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노인 분들 같은 시청약자를 위해 외화 더빙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조차 한국 성우 연기는 별로고 과장되고 정형화되어 있다고 하는 거야.
그런데 더빙 외화, 특히 KBS 더빙 외화를 꾸준히 봐 왔다면 알겠지만 요즘은 자연스러운 연기가 트렌드야. 신인성우분들 중에는 너무 자연스러운 걸 추구하다 그냥 일반인들 같은 연기를 하시는 분들도 있고. 사람들은 좀 더 과장됐던 예전 더빙 외화만 기억하고 더빙 외화 연기가 과장됐다고 해. 그리고 지금 더빙 외화를 보고도 과장됐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음성만 한 번 들어보라고 하고 싶어. 음성만 들어보면 그렇게 과장된 어조도 아니거든. 외국인이 우리말로 말하는 거 자체가 그 사람한테 어색하게 느껴져서 그런 거지.
그리고 연기는 일상 대화와 같을 수 없어. 그 사람들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일반 드라마나 외국 배우들 연기도 일상 대화와 다르고, 어느 정도의 과장이 들어가 있어. 그냥 일상 대화처럼 대사 연기를 하면 그냥 국어책 읽는 것처럼 들리거든. 목소리로 캐릭터의 성격과 감정까지 전달하려면 성격과 감정을 목소리로 더 뚜렷이 드러내야 하고. 요즘 들어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연극적인 연기를 못 견뎌 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극적인 연기를 해도 너무 과장됐다고 하는 걸. 하지만 나는 그런 연극적인 연기도 필요하고, 연극적인 연기가 못하는 연기라고 생각하지 않아.
성우들은 항상 똑같은 톤으로 연기한다는 얘기에도 동의할 수 없고. 셜록 안에서도 장민혁님이랑 박영재님, 전인배님, 손정아님까지 다 자기 개성이 뚜렷해. 강수진님만 해도 잭 도슨, 모리어티 톤이 다르고 김승준님은 잭 스패로우와 아비의 톤이 다르고.캐릭터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얼마나 섬세하고 다양하게 톤을 변화시키는데. 성우분들 출연작을 보면 이 캐릭터가 그 성우분이었어?하고 놀랄 때가 많아. 그만큼 한국 성우분들의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거지. 동일인이어서 목소리가 같은 것과 연기에 변화를 주지 않아서 연기 톤이 같은 건 다른 건데 그 둘을 혼동하는 것 같아.
그리고 한국 성우 목소리는 거기서 거기라고 하는데 성덕 아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성우 풀은 훨씬 넓어. 목소리도 다양하고. KBS 외화는 2n년차 성덕인 나도 모르는 분들까지 굉장히 다양한 분들이 출연하고 있어. 그리고 관심이 없으니 구별 못하는 것도 있겠고. 내 귀에는 전혀 다른 장셜록과 영재왓슨이 비슷비슷하다는 비성덕들도 있는 걸.
더빙에 대한 호불호가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한국 성우의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건 인정할 수 없어. 5일의 마중 더빙판을 보면 장광님이랑 송도영님이 진도명과 공리의 표정,행동 연기까지 더 잘 살릴 수 있도록 숨소리까지 조절하면서 두 인물의 감정과 심리를 섬세하게 살리셔. 5일의 마중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보아온 수백 편의 외화에서 숨소리, 호흡, 리듬까지 섬세하게 조절하면서 캐릭터와 감정을 살리는 게 감탄스러울 정도인데.
외화 더빙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그냥 시청약자들을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더빙 외화에 대한 편견을 여전히 갖고 있으면서 한국 성우분들의 연기력까지 깎아내리는 게 안타까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