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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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꽃잎 같은 머리카락과 

이른 새벽처럼 푸르게 빛나는 눈동자가 

무한히 아름다워 보였다.

그녀가 말했다.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주세요."

그러면서 씩 웃는다. 

벌써부터 기쁜 것처럼... .


"...축하합니다."

"자세히 말해주세요. 정확하게!"



대체 이 기분은 뭘까.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라시드는 저도 모르게 

그녀의 뺨을 붙잡고 입 맞추었다.

긴 입맞춤 끝에 라시드가 비로소 말했다.


"생일 축하해, 알리사."


당신이 태어난 걸 축하해. 

그리하여 지금처럼 

내곁에 있을 수 있어서.


라시드는 알리사가 제 곁에 없는 날들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는 이제 그녀를 

무어라 불러야 하는지 

깨달았다.


마침내.


"너는 정말 강하고 아름답구나.

무서울 정도야.

너를 낳는 게 아니었는데... ."


어머니는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날, 라시드의 마음도 

저 돌멩이처럼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이럴 거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모두가 저를 두려워할 것이라면.


모두가 저를 미워할 것이라면.


가지고 싶다 한 적 없고 

원한 적 없는데, 

어째서. 왜.


제게 남은 것은 

이제 펜버논이라는 이름뿐.


자신의 존재는 가지고자 한 적 없으나

버리지도 못하는 그 이름 하나만을 위해 필요한 듯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다시 펜버논의 깃발을 바라보았다.


피와 같은 색이었다.


이 외의 그 무엇도 

제 인생에 색을 가지지 못하리라.


자신을 짓누르는 

무채색 세계 속에서 

라시드는 눈을 감았다.


덧없고 덧없었다.


결혼은 타인의 의지로 했다.


"알리사 레간티아라."

라시드는 제 아내로 정해진 여자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처음 듣는 이름이 생경했다.


'너도 원해서 한 결혼은 아닐 테지.'


세상이 찬탄하지만 

원한 적 없는 무언가를 얻은 대가로 

그전까지의 생을 잃고, 

타인이 정해준 운명에 따라 살아야 하는 존재.


그런 점에서 그녀는 자신과 닮았다.


그래서 미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같은 감옥에 갇힌 동지같을 때마저 있었다.


누군가 같은 고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라시드에게 미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부부 사이에 다정한 감정은 필요하지 않다.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저 주어진 생을 견디는 기분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알리사는 라시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다.


정략결혼 한 아내가 갑자기 미쳤다.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을 만큼 

알리사는 달라져 있었다.


결혼 후 한 해 동안 

조용히 살던 알리사가 

이혼을 요구했다.


누가 봐도 펜버논 공작인 자신이

밑지는 결혼인데,

알리사는 제 아내로 사는 것을

견디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어차피 허울뿐인 공작 부인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었기 때문에, 

반드시 알리사 레간티아를 

아내로 삼아야만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라시드는 기묘한 배신감을 느꼈다.


'끝까지 감내할 줄 알았는데.'


그녀는 제 세상을 찾아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감히. 나를 버리고, 혼자서.


라시드는 내심 실망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너도 나를 떠나려 하는구나, 같은...


언제부터인가 라시드는 생일을 축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날은 

제게 비극적인 날이었다.

원하지 않는 생이 

시작된 날이었으니 말이다.


굳이. 딱히. 

챙길 사람도 없고, 

스스로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아무것도 아닌 날이었다.


그녀가 축하해주기 전까지는 그랬다.


"생일 축하해요, 라시드."


라시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일을 맞이한 것 같았다.

기뻤다.

라시드는 불이 꺼진 초의 심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의 소원은 오직 하나였다.


그것은... .


나는 네가 있는 미래에 살고 싶다.


그녀가 나를 기다린다.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제 생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듯했다.


알리사는 폭풍이었다.

예고 없이 

자신의 세계에 들이닥쳐 거칠게 헤집는, 

사랑스러운 폭풍.


라시드는 

그 속에 온몸을 내맡기고 싶었다.


"라시드!"


내 이름이었다.


그 앞에는 네가 모를 수식이 붙어 있다.


라시드, 너의. 


나는 이미 너의 라시드였다.


알리사가 드리우는 빛 속에서 숨을 쉬며 라시드는 생각했다.


아, 너는 나를 구원하기 위해 내게로 왔구나.


네가 없는데, 

내가 행복하게 살 수가 있나?


쓸데없는 걱정으로

내가 기댈 곳을 만들어주는 너 없이,

생일을 축하해 주겠다며 정성을 기울이는 너 없이,

괜찮다며 내 등을 어루만지는 너의 손길 없이,

나를 보는 네 눈빛과 싱그러운 웃음 없이,

내가 존재할 수 있나?


차라리 몰랐으면 모를까,

이미 알게 되어버린 너 없이, 


내가

어떻게.


그녀는 자신을 몰랐다.

정확히는,

자신이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지 몰랐다.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그녀를 잃을 바에야 

이 도시도, 나라도, 전부 다 같이 타버리는 게 나았다.


알리사의 존재가 

재가 되어 사라진다면

이 세계는 제게 

아무런 가치도 없는 까닭이었다.


이미 그렇게 되어버린 사랑이므로.


"알리사."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

나를 향한 시선. 
내게 뻗은 손.

 

무엇 하나 

애틋하지 않은 것이 없는 

그가 누구인지 안다.


라시드 펜버논. 나의 남편.


"데리러 왔습니다."


기어코 나를 구하러 온, 

나의 연인.



세상이 나의 죽음을 바라는데, 

왜 당신은 굳이 여기까지 와서 나를 데려가려고 해.


"신께서 이 여자의 죽음을 바라신다. 

그래야 세계가 평화로울 수 있다."


"개소리 마."


"수천, 수만의 목숨 대신 

이 여자 하나를 살리려는 것이냐. 

네 영지의 백성들이 

이 여자로 죽어가는 것을 놓아둘 셈이더냐."


"그래."


"당신이 나를 사랑한 것도 정해진 운명이라 그랬나?"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왜."

라시드가 무릎 위에 떨어져 있던 내 손을 잡아챘다.


"왜 그깟 운명 따위에 따라야 하지?"


"그것이 신의 의지니까."

대답은 시빌라가 대신했다. 


"너는 다만 우연히 

귀족으로 태어나 고귀하며, 

뜻밖에 용의 힘을 가진 까닭에 

지상의 생물 중 가장 강해졌을 뿐이다.


이 중에 무엇이 너의 의지로 된 일이냐?"


시빌라가 차갑게 말했다. 


"네가 지금의 너인 것은 

오로지 신이 정하신 운명의 산물인데, 

어찌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려 하는 것이냐?"


"아이가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과 같지. "


"모리아 신께서는 

제 아이들이 자신이 정해놓은 대로만 

나아가지 않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오."


"불경하구나."


"그래서 신이 나를 적으로 삼으시려거든 

기꺼이 그리되어 주지."


"사랑해."


동쪽에서 떠오른 태양이 서쪽으로 지듯이,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듯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알려주는 것처럼 

흘러 나온 고백이었다.


라시드의 알리사는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저도 사랑해요."


그 대답이 라시드를 낙원으로 이끌었다.


알리사를 사랑한다.


그녀는 그의 첫사랑이고, 

곧 마지막 사랑이며, 

그리하여 유일한 사랑이었다. 


모든 것을 걸고 지켜주고 싶은 이였고, 

그와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수호해주는 단 한 사람이었다.


그런 알리사가 자신을 사랑했으므로, 

라시드는 행복했다. 


영원토록 무사할 행복이었다.



*    *    *

네이버 시리즈에서 선공개로 연재한

<첫사랑은 죽지 않는다>야.


남자주인공 시점이 너무 좋아서 발췌를 해보았음ㅠㅠ


책 빙의인데, 읽다보면 

이세계 차원이동물이 더 맞는거 같음

ㅅㅍ지만 어차피 본문에도 스포있는거..(..)

원작의 알리사도 사실 죽지않았고, 

서로 다른 두세계가 창작물을 통해 연결된 느낌임ㅇㅇ


(현실세계에 공작과 신이 등장하는 소설이 있듯이

알리사가 빙의한 세계엔 현실세계가 쓰인 소설이 존재함)



처음엔 이혼하려하지만 계속 실패하는ㅋㅋ

알리사의 고군분투 개그물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계속 사건이 진행되고

라시드랑 알리사 감정 진행되는게 좋아서 보다보니

매열무로 완결까지 다 읽었어ㅜㅜㅜ


여주인공 눈앞에 책속의 문장이 몇 번 나타나는데

크게 거슬리지 않음ㅋㅋ

첨엔 '저거 완전 치트키아냐??' 했는데

아주 중요한때 말곤 

잘 나타지도 않는게 함정(..)



그것보단, 앞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이

뒷사건의 실마리로 쓰이는게 흥미로웠어.

작가님이 초반에 나온 것들도 

헛되게 쓰지 않은 것 같아서ㅠㅠ


글구 웹소설보다보면 오타때문에 거슬릴 때가 있는데,

이 소설에선 그런 점도 없었던 거 같아.

(이것도 호 포인트)


소설은 대부분 알리사의 시점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라시드 시점은 74~77화, 139화~엔딩 즈음인데

그게 너무 좋아서ㅠㅠㅠ

특히 좋았던 곳을 적어봤음ㅠㅠ



스펙타클한 사건이 나오거나

세계관이 엄청 큰 건 아니고

잔잔물? 잔잔물보단 조금 사건있는?


그런 이야기인데

알리사가 라시드라는 사람을 구원해주는 이야기가 너무 좋았어.ㅠㅠㅠ


'신'이 존재하는 세계관에서

대놓고 신에게 거스르는 남주도 너무 좋았음ㅠㅠㅠㅠㅠ

'아이가 부모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과 같지'

<- 내 안의 명대사야ㅠㅠㅠ 별 다섯개ㅠㅠ


라시드에게 상처줬던 가족을

억지로 봉합시키지 않는것도 좋았고.

빙의자로서 이전세계와의 마무리도, 

원작여주와 남주와의 만남도 

깔끔하게 해결해서 좋았어.

이야기가 끝나도 둘은 행복하겠구나ㅡ 싶을 만큼 깔끔함ㅠㅠㅠ



가볍게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가볍지 쓰이진 않아 잘 읽었던 소설이라

발췌해야지, 하다가 

드디어 주말에 날잡고 정리해서 올림ㅠㅠㅋㅋ

  • tory_1 2020.04.12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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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2 2020.04.12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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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3 2020.04.12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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