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여성에게 사제의 역할을 부여함으로서 서사가 있는 여성영웅캐릭터를 만들어냈다고 할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여성에 대한 과도한 숭배의 형태를 띈 여성혐오일 수도 있음. 여성을 "자연에 가까운 신성한 존재"로 그림으로써 여자가 인간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무시하는 것도 여혐의 일부야.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는 "소녀"와 "순수함"을 굉장히 강조하기 때문에 그런 의심도 합당하다고 생각함. 개인적으로는 여성이 아니라 자연 자체에 대한 신격화라고 느꼈지만 분명 타당한 의심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령공주의 여성관이 좋다고 느낀 이유는? 늑대와 함께 사는 산은 초반에 얼핏 자연을 대리하는 미야자키식 구원자로 보임. 그러나 작중에서 산은 자연에도 인간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존재임을 알수있어. 완전성과 신비감을 탈피한 캐릭터인 거지. 여성에 대한 이 신비감이야말로 숭배형 여성혐오의 결정체라고 할수있음. 그러나 원령공주에서는 신비하고 완전한 자연하며 순수한 자연의 모습은 사슴신으로, 자연과 인간의 중재자는 아시타카로 그려져. 산은 고민하고, 갈등하고, 선택하는 하나의 주체적인 인격체임.
그리고 인간측의 지도자인 에보시. 야생의 모습을 한 "소녀" 산과 달리 에보시는 철저히 인간 위주의 사상을 가지고있으며 화장한 성인여성임. 게으른 창작자라면 이걸 성녀-창녀 구도로 그리고 끝내겠지. 흔히 말하는 개념녀-김치녀 비슷하게. 하지만 원령공주의 서사는 그렇지 않음. 에보시는 인간의 관점으로만 보자면 사실 완벽한 지도자야. 타타라 마을은 부와 강함을 둘다 갖고있고, 여성인권이 높으며, 약자(나병 환자)에 대한 인식이나 복지까지 좋음.
에보시와 산은 대립하고 있지만 단순한 선악구도가 아니라 각자의 신념에 따른 대립임. 결국 인간문명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어떻게든 자연을 훼손하게 되어있다는 점에서 자연과 문명에 대한 은유라고 볼수 있는데 페미니즘적으로 중요한 건 아니고... 하여간 타협접 없이 극단에 서있는 두 여성캐릭터의 대립을 그리면서 하나를 썅x라고 묘사해버리지 않고 끝내는 건 사실 창작자로서 당연한 일이지만 슬프게도 드문 일이지. 대신 영웅이자 주인공 자리는 아시타카가 가져갔지만ㅋㅋㅋㅋ 대부분 지브리작과 달리 여성의 단독서사는 아니지만 이정도로 여캐활용 잘된 애니도 드물다고 생각해.
미야자키 하야오 페미니스트라고 그랬을 걸? 오히려 일본은 하야오감독 나이대 사람이 더 진보적일 수도 있음...좌파운동 겪었던 세대라. 그런데 하야오 감독도 초반작품은 여성을 신격화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면서 한계가 있었는데 점점 가면서 다양한 면 드러내는 식으로 변함. 같은 회사의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만든 카구야 공주 이야기는 그냥 페미 애니...(결말에 한계가 좀 보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