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이 호불호가 가장 심하게 갈리는 부분이 스토리인데 사실 진짜 별거 없는 이야기잖아
명령을 받아서 목적지까지 가는 거 뿐이야 그 과정에서 대단한 반전이 있거나 이야기가 복잡하고 흥미진진하게 얽히는 부분은 전혀 없어
적진이라 가는게 어려울 뿐이지 따지고 보면 거리도 멀지 않은 곳이야 대사상으로는 걸어서 6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지만 직진해서 비어져있는 참호를 뚫고 트럭을 얻어타고 길이 아닌 강과 폭포를 건너서 영화 러닝타임에 맞춰 도착했지
샘 멘데스가 보여주고 싶었던건 드라마틱한 무언가가 아니라 짧지만 목숨을 걸어야만 했던 그 시간의 전쟁 속 군인 그 자체.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닌 시간이지만 그들에게는 여차하면 목숨을 잃는, 꼭 무언가 대단한게 있어야지만이 드라마가 아니라는것
전쟁이라는게 그렇게 참혹하고 허무하다는 그림을 그렸던게 아닌가 싶어
사제가 되고 싶었던 착한 블레이크는 그토록 어이없이 죽어야 했고 최전선 부대의 병사는 철조망을 고치다가 죽었으니까
다큐멘터리가 아니기에 이 단순한 이야기를 최대한 영화스럽게 만든 수단이 '원테이크처럼' 보이는 촬영기법이었을 뿐
영화에 담긴 메세지는 비교적 분명하다고 생각해 그런데 이 메세지는 보통의 전쟁영화처럼 그저 적군과 아군의 대비나 잔혹한 살상이 이뤄지는 전투씬으로 드러나는게 아니거든 그런 면에서 샘 멘데스의 역량을 높이 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다른 곳에서 이 영화가 굉장히 종교적인 영화라는 리뷰를 보았는데 그렇게도 해석이 가능하겠구나 싶더라 영화가 어쩐지 여백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는, 영화 주인공들의 이름이 마지막에서야 나온다는거. 블레이크와 스코필드의 관계라면 서로 이름을 부르는게 당연한걸텐데도 영화 속 내내 성으로만 나와 마지막 그 순간에서야 일병들의 이름이 나오지 톰(토마스)와 윌리엄(윌). 전쟁 속에서 이름없이 죽어가는 수많은 병사들이 마지막에서야 이름을 찾아 블레이크가 그토록 살리고자 했던 형을 만나고나서야, 스코필드는 그제서야 숨겨놨던 가족의 사진을 꺼내지
그리고 이 영화 초반부에 블레이크는 형을 구하러 가겠다며 걱정스러워 하는 스코필드에게 별 거 아니라는 듯이 'I Will' 이라고 하잖아
그리고 블레이크가 죽은 후에 스코필드가 그 대사를 한 번 더 하지 'I Will' 마지막에서야 스코필드는 윌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져
윌리엄이 I Will 이라고 대답하는 그 순간은 상사에 대한 복종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형의 목숨을 구하고 싶어하는 블레이크의 뜻을 대신 이뤄주겠다는 다짐이며 무엇보다도 윌리엄 스코필드라는 개인으로서의 자아가 드러나는 중의적인 대사라고 생각해
오랜 전쟁 속에 훈장을 위스키 따위와 맞바꿔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의미없다고 느낄만큼 염세주의자가 된 스코필드지만 블레이크의 죽음을 계기로 좀 더 윌리엄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게 되는걸 암시하는 대사같아서 블레이크의 I Will과 스코필드의 I Will이 연달아 자꾸 떠올라
블레이크가 체리나무는 죽어도 그대로 끝나는게 아니라 다시 새 열매를 전보다 더 많이 맺는다고 했잖아
결국 블레이크는 체리나무였던 거겠지 물에 빠진 스코필드에게 날리던 꽃잎들이 아니라더라도 블레이크가 목숨이 아깝지 않아할만큼 사랑했던 형은 살았고 친구마저도 변화시켰으니까 죽는다고 해서 그것이 끝은 아니라는걸 대신 살아남은 사람들이 증명할거야
처음에는 스코필드 위주로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블레이크가 눈에 밟혀 사제가 꿈이었던 소년이어서 그랬을까
그리고 말야 스코필드가 쫒기는 와중에도 불사신처럼 총을 다 피하고 끝내는 살아가는 모습이 영화 볼때는 주인공효과라고만 생각했는데 말이지 그 당시에 총들이 너무 길고 무겁고 정확성이 떨어지기로 유명했대 실효성이 엉망이어서 적군 저격하는게 거의 난사 수준이었다더라 어차피 제대로 저격 안될걸 알아서 그저 막 쏴대면서 죽이는 방식 정확성이 아주 낮은데다가 어두울때는 당연하게도 초점이 안맞고 흔들리기 때문에 야간 추격씬에서 그런게 한발씩 쏴서 맞추는건 거의 불가능했을거라고...대단한 명사수라면 모르겠지만? 당연히 주인공이어서 살렸어야겠지만 아주 엉터리 설정은 아니었던 모양이야 영화 볼때는 저게 뭐야 했지...안죽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