이어지더라고요. 저 역시 아이에 대해 고민을 조금씩 해봐야 하는 시점인데, 파트너가 될 남자에게 자식이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자문해 봤어요. 결론은 그 애에게, 일반적인 부모와 자식의 개념으로 접근하면 도저히 잘될 수 없을 것 같아요. 엄마, 아들, 딸 같은 역할을 붙이지 않고 그저 ‘가족’으로 함께 지내다보면 조금씩 닮아가고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지 않을까.
-출연한 광고 가운데 한편을 꼽는다면요? 저는 강혜정씨와 같이 찍은 ‘고소미’ 광고가 먼저 생각나는데요.
=7년이나 모델로 일한 SKII 광고를 잊기 힘들어요. 모델로서 책임감 때문에 어디서나 좋은 피부와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는 점이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덕분에 성장도 했어요. 하지만 채식을 하고 동물과 환경보호에 관심을 가지면서 찾아온 생활의 변화 가운데 매일 사용하는 화장품도 있었어요.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화학성분이 없는 유기농 제품으로 바꾸면서 양심상 더이상은 광고 모델을 하기 힘들겠다는 판단이 섰어요.
-페미니스트 비평에서뿐만 아니라 대중문화가 여성을 어떻게 재현하고 이야기를 만드는가에 대한 보편적 인식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 과거 출연작을 보면서 저건 아니었다 싶은 장면도 있을 텐데요.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유명한 대사인데 “죽을래? 나랑 밥 먹을래?” 같은 말도 당시엔 폭력성보다 “나 이렇게 너를 사랑한다”는 뜻으로 통했지만 지금은 불편하죠. 나이 차가 많이 나지 않는데도 끝까지 은채가 ‘아저씨’라고 부르는 설정도, 성숙한 여성이 아니라 어린 소녀로 위치지워 로맨스를 만든 것이니까 논란의 여지가 있고요. 이제는 시나리오 읽으면서 눈에 띄어요. 왜 이 남자가 여성에 대해 이런 말을 할까, 여자가 스스로 왜 이런 말을 할까 의아하고, 때론 아직도 이런 걸 쓰다니 이 작업은 같이하기 힘들겠다 생각할 때도 있어요. 안그래도 할 작품이 없는데 그나마 더 줄어들고 있어요! (웃음)
-누구였는지 기억이 애매한데 할리우드 여성배우가 인터뷰에서 “주연급 남자배우들이 여성의 이야기가 더 많이 스크린에 나와야 한다고 립서비스만 하지 말고, 여성주인공을 서포트하는 배역을 적극적으로 맡아야 변화가 온다”고 지적한 적이 있어요.
=실제로 제작사의 고충을 들은 적이 있어요. <은밀한 유혹>이 여성 중심 이야기이고 남성 캐릭터가 후반에 악역이 된다는 점을 남성배우들이 꺼린다고. 남자배우들은 생각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는구나 싶었죠. 이성으로는 다양성을 위해 여성 중심 영화가 필요하다면서 막상 자신에게 제안이 들어오면 받아들이지 못하는가봐요. 한두분이 시작하고 그것이 괜찮음을 보여주면 바뀔 수 있을 텐데.
-얼핏 드는 생각으로는 일급 남성배우들이 통상 개런티를 고집한다면 하겠다고 해도 캐스팅할 수 없겠네요.
=그렇죠. 여성배우들은 작품의 여건에 맞춰 상당히 유연하게 보수를 조정하는데, 남자배우들은 좀 다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것은 우리 사회가 남성 중심 사회이다보니 남자들의 의식 속에서는 본인이 항상 중심인 구도가 익숙한 건지도 몰라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앞으로는 작품을 선택할 때 지금까지와 다른 기준도 작용할 것 같네요.
=음, 지금까지는 장면이나 캐릭터의 해석에 대해 상대역이나 감독의 의견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니라고 생각할 때에도 어느정도 맞춰가기도 했어요. 제 캐릭터가 소모되더라도 남성배우에게 맞춰주는 부분도 있었고 남성의 로망으로서 기대되는 바를 받아들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타협이 힘들어졌어요. 이를테면, 지금이라면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정인이 반성한 남편에게 돌아가는 장면이 없으면 좋겠다고 더 적극 주장할 거예요. 넓은 의미에서 작품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이 일치하는 분들과 대등한 관계에서 존중하며 일하고 싶어요. 스탭, 여성배우에 대한 매너도 고려 대상일 수 있고 가령 제 영화에 동물이 출연한다면 어떻게 위해로부터 보호할지에 대한 보장을 제 계약조건에 넣을 것 같아요. 안 그래도 할 작품이 없는데 이렇게 또 줄어들고! (좌중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