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지 거의 2주가 다 되어가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오스카에 불만을 삼을 기회를 결코 낭비하지 않았다. 그는 목요일 유세장에서 봉준호 감독의 작품상 수상작 '기생충'이 미국이 쇠퇴하는 또 다른 징조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오스카 수상자는... 한국의 영화다.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인가?" 트럼프는 불평했다. 우리는 한국과 무역 면에서도 충분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올해 최고의 영화상을 주다니?"
트럼프는 한국어 영화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선셋 대로' 같은 작품이 더 좋다고 말했는데, 이는 확실히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가 외부로부터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을 향한 교묘한 세뇌였다. 또한 이런 트럼프의 불평은 외국인혐오자들이 갖고 있는 외국인혐오증의 문제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만약 당신이 낯설다는 이유로 그 어떤 외부 문화도 멀리하고 꺼려한다면, 당신은 수많은 예술과 음식, 그리고 유익한 경험들을 놓칠지 모른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당신의 정치 캠페인에 예술을 끌어들이려 한다면,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던 메시지까지 허용하는 결과를 낳을지 모른다.
기생충은 아무런 의심의 여지 없이, 작품상을 탈만한 자격이 충분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부유한 박씨 가족의 과외 직업을 얻은 김기우라는 인물을 따라간다. 기우는 박씨 부부를 서서히 속여가며 자신의 동생, 아빠, 엄마를 미술 교사, 운전사, 가정부로 고용하게 만든다. 초반에는 코미디 작품으로 보이던 이 영화는, 김씨 일가가 거짓된 삶으로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또 물질적 안락함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면서도 동시에 그들을 멸시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탐구하면서 점점 더 슬프고 절박한 이야기로 바뀐다.
이 영화의 많은 디테일들이 한국 특유의 것이지만, 작품의 핵심 갈등들은 소득 불평등에 고심하는 나라라면 어느 나라든, 자신들과 밀접한 이야기라고 즉각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생충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봉준호가 관객들로하여금 김씨 가족과 박씨 가족 양쪽에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들과 도덕적 딜레마를 잘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많은 미국인들은 계급 반란의 상징으로서 이 영화를 붙잡은 이유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 이야기를 시스템을 편취하려든 하층민들에게 이용당하고, 부당하게 특권을 침해당한 부자집의 이야기로 가볍게 보았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유세장 무대에서 직접 말했듯, 그는 이 영화를 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기생충을 보지 못했다는 것은, 확실히 트럼프의 손해다.
자신이 너무 애국적이기 때문에 외국어 영화의 자막은 읽을 수 없다 선언 한다고 하여, 당신이 곧 최고의 승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경의로운 연기와 경의로운 샷, 경의로운 반전 스릴러물을 볼 수도 있었던 기회를 당신 스스로 날려 먹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리고 오스카뿐만 아니라 스킨 케어부터 대중 음악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화가 다양한 분야에서 상승세를 타는 순간에, 그런 자부심에 찬 무식함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입장에서도 좋은 준비력이라 할 수 없다.
그리고 미국이 만든 문화라고 꼭 트럼프가 듣고 싶은 말을 해줄 것 같지도 않다. 어쩌면 트럼프는 제임스 맨골드의 자동차 전성기 이야기 '포드 v 페라리'가 작품상을 수상하는 것을 더 보고 싶어했을 것이다. 물론, 동시에 그 영화가 미국의 산업적 위대함 속에서 희생당하는 인간에 대한 작품이었다는 점만 뺀다면 말이다. 마틴 스코세지의 '아이리시맨'은 어떤가? 아니, 그 영화는 갱스터들이 결국 얼마나 허약하고 어떻게 버림받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노아 바움백의 '결혼 이야기'는? 한 연극 감독의 이혼을 다룬, 대사가 넘쳐나는 인디 드라마 영화였는데, 트럼프에겐 이 영화 속 여성 배우가 한국어로 된 영화보다 더 고역일지도 모른다.
트럼프가 언급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조차도, 당신의 정치적 구호에 위대한 예술작품을 끌어들이는 게 왜 까다로운지를 잘 보여준 좋은 사례다. 트럼프는 이 영화를 미국의 위대한 예술의 좋은 본보기로 사용하려 했지만,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를 연기한 배우 비비안 리가 영국인이라는 점만 빼면 그렇다. 만약 더 오래되고, 더 인종차별적이었던 미국의 위대한 옛 시절을 떠올릴 목적이었다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해티 맥다니엘이 아카데미에서 상을 타며 최초로 유색인종의 아카데미 장벽을 허물어뜨린 영화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궁극적으로 유권자들에게 변질된 향수를 제공하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옛 남부 시대의 품위를 상징하는 송가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칼렛이 노예제의 궁극적 산물이 아닌 북부 자본주의 구현에 눈을 떴다는 점에서, 이것 역시 트럼프가 자신의 기반을 스스로 부정한 꼴이다.
트럼프가 위대한 예술의 복잡성에 깊이 감동받길 바라는 것이야말로 - 아니면 그가 인내심을 갖고 그저 자막만이라도 읽어주길 바라는 것조차 - 천진난만한 헐리우드 판타지의 극치일 것이다. 그의 최근 레파토리인 이런 기이한 꼰대식 마니즘이 다른 사람들에게 위대한 영화를 놓치도록 설득하여, 그것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예술이 가져줄 수 있는 신비한 경험을 빼앗을 수 있다는 사실이 유감스러울 뿐이다.
링크:
번역출처:
https://extmovie.com/movietalk/54306996
ㅋㅋㅋㅋㅋ진짜 너무 수준낮아.. 뭔 대통령이 저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