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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다'체 주의

*** 작성자의 주관으로 가득 찬 리뷰 주의 

**** 편의상 작품 지칭은 '전화밤'으로 통일



'수가 공을, 공이 수를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bl독자라면 어렵지 않게 마주하는 종류의 후기다. 로맨스의 개연성이란 곧 주인공의 사랑을 설득력있게 그림으로써 확보되는 것일지니 나름 핵심을 짚는 의문이다. 비단 bl소설 뿐만 아니라, 너 내가 왜 좋냐, 하는 물음은 연애를 포함한 기본적인 인간 관계에서 모두 통용 가능한 질문이라 볼 수 있다. 전화밤은 이 질문을 정면 돌파해보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헤테로 섹슈얼인 이수와 규호는 서로가 사랑할 이유보다, 사랑할 수 없는 이유가 더 많은 사이다. 둘은 이성에게 끌리는 시스 헤테로 남성이고, 관계는 더할 나위 없이 나쁜 앙숙이다. 평소처럼 서로가 평범하게 신경질적이던 어느 날, 규호의 고백으로 그들의 관계에 애정이라는 생소한 감정이 개입하는 사태가 발생하며 본격적인 이야기 전개가 막을 올린다. 견고한 현실의 벽을 뚫고 그들의 사랑을 납득시키는 것이 전화밤의 플롯이자 미션이 된다.
로맨스 서사에서 사랑을 가로막는 장벽과 고난이 주로 외부적 요소로부터 기인하는 경향과 달리, 전화밤의 경우 그들의 안과 밖, 일상과 내면을 구성하는 모든 익숙한 관습과 가치관이 그들을 옥죄는 사슬로 작용한다. 따라서 장르 특성에 따르면 비교적 높고 험준한 장벽 취급은 아닌듯한 헤테로와 앙숙 설정도 이 작품에선 어느 정도 절대적인 수준의 지위를 갖게 된다.
전화밤은 매우 통상적인, '술 취해 사고로 일으킨 원나잇 스탠드'라는 장르적 코드를 차용하며 시작하지만, 이후의 전개는 '몸정이 진심 되는' 패턴을 답습하지 않으면서 전형적이지 않게 된다. 오히려 우연성 강한 시작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극적 장치를 최소화하고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데 집중하면서 감정의 개연성 확보에 큰 비중을 할애한다.
감정 서사의 인과 관계를 끈끈하게 만드는 여러 요소가 등장하는데, 주인공 이수가 반복적으로 던지는 '내가 왜 좋냐'는 의문은 그 중 하나다. 소설이 독자에게 설득적으로 제시해야 할 사랑의 이유를, 주인공이 직접적인 물음으로 발화해버린다는 점에서 과감하다. 자칫 잘못 다룰 경우 소위 '입전개'행으로 작품이 납작해질 위험이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전화밤은 저 물음을 우회 없이 내세워 주인공이 직접 치열히 고민하게끔 만들고, 그 과정을 생략 없이 담아내면서 서사에 매끄러움을 더한다.

처음 이수가 던진 의문은 자신의 이해 범위를 넘어버린, 불가해한 영역에의 탐색적 성격을 띤다. 물론, 목적은 이해가 아니다. 이는 단순한 호기심이 더해진 방어 기제의 발현에 가깝다.


근데 걔도 참 대단하다. 여태까지 그 미친 행동은 둘째 치고 도대체 내가 왜 좋아? 빵을 씹다 말고 써진 입맛에 우울해졌다. 이렇게 대학로 근처에만 봐도 남녀 커플이 넘쳐 나는데 난 와중에 남자한테 들은 고백으로 이런 고민이나 하고 있는 것도 서럽고, 웃기기도 하고.

콜 잇 어 나이트 (call it a night) 2권 | 깡장 저



이제 와서 하는 소리지만 사실 나도 송규호의 고백을 받고 엄청 헤맸다. 입으로는 이길 수 없는 놈이니 나도 뭔가 제대로 반박할 논리를 찾아야겠다는 멍청한 생각도 했고, 진심이든 진심이 아니든 아무튼 같은 남자를 두고 좋아한다고 말하는 심리가 신기해서 이것저것 찾아보기도 했고.

콜 잇 어 나이트 (call it a night) 3권 | 깡장 저



“대체… 대체 내가 왜 좋다는 거야? 네 말대로 주변에 여자가 없는 것도 아니면서.”

“나도 몰라. 알면 그런 점을 가진 사람을 따로 찾지, 뭐 하러 나 싫다는 너한테 이러겠어? 네 말대로 여자가 없는 것도 아닌데.”

“널 싫어하는 걸 잘 알면서 이러는 이유도 모르겠다. 그냥 다 모르겠어.”

콜 잇 어 나이트 (call it a night) 3권 | 깡장 저




그렇게 부정을 거듭하며 규호의 마음을 인정조차 않으려던 이수에게 규호가 진심임을 깨닫게 되는 전환기적 기점이 도래한다. 이 기점에 의해 더 이상 규호의 감정을 부정할 수 없게 되자 그의 물음은 호기심을 넘어 원망과 한탄의 수사적 표현에 가까워진다.


하기야 송규호는 늘 보통이 아니지. 늘. 그런데 왜 하필 나냐고. 왜 하필……. 물어봐야 답은 없다. 어차피 본인이 그 입으로 자기도 왜 내가 좋은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는데, 누가 그걸 알겠어. 저도 자기 감정 하나 제대로 모르는 주제에 왜 이렇게 사람을…….

뒤통수에 닿은 냉장고가 서늘하다. 답답함에 가볍게 머리를 박았다. 멍청하다, 김이수. 이유도 모를 감정으로 사람을 흔든다고 어떻게 송규호만 탓할 수 있어. 나조차도 그냥 너 같은 놈은 징그럽다고 잘라내면 될 일에 고작 그 정도여야 할 일에 하나하나 끌려가서는 이러고 있는데.

그래. 나조차도… 왜 이렇게 송규호가 신경 쓰이는지 알 수가 없는데. 골목길에서 함께 걷지 말았어야 했을까? 왜 걷고 말았을까.

어쩌면 처음부터 감정에는 타인이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걸 굳이 풀겠다고 아득바득 상대하고 있으니 이 꼴이 난 거야. 이미 느끼기 시작한 부분에 뒤늦게 말을 붙여 봐야 변명에 불과할걸.

콜 잇 어 나이트 (call it a night) 3권 | 깡장 저




관계가 긍정적 변화의 국면을 맞이하고서도 이수의 의문은 여전히 머릿속을 배회한다. 그러나 탐색의 양상을 달리 한다. 규호를 향한 마음을 키운 이후 그 물음은 본인의 감정을 확인하고 확신하는 수단이자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변모한다.


“야, 개깡.”

“엉?”

“넌 근데 지금 여친 왜 만나? 어디가 좋냐? 아까 욕만 그렇게 했으면서.”

질문을 하면서도, 사실 나한테 자문자답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강후가 문제가 아니라 진짜 나는 송규호를 왜 만날까?

콜 잇 어 나이트 (call it a night) 5권 | 깡장 저



“…넌 도대체 내가 왜 그렇게 좋냐?”

불쑥 튀어 나갔지만, 그 물음은 많은 생각의 축약형이었다.

콜 잇 어 나이트 (call it a night) 6권 (완결) | 깡장 저



세상 다른 사람들은 왜 그 상대가 좋은 걸까? 언젠가 다른 사람이 좋아지게 된다면 그때는 이유가 안 궁금할까? 지금 이런 이유가 궁금한 건 이 자식을 좋아해야 할 이유보다, 좋아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많았기 때문인 걸까.

콜 잇 어 나이트 (call it a night) 6권 (완결) | 깡장 저




사실 이것 저것 따지면 작품 본문의 말마따나 호감에 그치는 게 당연한데, 어째서 애정으로까지 발전했는지. 그 이유는 주인공들도 열심히 고민해보지만 결국 답은 심심한 '그냥, 모르겠어.' 에 그친다. 그러곤 생각한다. 어쩌면 사랑이란 감정 자체가 특정한 기제를 필요치 않는 것은 아닌가. 이유를 찾고 이름 붙이려는 시도 자체가 허상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그렇다. 사랑이 반드시 조건과 계기를 갖춘 형태로만 발생하진 않는다. 전화밤은 그 조건과 계기가 무너진 상태의 사랑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규호와 이수는 둘 다 서로에게 그런 사랑을 대변하는 존재다.


“…너는 인간적인 장점이 많지. 답답한 구석이 없지는 않아도… 아니, 어쩌면 이것도 내가 널 좋아해서 더 좋게 보이는 건지도 몰라. 찾아보면 너 같은 사람이 없지는 않을 테니까. 너보다 좋은 사람도 물론 있을 거고.”

그건 그렇지. 나는 오랜만에 말 대신 눈빛으로 대답해 봤다. 송규호가 알아들었을까?

“사람 마음이 그런 것 같아. 정확한 이유 같은 건 평생 모를 거야.”

“그런가…….”

“하나하나 따지면 그냥 호감에서 그치는 게 당연했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콜 잇 어 나이트 (call it a night) 6권 (완결) | 깡장 저



뭐가 됐든 아마도 송규호와의 관계는 평생 모를 것투성이로 남을 테지만.

“그냥, 좋아. 그걸로는 답이 안 돼?”

날 빤히 보던 송규호는 불쑥 그렇게 말하고서 웃었다. 이유는 몰라도 그냥 좋다, 그렇게. 누가 공돌이 아니랄까 봐, 질문에는 꼭 뭘 던져야 직성이 풀리나. 그게 웃겨서 나도 같이 푸스스 웃었다.

콜 잇 어 나이트 (call it a night) 6권 (완결) | 깡장 저



그러나 모른다는 시시한 답에서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서로의 관계가 의미하는 바를 함께 고민한다는 것. 각자가 마음 속에 지닌 관계의 표상을 애써 정의내리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두어도, 아무 문제 없다는 것. 그 일련의 행위들을 통해 우리는 이들 관계의 진정성을 명시적인 서술 없이도 확인할 수 있다. 조건과 계기가 필요성을 잃고, 미래가 분명하지 않아 어물쩍한 자리는 서로가 이끌어낸 감화력으로 채워진다. 전화밤은 서로가 서로에게 감화됨을 통해 상호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받는 형태의 사랑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전화밤이 그리는 사랑은 운명적이기보다 현실적이며, 영원을 말하기보다 일상적이지만, 어쩌면 내일도 계속해서 이어질 것 같은 평온함을 가져다 준다.



  • tory_1 2020.07.30 20:23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1/09/04 17:38:48)
  • tory_2 2020.07.3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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