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페루 산골마을에 살았었다. 이유는 설명 못해, 아는 사람이 나올지도.
산골마을을 가는 법은 큰 도시 하나를 지나쳐 가는 것 밖에 없었는데, 그 큰 도시 이름은 아레키파.
꽤나 고산지대에 놓인 도시. 만년설이 보이는 곳이다.
그 곳에서 차를 타고 네시간정도 가면 나오는 곳에 내가 살았다.
문제는 그 네시간이었다.
그 네시간은 고산에 펼쳐진 아무것도 없는 일직선 도로를 주욱 달리다 절벽을 깎아만든 산길에 접어들었다.
여기서 말하는 절벽이라 함은, 떨어지면 100퍼센트 뒈질 것이 분명한 절벽이었다.
붙잡고 견딜만한 나무도 없이, 모래와 자갈 위를 십몇미터나 굴러 떨어질만한 절벽. 믿건데 누군가가 우리를 발견하고,구조대를 부르면 구조대 또한 아레키파에서 몇시간을 달려 와야 할 것이었다. 그렇게 달려온 그들이 하는 거라곤 주검을 수습하고 크레인으로 자동차를 수거하는 것 뿐이다. 그것은 목격했었다.
여기엔 또 엄청나게 많이 달리는 대형트럭들이 문제다.
아주 느리지만 또 무거워 이 자갈길에 금을 내며 다니는 트럭들. 그들을 추월해야만 했다. 굽이굽이 절벽을 낀 도로니 당연히 추월이 허가될 리 없었지만 추월을 하지 않으면 일곱시간은 족히 걸릴 길이니 목숨을 걸고 추월을 한다. 이 짓도 거의 30번.
그런 길에 똥차들이 다니니 사람이 안 죽는 게 말이 안 된다.
페루는 사람이 죽은 곳에 십자가와 작은 집을 만들고 그 안에 사진같은걸 봉해놓더라. 집에 가거나 아레키파에 가는 길이면 그런것들을 자주 보았다.
가끔은 똑같으 십자가가 두개. 부부가 죽었다.
같은 곳에 다른것 두개. 운전자 두명 다 죽었구나.
오래된 것 옆 새것. 사고가 잦은 곳.
한구간은 그 절벽 위에 몇미터나 될법하게 흰 돌로 십자가를 그린 든 뒤 '보고싶구나, 딸아'라고 써 있었다.
가장 슬픈 구간은 우리 동네에 다다르기 전, 그나마 나무로 만든 난간이 부서져 있던 곳이다. 공사차들이 많이 다녀 지반이 약해졌던건지 콘크리트 바닥도 허물어져 차들이 안쪽 차도 하나만 썼던 곳이다.
그곳은 수십개의 십자가가 서있었다. 다른 십자가집들은 알록달록 꾸며 색색깔인데 반해 그 곳은 나무 판자로 엮은 검은 십자가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몇몇은 컸고 몇몇은 작았다.
버스구나.
처음엔 참 슬펐지만 나중에는 그 표지판이 우리 마을에 다다랐다는 신호가 되었다.
한 번은 그 길에 십자가들을 세어보니, 200개가 넘었던 것 같다. 더 되었었나? 엄마는 그런 거 세는게 아니라 했다.
그 길을 달리다보면 내가 달리고 있는 것이 길이 아니라 공동묘지 위라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것도 익숙해졌다.
가장 이상한 것들은 직진도로 옆 십자가 들이다.
직진도로고 양옆에는 사막이라 사고가 날래야 날 수가 없는 곳이다. 종로대로 양옆에 허허벌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도 수십개씩 십자가가 놓여있었다.
어머니는 사람이 뭔가에 홀리면 쟁반에 물받아놓고도 죽는다고 했다.
페루는 참 이상한 나라다.
밑은 십자가들 사진. Animitas라고 부르는 듯.
https://img.dmitory.com/img/202003/3yR/07S/3yR07Si7dus8SYA2qwcmeS.jpg
https://img.dmitory.com/img/202003/3lN/ClY/3lNClYmiM86WQ48SKGigww.jpg
산골마을을 가는 법은 큰 도시 하나를 지나쳐 가는 것 밖에 없었는데, 그 큰 도시 이름은 아레키파.
꽤나 고산지대에 놓인 도시. 만년설이 보이는 곳이다.
그 곳에서 차를 타고 네시간정도 가면 나오는 곳에 내가 살았다.
문제는 그 네시간이었다.
그 네시간은 고산에 펼쳐진 아무것도 없는 일직선 도로를 주욱 달리다 절벽을 깎아만든 산길에 접어들었다.
여기서 말하는 절벽이라 함은, 떨어지면 100퍼센트 뒈질 것이 분명한 절벽이었다.
붙잡고 견딜만한 나무도 없이, 모래와 자갈 위를 십몇미터나 굴러 떨어질만한 절벽. 믿건데 누군가가 우리를 발견하고,구조대를 부르면 구조대 또한 아레키파에서 몇시간을 달려 와야 할 것이었다. 그렇게 달려온 그들이 하는 거라곤 주검을 수습하고 크레인으로 자동차를 수거하는 것 뿐이다. 그것은 목격했었다.
여기엔 또 엄청나게 많이 달리는 대형트럭들이 문제다.
아주 느리지만 또 무거워 이 자갈길에 금을 내며 다니는 트럭들. 그들을 추월해야만 했다. 굽이굽이 절벽을 낀 도로니 당연히 추월이 허가될 리 없었지만 추월을 하지 않으면 일곱시간은 족히 걸릴 길이니 목숨을 걸고 추월을 한다. 이 짓도 거의 30번.
그런 길에 똥차들이 다니니 사람이 안 죽는 게 말이 안 된다.
페루는 사람이 죽은 곳에 십자가와 작은 집을 만들고 그 안에 사진같은걸 봉해놓더라. 집에 가거나 아레키파에 가는 길이면 그런것들을 자주 보았다.
가끔은 똑같으 십자가가 두개. 부부가 죽었다.
같은 곳에 다른것 두개. 운전자 두명 다 죽었구나.
오래된 것 옆 새것. 사고가 잦은 곳.
한구간은 그 절벽 위에 몇미터나 될법하게 흰 돌로 십자가를 그린 든 뒤 '보고싶구나, 딸아'라고 써 있었다.
가장 슬픈 구간은 우리 동네에 다다르기 전, 그나마 나무로 만든 난간이 부서져 있던 곳이다. 공사차들이 많이 다녀 지반이 약해졌던건지 콘크리트 바닥도 허물어져 차들이 안쪽 차도 하나만 썼던 곳이다.
그곳은 수십개의 십자가가 서있었다. 다른 십자가집들은 알록달록 꾸며 색색깔인데 반해 그 곳은 나무 판자로 엮은 검은 십자가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몇몇은 컸고 몇몇은 작았다.
버스구나.
처음엔 참 슬펐지만 나중에는 그 표지판이 우리 마을에 다다랐다는 신호가 되었다.
한 번은 그 길에 십자가들을 세어보니, 200개가 넘었던 것 같다. 더 되었었나? 엄마는 그런 거 세는게 아니라 했다.
그 길을 달리다보면 내가 달리고 있는 것이 길이 아니라 공동묘지 위라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것도 익숙해졌다.
가장 이상한 것들은 직진도로 옆 십자가 들이다.
직진도로고 양옆에는 사막이라 사고가 날래야 날 수가 없는 곳이다. 종로대로 양옆에 허허벌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도 수십개씩 십자가가 놓여있었다.
어머니는 사람이 뭔가에 홀리면 쟁반에 물받아놓고도 죽는다고 했다.
페루는 참 이상한 나라다.
밑은 십자가들 사진. Animitas라고 부르는 듯.
https://img.dmitory.com/img/202003/3yR/07S/3yR07Si7dus8SYA2qwcme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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