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별 마지막화까지 다 보고 시간이 흘렀지만
잠시 잊고 일상을 보내도 마지막의 먹먹함을 생각 해보면 다시 눈물이 주륵주륵 흐른다.
그동안 내가 좋아하던 작품들은 모두 나름의 해피엔딩의 작품이 대부분이었는데
고래별은 아픔과 안타까움이 있고 가슴에 메우지 못한 구멍이 생긴 것 처럼 허전함이 가득하다.
연재 시작과 동시에 매주 놓치지 않고 감상했던 작품이라 애정이 엄청났고 등장인물 및 스토리의 몰입 때문에 빠져들었던 작품이라
딤토에 처음 글을 쓰게 된 계기도 고래별 때문이었다.
등장인물들의 각각의 사연과 감정이 섬세하게 와닿아서 모두 서글펐지만
어쩔 수 없이 내게 가장 제일 아픈 손가락은 수아와 의현이다.
고래별의 주인공은 수아이기에 수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고
남자 주인공인 의현 역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극복하고 나아가는 강하고 용기 있는 수아의 모습에 매료되었고
설령 목숨을 잃는대도 기울어가는 조국을 위한 올곧은 신념으로 살아가는 의현이 멋있었다.
만약에... 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된다.
프롤로그를 보고 동화 속 인어공주처럼 수아의 희생은 없을거라고 희망을 품었지만
처음부터 피해갈 수 없었던 결말이 아니었을까?
한 많고 빼앗기는 것이 많은 시기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수아도 의현도 해수도
모두 오래오래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작품 중반부터 해수의 과거 이야기가 나오면서 해수가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독해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되면서 나 또한 어느새 해수에게 정이 들어 좋아졌고
아버지의 억압으로 무력해진 의현을 대신해서 해수가 수아를 보호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해수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 것 같다.
하지만 반대로 이 작품 속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수아였으며
친일파 아버지와의 천륜을 차마 끊어내지 못해 원치 않는 위기를 초래했어도 작품 속 남자 주인공은 의현이 아닌가...
이야기의 시작이 된 수아의 감정이나 의현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봐주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든 것 같아서 마음이 너무 씁쓸했다.
나도 해수를 아끼고 멋진 인물이라 생각하지만 해수가 수아를 연모하게 되었어도
수아의 마음에선 해수를 향한 감정은 연민이상이 될 수 없었다.
수아는 이미 처음부터 끝까지 의현이 각인되어 의현을 연모했고
함께 하는 시간동안 해수의 아픔을 이해하고 연민을 느끼는 것 만으로도 수아에게는 최대한의 감정변화였을 것이다.
작가님이 수아와 해수에게 추운겨울을 보내게 한 것은 수아가 해수라는 사람 자체를 비로소 이해하고
뱀처럼 무서웠던 그도 그저 자신과 같은 마음 여린 안타까운 사람이라는 것을, 동질감을 각인시키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무리 해수라는 인물이 좋고 안타까워도 '해수가 진남주다, 수아가 해수에게 애증을 느낀다'는 이런 반응들을
2차연성이 아니라 공식으로 여기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수아의 모든 선택에는 항상 의현이 있었다.
수아는 여태껏 살아가면서 한번도 자신의 선택이란 것을 한 적 없었지만 군산 바닷가에서 의현을 구하려는 마음을 먹은 후
그에 대한 호기심과 연모의 감정을 알고 점점 그냥 살아지는 삶은 없다는 것을,
결국 스러져가는 사람들을 보며 목숨보다 중요한 것을 깨닫고 그와 조국을 위한 마지막 선택을 한 것...
바다를 떠난 수아에게 의현은 새로운 세상이었고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니
눈 앞에서 그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 자신이 죽어 그가 애달파했던 조국에서 살아가길 바랐을테니까
의현이 거사를 그만두지 않을 것이고, 수아는 그 의지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죽고자 마음먹었으니 이제 온전히 그녀와 사랑하며 살아갈 수가 없었음을...
의현의 수아를 향한 감정 또한 수아와 같다.
다만 의현의 사랑에 대한 사람들 반응들 중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수아보다 조국이 중하다던지,
단지 조국을 투영해서 사랑하는 것 등 단순하게 모든 조선사람들과 동등한 사랑이라 보는게 너무 슬펐다.
아무리 봐도 수아를 향한 의현의 사랑은 분명히 한 남자로서 한 여자를 사랑하는 사랑이었다.
조국을 향한 마음으로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며 살아가다 수아를 만났고,
처음엔 수아에게 목숨을 빚져서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을 품었다 하더라도
결국 수아라는 사람 자체를 점점 깊게 연모하게 되면서 수아가 독립운동을 하는 자신 때문에 상처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몇 번이고 보였으니까...
아픈 세상속에서 수아는 이미 의현의 따뜻한 안식처였다.
비록 죽을 각오를 하며 살아가는 삶이라 연모라 말로 직접 표현하지 못했지만 마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아를 사랑하니까 그녀가 자신을 잊지 않길 바랐던 것이고,
친일파인 아버지를 제 손으로 죽이기로 결심했을 때는 역시 그녀를 사랑하니까
멀고 먼 타국에서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자신을 잊고 살았으면 해서 모질게 밀어냈던 것이다.
104화에서 수아에게 했던 모든 말들을 반대로 곱씹어 봐도 그가 얼마나 수아를 원하고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마지막화는 의현의 시점이 아닌 제3자인 건의 시선이어서 더욱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마치 정말 누군가가 들려주는 동화의 마지막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의현은 수아의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 수아를 지키기 위해 그녀에게 모진말을 하며 속였던 것인데
되려 그렇게나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또 살리고 대신 희생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얼마만큼의 고통과 원통함을 느꼈을까... 심장이 찢기고 얼마만큼의 피눈물을 흘렸을까
의현의 마음을 상상하면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웠을까...
그러나 수아는 의현의 그 모든 말들이 거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말하지 않아도 이미 의현도 수아도 서로에게 향하는 애틋한 감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의현은 수아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를 가슴에 품고 삶을 포기하려다가 자신이 살길 바랐던 그녀의 마음 때문에
차마 죽지 못하고 그렇게 몇 달간 고통스럽게 살아가다 겨우 건이에게 편지를 보냈을 것이다...
그 후 결사단도 모르게 그가 행방불명이 된 것은 수아를 따라 바로 생을 마감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또는 남은 생을 혼자만의 방식으로 일제에 대항하며 짧은 생이든 생이 다 할 때까지 수아를 항상 마음에 품으며
힘겹지만 해방을 볼 때까지 그렇게 살아가지 않았을까?..
두사람이 만난 후 이런 모든 것이 찰나의 시간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들에겐 잊어버릴 수 없을 정도로 길게 느껴졌을 서로를 향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두사람에겐 행복과 따뜻함이 가득했던 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동화 속 왕자는 인어공주의 사랑과 희생은 모르는 채 이웃나라 공주와 행복하게 살았지만
의현은 수아를 정말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녀가 떠나서도 영영 잊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했던 이 다짐들을 마음속에 새긴 채로...
그렇게 그에게 삶의 마지막이 찾아오고 그 너머에
이승에서 길고 긴 시간을 맘껏 사랑하며 살 수 없었던 두 사람이지만 마지막장면처럼 처음 만났던 군산 바다에서 다시 만났고
의현이 먼저 수아를 발견하고 웃으며 그녀에게 손을 내민 것이라 생각한다.
두사람은 이야기꽃을 피우고 또 다음생에서 다시 만나자 약속했을 것이라 믿는다.
그 땐 그들이 소중하게 여겼던 윤화와 해수 및 고래별 사람들과 함께...
애독자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져...
나도 이렇게 후유증많이남는 작품은 처음이라 알딸딸한데ㅠ 길지않게 끝내서 더 여운남는것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