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방금 파티에서 돌아오는 길이다. 나는 단연코 파티의 주인공이었다. 재치있는 말들이 쉴 새없이 나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웃음을 터뜨리면서 나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는 떠났다. 그리고 나 자신을 총으로 쏘고 싶었다-키르케고르"
내가 좋아하는 글이야.
실존은 곧 고통이라고 하잖아. 얼마전까지만해도 나는 삶이 고통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어.
'아직은 살만한데? 노력만하면 힘든 일쯤이야 이겨낼수 있어.'
이런 마인드를 갖고 살았지. 근데 어느순간, 하루의 점점 더 많은 일들이 반복되면서 지겨움이라는 감정을 깨닫게 된 거 같아. 모든게 지겨운거야. 친구도, 가족도, 내 삶도. 다 너무 지겨웠어. 지겹기 때문에, 단지 그 별거 아닌 감정 때문에 미쳐버릴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괴로웠단 말이 맞는 거 같아. 밤마다 잠도 못 자겠더라. 눈만 감으면 그 순간이 너무 공허하고 '나는 왜 살지?' 답이 없는 질문에 답을 찾곤했어.
키르케고르의 글을 읽을때쯤, 권태로움은 인간이 짊어진 시지포스의 형벌이란 걸 알게 된거 같아. 매번 다시 굴러 떨어지는 돌을 정상에 올려놓는 형벌처럼, 인간은 벗어나려고 발버둥쳐도 다시 권태로움을 짊어지며 사는거지.
'실존이 고통'이란 명제는 인간 삶에 필연적인 권태로움을 가르킨다는 것도, '저렇거반짝이는 사람도 사실은 너무 괴롭구나' 라는 것도 새삼스레 알게됐어.
'실존은 곧 고통'이라는 명제를 영상으로 만든다면 '레퀴엠'이 아닐까. 권태로움이란 형벌을 더 이상 이겨내지 못 하기 때문에 그들은 말 그대로 미쳐버린거 같아.
예전에 "미치지 않고서 어떻게 제정신으로 살아가겠어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거든. 요즘 보면 그 말이 맞는거 같아. 의미도, 가치도 없는 삶은 너무 괴로워. 괴로우니까 피하고 싶은거야. 일반적인 미친 행동-약을 하고 중독에 빠지고 정신병에 걸리고-은 사실 미치지 않고선 버틸수 없었던 개인이 겪은 고통의 흔적이 아닐까 싶어.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다면 너무 괴로운걸...
그래서 내가 겪어온 타인들의 미친짓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됐어. 그 몸부림은 삶이 주는 고통스러운 권태에서 파생된게 아닐까..
톨들은 혹시 어느새 무언가에 중독되버린 자신을 발견한 적 없어? 나는 코로나 때문에 우울감이 올라와서 힘들었거든. 우울하니까 계속 뭔가에 의지하게 되더라. 하루종일 단 과자를 먹거나,매번 새벽 늦게까지 유료웹툰 결제해서 보곤 했어.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멈출 수가 없더라. 코로나 전에는 코인노래방을 자주 갔어. 어떨때는 일주일에 3~4번은 가고 그랬던거 같아ㅋㅋ요즘은 그게 안 되니까 더 미쳐버림ㅎ..
레퀴엠의 상황과 빗대면 우습고 귀엽기까지한 이야기지만ㅋㅋ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내 삶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어. 어쩌면 레퀴엠의 인물들은 지나치게 나약할 수도 있어. 근데 과연 나랑 그렇게 다를까?
권태로움을 해소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이든 중독될 수 있는거 같아. 술도 그렇고 담배도 그렇고ㅎ.. 예전에는 나약한 사람이 이해가 안 갔거든? 왜 의지가 없지? 왜 폭식을 하지? 왜 자꾸 남자친구/여자친구를 만들면서 의지하지?
나는 인간이 나약하기 때문에 무언가에 의존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삶이 주는 권태와 외로움이란 고통을 이겨내지 못 하기 때문에 외적인 무언가에 의존하는거지. 순간적인 쾌락과 누군가의 관심은 잠시나마 권태를 상쇄해주니까.
우리나라에 마약이 있었다면 우리는 저런 문제가 안 겪을까? 누구는 할수도 있고 누구는 안 할수도 있겠지. 마약이 잘못되지 않았다는게 아니라, 나는 공허한 삶을 이겨내지 못 하니까 자꾸 하게되는게 아닌가 싶더라고ㅋㅋ 근데그거랑 별개로 진짜 마약은 하면 안 되겠더라..영화보고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단걸 알게됐어. 인생 망치는 길이다. 예전에 한참 서양뽕에 빠졌을땐 우리는 너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거 같아;; 마약 합법화ㄱㄱ 이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다
서론같으면서도 본론인 얘기가 굉장히 길어졌는데ㅎ..
나는 가장 인상깊었던건 사라였어. 연기를 어쩜 저렇게 잘하지 싶으면서..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거 같아.
인간은 항상 의미를 찾잖아. 누군가의 행동에서 의미를 찾고, 내가 겪는 시련에서도, 그리고 항상 내 삶이 갖는 의미를 좇곤 하지. 사라는 할머니가 될때까지도 의미를 찾지 못 했어. 사실 누구나 다 그럴거같아. 어쩌면 답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 미리 정해진 의미같은건 없는데, 자꾸 그런 의미를 찾으니 공허할 수 밖에.
사라가 울면서 텔레비젼 쇼에 출연하는게"내가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야"라고 말했는데 그걸 보는데 눈물이 막 왈칵 쏟아지더라. 그래 그게 의미구나..
다이어트를 하고, 약을 먹고, 정신 착란이 오면서도 사라는 항상 티비를 켜고 쇼를 보잖아. 나는 그게 마약을 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어. 어느새 사라는 자신이 추구하는 의미에 중독되버리고, 더욱더 강한걸 원하게 되는거지
티비를 보면서 부러워하던게, 실제로 쇼에 출연할 수 있다는 기대가 되고, 그 기대가 계속 좌절되니까 이제 약을 통해서 실제로 그 자리에 있다는 정신착란을 갖게되는..
희망, 의미라는게 인간에겐 또다른 마약이될 수 있겠구나 싶었어. 희망찬 삶이야 좋지. 근데 권태라는 병을 물리치기위해서 꾸게 되는 꿈이라면 조금 다르게 봐야하지 않을까. 기생충이 생각났는데ㅋㅋ 계획도 결국 일반사람에겐 사치가 되버렸잖아.
나는 그걸 보고 희망도 누군가에겐 독이될수있다는걸 알게됐거든. 희망을 가질수있는 상황이 아닌데, 희망을 가져버리니까 더 비참해지는거지..ㅎ.. 희망이 자꾸 좌절되니까 삶을 더욱더 고통스럽고 권태로울뿐이고.
희망을 갖지 말란건 아닌데.. 희망중독은 위험할 수 있는거 같아.. 희망이란건 현실을 부정하면서 성립하는거잖아? 현실과는 다른 나를 꿈꾸는거니까. 근데 희망이 현실자체를 위협하고, 자신의 현실적인 조건을 모두 부정하게 되는건..위험한거 같아. 생산적인 희망은 아닌거지. 그 부정과 희망사이에서 생기는 괴리감과 고통도 문제고..사라처럼 자신을 극단적으로 부정하게되는것도 문제고
권태라는 현실을 잊기위해, 티비쇼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찬양받고, 스타로 살고 싶어하는 늙은 여자. 그 꿈이 계속 좌절되면서 약에 의존하고, 결국 현실에서 도망쳐버린 사람. 나는 그게 사라라고 느껴졌어ㅎ..ㅜ
이 부분에서 페미니즘 생각도 났다. 여자는 저 나이가 되도 누군가에게 아름다움을 인정받는게 희망이고, 삶에 의미인가. 싶고ㅋ.. 그걸 위해서 다이어트를 하는 모습이 너무 슬펐어ㅜㅜ
방송에서 사라보고 "밥줘"라고 외치는것도
사라가 자기 아들한테 "나는 더이상 누군가를 돌볼 수 없다. 삶에 의미가 없어" 이런식으로 말한단 말야. 사라는 누군가를 돌보는 역할을 자신의 의미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옴.. 그래서 남편 죽고 아들도 독립하니까 삶의 의미를 잃었다고 생각하잖아.
이제서야 자신만의 의미를 찾게 된거고.. 정신착란와중에 자신을 보고 사람들이 "밥줘" "밥줘"이러는 장면이 나오는 건 결국 사라가 희망을 잃고 다시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는 뜻인건지..이 부분에 대한 해석이 궁금하다ㅎ.. 누군가의 아내, 엄마로서 살면서 자신을 "누군가를 돌봐주는"사람으로서만 의미를 가진다는게..
나는 사라가 말한 "의미"는 이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한 의미라고 보거든. 사라는 정말 의미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온거고.. 물론 누군가에겐 의미있는 삶일수있지만.. 가부장제역사를 생각해보면 여자들에게 그게 강요된 삶임을 부정할순없잖아..
냉장고가 나오는것도 사라에게 자신의 "주제"를 알게 만드는 하나의 장치가 아니었을까 싶다ㅎ.. 이제 여성으로서 가부장제에 의미있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 하는 늙은 여성이 "주제"를 모르고 희망에 젖어살다가, 그 희망이 부서지고..
이제 아무 의미가 없는 현실을 그대로 직면해버린거지.. 그전까진 사회가 강요한 "의미"가 있었지만 이젠 그런게 하나도 없는 말그대로 텅비어버린 권태 그 자체일뿐..ㅎㅜㅜ 그래서 더 상실감이 크고 힘들었을거 같아..
뭐랄까.. 그 장면을 보면서 사라가 자신의 꿈을 변명하는것처럼 보였어. 나는 냉장고 즉 "밥"을 상징하는 여성인데, 너무 큰 꿈을 꿨고, 그걸 부정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은 그저 티비에나가고 싶었다며 변명하는것처럼 보였달까? 근데 그런 사라의 무의식에선 어쩌면 자신이 의미있다고 여겨왔던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벗어나 큰 꿈을 꾸고싶다는 욕구가 있었고, 그런 욕구를 사회가 사라에게 "니 주제를 알아!"이렇게 꾸짖으니 사라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거 같더라고. 사라는 그게 부끄러운걸 알지만, 그 꿈을 실현하고 싶었던거징
난 여기서 또 보편적인 인간의 삶이 보였는데..
어쩌면 우리가 권태로움을 느끼는 순간은 사회가 우리에게
지정해준 의미있는 삶에 개인이 위화감을 느낄때가 아닌가 싶어ㅎ..
예를들면 지금 사회에서 중요하고 의미있는 건 돈,지위잖아. 근데 그것만 바라보고 살던 사람도 어느순간 자신에 삶ㅈ을 회의한단 말이지. 이게 정말 중요한가? 이렇게.
근데 그게 단지 거기에 그치는게 아니라 정말 많은것들에 걸쳐져 있는거 같아. 사회가 지정한 여자, 아내, 엄마, 딸 그리고 남자, 남편, 아빠, 아들
이 모든 역할에 대해서 위화감을 느낄때 권태를 느끼는거지..사라는 그 역할을 박탈당한 상황에서야 자신의 삶이 공허하단걸 깨닫게 된거지.. 이건 자의의 의한게 아니지만, 그 역할이 사라지면서 텅빈 공허함을 느끼게된듯..
나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실존주의 철학은 항상 괴로운거 같아ㅜㅜ인간에겐 어떤 본질이 존재하지 않고, 그저 세상에 내던져저 있기때문에 자유롭다는 뜻이잖아.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실존이 공허한 본질을 앞서는거지.. 사회가 내게 부여한 여성, 아내, 엄마라는 본질은 사실 아무 의미가 없는거고..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들 역시 공허한 말뿐이고..
인간은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라는게 내 모든걸 부정하는 느낌이었어. 처음에 이 철학을 접하고 심적으로 많이 아팠어. 내가 지금까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모든걸 부정하니까 어느방향으로 나아가야하는지 모르겠더라고ㅎ.
그래도 실존주의 철학은 자학을 하기위한 철학이 아니란 말야. 자유는 고통이지만, 결국 내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수있게 하는 전제조건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권태라는 감정을 내 삶을 좀먹는 페스트이지만, 내 삶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킬수있는 감정이라고 하더라고. 그 감정이 있어야 지금까지 사회가 내게 강요해온 역할이 잘못됐다는걸 인식할수있으니까ㅎ..
근데 사실 그게 쉽진않지ㅜㅜ..사라는.. 그 자유와 권태를 주체적으로 이용한다는게 인간에게 얼마나 어려운일인지를 보여주는거같아
가볍게 쓰려고했는데 뭔갈 많이 썼다..ㅎ
뒷부분은 내일 시간내서 좀 다듬을게ㅋㅋㄱ
나는 요즘 이렇게 내 생각을 정리한 글을 쓰는게
내 권태로움을 잊는 방법인거 같아ㅜ
그리고 내용적인 걸 떠나서 영상편집이랑 사운드가진짜..
와.. 그런거 있잖아 콘서트장 가면 그 진동소리에 내 심장박동맞춰지는 기분ㅋㅋ 이거 보면서 음악이 점점 고조될때 딱 그 기분이었음.. 정말 최근에ㅈ본 영화중ㅈ에 제일 좋았어.. 2시간동안 풀몰입한적 처음임..
내가 좋아하는 글이야.
실존은 곧 고통이라고 하잖아. 얼마전까지만해도 나는 삶이 고통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어.
'아직은 살만한데? 노력만하면 힘든 일쯤이야 이겨낼수 있어.'
이런 마인드를 갖고 살았지. 근데 어느순간, 하루의 점점 더 많은 일들이 반복되면서 지겨움이라는 감정을 깨닫게 된 거 같아. 모든게 지겨운거야. 친구도, 가족도, 내 삶도. 다 너무 지겨웠어. 지겹기 때문에, 단지 그 별거 아닌 감정 때문에 미쳐버릴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괴로웠단 말이 맞는 거 같아. 밤마다 잠도 못 자겠더라. 눈만 감으면 그 순간이 너무 공허하고 '나는 왜 살지?' 답이 없는 질문에 답을 찾곤했어.
키르케고르의 글을 읽을때쯤, 권태로움은 인간이 짊어진 시지포스의 형벌이란 걸 알게 된거 같아. 매번 다시 굴러 떨어지는 돌을 정상에 올려놓는 형벌처럼, 인간은 벗어나려고 발버둥쳐도 다시 권태로움을 짊어지며 사는거지.
'실존이 고통'이란 명제는 인간 삶에 필연적인 권태로움을 가르킨다는 것도, '저렇거반짝이는 사람도 사실은 너무 괴롭구나' 라는 것도 새삼스레 알게됐어.
'실존은 곧 고통'이라는 명제를 영상으로 만든다면 '레퀴엠'이 아닐까. 권태로움이란 형벌을 더 이상 이겨내지 못 하기 때문에 그들은 말 그대로 미쳐버린거 같아.
예전에 "미치지 않고서 어떻게 제정신으로 살아가겠어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거든. 요즘 보면 그 말이 맞는거 같아. 의미도, 가치도 없는 삶은 너무 괴로워. 괴로우니까 피하고 싶은거야. 일반적인 미친 행동-약을 하고 중독에 빠지고 정신병에 걸리고-은 사실 미치지 않고선 버틸수 없었던 개인이 겪은 고통의 흔적이 아닐까 싶어.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다면 너무 괴로운걸...
그래서 내가 겪어온 타인들의 미친짓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됐어. 그 몸부림은 삶이 주는 고통스러운 권태에서 파생된게 아닐까..
톨들은 혹시 어느새 무언가에 중독되버린 자신을 발견한 적 없어? 나는 코로나 때문에 우울감이 올라와서 힘들었거든. 우울하니까 계속 뭔가에 의지하게 되더라. 하루종일 단 과자를 먹거나,매번 새벽 늦게까지 유료웹툰 결제해서 보곤 했어.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멈출 수가 없더라. 코로나 전에는 코인노래방을 자주 갔어. 어떨때는 일주일에 3~4번은 가고 그랬던거 같아ㅋㅋ요즘은 그게 안 되니까 더 미쳐버림ㅎ..
레퀴엠의 상황과 빗대면 우습고 귀엽기까지한 이야기지만ㅋㅋ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내 삶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어. 어쩌면 레퀴엠의 인물들은 지나치게 나약할 수도 있어. 근데 과연 나랑 그렇게 다를까?
권태로움을 해소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이든 중독될 수 있는거 같아. 술도 그렇고 담배도 그렇고ㅎ.. 예전에는 나약한 사람이 이해가 안 갔거든? 왜 의지가 없지? 왜 폭식을 하지? 왜 자꾸 남자친구/여자친구를 만들면서 의지하지?
나는 인간이 나약하기 때문에 무언가에 의존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삶이 주는 권태와 외로움이란 고통을 이겨내지 못 하기 때문에 외적인 무언가에 의존하는거지. 순간적인 쾌락과 누군가의 관심은 잠시나마 권태를 상쇄해주니까.
우리나라에 마약이 있었다면 우리는 저런 문제가 안 겪을까? 누구는 할수도 있고 누구는 안 할수도 있겠지. 마약이 잘못되지 않았다는게 아니라, 나는 공허한 삶을 이겨내지 못 하니까 자꾸 하게되는게 아닌가 싶더라고ㅋㅋ 근데그거랑 별개로 진짜 마약은 하면 안 되겠더라..영화보고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단걸 알게됐어. 인생 망치는 길이다. 예전에 한참 서양뽕에 빠졌을땐 우리는 너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거 같아;; 마약 합법화ㄱㄱ 이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다
서론같으면서도 본론인 얘기가 굉장히 길어졌는데ㅎ..
나는 가장 인상깊었던건 사라였어. 연기를 어쩜 저렇게 잘하지 싶으면서..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거 같아.
인간은 항상 의미를 찾잖아. 누군가의 행동에서 의미를 찾고, 내가 겪는 시련에서도, 그리고 항상 내 삶이 갖는 의미를 좇곤 하지. 사라는 할머니가 될때까지도 의미를 찾지 못 했어. 사실 누구나 다 그럴거같아. 어쩌면 답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 미리 정해진 의미같은건 없는데, 자꾸 그런 의미를 찾으니 공허할 수 밖에.
사라가 울면서 텔레비젼 쇼에 출연하는게"내가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야"라고 말했는데 그걸 보는데 눈물이 막 왈칵 쏟아지더라. 그래 그게 의미구나..
다이어트를 하고, 약을 먹고, 정신 착란이 오면서도 사라는 항상 티비를 켜고 쇼를 보잖아. 나는 그게 마약을 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어. 어느새 사라는 자신이 추구하는 의미에 중독되버리고, 더욱더 강한걸 원하게 되는거지
티비를 보면서 부러워하던게, 실제로 쇼에 출연할 수 있다는 기대가 되고, 그 기대가 계속 좌절되니까 이제 약을 통해서 실제로 그 자리에 있다는 정신착란을 갖게되는..
희망, 의미라는게 인간에겐 또다른 마약이될 수 있겠구나 싶었어. 희망찬 삶이야 좋지. 근데 권태라는 병을 물리치기위해서 꾸게 되는 꿈이라면 조금 다르게 봐야하지 않을까. 기생충이 생각났는데ㅋㅋ 계획도 결국 일반사람에겐 사치가 되버렸잖아.
나는 그걸 보고 희망도 누군가에겐 독이될수있다는걸 알게됐거든. 희망을 가질수있는 상황이 아닌데, 희망을 가져버리니까 더 비참해지는거지..ㅎ.. 희망이 자꾸 좌절되니까 삶을 더욱더 고통스럽고 권태로울뿐이고.
희망을 갖지 말란건 아닌데.. 희망중독은 위험할 수 있는거 같아.. 희망이란건 현실을 부정하면서 성립하는거잖아? 현실과는 다른 나를 꿈꾸는거니까. 근데 희망이 현실자체를 위협하고, 자신의 현실적인 조건을 모두 부정하게 되는건..위험한거 같아. 생산적인 희망은 아닌거지. 그 부정과 희망사이에서 생기는 괴리감과 고통도 문제고..사라처럼 자신을 극단적으로 부정하게되는것도 문제고
권태라는 현실을 잊기위해, 티비쇼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찬양받고, 스타로 살고 싶어하는 늙은 여자. 그 꿈이 계속 좌절되면서 약에 의존하고, 결국 현실에서 도망쳐버린 사람. 나는 그게 사라라고 느껴졌어ㅎ..ㅜ
이 부분에서 페미니즘 생각도 났다. 여자는 저 나이가 되도 누군가에게 아름다움을 인정받는게 희망이고, 삶에 의미인가. 싶고ㅋ.. 그걸 위해서 다이어트를 하는 모습이 너무 슬펐어ㅜㅜ
방송에서 사라보고 "밥줘"라고 외치는것도
사라가 자기 아들한테 "나는 더이상 누군가를 돌볼 수 없다. 삶에 의미가 없어" 이런식으로 말한단 말야. 사라는 누군가를 돌보는 역할을 자신의 의미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옴.. 그래서 남편 죽고 아들도 독립하니까 삶의 의미를 잃었다고 생각하잖아.
이제서야 자신만의 의미를 찾게 된거고.. 정신착란와중에 자신을 보고 사람들이 "밥줘" "밥줘"이러는 장면이 나오는 건 결국 사라가 희망을 잃고 다시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는 뜻인건지..이 부분에 대한 해석이 궁금하다ㅎ.. 누군가의 아내, 엄마로서 살면서 자신을 "누군가를 돌봐주는"사람으로서만 의미를 가진다는게..
나는 사라가 말한 "의미"는 이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한 의미라고 보거든. 사라는 정말 의미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온거고.. 물론 누군가에겐 의미있는 삶일수있지만.. 가부장제역사를 생각해보면 여자들에게 그게 강요된 삶임을 부정할순없잖아..
냉장고가 나오는것도 사라에게 자신의 "주제"를 알게 만드는 하나의 장치가 아니었을까 싶다ㅎ.. 이제 여성으로서 가부장제에 의미있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 하는 늙은 여성이 "주제"를 모르고 희망에 젖어살다가, 그 희망이 부서지고..
이제 아무 의미가 없는 현실을 그대로 직면해버린거지.. 그전까진 사회가 강요한 "의미"가 있었지만 이젠 그런게 하나도 없는 말그대로 텅비어버린 권태 그 자체일뿐..ㅎㅜㅜ 그래서 더 상실감이 크고 힘들었을거 같아..
뭐랄까.. 그 장면을 보면서 사라가 자신의 꿈을 변명하는것처럼 보였어. 나는 냉장고 즉 "밥"을 상징하는 여성인데, 너무 큰 꿈을 꿨고, 그걸 부정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은 그저 티비에나가고 싶었다며 변명하는것처럼 보였달까? 근데 그런 사라의 무의식에선 어쩌면 자신이 의미있다고 여겨왔던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벗어나 큰 꿈을 꾸고싶다는 욕구가 있었고, 그런 욕구를 사회가 사라에게 "니 주제를 알아!"이렇게 꾸짖으니 사라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거 같더라고. 사라는 그게 부끄러운걸 알지만, 그 꿈을 실현하고 싶었던거징
난 여기서 또 보편적인 인간의 삶이 보였는데..
어쩌면 우리가 권태로움을 느끼는 순간은 사회가 우리에게
지정해준 의미있는 삶에 개인이 위화감을 느낄때가 아닌가 싶어ㅎ..
예를들면 지금 사회에서 중요하고 의미있는 건 돈,지위잖아. 근데 그것만 바라보고 살던 사람도 어느순간 자신에 삶ㅈ을 회의한단 말이지. 이게 정말 중요한가? 이렇게.
근데 그게 단지 거기에 그치는게 아니라 정말 많은것들에 걸쳐져 있는거 같아. 사회가 지정한 여자, 아내, 엄마, 딸 그리고 남자, 남편, 아빠, 아들
이 모든 역할에 대해서 위화감을 느낄때 권태를 느끼는거지..사라는 그 역할을 박탈당한 상황에서야 자신의 삶이 공허하단걸 깨닫게 된거지.. 이건 자의의 의한게 아니지만, 그 역할이 사라지면서 텅빈 공허함을 느끼게된듯..
나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실존주의 철학은 항상 괴로운거 같아ㅜㅜ인간에겐 어떤 본질이 존재하지 않고, 그저 세상에 내던져저 있기때문에 자유롭다는 뜻이잖아.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실존이 공허한 본질을 앞서는거지.. 사회가 내게 부여한 여성, 아내, 엄마라는 본질은 사실 아무 의미가 없는거고..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들 역시 공허한 말뿐이고..
인간은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라는게 내 모든걸 부정하는 느낌이었어. 처음에 이 철학을 접하고 심적으로 많이 아팠어. 내가 지금까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모든걸 부정하니까 어느방향으로 나아가야하는지 모르겠더라고ㅎ.
그래도 실존주의 철학은 자학을 하기위한 철학이 아니란 말야. 자유는 고통이지만, 결국 내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수있게 하는 전제조건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권태라는 감정을 내 삶을 좀먹는 페스트이지만, 내 삶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킬수있는 감정이라고 하더라고. 그 감정이 있어야 지금까지 사회가 내게 강요해온 역할이 잘못됐다는걸 인식할수있으니까ㅎ..
근데 사실 그게 쉽진않지ㅜㅜ..사라는.. 그 자유와 권태를 주체적으로 이용한다는게 인간에게 얼마나 어려운일인지를 보여주는거같아
가볍게 쓰려고했는데 뭔갈 많이 썼다..ㅎ
뒷부분은 내일 시간내서 좀 다듬을게ㅋㅋㄱ
나는 요즘 이렇게 내 생각을 정리한 글을 쓰는게
내 권태로움을 잊는 방법인거 같아ㅜ
그리고 내용적인 걸 떠나서 영상편집이랑 사운드가진짜..
와.. 그런거 있잖아 콘서트장 가면 그 진동소리에 내 심장박동맞춰지는 기분ㅋㅋ 이거 보면서 음악이 점점 고조될때 딱 그 기분이었음.. 정말 최근에ㅈ본 영화중ㅈ에 제일 좋았어.. 2시간동안 풀몰입한적 처음임..
레퀴엠 엄청 예전에 봐서 지금은 그냥 영화의 강렬한 인상만 남아있었는데 다시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