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우린 결코 둘이어선 안 됐어. 원래는 한 명이어야 했지.


"난 쌍둥이가 정말 싫어"

내가 4살일 무렵, 길에서 쌍둥이 남자아이를 본 우리 엄마가 했던 말이야.

엄마가 그 말을 했을 때 엄마와 나는 골목길에 있었어.

그 애들을 보고 엄마가 내 손을 잡은 채로 갑자기 달리는 바람에 내 무릎은 다 긁혀있었고 울고 있었어.

엄마는 서있기는 했지만 앉을 곳이 없기 때문에 겨우겨우 눕는 걸 참고 있다는 듯 몸을 웅크리고 있었어.

엄마 옆에 하수구에는, 우리가 '안전'해졌다고 생각한 엄마가 쏟아낸 토사물이 점점 흘러들어가고 있었지.

*

우리 엄마는 쌍둥이를 엄청나게 싫어해.
이유는.. 알고 싶지도 않아.

어렸을 땐 엄마에게 이유를 묻곤 했지만
이젠 정말 알고싶지 않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무슨 일이 증오를 불러 일으킨 건진 몰라도...

쌍둥이를 향한 엄마의 공포는 엄마 인생에도 우리 인생에도 영향을 미쳤어.

그 공포가 나에게도 영향을 미칠까봐 무서워.
그리고 엄마가 두려워하는 것이 사실 나일까봐 무서워.

나와 내 여동생에 대한 무언가가 너무 끔찍해서
우리 엄마를 평생 공포에 질리게 한 거면 어쩌지?


*


우리가 십대가 됐을 때, 우리가 원나잇의 결과물이었다고 엄마는 내게 말해줬어.

그 날 엄마는 아주아주 취해있었고 남자의 번호를 받지도 못했다고.
하지만 강간은 결코 아니었다고 엄마는 강조했지.
번호가 있었다해도 엄마는 그 남자랑 연락하고 싶어하지 않았어.

엄마는 이 모든 것을 혼자 하는 걸 기대하고 있었거든.

엄마는 결코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우린 단 한 번도 조부모님을 뵌 적이 없었어.

아마 좋은 시절이 아니었던 모양이야.

내 생각에 엄마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이 기회를 만나 무척 신이 났던 것 같아.

초음파 검사 결과 딸이라고 나오자 엄마는 남아있던 방을 밝은 핑크 색의 꽃과 요정 그림 벽지로 장식하고 셀 수 없이 많은 분홍색, 보라색의 아기 옷들을 사들였어.

엄마의 첫 임신이었기때문에 일반적으로 배가 어느 정도로 커지는지 몰랐고 우리는 작은 편이었어.

의사가 다시 한 번 초음파를 해보자고 했을 때, 엄마는 이미 7개월 째였지.

우리를 낙태하기엔 너무 늦은 상황이었어

난 엄마가 그 이후의 날들 동안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어.

왜 우리를 키우기로 결정했는지도 말이야.

내가 해볼 수 있는 추측으로는 우리가 태어나고 난 뒤엔 엄마는 우리를 입양 보낼 수가 없었던것 아닐까.

아니면 하나만 키우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하나는 키우게 두고 다른 하나는 데려가는 일은 없을 거라는 걸 알았다거나.

모르겠어.

기억이 나질 않아.

내가 아는 건 우리가 태어나고 난 뒤 (아님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가 쌍둥이라는 걸 알자마자) 엄마는 우리를 하나로 키우기로 결정했다는 거야.

그래서 출생 신고서는 아나벨 베일리 라는 이름이 적힌 단 하나뿐이야.

어쩔땐 내가 아나벨이고 다른 날들엔 내 동생이 아나벨이지.

이건 생각보다 잘 먹혔어.

매일 밤 자러가기 전에 우린 '미사용' 쌍둥이가 지내는 계단 밑의 벽장에서 만나서 자리를 바꿨어.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세세히 알려줘서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지.

우린 점점 하루를 묘사하는 기술이 늘기 시작했어.

지금도 내가 가진 기억 중 몇개는 내 것이 아니라고 동생이 말하곤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제 일어난 일인 것처럼 아주 선명하고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어.

우린 이걸 잘 할 수밖에 없었어.

학교를 가기 시작했더니 선생님들이 빨리 배우는 것 같으면서도 다음 날이면 다 까먹는 학생에게 그리 많은 인내심을 보여주진 않았거든.

어떤 선생님은 우리가 장난치는 거라고 생각했고 다른 선생님은 우리가 지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지.

뭐가 어쨌든 우리는 서로가 듣지 못한 수업을 가르쳐야했어.

우리 엄마가 우리에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설명하는 건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언젠가는 그렇게 했겠지.

계단 밑의 벽장에는 밖에서 잠그는 자물쇠가 달려있긴 했지만 우리가 서로를 풀어주지 못 할 정도는 아니었어.

왜 우리가 단 한 번도 서로를 풀어주려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어

그것과 비슷한 일은 우리가 8살일 때 벌어졌어.

우리가 수학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며 엄마는 우리에게 피자집을 데려가 준다고 했지.

문제는 시험 본 건 난데, 피자집 가는 날 나갈 수 있는 건 내 동생이었다는 거야.

난 그 문제가 얼마나 불공평한지에 대해서 며칠을 툴툴 거렸고 피자집을 가기로 한 날 전 날에 난 동생과 자리를 바꾸지 않기로 결심했어.

난 그냥 벽장을 휙 지나서 침대로 올라가버렸어.

벽장 문 앞에 앉아 내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하고 있을 동생을 두고 말이야.

그 날은 정말 재미 없었어.

단순히 동생을 벽장에 가둔 채로 나왔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만은 아니었어.

물론 벽장 안에는 소변을 볼 수 있는 양동이와 (나중에 바꿀 때 내가 비우는게 일이었어) 먹고 마실 수 있게 레몬에이드나 콜라, 그리고 간식이 조금 있긴 했지만 지금쯤이면 그걸 다 먹었을 거라는 걸 생각하자 피자는 합판을 씹는 맛이었어.

양동이가 어떤 상태일지는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고 말이야.

그 무엇보다 날 가장 우울하게 만든 건, 내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는거야.

선생님들은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전혀 몰랐고, 친구들도 몰랐고, 심지어 우리 엄마조차도 다른 걸 몰랐어.

지금 뒤돌아 생각해보면, 2일을 연이어 나가는 것이 어쩌면 단순히 피자에 대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라고 생각해.

어쩌면 난 누군가 나와 여동생의 차이를 눈치챌 수 있을 지 알아봄으로서 나만의 정체성을 찾고자 한 걸지도.

그 날 밤, 난 여동생과 자리를 바꿨고 우린 그런 짓을 다시는 하지 않았어

추가로 덧붙이자면, 비록 피자집에 간 것이 나였다고 거의 확신하긴 하지만 사실은 여동생이 간 것일 수도 있다는거야.

응, 죄책감을 느끼며 그 합판같은 피자를 씹던 기억이 아주 생생하게 남아있긴 해.

하지만 벽장 속에 혼자 앉아서 날 잊은 건 아닐까 걱정하고 있는 나의 모습 역시도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어.


*


가끔은 쌍둥이로 산다는게 참 힘들어.

우리가 자라나서 집을 떠났을 때, 우린 평범한 사람처럼 사는 걸 생각해봤어.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었지.
우리가 아는 삶은 이것 뿐이었고 우린 더 이상 바꿀 수 없었어.

그래서 우린 살던대로 살기로 했어.

우리만의 집으로 옮겼을 때 우리는 시간을 잘 조정해서 한 명이 먼저 들어가고 마치 뭘 가지러 잠깐 나갔다왔다는 식으로 다른 한 명이 2시간 뒤에 들어가는 식으로 이사를 했지.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벽장은 너무 작았기때문에 우린 장농을 이용했어.

하지만 엄마가 버스에 치이는 사고를 당해 돌아가시고 집을 "내 딸, 아나벨"에게 남겨놨다는 것을 알게 되자 우린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이전 벽장을 그대로 사용했어.

어쩌면 너는 내가 이걸 지금 왜 쓰고 있는걸까 하며 궁금해하고 있을지도 몰라.

실은, 며칠 전에, 난 다락방을 둘러보기로 했어.

우리가 이 집으로 이사한 지 몇 달이 지났지만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거든.

우리가 어릴 때도 엄마만이 다락방에 들어갔어.
바닥이 오래되어 많이 낡았기 때문이었지.

얼마나 오래된 집이었는지 다락에 올라갔을 때 난 정말 조심하면서 바닥을 기어다녔어.

혹시라도 실수로 바닥이 무너져 죽으면 어떡하나 하고 말이야.

다락방엔 마치 고양이라도 한 마리 죽은 것 같은 냄새가 나서 사람을 불러야 하나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벽에 문이 하나 있는 걸 발견했어.

바깥 쪽에서 잠겨있는 문을 열었더니.....
나는 안에 쓰러져 있는 시체를 보고 비명을 질렀어.

시체가 원피스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여자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죽은 지 좀 된 것은 확실해보였어. (이게 바로 내가 맡은 그 냄새라는 걸 알고 토할 뻔 했어.)

시체에 여전히 남아있는 머리카락을 보고서야 이 시체가 우리 엄마라는 걸 깨달았어.

나와 똑같은 붉은 끼의 금발이었지.

충격이 가시고 난 뒤에야 나는 이 시체가 우리 엄마일 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어.

우리 엄마의 시신은 지역 묘지에 묻혀있고
난 내 엄마의 관이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걸 직접 봤는걸?

그러다 난 시체의 발 옆에 있는 텅 빈 플라스틱 병을 발견했어.
그 옆엔 음식 봉지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그리고 (이때쯤엔 난 진짜로 토하기 시작해서 오분간 뱃속에 있는 모든 걸 토하고 또 위액도 토해냈어)

그 옆엔 오물로 가득 찬 양동이가 놓여있었어

문의 안 쪽에는 손톱자국이 가득했고
두드린 자국도 잔뜩 있었어.

아마 맨손으로 두드린 것 같아.
시체의 손등엔 상처가 가득하고 피가 나있었거든.

아마 그 뒤엔 누구도 이렇게 높이 갇혀있는 그녀의 고함을 들을 수 없다는 걸 눈치챘겠지.



아무래도...
나만 비밀 쌍둥이를 갖고 있던 건 아니었나봐..


출처 다음카페 쭉빵
  • tory_1 2020.08.25 12:28
    월요일이 사라졌다 생각나네...
  • tory_2 2020.08.25 12:29

    오 .. 뭔가 순환되는 기분이 들기도 하네 잘 봤어 !!

    나도 1토리처럼 처음에 월요일이 사라졌다 생각났는데 

  • tory_3 2020.08.25 15:21

    엄마도 쌍둥이였구나...

  • tory_4 2020.08.26 00:19
    그냥 쌍둥이로 살게 하면 될 것을 엄마가 자기 자매를 가둔 채 죽인 죄책감을 딸들에게 뒤집어 씌웠네 혹시 엄마도 그렇게 살도록 강요당했던 것일까?
    화자도 똑같은 짓을 한 것 같은데 저주같아 꼭
  • tory_5 2020.08.26 00:43

    엄마도 쌍둥이였는데 한명이 사고로 죽어버려서 다락방에 갇혀 있는 다른 한명을 꺼내줄수가 없었기때문에 나머지 한명도 그대로 아사한 거구나... 화자는 엄마가 한 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사실은 두 명이었던 거네

  • tory_4 2020.08.26 00:51
    맞다 엄마가 죽어서 죽은거구나
    난 엄마가 일부러 죽인거라 착각했다
  • tory_8 2020.08.26 14:07
    @4 아 맞네
    나도 죽인거라고 생각햇엇는데 이게 더 말이된다
  • tory_6 2020.08.26 03:32
    아 막 이래도 재밌겠다
    알고보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쌍둥이고 이 주인공들처럼 사는데 서로는 그걸 모르는거야
    그래서 누군가는 상대방을 죽이고 누가 사고로 다리를 잃으면 상대방도 다리를 고의로 자르고 막 이렇게 사는거지
    이게 마지막 반전처럼 나중에 밝혀지고 막
  • tory_7 2020.08.26 09:37
    이중인격인줄알았는데 진짜 쌍둥이였구나..
  • tory_9 2020.08.26 19:22
    헐 소름돋는다ㅜ
  • tory_10 2020.08.27 07:47

    그럼 누가 진짜 엄마인지도 모르는거네..홋..

  • tory_11 2020.08.29 00:53
    만화 싸이파 떠오른다. 여긴 남자 쌍동이인데 유명한 배우야. 여주인공이 비밀을 알게 되고 맞추면 이기는 게임을 하는데...
  • tory_12 2020.08.30 18:12
    화자인 딸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여동생을 구분할 수 있었으면,하고 생각했었지만 ..
    정작 본인도 엄마가 쌍둥이인 즐 몰랐던 점이 아이러니하다..
  • tory_13 2020.11.25 03:29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1/10/07 13:2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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