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에 한국인 김치라는 드랙퀸으로인해서 관심을가지고 루폴 드랙레이스를 시청하게됐어
나는 성별 인종 국적 무엇이든 개인이 원하는대로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 편이고, 민족과 인종 성별 모두 사회적인 편의를 위해 나뉘어 진거라서 사회적으론 구분이 명확하지만 생물학적으론 구분이 불명확 하다고 생각해
근데 루폴의 드랙레이스를 볼수록 트랜스젠더에게 궁금해진것이 (개개인마다 다른거 앎 정치적으로 트랜스젠더라고 스스로를 명명하는 집단 자체에게 궁금증이 들었단것임)
난 여태껏 트랜스젠더가 자신이 인식하는 몸과 실제로 가지고 있는 몸의 생물학적 괴리에서 디스포리아를 느끼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정말로 "젠더"를 바꾸고 싶어하는 거더라고
한마디로 단순히 여성의 가슴과 성기를 원하는게 아니라, 여성의 젠더라고 인식되는 것들 - 화장, 나긋나긋한 손짓과 말투, 앙칼진 애티튜드 등 - 을 원하는 것 같더라고.
그럼 단순히 크로스드레스와 트랜스젠더의 차이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동시에 헐리우들에선 이런 문화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 제시되지 않은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고..
(트랜스젠더들의 유튜브, 방송 진출로 인해 단순히 그들만의 문화가 아니라, 시스젠더들도 보고 즐기는 연예인처럼 다뤄지고 있기에 이런 궁금증이 들었어)
헐방 보니까 '구시대적 의견임, 트젠이 대세야' 이런 댓글만 있어서 왜 구시대적 의견 취급을 받는 것인지 궁금해졌어
트랜스젠더의 존재 자체가 젠더를 공고화하는 것일 수 밖에 없는데, 그 젠더엔 여성들이 철폐하고자하는, 고통을 받고있는 사회적 압박들이 포함되어 있고
그러므로 두 정치 집단의 이익이 상충될 수 밖에 없잖아? (ftm과 남자들 사이에선 딱히 없는듯하지만... 혹은 있더라도 mtf-여성 사이와 반대의 문제들이 일어나는 것 같고.)
그외에도 사실상 사회를 유지하는데에 있어서 젠더의 구분이 필요할 수 밖에 없는데 (화장실, 단체생활, 탈의실 등)
여자화장실도 만들고 남자화장실도 만들고 성중립화장실도 만들면 된다지만 당장 건물 짓는데 예산도 자리도 부족하므로 그게 현실적으로 어렵고, 결국 여자화장실만 성중립 화장실로 바꾸는 기관들이 많은 현실 등등...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소리내서 말하는 연예인이 많고, 케이틀린제너처럼 유명한 트랜스 젠더도 사실상 방송인 혹은 유명인으로서 활동하고있고
여러시즌에 걸쳐 트랜스젠더의 드랙퀸 문화를 미디어에 내보내는 프로그램도있는 판국에 이에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없는지,
있었지만 기각된거라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이 궁금해.. 잘아는 토리가 있다면 댓글 달아주면 고마울 거야
헐방에서 트랜스젠더와 퀴어, 페미니즘에 관한 성숙한 논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돼서 평소에 별 말 안하는 편인데.. 토리는 정말로 정보를 원하는 것 같아서 댓글 남기고 가.
트랜스젠더는 소위 ‘여성성’을 답습함으로써 젠더이분법을 공고하게 만든다는 주장에 대해)
여성성 답습이라 함은 젠더실천을 말하는 것일텐데, 토리가 말해준 것 같은 나긋나긋한 말씨, 화장, 앙칼진 애티튜드 같은 것이 젠더실천의 하나의 예가 될 수 있겠지. 그런데 젠더실천은 사실상 젠더화된 사회 속에서 우리 모두가 필연적으로 수행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굳이 말하자면 필요악과 같은 거지. (이게 주체성과 권력의 관계에 대한 푸코식의 접근과 이를 비판적으로 계승한 3세대 페미니즘의 주류 견해임) 가령 모든 시스젠더(비트랜스) 여성이 탈코를 했는가? 아니잖아? 화장을 하고 나긋나긋한 말투를 쓰는 트랜스여성이 더 많을까 시스여성이 더 많을까? 숫자로 따지면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을 거야. 당장 헐방에서 트랜스가 여성성을 답습한다고 말하는 토리 중에 자기는 화장 안 하고 숏컷이고 치마 안 입고 브래지어 안 하는 시스여성이 얼마나 될 지 궁금하더라 항상.
젠더실천에 대한 기계적인 거부가 불가능한 것을 예증하는 또 다른 사례로, 내가 아는 지인 중 한명은 레즈비언 부치 여성인데, 짧은 머리에 화장도 전혀 하지 않고, 소위 ‘남자같은’ 옷만 입어서(체크셔츠에 청바지) 전형적으로 ‘소년’같아 보이는 차림새야. 그런데 최근에 여자화장실에 갔을 때 어떤 아주머니가 ‘이건 남자야 여자야’라고 말을 했다고 하고, 그 순간에 이 공간에 내가 안전하게 있을 수 없다는 배제감과 위화감을 느꼈대. 물론 이건 한 사례에 불과하고, 평생에 걸쳐서 이런 사례가 아주 많았지. 내가 정체화한 젠더와 사회가 나를 규정하는 젠더가 다를 때에 느껴지는 위화감과 배제감은 트랜스젠더를 평생 따라다니는 감각인 거고. 그렇다고 할 때, 그 위화감과 배제감을 해소하기 위해 더 안정적으로 여성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혹은 안정적으로 남성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거나 숏컷을 하고 근육을 기르는 트랜스젠더 개인에게 젠더이분법을 공고히 한다는 혐의를 두는 것이 타당한지? 심지어 숫적으로 그 수십배의 시스젠더들도 다들 하고 있는 실천들인데? 이건 가시적으로 보이는 소수자들에게만 유독 가혹한 혐의를 씌우는 거에 불과하지.
일단 사회가 모든 개인을 여성 아닌 남성으로 분류하는 상황 속에서, 모든 개인은 필연적으로 어쩔 수 없이 특정한 젠더를 수행할 수밖에 없어. 이게 주디스 버틀러를 비롯한 근래의 페미니즘 학계에서 주류적인 견해인 ‘젠더란 수행성이다’라는 말의 의미인데, 이 때 젠더가 수행(perform)된다는 말은 개인이 젠더를 자발적으로 연기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일종의 롤플레이가 아니라는 소리. 버틀러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행성은 연극성이 아님”. 다시 말해서 젠더는 개인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되(한국 온라인상의 페미니즘 언어를 빌려 말하자면 "젠더는 허상이다"), 사회는 개인이 필연적으로 젠더를 수행할 수밖에 없게 구성되어 있다는 말에 가까움(그치만 허상인 젠더를 수행할 수밖에 없게 사회가 짜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