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찐다정공, 몸좋음, 운동선수 공수, 이런 걸로 영업당하긴 했는데 난 그냥....스토리 자체가 너무 좋았던거 같아 ㅠㅠ
수호도 재희도 너무너무너무 좋은데 얘네가 내 취향에 부합하지 않는 캐릭터였다고 해도 이 서사 자체에 감동했을거라고 생각해.
내가 장수호를 좋아한 이유는...물론 잘생기고 키크고 몸좋고 성실하고 다정하고 이런 것도 있지만, 자신이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인정을 했다는 점이 가장 큰 것 같아.
그간 내가 집착공에 되게 익숙해져 있었고 또 상대를 위해서 헤어진다는게 사실 말이 안되는 소리 아냐? 라고 생각했었거든.
그런데 얘네가 헤어지던 장면에서 수호가 반쯤 목이 메어서 말하는 부분이 있음.
“너한테도…….”
“…….”
“너한테도 언젠가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겠지.”
수호의 나머지 한쪽 손이 이번에는 재희의 손등 위를 덮었다. 겨울도 다 지났는데 재희의 손은 평소보다도 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수호는 마치 그 손에 온기를 남기고 싶은 듯 꼭 움켜잡았다. 딱딱하게 굳은 재희의 손은 그 움직임에 전혀 반응할 수 없었다.
“그게 나는 아니었지만 네가 꼭 그런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더 이상 외롭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을 거야.”
“……후…….”
문득 머리 위에서 억누른 탄식이 들려와 재희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느낌을 받았다. 영사기의 필름이 타듯 머리가 하얗게 비어갔다.
수호가 그 커다란 한쪽 손으로 자신의 눈가를 가리고 있었다.
손 아래 가려진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으나 꽉 막힌 듯한 탄식, 그의 눈썹과 다물린 입가의 움직임이 그의 표정을 알려주고 있었다.
천천히, 손 아래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수호가 울고 있었다.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아까까지 몸 전체를 울리던 자신의 심장 소리마저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아주 느리게 갔다.
이게 수호는 재희 트라우마를 자신이 자극하고 들쑤셔버린 뒤에 수습이 안되는 재희를 어떻게든 놓지 못해서 함께 해보려고 했지만, 그게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었고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자신이 오만했던 걸 인정하는 장면이었거든.
사람의 깊은 상처는 내가 사랑으로 치유해줘야지! 라고 마음먹는다고 다 치유되는 것이 아니고, 사랑하는 이에게 집착하는 것으로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자신의 한계와 잘못을 생살을 찢는 고통으로 고백하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해.
그리고 이 부분이, 나에게 장수호가 그 모든 여타 다정공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었어.
재희의 트라우마는 본인이 다른 일을 겪으며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의 의지로 결국 치유해나가지만...이때 정신과의와의 대화 부분도 좋았어.
“재희 씨. 섹스란 무섭고 괴로운 것을 참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거예요.”
“…….”
“물론 무섭고 괴로운 섹스를 즐기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재희 씨가 얘기했던 것, 쓴 것들을 보면 재희 씨가 그런 것을 즐겼던 것 같지는 않아요. 오히려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다른 부분이 좋아서 무섭고 괴로운 부분을 참은 것에 가깝죠.”
사실이었기에 재희는 그저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재희 씨가 겪은 일을 경찰에게 말하면 그들은 강간이 아니라고 말할지도 몰라요. 왜냐면 그들은 재희 씨에게 주먹을 휘두르지는 않았으니까요. 어릴 때 있었던 일은 조금 예외지만, 그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것쯤은 재희 씨도 이미 알고 있었겠죠.”
“재희 씨가 겪었던 일들이 모두 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죄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폭력이었다는 것은 분명해요.”
“……때리지 않았는데도요? 강제로 하지도 않았는데?”
“서로 호감이 있는 사이, 또는 연인 사이에서도 어느 한쪽이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의사가 없는데 섹스를 강요한다면 폭력이에요. 방식은 물리적 폭력일 수도 있고, 내 말을 듣지 않으면 관계를 끝내겠다는 식의 감정적 위협일 수도 있죠. 이미 관계를 가지는 사이더라도 원치 않을 때 강제로 하거나 원치 않는 방법을 사용하면 그것도 마찬가지예요.”
“…….”
“다른 사람에게 느끼고 싶지 않은 공포를 느끼게 하고, 아픔을 느끼게 하는 것이 폭력이에요. 부정적인 감정으로 사람을 지배하려 하고 묶어두려 하는 게 폭력이에요. 때로는 아주 교묘해서 당하면서도 모르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도 해요. 재희 씨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겪는 일이기도 하고요.”
의사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심지어 어떤 사랑은…… 사랑이면서 폭력이기도 해요. 그래서 사랑과 폭력을 구분해 이 고민을 해결하려 하면 길을 잃기 쉬워요. 사랑도 폭력의 형태를 가질 수 있으니까. 사랑은 절대선이 아니에요. 폭력인지 아닌지 그 자체를 판단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도 알아야 하는 이유는…… 폭력과 폭력 아닌 것을 구분하기 위해서예요. 사랑과 사랑인 척하는 것을 구분하기 위해서예요. 그래야 나를 지킬 수 있으니까요. 나를 해치려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면 자기 자신을 지키기 힘들어지니까.”
내가 20대~30대에 걸쳐 내내 시행착오를 겪으며 연애하면서 느껴왔던 것들이 정신과의의 입에서 명확하게 내뱉어졌을때 일종의 에피파니가 느껴지더라.
키앤크는 정말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무조건 내 인생작에 등극할만했음 ㅠㅠ
세상 모든 힘든 연애를 하는 이들과,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하는 모든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이건 정말로 나를 사랑해주는 누군가가 말을 하고 그러지 말라고 애원한다고 깨달아지는게 아니더라고.
결국은 자신이 스스로 깨닫고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어야만 저런 소리도 귀에 들어오겠지.
그리고 재희...아, 우리 재희.
키앤크 영업했을 때 재희가 너무 장벽이라서 못읽겠단 지인들이 많아서 좀 마음아팠어.
나도 처음에는 수호에게 내내 눈길이 가서 재희가 그냥 힘든 과거를 갖고 살았구나, 안됐다, 이런 정도의 마음이었는데...
아니야. 재희는 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 대단한 애더라 ㅠㅠ
부모와 코치와 또래 애들집단....그 모든 끔찍한 것들을 겪으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이 해야할 것들을 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저걸 억누르고 자기관리를 해왔더라고.
물론 방어기제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저러한 일을 겪는다면 망가지거나 자기피학적인 경우가 되는 케이스가 많잖아.
그렇지만 재희는 절대 아니었어. 수호랑 헤어지고 제정신 아닐때조차도 약을 먹으면서 어떻게든 자기관리를 해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거 보면서 눈물나더라.
아 저정도로 무언가에 미쳐야 탑급 운동선수를 할 수 있는건가 싶고... 얘 영원한 내 아픈 손가락이 될거 같아.
수호도 나이먹고 나서야 그런 것들을 서서히 알게되고, 엄마에 대한 재희의 추억이나 다른 것들에 대해 더이상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고.
그리고 끝끝내 둘이 함께 아주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재희가 자신의 입으로 그 모든 것을 털어놓았을 때... 수호도 그랬겠지만 나도 재희에게 감사했어.
정말로 모든 것을 극복했구나, 수호도, 재희도... 싶어서.
나에게 키앤크는 둘의 성장이야기였고, 내내 울면서도 마음 따뜻하게 읽었어. 지금도 가끔 재탕하면 마음 아파하면서도 행복한 마음으로 덮는다.
외전주세요....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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