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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대풍괄과의 <장공안2> - 박라국=고려 의혹
2. 회상의 <난득정심> - 북한인=조선족, 항미원조 등 문제
3. 회상의 <청룡도등> - 신라 역사 왜곡 문장
대풍괄과 작가 국내 출간 작품: 도화채, 장공안
회상 작가 국내 출간 작품: 청룡도등
1. 대풍괄과의 <장공안2> - 박라국=고려 의혹
이 의혹은 내가 제기한 것이 아님
"책 내용에 대응되는 왕조는 당나라, 동영, 박라, 즉 일본과 고려 양국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감상이다."
중잘알 중국인의 의견에서 출발하였음을 밝힘.
박라국이 고려라고 생각할만한 이유는 세가지가 있음
1) 박라 泊罗의 한자
박라의 라罗 = 신라 新罗 의 라罗
그리고 박泊은 뭔가 백제의 百자가 떠오름
2) 작품 속 내용을 보면 박라가 한반도에 세워진 나라 같음
ⓐ
"그럼 처음부터 얘기할게요. 전달에, 박라국 파견으로 조정에게 보고하기를, 동영에서는 수군연습을 진행하면서, 박라가 관할하는 모 섬을 탈취할 것을 몰래 꾀하였다고 한다. 게다가 왜국 수구는 우리(중국)의 동해 일대에서도 이상한 움직임도 잦아 병부 쪽에서 살짝 살폈다. 유후가 이번에 상경한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那我就从头说起了。前月,泊罗国遣使来向朝廷禀报,东瀛正兴练水军,密谋夺泊罗所辖某岛。加之倭国水寇在东海一带也频有异动,兵部那边便略关注了一下。刘侯爷这趟回京,此也是缘故之一。”
东瀛 (동영)
1. 동해
2. 일본
倭国 (왜국)
일본(日本)을 낮추어 부르는 말
일본이 수군 연습을 하면서 섬 탈취를 꾀할만한 나라가 중국 말고 근처에 어디 있을까?
ⓑ
박라국은 우리 조정의 속국 중 하나이다.
연호 예법에는 종주국을 따르지 않는 법이 없고, 국주는 우리 조정에 책봉되어야 비로소 왕이라 불릴 수 있다.
마침 붉은 색으로 학무늬를 수놓은 왕포복은 두 날개에 관을 달고 있어 우리 조중 문관과 동격이다.
泊罗国乃本朝属国之一,年号礼法无不遵从上邦,国主需朝廷册封方可称王,王袍服色正红绣鹤纹,戴双翅乌纱冠,与朝中二品文官同。
속국 웅앵웅 지겨워
박라국 왕 지위 = 중국 문관과 동격이라는 얘기
역사적 사실 체크
>우리나라 왕이 입는 곤룡포에는 용무늬가 있다. 학무늬는 없다.
>붉은색 곤룡포는 조선시대부터 입기 시작했다. 고려시대는 황룡포.
>우리나라에서 왕은 학무늬를 수놓은 흉배를 단 복장을 입지 않는다.
>특정 품계의 신하들만 학무늬를 수놓은 흉배를 단다.
ⓒ
"그 박라국은 또한 와서 황제가 그들의 주인이 되어 동영(일본)으로 군대를 출동시켜 주시기를 청하였는데, 몰래 이 수전(해전)비법을 사기도 한다. 궁중의 이 보물 공에 동서를 간직하고 있는데 어떻게 얻어낼 생각인가"
“那泊罗国,还来请皇上为他们做主,驱东瀛之兵,却暗地里买这水战秘方。东西藏在宫中的这颗宝球内,他们打算如何取得?”
동광제 때 왕이 상빈의 행관으로 개조하다.
同光帝时改作番夷上宾居住的行馆。
동광제가 계속 나오는거 보니 그 세계관이 쭉 이어지나본데
동영(일본) 애들은 왜 가까운 고려 놔두고 어디에 있는지 모를 박라의 섬을 탈취하려 꾀하고 있을까 모를일
2. 회상의 <난득정심> - 북한인=조선족, 항미원조 등 문제
难得情深
1) 북한 사람 =조선족 朝鲜族 사람?
작품 속에 북한 리명우 참모장(北朝鲜李明羽参谋长)이 나옴
리명우 북한 군사총장은 최근 몇 년간 동남아시아 정치지형의 주목을 받아온 인물로, 그의 강경 수단은 많은 미국유럽 국가들로 하여금 그를 극도로 꺼리게 했다. 몇 년 전부터 원씨 집안은 그와 많은 거래를 했지만 원성을 제외하고는 그와 개인적인 왕래가 거의 없었다.
北朝鲜军事总长李明羽,是近几年来东南亚政治格局里备受瞩目的人物,他的强硬手段让很多欧美国家都对他甚为忌惮。早几年袁家就和他有很多生意往来,但是除了袁城之外,几乎没有其他袁家人跟他有私人来往。
새하얀 눈썹 끝이 살짝 떨리네! 그러나 추궁을 당하기도 전에 리명우는 "당신은 내가 순수한 조선족 사람이 아니라는 걸 모를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는 중국에서 군사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朗白眉梢微微一跳!但是还没等他追问,李明羽开口打断了他:“你恐怕不知道,我并不是个纯粹的朝鲜族人。我的祖父以前在中国当过兵。”
북한 사람이 조선족 사람 운운한다?
북한 사람이 왜 조선족이야?
예전에 한국 연예인들 바이두 백과의 민족란에 조선족이라 되어서 논란되었던 거 생각남
한국 연예인 ㅇㅇㅇ-ㅁㅁㅁ가 '조선족'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인 '바이두(www.baidu.com)'가 한국 연예인들에 대한 인물정보란에 민족(民族)을 조선족(朝鮮族)이라 표기해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가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한 ‘동북공정’을 꺼내 든 상황에서 중국 내 포털사이트까지 나서 한국을 중국의 속국(屬國)으로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
페이지 내 ‘민족’란 옆은 모두 ‘조선족’이란 단어로 채워져 있었다.
2) 항미원조 抗美援朝
군신으로 불리는 린뱌오(林彪)가 이끄는 이 군대는 해방전쟁 때부터 절대 주력 전투부대로 한때 27만 명에 달했다. 제4야전군의 3개 '조선사단'은 항미원조전쟁 중 무기를 소지한 채 북조선에 넘겨져, 직접 조선 제1호 지도자인 김일성에게 관할되었다.
这只由有军神之称的林彪所带领的军队,从解放战争时期开始就是绝对的主力战斗部队,总兵力一度达到27万人之多。在抗美援朝战争中,第四野战军的三个“朝鲜师”被连人带武器移交北朝鲜,直接受辖于北朝鲜第一号领导人金曰成。
이명우는 살짝 숨을 내쉬며 "-내가 처음 입대했을 때조차 4야라는 배경 때문에 대비가 됐었는데…. 북한군은 사실 중국군을 두려워하는 군대다. 항미원조 전쟁은 맥아더의 거만함뿐 아니라 북조선 민족의 중국군에 대한 오만한 마음을 무너뜨렸다."라고 말했다.
李明羽轻轻吐出一口气,“——甚至连我刚刚参军的时候,也因为有着四野的背景而倍受防备……北朝鲜的军队,其实是相当畏惧中国军人的。抗美援朝战争不仅仅打垮了麦克阿瑟的高傲,也打垮了北朝鲜民族对于中国军队的轻慢之心。”
항미원조 단어만 문제되는 게 아님
이 중에 중국군의 위대함까지 나왔음
맥아더의 거만함을 무너뜨렸대;ㅋ
3. 회상의 <청룡도등> - 신라 역사 왜곡 문장
중국어 원문엔 있는데 정발본에 빠진 문장에 역사 왜곡이 있음
사성 원년에 당 중종 이현은 여릉왕으로 폐위되어(684년 2월 26일에 폐위 당함) 위씨 일족과 함께 영남으로 유배되고, 기왕 이단(후의 당 예종)은 별궁에 즉위하여 별궁에서 지내며, 모든 일을 하늘에 맡긴 무씨(측천무후) 및 섭정왕이 단초결정을 듣고 연호를 수공으로 바꿨다(685년).
이듬해, 당은 안동에 군사를 보내어 고려를 평정하고(고구려의 당시 이름=고려), 신라의 항복을 받았다.
수공 3년에는 거란을 정벌하였고, 섭정왕이 직접 지휘권을 잡아 적수를 토벌하고 돌궐을 밀고 나가, 막북 지역을 평정하였다.
嗣圣元年,唐中宗李显被废为庐陵王,与韦氏一族流放岭南;冀王李旦即位,居于别宫,凡事皆听天后武氏及摄政王单超裁决,改年号垂拱。
次年,唐发兵安东,征平高丽,纳降新罗。
垂拱三年征讨契丹,摄政王亲自挂帅,剿灭贼首并推进突厥,漠北始平。
사성24) 1년. 여릉왕으로 폐위된 당 중종 이현과 위씨 일족은 영남으로 유배되었다.뒤이어 기왕 이단이 즉위했다. 그는 별궁에 거주하며 모든 국정을 천후 무씨와 섭정왕 선초에게 맡겨 버렸고, 연호를 수공25)으로 바꾸었다.
수공 3년에는 거란을 정벌하였다. 섭정왕은 선봉 부대를 이끌고 거란군 수장의 목을 베었으며, 돌궐을 퇴각시키고 막북 지역을 평정하였다.
청룡도등 6권 (완결) | 회상, 고고 저
纳降 = 항복을 받다 (출처: 중국어 사전)
新罗 = 신라
나당전쟁은 신라의 승리로 끝났고 신라가 항복한 적 없음
나당전쟁 결말
당나라는 676년 평양에 있던 안동도호부를 요동성으로 옮기고, 웅진도독부는 건안성(建安城: 개평)으로 옮기면서 대동강 북쪽으로 완전히 철수하였다.
그리고 연호를 수공으로 바꾼게 685년이고 그 다음해면 686년인데
신문왕이 당에 첫 사신을 보낸게 686년이고 항복하는 내용도 안보냈음
668년 이후 703년(성덕왕2)까지 35년간은 사실상 당과의 국교단절상태였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신라와 당 사이에는 한편으로 조심스럽게 교섭이 재개되었다.
681년 신문왕이 즉위하자 당 고종은 사신을 보내 신문왕을 신라왕으로 책봉하였는데, 신라는 이에 대해 사은사를 파견하지 않았으며 조공도 하지 않았다.
686년(신문왕 6) 신라는 禮典(예전)과 文章(문장)을 요청하는 사신을 파견하여 ‘吉凶要禮’·‘文館詞林採其詞渉規誡者’(길흉요례, 문관사림)를 받아오면서 양국관계의 개선을 꾀한다.
http://db.history.go.kr/download.do?levelId=kn_029_0040&fileName=kn_029_0040.pdf
○ 무후(무후) 수공(수공) 2년(686, 신문왕6) 2월에 신라의 왕 김정명(김정명)이 사신을 파견하여 《예기(예기)》 1부(부)를 내려 주기를 요청하니, 유사(유사)에게 명하여 《길흉요례》를 베껴서 하사하게 하였다. 《구당서(구당서)》
○ 측천무후(칙천무후) 수공(수공) 2년(686, 신문왕6)에 신라 왕 김정명(김정명)이 사신을 보내어 여러 가지 문장(문장)을 보내 주기를 요청하였다. 이에 유사(유사)로 하여금 《문관사림》에서 내용이 규계(규계)가 될 만한 것들을 채집하게 하여 50편을 만들어 하사하였다. 《구당서》
구당서=당나라 정사인데 여기에도 해당 내용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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