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구지방검찰청이 발칵 뒤집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지적장애 여성을 집단 성폭행한 무리가 있다"는 고소장이 접수됐기 때문이다. 고소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지난 1년간 60명에게 성폭행당했다." "개와 수간(獸姦)을 하라고 강요했다." "어쩔 땐 주사기로 약물을 주입했다."
피의자로 지목된 사람들도 심상치 않았다. 지역에서 이름 있는 교회의 목사와 부목사, 소방관들이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돼 있었다. 사실이라면 전국을 발칵 뒤집어놓을 만한 사건이었다.
"성폭행당했다"는 신고에 수사했지만 밝혀진 건⋯
고소를 한 사람은 두 명이었다. A양과 B양이었다. A양이 6차례, B양이 2차례에 걸쳐 고소장을 냈다. 그 결과 지역 유지 60명이 피소됐다.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됐다. 그런데 수사를 하면 할수록 앞뒤가 안 맞았다. A양이 지적장애 2급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성폭행을 당했다는 장소와 시간, 범행 방법이 객관적인 증거와 어긋났다.
수사기관은 A양과 B양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웠다. 두 사람 배후에 '어떤 남자'가 있다는 점도 의심스러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수사는 '집단 무고죄 수사'로 변해갔다.
신고한 여성 2명, 그 뒤에 있던 건 '선교사'로 불리던 남성
A양과 B양 뒤에는 '선교사' 황씨가 있었다. 황씨는 A양의 법적 후견인이자, B양에게 거처를 마련해준 사람이었다. 경북의 한 교회에서 직분을 맡았던 황씨는 주변에서 '선교사'로 통했다. 포교를 위해 다른 지역에 가진 않았지만 신실한 교인이라는 취지에서 정해진 호칭이었다.
황씨는 어느 날 A양에게 충격적인 고백을 들었다. 그날부터 모든 사건이 시작됐다. A양은 동네 주민들이 1년에 걸쳐 자기를 연쇄 강간했다고 말했다. A양은 그 증거로 "자기 친구들도 같은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황씨가 알아본 결과 A양 친구들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부인했다.
황씨는 거기서 멈추는 게 옳았을지 모른다. 아니면 수사기관에 정식으로 수사 의뢰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황씨는 A양의 '거짓 고백'을 돈 벌 기회로 악용했다. 그는 A양이 지목한 주민들을 '성폭행 가해자'라고 고소한 뒤 합의금을 뜯어낼 심산이었다.
성폭행 정황 '달달' 외우게 하고, 고소장 그대로 따라 쓰게 하고
황씨는 완전 범죄를 위해 A양에게 지어낸 '강간 스토리'를 달달 외우게 하고, 자신이 먼저 작성한 고소장을 자필로 따라 쓰게 했다. A양은 황씨가 하라는 대로 했다. A양이 그렇게까지 황씨의 말을 따른 이유에 대해 판결문은 "황씨의 칭찬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A양이 황씨에게 정신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A양은 황씨의 가이드에 따라 써내려간 고소장을 대구지방검찰청과 경북지방경찰청에 잇따라 접수했다.
황씨는 A양의 친구인 B양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고소장을 내도록 종용했다.
황씨의 집에서 얹혀살던 B양도 황씨가 하라는 대로 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B양은 그 말을 듣지 않을 경우 '집을 나가야 할지 모른다'는 걱정 끝에 그렇게 했다고 한다.
그렇게 소방관, 교회 목사와 부목사 등 무고한 주민 60여 명이 줄줄이 고소됐다.
"시킨 사람이나, 따라 한 사람이나 둘 다 잘못했다" 징역형
검⋅경의 수사로 황씨의 범행은 탄로 났고, 재판에 넘겨졌다.
사건을 심리한 대구지방법원 형사8단독(장민석 판사)은 지난 8일 황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A양에게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B양은 별도 사건으로 처리돼 이번 재판에서는 빠졌다.
장 판사는 "무고한 피해자들에게 성폭행 가해자라는 누명을 쓰게 만들었다"며 "A양은 지적장애인이지만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시했다.
두 사람은 최근 2심 재판을 받겠다며 항소장을 제출했다.
https://news.lawtalk.co.kr/judgement/1672
지적장애인 이용에 무고한 사람들 다 성폭행범 만드려고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