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전에 한국 와서 자가격리 중인 유럽톨이야.
아직도 시차적응 중이어서 아래 글 보고 긴긴밤 글 한편 쓸까 하는 마음으로 써봄.
난 매년 한국에 들어 오는데 올 때마다 동질감과 이질감을 비슷한 비율로 느껴.
한국이 더 좋으냐 지금 살고 있는 나라가 더 좋으냐고 물으면 그건 그 때 그 때 다른 것 같아.
다만 한국이 내 나라니까 살고 있는 나라보다 한국에 느끼는 감정이 더 많은 것 같아.
난 다시 몇 주 뒤에 떠나지만 올 때마다 느끼는 한국에 대한 느낌을 적어봤어.
동질감이야 뭐 다들 아는 걸테니까 짧게 적었고 올 때마다 새롭게 느끼는 이질감을 좀 더 자세히, 그리고 냉소적으로 써봤어.
그냥 재미로 읽고 넘겨주길!
동질감
√ 언어 - 언어는 정말 나의 뿌리인 듯. 내가 아무리 현지어를 잘 한다해도 (잘 하지도 못하지만) 모국어만큼 의사소통이 편하지 않음
√ 음식 - 음식도 정말 나의 뿌리인 듯. 내가 아무리 현지음식을 좋아한다 해도 (별로 안 좋아함) 모국의 음식만큼 소울푸드라는 의식이 없음
√ 정서 - 내가 한국에서 자라고 컸기때문에 서로 말을 안 해도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음. 그 밖에 유머, 우정, 동정심, 부끄러움, aspiration, 경제적 목표 그리고 특히 효에 대한 관념 등은 현지에서 오래 살아도 통하지 않는 장벽이 많음
√ 효도 - 동아시아 전반이 그러하듯 자녀가 성인이 되면 부모에게 뭔가 '갚아야'한다는 의식이 강함. 반면 내가 사는 곳엔 그런 의식 없음
√ 위생 - 이제는 내 나라가 일본과 싱가폴보다 더 깨끗한 것 같음
√ 교육 - 단점도 많지만 한국사람들 참 똑똑함. 다들 기초교육을 잘 하려는 의지가 강하고 실제로 그 결과물이 훌륭함
√ 인정 - 서울톨인데 서울이 삭막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인정 있는 사람들 많은 듯. 그런데 그 인정이라는 것이 상당히 한국적임. 후술하겠음
√ 친절 - 인정과는 조금 다른 개념인데 겉으로는 되게 무뚝뚝해보이지만 뭔가 물어보면 적극적으로 책임감을 갖고 잘 가르쳐 줌
√ 체계 - 굉장히 체계적이고 예측이 쉬움. 이에 따른 효율성이 사회 전반적으로 매우 높음; 내가 사는 곳은 엉망진창. 자기들 하고싶은대로 함
√ 엄마 - 엄마가 갖는 의미는 만국공통이겠지만 한국사람에게 엄마라는 의미는 정말 각별한 것 같음. 울 때 "엄마"하고 우는 나라가 또 있을까?
이질감
√ 나이 - 동아시아 국가들의 특성도 그러하지만 우리나라가 유독 심함;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나이에 따른 생애 주기별 역할의 압박이 매우 심하고 특히 기업의 경우 나이가 많으면 퇴출대상으로 인식
√ 밥 - 현지에서는 주말이나 가끔 저녁에 외식하면 특식 먹는다는 생각을 하지만 보통은 대강 때움. 하지만 한국에 오면 다들 밥에 엄청 의미를 두고 사는 것 같음. 가끔 한국 와서 별식을 먹는 나로서는 좋지만 맞벌이 하는 사람들 보면 저녁 밥때문에 엄청난 중압감을 안고 사는 듯 함
√ 쉴곳 - (서울은) 공원이나 공터같은 곳이 많이 없음. 그래서 그렇게 카페들을 많이 가는구나 이해하게 되었음
√ 간섭 - 이 또한 유교국가의 특징이라고 하기엔 한국만의 독특한 양상이 돋보임; 가족간/친구/직장 학교 등 공적관계 어느 것 하나 개인의 삶에 간섭을 안 하는 그룹이 없음. 외모에서부터 경제적인 문제까지 정이라는 이름을 빙자하여 아주 다양하게 개입하고 참견함. 그러나 정작 개인이 심각한 곤경에 처할 경우 그들은 방관자로 일관하는 경우 많음
√ 분리 - 위와 비슷한 맥락인데, 개개인간의 분리가 잘 안 된 것 같음. 특히 가족/공적(직장)관계. 그 결과 대참사가 일어나기도 함
√ 분노 - 사회 전반이 날 서고 공격적인 분위기. 포털 및 커뮤니티 댓글만 봐도 내 뜻과 대치되면 당장이라도 10만 대군 몰고 쳐들어 갈 것 같은 호전성을 보임. 거기에 가해지는 비난과 조롱, 비아냥 등때문에 자살한 사람이 속출함에도 이 같은 양상은 바뀌지 않는 것 같음
√ 감정적 - 내가 워낙 차가운 나라에서 살고 있는지 몰라도 한국에 오면 사람들이 매우 감정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함. 장점도 많지만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각자 감정을 쏟아 붓는 것에 이질감을 느낌. 특히 어떤 특정한 이슈에 대동단결해서 단기간에 판결을 내는 것에 능한 듯 함
√ 관용 - 모든 원흉이 여기 있는 것 같음. 주류와 다르면 '틀린 것', '나쁜 것'으로 만드는 못된 문화가 있음. 학력, 출신지, 정치적 성향, 인종, 장애, 세대, 성적지향성, 젠더 이슈 등 그저 수적으로 우세하고 목소리 크면 이기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는 것 같음. 설령 그게 비이성적이라 할지라도.
√ 일류 - 일류대(출신), 전문직, 고소득자, 훈남/훈녀, 남성 등이 일류로서 권력을 갖는 사회; 불평등이 만연화됐다고 봐도 무방
√ 대기업 - 특정 그룹사들이 전자제품에서부터 건설, 금융, 자동차, 통신, 병원 등 돈 되는 사업은 다 장악하고 있고 시민들도 좋아하는 것 같음
√ 평등 - 평등의식이 매우 강함. 아마 평소 (역사적으로도 그러함) 에 부정과 부패, 불공정, 불평 등에 피해를 많이 봤기 때문일 것임
√ 교육 - 주류 편입을 위해 구조선에 탑승하려는 절박함으로 교육을 하는 듯 함. 더 이상 학교가 교육기관이 아닌 것 같음
√ 획일 - 한국을 가장 잘 대표하는 단어 중 하나라고 생각함. 대다수 국민의 꿈이 같고 목표가 같음. 공산주의의 21세기버전인가 싶기도 함
√ 옵션 - 삶의 옵션이 매우 한정적임. 사회와 어른들이 제시하는 삶의 선택지와 비전이 고루함. 그 결과 모두 같은 목표를 갖고 창의력과 다양성이 줄어듦. 결국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트랙을 답습하고 삶의 활력이 떨어지는 것 같음
√ 경쟁 - 어린 나이부터 교육을 시작으로 무한경쟁 체제에 놓여짐. 한국의 눈부신 산업/경제발전 등 을 생각할 때 경쟁의 순기능에 납득이 감. 그러나 모두가 경쟁의 트랙 위에 올라 타기 때문에 과당경쟁으로 변질된 지 오래됨. 극소수의 승자만 배출하는 이 같은 경쟁체계가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있음. 95%의 루저를 양산하는 이 같은 경쟁의 대열에 왜 참여하는 것인지 개인적으로 의아함. 반면 이 같은 경쟁을 위해 치러야 하는 경제적/시간적 비용이 너무 큼. 획일화된 교육과 주류로의 편입을 바라는 기성세대의 욕구가 투영된 결과가 아닐까 함
√ 고용관계 및 이직 - 유럽은 대부분이 상호평등한 계약관계. 주종관계가 아님. 따라서 눈치 볼 필요 없고 내 일 끝나면 퇴근함. 내가 사는 나라는 보통 입사 후 2-3년차에 이직 많이 함. 이직해야 급여가 오르는 구조. 대체로 한 직장에 오래 근무를 하면 문제 있다고 보는 경우가 많음
√ 갑질 - 중세농노제에서나 있었을 법한 일이 21세기 내 모국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유럽은 이미 이런 문제를 오래 전에 청산했기 때문에 나같은 외국인도 그 혜택을 받고 있음. 이와 별개로 사회 전체가 돈보다는 명예와 책임감을 중시하기때문에 갑질을 하는 건 상상도 못할 일
√ 업무량 - 인턴으로 한국계와 일본계에서 일 한 적이 있는데 대부분 주니어들이 눈치 보고 제일 늦게 퇴근함. 반면 대부분의 영미유럽회사는 매니저/디렉터들이 야근을 함. 받는만큼 일하며 책임의 범위 또한 직급이 높을수록 높아짐. 개인적으로 대단히 합리적이라고 생각
√ 효율 -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나라 전체가 기업처럼 변함. 모두가 효율성과 가성비를 따지게 되었음. 그 결과 도태되는 사람들이 양산되었고 개인들은 기업의 논리에 종속됨. 내가 사는 곳에서는 매우 경계하는 논리가 내 나라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라니 굉장한 이질감이 듦
√ 신뢰 - 매우 낮음. 사회 전반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함. 개인적으로 한국은 신뢰비용이 매우 큰 나라 중 하나라고 여김
√ 불안 - 안타깝게도 계속 이런 상태인 것 같음. 특히 성인의 경우 불안을 모티베이션으로 한 경제활동, 취업준비 등이 압도적으로 많은 듯. 내가 사는 나라도 경제적 불안과 막연함이 교차하고 있지만 워낙 변화가 없는 나라이다 보니 혼란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음
√ 리스크 - 리스크를 없애려는 전사회적 노력이 곳곳에서 보임. 리스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한국은 한 번 쓰러지면 회복이 어려운 구조인 듯. 특히 학벌, 첫 회사 등 어찌 보면 실패하기 쉬운 것들에 대한 탄력성이 매우 낮아서 안타까움. 한편 국민대다수의 목표치/기대치가 매우 높은 것 같기도 함. 사회 전반적으로 상향평준화의 덫에 걸린 것 같기도 함
√ 아파트 - 현재 서울과 인구밀도 비슷한 도시에서 거주중이지만 유럽도시의 특성상 고층 아파트가 많이 지어질 수 없음. 그렇다면 그 많은 사람들은 아파트가 아닌 어디에서 사는 걸까. 난 한국사람들과 한국의 고층아파트가 매우 닮았다고 느낌
√ 재테크 - 부동산이 재테크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듯. 왜 사람들이 부동산에 집착하는가에 대한 답은 각종 불안에 있지 않을까 싶음. 내가 사는 나라도 다운페이먼트만 마련되면 다들 내집 장만을 함. 다만 이는 부동산 재테크가 아닌 주거의 안정성을 추구하기때문임. 하지만 한국처럼 갭투자 및 아파트쇼핑이 가능하지 않은 구조임. 문제는 한국은 부동산이 아니면 돈을 못 버는 구조때문. 온갖 불안 속에서 자산을 창출하려다 보니 가장 쉬운 부동산을 택하게 되는데, 모두들 같은 방법으로 자산을 운용하다 보니 결국 제로섬이 되어버림. 부동산 투기가 국민 대다수의 위기 탈출구가 되어버린 현실이 씁쓸함
√ 세금 - 너무 낮음. 매년 증가하는 고령층 인구를 보면 각종 세금을 높여서 공적 연금으로 끌어 와야 한다고 생각. 내가 사는 나라가 그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