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정원

* PC버전으로 봐야 잘 읽혀! 모바일은 폰트도 다 똑같이 나오고 줄띄움도 안 맞아서 읽기 힘들 거야.




2019년 7월 ~12월 동안 읽은 책들 모음!

1~6월 책은 여길 참고해줘 (2019년 상반기: https://www.dmitory.com/garden/87748114)



1년에 100권 읽기 챌린지를 하고 있는데 훌쩍 넘겨버렸다ㅋㅋㅋㅋㅋ

별점이나 리뷰는 순전히 내가 읽었을 때 얼마나 재미있었는지로 따진 평가라서 다른 사람들 의견과는 다를 수 있어!



☆☆ = 추천 안함. 아주 재미 없거나 기분 나빴던 책.

★★☆☆ = 그냥저냥 평타.

★★☆☆ = 킬링타임 가능. 꽤 술술 읽히고 보통으로 재미있음

★★☆ = 남에게도 추천할 만큼 재미있고 인상 깊음

★★★ = 돈 주고 소장하고 싶은 책, 여러 번 읽어도 재미있을 책





78. 사람의 아이들 / P.D.제임스 ★★★☆☆


사람이 더 이상 태어나지 않게 된 세상을 그려낸 디스토피아.

 

1990년대 말인류는 재생산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린다더 이상 인류가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 하에 전세계는 천천히 무기력하게 쇠락한다장년층은 희망 없이 늙어 가고노년층은 단체로 자살하도록 내몰리고마지막으로 태어난 아이들 세대는 '오메가'라고 불리며 전세계에게 오냐오냐받으며 자라나 온갖 범죄를 마음대로 저지르고 다니는 무법자가 된다마찬가지로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주인공 테오는 어느 날 독재정부에 반기를 드는 여섯 명의 사람들과 맞닥뜨리고그 수장이 임신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더 정의롭고 더 온정적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 고통을 감수하고 투쟁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어쩌면 목숨까지 바칠 정도로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미래가 사라진 사회에서 

정의니 온정이니 사회’, ‘투쟁’, ‘해악’ 같은 단어는 아무도 듣지 않는 허공의 메아리였다.

 

이 세상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들 손으로는 절대로 달라지지 않아요

기꺼이 스스로 웃음거리가 될 준비가 된 남녀에 의해 변하죠

안녕히 계세요페이런 박사님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세계관 설명과 독재정부vs반란팀 사이에서 헤매는 주인공의 심리적 갈등을 다루는 중반부까지는 상당히 지루했지만본격적으로 정부를 피해 도망가기 시작하는 후반부부터 속도가 붙어 페이지가 잘 넘어감디스토피아 소설다운 음울한 분위기를 잘 살려냈지만 초중반부가 너무 지루해서 별 3.

 

책 읽고 난 후 영화도 봤는데소설이 음울한 결말을 암시하며 끝난다면 영화는 더 희망적이야특히 스토리의 중심이자 희망의 상징인 임산부 캐릭터를 백인 고학력 여성에서 흑인 이민자 소녀로 바꾼 게 좋았어.

 


 

79.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


너무너무 재미있다정말 오랜만에 마음이 묵직해지고 여운이 차오르는 소설각 캐릭터의 심리묘사가 굉장히 입체적이고 몰입감이 넘쳐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물들은 정말 오랜만다섯 명 모두 각자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한 부분씩은 있고 그걸 다른 캐릭터의 눈으로 보여주며 진실을 밝혀주는 연출이 가히 천재적.

 

중국인 아버지 미국인 어머니로 구성된 5인 가족의 둘째딸이 호수에서 익사한 채 발견되고그걸 계기로 이 가족이 어떻게 각자의 비밀을 만들게 되는지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이 어떻게 이 가족 사이에 금을 만들었는지그리고 켜켜이 쌓여 온 사소한 비밀들이 어떻게 가족 간의 갈등으로 이어지는지 첨예하고 서글프게 풀어 나가는 소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남은 사람들은 살아간다'는 담담한 희망이 아름답다.


 

아빠가 학창시절 얘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엄마와 아빠가 어떻게 결혼했는지왜 미들우드로 이사를 왔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리디아는 그 얘기들이 담고 있을 아픔을뱃고동 소리가 귓속을 깊고 날카롭게 파고드는 것처럼 느낄 수 있었다

리디아의 아빠가 무엇보다도 걱정하고 바라는 건 리디아가 사랑을 받는 것이었다리디아가 잘 적응하는 일이었다.

 


무슨 뜻인지 알잖아리디아가 백인 여자애였다면…….”

단어들이 제임스의 혀 위에서 씁쓸하게 맴돌았다.

리디아가 백인 여자애였다면내가 백인 남자였다면…….

잘 적응했을 거 아냐.”

이사를 하는 건 절대로 해결책이 될 수 없다이제 제임스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어디에 가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거다

혼혈 가정 아이들은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해 힘들어 할 때가 많다그러니까 잘못은 훨씬 전에

아주 깊은 곳에서 본질적으로 일어난 거였다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렸던 그날 아침에

치안판사가 메릴린을 쳐다봤고 메릴린이 라고 대답했던 그 순간부터 잘못된 거였다.

 


그들은리디아를 자주 생각할 것이다메릴린이 리디아 방에서 커튼을 걷고 옷장을 열고 선반에서 옷을 치우기 시작했을 때,

아빠가 파티에 참석해 그곳에 있는 모든 금발들을 재빨리 훑어보는 일을 생애 처음으로 하지 않게 됐을 때

한나가 좀 더 똑바로 서고좀 더 거침없이 말하게 됐을 때어느 날 머리를 귀 뒤로 넘기다가 그 동작이 너무나도 익숙해서 

그 이유를 고민하게 될 때가족들은 리디아를 생각할 것이다.

 

 

 

80. 돌이킬 수 있는 문목하 ★★★★☆


촉망받는 신입 수사관 윤서리는 비밀리에 어느 암살 작전에 투입된다작전구역은 대형 싱크홀 발생으로 4만여 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은 후 폐쇄된 유령도시그러나 그녀는 아무도 없어야 할 도시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을 발견하고그보다 더 놀라운 그들의 초능력을 목격하게 되는데.

 

초능력 배틀물을 좋아하지 않았던 내 편견을 깨준 소설초반부가 좀 늘어지는데중반부에 첫 번째 반전이 드러날 때부터 분위기가 급물살을 타며 갑자기 정신없이 페이지 넘어감전개될수록 반전에 반전에 또 반전을 거듭하는 플롯이 흥미진진해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정말 끝내주는 로맨스라는 추천글 보고 읽었던지라 응...? 로맨스 어디...?;; 하면서 읽었는데 후반부 가서 파워납득ㅠ 끝내주는 로맨스 인정합니다...

 


 

81. 저주토끼 정보라 ★★★☆☆


공포 단편집뒷맛이 씁쓸한 이야기도 있고아련한 여운이 남는 이야기도 있고

나는 이렇게 읽기 쉽고 적당히 기승전결이 잘 짜인 단편집을 좋아해서 별 3.

제목인 <저주 토끼>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토끼의 특징인 갉아먹기+번식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저주라서 더욱 신선하고 무섭게 다가왔음.

 


 

80.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


블랙유머의 진수책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sarcasm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뇌에 직격으로 꽂는 느낌.

옛날에 '병맛'이라는 게 한참 유행할 때가 있었는데이렇게 글솜씨가 뛰어난 책에 그런 표현을 쓰기는 좀 그렇지만 읽으면서 계속 세계 최고로 고급스럽게 쓴 '병맛'이라는 느낌을 받았음... 필력은 진짜 끝내준다이 작가가 아무도 작가 말빨을 이길 수가 없어서 비평가가 작품을 감히 비평할 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천재라는데이 책 하나만 봐도 여실히 느껴져.


중간 중간에 아 이건 좀... 이런 걸 굳이 왜하는 표현이 군데군데 있어서 별 하나 뺌여성 작가였다면 그런 문장을 적진 않았을 것 같음.

 

 


81. 식스웨이크 무르 래퍼티 ★★★★☆


4D프린터로 인간을 복제할 수 있어 죽음이 유명무실해진 미래클론 범죄자 6명이 운전하는 우주선이 수십만 명의 인류 데이터를 싣고 다른 행성을 찾아 출발한다하지만 클론들은 피바다가 된 살해현장에서 눈을 뜨는데이전의 기억을 저장해 놓지 않았기에 아무도 우주선 상륙 이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살인자는 과연 누구일까?

 

밀폐된 우주선 안에서 살인의 진상을 밝혀내는 흥미진진한 SF소설.

술술 읽히고 재미있다과거와 현재를 이리저리 오가고 여러 인물의 시각이 돌아가며 나와서 처음에는 좀 헷갈리지만전개될수록 여기저기 흩어졌던 복선들이 전부 하나로 귀결되며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짜임새 탄탄한 플롯멤버들이 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지 밝혀질 때의 카타르시스가 끝내줘.


 

 

82. 관 아르노 슈트로벨 ★☆☆☆☆


정기적으로 관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꿈을 꾸는 여자그리고 현실에서 그와 똑같이 관에 갇혀 생매장당하는 방식으로 살해당하는 여자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작가가 이 이야기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주제가 확실하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흡입력이 떨어지고마지막 페이지를 보고 나서도 그래서 뭐하는 감상만 남음아동학대아동성매매 등 쓸데없이 자극적인 설정을 플롯이 받쳐주지 못함반전을 먼저 생각하고 이 반전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기획한 듯한 느낌인데잘했으면 괜찮았겠지만 살을 충분히 탄탄하게 붙여주지 못해서 실망스러워.

 


 

83. 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


줄거리 몇 년 전 어린 딸이 살해당한 아픔을 갖고 있는 주인공은 어느 날 아내 또한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그 범인에게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사형 제도에 대한 다양한 이념과 그게 어떻게 두 가족의 사이에 엮여 들어갔는지 펼쳐진다.


 

유족은 단순히 복수를 하기 위해 범인의 사형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한번 상상해 보기 바란다

가족이 살해당한 사람이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큰 고통을 견뎌야 하는지…….

범인이 죽는다고 해서 피해자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그렇다면 유족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을 손에 넣으면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를 풀 수 있는가사형을 원하는 것은 그것 말고는 유족의 마음을 풀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사형을 폐지한다면그렇다면 그 대신 유족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 묻고 싶다.”

 

하지만 말이죠히루카와가 귀찮아졌다고 한 것은 재판만이 아니었습니다살아 있는 것 자체가 귀찮아졌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 

결국 항소심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나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변호사님사형도 나쁘지 않습니다라고요. (...)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지요당신이 저지른 일이 사형을 당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느냐고요

그러자 그는 그런 것은 잘 모르겠어요그건 재판관이 멋대로 정하면 되지 않을까요?

사형도 나쁘지 않다는 건 인간은 어차피 언젠가 죽으니까,

그날을 누군가가 정해준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겁니다라고 하더군요. (...)

그가 상고를 취하한 이유는 겨우 운명이 정해졌는데 왜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이제 모든 게 귀찮다하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형이 확정된 후에도 편지나 면회를 통해서 나는 계속 그에게 연락을 했지요그가 자기 죄를 똑바로 바라보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에게 사건은 이미 과거의 일이었습니다그는 오직 자신의 운명밖에는 관심이 없었지요.”

 

사람을 죽이면 사형에 처한다

이 판단의 최대 장점은 그 범인은 이제 누구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무슨 작품을 쓰든 최소한 평타는 치는 작가답게 이번 작품도 읽기 괜찮았음.

생각해 볼 만한 철학적/사회적 주제를 넣고그 주제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면서도각각의 시각을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설득력 있게 그려내이게 사실 평타만 치려고 해도 어려운 건데그렇게 다작을 하면서도 매 작품마다 이걸 해낸다는 게 놀라워.

 

 


84. 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

 

문제가 분명해 보일 때 어떤 사람은 원인을 제거하는 쪽을 택한다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어떤 사람은 방 안으로 조용히 숨어들어 문을 걸어 잠근다인생이 반드시 순간순간의 암흑을 돌파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고단한 여정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예의 바른 악수를 위해 손을 잡았다 놓으면 손바닥이 칼날에 쓱 베여 있다.

상처의 모양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누구든 자신의 칼을 생각하게 된다.

 

 

책의 어조가 시종일관 평탄하고 무기력해아버지의 옛 애인의 죽음중학생 딸의 임신이사를 둘러싼 갈등 등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 극적인 사건들이 일어나지만 그저 일상 속의 지나가는 일처럼 담담하게 다뤄.


소설은 사건의 발단에서 시작하여 해결에서 끝나고 그 안의 캐릭터들 또한 그 동안만 존재하지만실제로 그 사건이 현실 속 우리에게 일어날 경우 우리에겐 그 사건 이전에도 삶이 있었고 사건이 끝난 후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잖아. 그것처럼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사건도 결국은 살면서 겪는 수많은 풍파 중 하나일 뿐인 현실 속 사람들의 삶을 한 조각 떼어내서 보여주는 느낌이라 소설의 덤덤한 느낌이 냉정하지만은 않게 다가와.


특히나 배경이 한국이라서 담담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레 이입이 되고책을 끝까지 계속 읽을 만큼 흥미를 잡아끌어나로서는 이해가 잘 안 되고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던 20세기 미국 현대소설 작품들을 읽는 미국인이 이런 기분일까 싶음.

 


 

85-86. 골든 아워 이국종 ★★★★☆


<칼의 노래문체를 많이 참고했다고 하는데 확실히 그런 인상이 느껴졌어무슨 수를 써도 끊임없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외상센터를 그래도 어떻게든 끌어나가 온 10년간의 여정은 보는 것만으로도 지치고 고된 내용이었지만그래도 모든 사람들이 읽어야 할 가치가 있음.

 

가장 먹먹했던 부분은 모든 내용이 끝난 후 외상센터 존속에 도움을 준 사람들의 목록. E북으로 몇십 페이지가 이어지는 동안 이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약력과 개인사와 성품을 써내려 가는 그 마음이 어땠을지쓰면서도 얼마나 많은 수정과 퇴고를 반복했을까 생각하니 도저히 허투루 넘길 수가 없어 전부 다 읽었어.

 


 

87. 클라라 죽이기 코바야시 야스미 ★★☆☆☆


전작인 <앨리스 죽이기>는 고어 팔아먹기라 생각될 만큼 지나치게 잔인했던 반면 클라라 죽이기는 잔인한 묘사가 상당히 빠져서 그 점에서는 보기 편했다하지만 전작의 트릭이 반복되어 식상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스러운 특유의 기묘한 분위기 연출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음.

 

 


88. 나방 사냥꾼 앤 클리브스 ★★☆☆☆


한적한 마을에서 두 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하고피해자들 간의 연결고리는 두 사람 다 나방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 하나뿐이다.

 

주인공 베라는 오랜만에 보는 매력적인 경찰하지만 초중반부가 너무 지루하게 늘어지고등장인물들이 잘 눈에 들어오지도 않으며플롯에 비해 분량이 너무 많아.

 


 

89. 괜찮지 않습니다 최지은 ★★★☆☆


작가분이 기자라 그런지 요점이 눈에 쏙쏙 들어오고 술술 읽히는 책.

최근 몇 년간의 한국 내 젠더이슈에 대해 폭넓으면서도 읽기 쉽게 다루었고인터넷을 매일같이 접하는 2030세대들의 실생활에 직접 와닿는 이슈들이라 더욱 공감이 쉬워.


 

종이에 메시지를 적어 든 행렬 가운데 한 참가자는 “‘남자가’, ‘오빠가’ 지켜주는 사회는 필요없다여자가 안전한 사회가 필요하다고 썼다.

지켜주겠다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여성 선별 범죄가 분명한 사건이 잇따르는데도 묻지마 범죄라는 표현을 

관성적으로 사용하며 피해자로서 여성의 존재를 지우는 경찰과 언론

그리고 이에 기꺼이 동조하며 한국 사회에 팽배한 여성혐오를 방관하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이는 남의 일에 불과할 것이다

모든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여기지 말라는 말은 언제나 자신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혹은 이미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공포와 분노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나는 자연인이다>의 열성 팬인 아버지를 둔 한 친구는 이 프로그램이 아버지들의 뽀로로라고 분석했다. (...) 

농사를 지어 고정 수입을 얻겠다는 목표가 없고주거 공간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없으며

가족이 원치 않더라도 무작정 자연의 품에 안기고자 한다는 면에서 기존의 귀농이나 귀촌과는 다른 이 생활방식이 

어느 세대 남성 상당수의 로망이 된 것이다

인간관계경제활동사회적 규범과 책임에서 무작정 벗어나기를 갈망하는 아버지들의 꿈.


 

그래서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드러내는혹은 누군가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믿는 사람들은 메갈이 된다

그가 메갈리아의 회원이었든 아니든실제로 어떤 말과 행동을 했든 중요하지 않다

과거 꼴페미라는 표현이 그랬듯 메갈=여자 일베라는 낙인은 

메신저를 모독함으로써 메시지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겨누어진다

너 메갈이지?”는 사상 검증과 낙인찍기의 언어다

메갈리아가 등장했을 때 진짜 페미니즘과 메갈은 다르다고 주장했던 이들은 

수십 년 동안 여성운동가로 활동해 온 여성 국회의원을 향해서도 골수 메갈이라고 외친다.


 

하지만 메갈리아가 뜨거웠던 그 시간 동안 내가우리가 배운 것은 

김치녀보전깨’ 같은 말에 다같이 화를 낼 수 있다는 것여성을 모욕하는 이들에게 그 말들을 되돌려 줄 수 있다는 것

여성을 둘러싼 달콤하면서도 기만적인 말들 또한 우리를 조이는 코르셋이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느낀 가장 큰 변화는 여성혐오자들의 말과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던맞설 수 있고 흘려 넘길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여성들의 목소리 안에서였다.

 

 


90-91. 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 요코미조 세이지 ★☆☆☆☆ 


 옛날 사람이라는 걸 감안해도 여성관이 정말 내가 읽은 책 중 탑급으로 최악.


 플롯과 필력은 확실히 흡입력 있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지만 성범죄를 지나치게 가볍게 다루며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존중이 없고또한 가해자 및 공범의 잘못을 제대로 짚지 않고 그냥 두루뭉술하게 '변명할 길이 없다'라고만 언급하고 넘어가성범죄에 묘하게 관능적인 시선을 끼얹으면서 동시에 그 가해자를 제대로 비판하지 않는 작가의 태도는 이 작품뿐 아니라 모든 작품에서 항상 일관적이며다른 작품에서는 아예 강간미화를 넘어 피해자에게 책임전가를 하는 경우도 있었기에 그 점을 더더욱 좋게 볼 수가 없어.

 성범죄를 아예 플롯에 넣지 않거나반대로 그 부조리함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건조하게 사실을 나열하는 다른 나라의 비슷한 시기 추리소설이나 스릴러와 비교했을 때 더욱 그 찝찝함이 부각돼.

 


 

92.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루이스 세풀베다 ★★☆☆☆

 분량도 짧고 문장도 간단해서 단시간에 편하게 읽기 좋은 책.

 작가가 원주민 문화에 애정과 그리움을 담뿍 담은 것이 생생하게 느껴지고동시에 그와 대비되는 백인 핍박자들을 향한 담담한 비판이 묵직하게 다가와.

 

인간들에 의해 길들여진 후에도 여전히 잃어버린 자유를 그리워하는 카웰즉 말의 눈에서 슬픔을 느끼지 못할 이가 어디 있을까

멍에를 짊어진 채 넓은 들판을 꿈꾸며 살아가는 황소 만숨의 시선에서 깊은 시름을 느끼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창공을 마음껏 누비는 콘도르 만케의 눈동자를 보면서 자신의 왜소함을 느끼지 못할 이가 어디 있겠는가?

 


 


93. 그림자로부터의 탈출 야누쉬 자이델 ★★★☆☆


외계인의 교묘한 식민지배와 그 체제에 자력으로 순응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신선하게 그려낸 SF. 

양봉에 대한 비유로 세계관을 자연스럽고 쉽게 설명하는 연출이 훌륭했음.

중간중간 기발한 방법으로 자료를 쌓아가는 레지스탕스의 전략이 아주 흥미로웠고최종장에서 드러나는 반전도 놀라웠어.

 


벌판은 꽃을 피우는 들풀의 무더기로 뒤덮여 있었고 벌들은 꽃 사이를 무겁게 날아다녔으며 

붕붕 소리가 단조로운 잔물결이 되어 벌판 위에 깔렸다.

벌들은 만족하는 것 같아어쩌면 심지어 행복한 것 같네.’ 팀이 생각했다

해가 비치고 따뜻하고 꽃가루와 꿀을 충분히 얻을 수 있고평온하게 일하고 안전하고 양봉가가 돌봐주고 있어

봉기할 생각 따윈 없겠지자신들이 이용당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해.’



 

 

94. 스위밍 레슨 클레어 풀러 ★★★☆☆


 초반부는 정말 지루했는데중반부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3인칭 서술과 1인칭 편지형식 서술을 오가며 진행되는데나이 어린 여자가 어떻게 늙은 남자를 만나 인생이 메말라 가고 업적을 빼앗기는지 인상적으로 그려낸 소설.


 

처음에는 당신이 여기 없어서 날 도와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화가 났어요

당신은 날 이 집으로 데려와 자식까지 낳게 하고는 떠나 버렸죠

내가 성인이 되어 겪은 일들은 모두 당신 때문인데 당신은 나 혼자 헤쳐 나가라고 하네요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혼자 버려진 어린 새 같아요

하지만 해변에서 나 혼자 이겨 냈다는 사실이 떠올랐어요

날 구해 줄 당신도 그 누구도 필요하지 않았죠나 혼자 해낸 거예요.

 



 

95. 사이드 트랙 헨닝 망켈 ★★☆☆☆


어느 날신원을 알 수 없는 한 소녀가 유채밭에서 자기 몸에 불을 질러 자살하고며칠 후 전 법무부장관이 자택에서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그것을 기점으로 연이어 일어나는 연쇄살인모든 열쇠는 하등 상관없어 보이는 두 사건을 연결짓는 그 연결고리에 있다.

 

눈에 띄는 반전은 없고모든 게 예상 가능하게 흘러가는 플롯그냥저냥으로 읽었어.

다만 성범죄에 대해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고 간략하게 언급만 하고 지나가는독자들을 향한 배려가 돋보임.

 

 


96. 전쟁사에서 건진 별미들 윤덕노 ★★★★☆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요리들이 사실은 전쟁에 의해 생겨났거나변화되었거나심지어는 원래는 무기로 사용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면분유가 원래는 전투식량이었고미군은 장진호 전투에서 난데없이 헬기로 초콜릿 사탕을 뿌렸으며환타는 전쟁 중에 조미료로 사용되었고카레라이스는 일본군들이 쌀밥만 먹고 싶어 해서 발명된 요리라는 거!


전쟁과 요리의 상관관계를 흥미롭게 풀어내는데글솜씨가 워낙 좋아 술술 읽히고 이해도 쉬워읽고 나면 잡다한 상황에 써먹을 사소한 지식이 +10 될 수 있음!

 


 

97.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 레이 얼 ★★☆☆☆


작가가 중학교 때의 자기 일기를 각색해서 엮어 냈다는데 확실히 굉장히 솔직한 책

학창 시절에 느끼는 날것의 감정을 놀랄 만큼 적나라하게 보여줘.


모두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겠고 왜 이렇게 남자에 집착하는지 불편해할 수도 있겠지만나는 사람이 가장 흑역사를 많이 쌓을 시기의 바보짓과열등감과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일희일비했던 유치함을 그대로 인정하는 이런 책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여자도 사람이니까. 이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도 분명 많을 테고.


여자친구를 만들고 싶어 미치겠는데 여자들에게 외면 받는 남자는 인셀이 되어 총기테러를 일으키지만남자친구를 사귀고 싶어 미치겠는데 남자들에게 외면 받는 여자는 그걸 유머러스한 베스트셀러로 승화하며 극복해낸다는 차이가 참 흥미로워.

 

 

98.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


정신과 의사이자 나치 강제수용소 생존자인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심리 이론을 확립하고그걸 바탕으로 자신이 강제수용소에서 했던 생활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책.


심리학 이론에 대한 책이지만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하기에 읽기 쉽고이해하기도 비교적 쉬워읽고 나면 인류애가 차오르는 걸 느낄 수 있음.

 


이 수용소에서 저 수용소로 몇 년 동안 끌려다니다 보면 결국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만 살아남게 마련이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잔혹한 폭력과 도둑질은 물론 심지어는 친구까지도 팔아넘겼다

운이 아주 좋아서였든 아니면 기적이었든 살아 돌아온 우리들은 알고 있다

우리 중에서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만약 어떤 사람이 인간을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이 사실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물론입니다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그의 말에 의하면 1944년 성탄절부터 1945년 새해에 이르기까지 

일주일간의 사망률이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추세로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이다

주치의는 이 기간 동안 사망률이 증가한 원인은 보다 가혹해진 노동조건이나 식량사정의 악화

기후의 변화새로운 전염병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성탄절에는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희망적인 뉴스가 들리지 않자 용기를 잃었으며절망감이 그들을 덮쳤다

이것이 그들의 저항력에 위험한 영향을 끼쳤고그 중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기에 이른 것이다.


 

수면부족과 식량부족 그리고 다양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환경이 

수감자를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최종적으로 분석을 해보면 그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근본적으로는 어떤 사람이라도심지어는 그렇게 척박한 환경에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감옥에서 풀려난 사람에게는 더 이상 정신적 치료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로 잘못된 생각이다. (...)

그들은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이 자유를 마치 특허를 받은 것처럼 잔인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이제는 억압을 받는 쪽이 아니라 억압을 하는 쪽이 되었다는 것뿐이다

그들은 이제 폭력과 불의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자행하는 가해자가 된다

그들은 자기들이 겪었던 끔찍한 경험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킨다이런 일은 대수롭지 않은 일에서 자주 발생한다.

어느 날 나는 다른 친구와 함께 들을 가로질러 수용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앞에 농작물이 자라고 있는 밭이 나타났다나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친구가 내 팔을 잡고 나를 밭으로 끌고 들어갔다나는 더듬거리면서 어린 농작물을 짓밟지 말자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러자 그는 짜증을 냈다화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그런 말 하지 말게그만큼 빼앗았으면 충분한 거 아니야내 아내와 아이는 가스실에서 죽었어

그것으로 더 이상 할 말 없는 거 아니야그런데도 자네는 내가 귀리 몇 포기 밟는다고 뭐라고 하다니!"

이런 사람들은 아주 천천히 평범한 진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지도해 주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옳지 못한 짓을 했다 하더라도 자기가 그들에게 옳지 못한 짓을 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주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이런 진리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귀리 수천 포기를 잃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살아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 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다.

우리 세대는 실체를 경험한 세대이다왜냐하면 인간이 정말로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자 

또한 의연하게 가스실로 들어가면서 입으로 주기도문이나 셰마 이스라엘을 외울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99.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


문장을 쉬우면서도 참 재치 있게 잘 다룬다이런 블랙유머를 쉽게 읽히도록 쓰는 건 보통 필력이 아닌데 대단.

요나스 요나손 특유의 그... 담백하다 못해 분노너무조절장애가 있는게 아닐까 싶은 등장인물들과 온갖 미쳐 돌아가는 복잡한 세계정세가 기막히게 맞물리며 시너지를 내는 책.

 


알란은 왜 17세기 사람들은 서로를 죽이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금만 더 진득하게 기다리면 결국 다 죽게 될 텐데 말이다

율리우스는 어느 시대고 사람들은 다 똑같다고 대꾸하고는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해외 주재 고위 외교관들의 남녀 비율을 균형 있게 맞추고 싶었고,

만일 아만다 아인슈타인이 제의를 수락한다면 그 비율은 1대 24가 될 수 있었다.

 

이제는 인생이 지겨워졌다왜냐하면 인생이 그를 지겨워하고 있는 것 같았으므로.

그리고 그는 남이 싫다는데 굳이 자신을 강요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100. 매그레 조르주 심농 ★☆☆☆☆


재미없다.

다만 마지막에 밝혀지는 '범인이 사건을 그렇게 끌어나간 동기'가 색다르고 신선했음.

 


 

101. 그리고 신은 내게 도와 달라고 말했다 한스 라트 ★★☆☆☆


1부 2부의 참신함과 인간미를 전부 잃어버린 3. PC하려고 하다가 그만 멍청함의 영역으로 가 버린 느낌.

통장 잔고 간당간당해서 제 코가 석자인 마당에 친구가 노숙자들을 제 집에 멋대로 데려와서 같이 살자고 하는 걸 그냥 받아 주고비건 단체를 도와 닭장에서 닭을 훔쳐오고그 모든 과정을 긍정적이고 더 나은 길로 한 발짝 나아가는 거라는 식으로 그려내는 게 말이나 되는지...

 


 

102. 언더 그라운드 / S.L.그레이 ★★★☆☆


신종 전염병이 세계 각국에 돌기 시작하자 위기감을 느낀 사람들은 가족을 이끌고 몇 년 전 자신이 미리 구매해 두었던 아포칼립스 대비용 지하 대피소로 들어간다하지만 그곳에서 모인 사람들은 처음부터 삐걱대기 시작하고설상가상으로 대피소의 설비는 점점 망가지기 시작하다 결국 외부와의 연락이 끊겨 버린다이들의 운명은...?

 

마치 내가 지하에 들어가 있는 듯 답답하고 어두운 소설상당히 우울하지만 그래도 잔혹한 묘사는 별로 없고개인적으로는 결말도 그렇게 찝찝하진 않았어.

 


 

103. 여자라는 문제 재키 플레밍 ★★★☆☆


위대한 남자 사상가철학자예술가그리고 남성 사회가 어떻게 몇백 년간 여자를 억압해 왔는지그 시대 최고의 지성이라 알려진 남자들(칸트쇼펜하우어루소 등)이 얼마나 얼토당토없는 말로 여성을 차별했는지그리고 그 수많은 제약들 속에서 서양의 여자들이 어떻게 실날같은 돌파구를 찾아내 기적을 만들었는지 알기 쉽고 명료하게 정리한 책.

* 여자들은 미술 아카데미에 등록할 수 없었지만 꽃과 소품을 그리는 정물화는 '여성스러우니그려도 괜찮다고 허락받았다 -> 집을 떠나 전 세계를 여행하며 방대한 양의 열대 식물과 꽃을 그린 마리안 노스


* 소녀들은 '생물학적으로 비이성적이라는이유로 과학을 공부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으나 곤충을 채집하는 건 허락되었다 -> 남자 과학자들이 줄을 서서 구경을 할 정도로 방대한 곤충 표본을 수집하고 연구한 메리 볼

 



계몽주의 시대의 산만한 천재이자 선천적 노출증 환자였던 장 자크 루소는 

소녀들의 기를 어린 나이에 꺾어놓아야만 남자를 기쁘게 해주기 위한 자신의 본분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네

그는 자신의 자녀들을 일찌감치 고아원으로 보내버렸는데이 역시 어릴 때 기를 꺾어놓기 위해서였지.

 

단편소설계의 아버지라 불리는 모파상은 성취를 위한 어떤 여자의 어떤 시도도 부질없는 짓이라고 했다는군.

그는 여자들에게 부여된 역할은 오로지 두 가지뿐이라고 했지

바로 참하고 신성한 사랑과 모성이라네라듐과 폴로늄을 구분하는 일은 분명 아니야.

 

쇼펜하우어가 간결하게 정리해주었어여자는 몸만 큰 아이로 어린아이와 남자의 중간쯤 되는 존재라고

여기서 남자란 진짜 인간, ‘인류를 뜻하지.

여성의 진화는 발달이 완전히 이루어지기 전에 뚝 멈춰버렸거든.

 

다윈은 위대한 남자들의 목록을 적고 그 옆에 위대한 여자들의 목록을 적으면 

남자들이 거의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고 했다네.

세기의 천재가 도출했다기에는 어딘가 수상쩍은 결론이긴 하지

유효한 증거와 자연 선택으로 그가 좀 더 가지고 있다는 객관성 140그램에 따른다면 말이야

그래도 그가 맞겠지왜냐하면 그는 덩치 큰 원숭이이니까.

 


동양 버전도 나오면 소원이 없겠다.

 

 


104. 시체 읽는 남자 안토니오 가리도 ★★★★☆


중국 실제 인물에 대한 역사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묘하게 서양적인 느낌이 계속 났는데 아니나다를까 작가가 서양인옛 중국에 뜬금없이 연금술사가 왜 나옴ㅠㅠ 밀교는 사탄숭배자 느낌으로 묘사하고... 아니 아마 진짜 있긴 했겠지만, 그걸 묘사하는 방식에서 찐서양인 짬바 숨길수없다ㅋㅋㅋ

 

탄탄한 플롯에 탄탄한 복선재능 있는 아이로 태어났으나 아버지의 좌천형의 범죄연루자연재해를 겪으며 여기저기를 떠도는 다사다난한 주인공의 인생을 따라가는 동시에 그가 타고난 천재성으로 어떻게 검시 기술을 배워 가는지 흥미롭고 자세하게 묘사해줘서 순식간에 후루룩 다 읽을 수 있음시골 마을 – 도시 – 학당 – 황궁으로 점점 판이 커져가는 것도 짜릿.

 


몇 달이 흐르면서 자는 우연히 난 상처와 죽이려고 낸 상처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도끼를 휘둘러 낸 상처와 단도나 부엌칼 혹은 낫이나 칼로 생긴 상처도 구별할 수 있게 되었고살인과 자살도 분간할 수 있었다

자살할 때 먹은 독약의 양은 살인할 때 사용한 양보다 더 적으며

똑같은 독약이라 해도 누가 어떻게 주었느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살인자가 사용하는 방법은 질투나 충동적 분노로 인한 예기치 못한 싸움일 경우에는 조잡하고 엉성하며 본능적이지만

미리 계획했거나 복수일 경우에는 보다 정교하고 치밀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105.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요나스 요나손 ★★★★☆


냉전 시대요하네스버그의 비밀 핵무기 연구소에서는 한창 핵폭탄 개발이 진행 중이고마침내 수석 엔지니어는 핵폭탄을 만드는 공식을 완성하는 데 성공한다어떻게바로 술을 퍼마시면서 자기 청소부인 자그마한 흑인 여자 놈베코에게 계산을 전부 맡겨버리는 방법으로그런데 최종 단계에서 결재 실수가 나는 바람에 핵폭탄을 수량보다 1개 더 만들어 버린다연구소가 닫히는 날놈베코는 이스라엘에게 핵폭탄을 넘겨주기로 거래를 맺지만우편국의 배송오류로 어쩌다 보니 그 여분의 핵폭탄을 떠맡아 본의 아니게 핵무기 소유자가 되게 되는데... 그녀는 핵폭탄을 가지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창문 넘어 달아난 100세 노인>보다 더 재미있었어.

 

 

놈베코는 이런 식으로 계속 살 수는 없는 노릇이란 걸 깨닫고는

어머니에게 이 모든 것을 끊든지 아니면 죽음을 택하든지 둘 중의 하나로 설명했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딸의 말을 이해한 것이다.

그녀의 장례식에는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이 무렵많은 소웨토 주민들이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조금씩 목숨을 끊어 가는 거였고두 번째는 마침내 이 일에 성공한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일이었다.

 


여자들은 즉시 체포되어 30년간의 무료 숙박을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교도소에 보내졌다

그들이 세어 보려 했던 지폐들은 경찰 수사 과정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증발해 버렸다

타보의 시신은 다음 날까지 현장에 방치되어 있었다

흑인 사망자 시신들을 다음번 순찰대에 떠넘기는 놀이는 이곳 경찰들이 즐기는 스포츠 중의 하나였다.


 

누군가를 매수한다?

글쎄어쩌면...? 하지만 첫 번째 시도 때부터 거장의 솜씨를 발휘해야 하리라

왜냐하면 그녀가 매수하려는 자는 매우 남아프리카공화국적인 방식으로 반응할 것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그는 다이아몬드를 챙긴 뒤에 그녀를 고발해 버리기 십상일 것이었다.


 

수상은 자신이 이런 꼴을 하고 있어 미안하다고 말했다

일이 이리될 줄 알았더라면 리셉션 디너파티에 작업복과 장화 차림으로 왔을 거란다

또 덧붙이기를자신은 칵테일은 안 마셔도 된단다어차피 폐하께서 두 사람 몫을 마셔 주시는 것 같으니까.

 

 


106. 어두운 복도 아래로 로이스 던칸 ★★☆☆☆


4명의 소녀가 오래된 저택을 개조해 만든 기숙학교에 입학하는데처음 보았을 때부터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던 그 저택에서 한 명씩 이상행동을 하기 시작하는데...

 

​ 고딕 공포소설 순한맛 버전개인적으로는 살을 더 붙여서 더 긴 스토리로 만들어도 좋았을 텐데 아쉬워분량이 다소 적고 몰입도 높은 플롯에 읽기 쉬운 문장이라 금방 읽을 수 있는 책.

 필요 이상으로 잔인한 묘사를 하지 않고 적당히 끊어낸 게 좋았어.

 

 


107. 아홉 소리나무가 물었다 조선희 ★★★☆☆


참신한 소재와 초중반부의 흡입력에 비해 결말이 다소 아쉬워조연들의 서사를 더 자세하게 풀어냈으면 좋았을 텐데.


 

 

108. 13시간 디온 메이어 ★★★☆☆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한 미국인 소녀가 여러 남자들에게 쫓기고 있다그 시각다른 곳에서는 알코올 중독인 한 여자가 총에 맞아 죽은 남편의 시체 옆에서 깨어났다이 두 사건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형사 캐릭터들이 다들 매력적이고 마음이 가는 인물쫓기는 소녀와 형사의 시점을 번갈아 보여주는 건 좋았지만 시점이 너무 다각화되어서 오히려 몰입도가 떨어지는 게 아쉬움.

또한 작중에서 시점과 장소가 많이 왔다갔다하는지라, "13시간"이라는 제목으로 스피디한 전개를 특징으로 내세우는데도 불구하고 비슷한 시간 내에 진행되는 <소녀의 무덤>과는 달리 하루 안에 일어났다는 점이 그렇게 잘 와닿지 않아서 아쉬워.

 


 

109. 원래 내 것이었던 앨리스 피니 ★★★☆☆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지만 의식이 또렷하게 유지되는 여자그 여자가 일주일 전 겪었던 일그리고 정신이 위태로운 모친 아래에서 방임당하는 여자아이.

 

3개의 시점이 번갈아 나타나는데도 몰입도가 유지되는 탄탄한 플롯다 읽고 나면 제목의 의미가 인상깊게 다가오는 소설후반부의 반전은 예상 가능하지만 거기까지 이르기의 빌드업이 탄탄하기에 반전의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다만 중간에 피해자 시점에서의 성범죄 묘사가 있기에 주의.

 


 

110. 쇼코의 미소 최은영 ★★★★★


첫 작품이라는 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고 감명을 주는 소설순하고 맑은 글이라는 평에 전적으로 공감해.


단편들 중에서도 대표작인 <쇼코의 미소>를 읽으면서 정말 많이 울었는데뭐든 내 생각대로 될 것 같았던 학창 시절부터 사회에 나가 현실의 벽을 맞닥뜨리고초라하게 살고 있는 나를 마음 아파하면서도 그걸 티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너무 와닿았기에 먹먹했어생전 처음 와보는 길을 어찌어찌 걸어 ''의 자취방까지 찾아와서몇 마디 주고받다가 애써 속 빈 칭찬을 하고울 것 같은 얼굴로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할아버지의 묘사가 시리도록 가슴에 남아.


 

너 말이다이런 말은 처음 해보는데.”

……

나는 네가 이렇게 큰사람이 될 줄은 몰랐다서울에 가서 공부도 하구 영화감독도 되구힘든 대루 손 벌리지 않고 네 힘으로 살구

까직것 다 무시하면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지난 그거멋지다고 본다.”

할아버지는 담배를 커피 깡통에 비벼 끄더니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나에 대한 안쓰러움을 숨기는 얼굴이었다

감정을 숨기는 연습이 잘 안 된 사람이어서 그런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비쳤다

할아버지는 내가 수렁에 빠진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도 나의 삶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테니까 그런 식으로라도 나를 위로해주고 싶었겠지.

 


저렇게 제멋대로고 충동적이고 마음 여린 이상한 사람이상한 나의 할아버지저 엉망진창인 사람

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할아버지가 씌워준 우산을 쓰고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모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구부정하게 서 있었다함부로 자른 짧은 머리목이 보이지 않을 만큼 불어난 몸거칠어진 목소리

순애 언니나는 언니가 싫고언니의 집이 싫고언니의 모든 것들이 싫어.

이모는 그 모습으로 엄마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목소리가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

엄마는 이모의 목소리가 잘 안 들린다고다시 한번 말해달라고 소리쳤다.

항상 이런 건 아니라고항상 이렇게 사는 건 아니야.”


 


111. 혼이 머무는 곳 ★★☆☆☆


죽은 후 원하는 물건에 자신의 혼을 담을 수 있다면당신은 어디에 머물겠습니까?

 

1시간만에 후루룩 읽을 수 있는 짧은 단편집.

단편이라 해도 조금만 살을 붙이면 훨씬 더 재미있고 탄탄해질 것 같은데 너무 간추린 것 같아서 아쉬움. 2% 부족한 느낌.

그리고 중간에 명찰 이야기는 상당히 불편했어.


 

 

112. 시스터 로저먼드 럽튼 ★★★☆☆


우애가 돈독하던 자매가 있다그 여동생이 어느 날 실종되고며칠 후 공중화장실에서 손목을 그어 죽음을 맞은 사체로 발견된다경찰은 동생의 죽음이 자살이라 판단하지만 언니는 그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동생의 주변인을 만나보며 자체적인 수사를 시작하는데...

 

오랜만에 읽은 1인칭 소설동생을 잃은 언니의 묘사가 절절하게 다가왔어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점의 전환이 상당히 자연스럽고흐름도 매끄러워서 술술 읽혀.



 

113.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꽤나 일본스러운 소설.

-여름-가을-겨울의 4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남자 선배와 여자 후배의 시점이 번갈아 진행돼.

현실과 환상을 절묘하게 오가는 떠들썩하고 흥에 달뜬 분위기가 매력적이고남자 시점에서 보는 자기 자신의 우당탕탕 헛발질들과 여자 시점에서 보는 남자의 이미지가 상당히 차이가 큰 것도 재미있다.

 

다만 여주인공이 성추행을 당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고심지어 그 성추행범(남주인공은 아님)이 사업에 실패한 불쌍한 남자라 동정하여 그의 빚을 갚기 위해 나서고 나중에는 감기에 걸린 그를 위해 병문안을 나서기까지 하는 것은 굉장히 불쾌해. 애초에 그 성추행은 스토리에도 불필요하고.

 

 


114.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오랜만에 다시 읽으니 정말 재미있다.

책 속 모든 등장인물들이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미쳐 있고주인공 앨리스는 너무너무 사랑스러워.

 


 

115. 거울 나라의 앨리스 ★★★★☆


모든 것이 미쳐돌아가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는 달리,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는 최소한 '모든 게 반대'라는 규칙과 '체스판의 규칙'이 있어서 우당탕탕하는 면모는 조금 덜하지만 여전히 기발하고 독특하긴 마찬가지.

이상한 나라보다 거울 나라의 인물들이 앨리스를 조금 더 잘 대해 주기도 하고.

 

 


116. 비포 아이 고 콜린 오클리 ★★★☆☆


2년 전 암에 걸렸다 완치한 데이지는 항상 하는 정기검진을 받고는 암이 재발했다는 청천벽력할 소식을 듣는다심지어 완치될 가망이 없는 상태로죽음을 준비하며 남겨질 사람들을 걱정하던 데이지는 자신이 떠난 후 슬퍼할 남편을 위해 아내를 찾아 주기로 결심한다.

 

쾌활하고 사랑스러운 톤을 잃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죽음과 암투병을 가볍게 다루지 않고 충분한 깊이를 준 소설편한 마음으로 술술 읽을 수 있어.


 

 

117. 젤다 젤다 피츠제럴드 ★★★★☆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명성에 가려졌던 그 아내 젤다 피츠제럴드의 글을 모은 책.

너무글을 잘 쓴다한 문장 한 문장 필사하고 싶을 정도.

소설과 산문의 내용은 내가 즐겨 읽는 내용과는 거리가 멀지만 오직 그 필력 때문에 너무너무 마음에 드는 글.

 


 

118. 하트리스 마리사 마이어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프리퀄 하트의 여왕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어디든지 나타나고 사라지는 체셔 고양이는 어릴 적 하트여왕의 몇 안 되는 친구였으며메리 앤은 사실 하트여왕의 하녀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고말끝마다 이해 못할 교훈을 붙이며 돼지 아기를 돌보던 공작 부인은 하트여왕의 소꿉친구였다면원래는 진짜 바다거북이었던 가짜 바다거북이 송아지 머리와 발굽을 갖게 된 것도 하트여왕과 관련이 있으며모자장수 또한 기묘한 인연으로 하트 여왕과 얽혀 있다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설정을 교묘하고 흥미롭게 짜넣은 부분을 찾아내는 것도 묘미.

 

처음에는 앨리스답지 않게 등장인물들이 너무 평범하고 정상적이라 실망스러웠는데마지막 4분의 즈음부터 스토리가 정신없이 휘몰아치며 우리가 아는 앨리스와 닮아 가기 시작해결말에 드러나는 모자장수의 반전도 신선한 충격... 왜 초중반부를 그렇게나 쾌활하고 발랄한 분위기로 이끌어가는 모험을 선택했는지 이해되는보기 드물게 인상 깊은 결말.

 

 


119. 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 ★★★☆☆


제목 때문에 사회심리학 저서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에세이.

각주를 전면 활용한 연출은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나는 좋았어솔직담백한 어투특히 어머니와의 관계를 술회하는 부분이 마음에 남아.


 

 

120-121. 악몽을 파는 가게 1,2 스티븐 킹 ★☆☆☆☆


온갖 장르가 혼재되어 있는 단편선읽는 데 몇 달이나 걸렸어너무너무 내 취향이 아니었던 책.

 


 

122. 스틸 앨리스 리사 제노바 ★★★☆☆


알츠하이머즉 치매 환자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소설거의 언제나 치매 환자의 가족 및 주변인 이야기만 보아 오다가 새로운 관점이라 신선했어이 책을 읽으며 치매를 일으키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으며그걸 검사받을 수도 있고치매의 많은 종류가 유전적인 요인이 크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음.


앨리스의 환경은 사실 더없이 좋아화목한 가정성공적으로 자립한 세 아이들투병 생활을 안정적으로 지탱할 만한 재력그리고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치료와 서포트에 동참하는 남편. 내 가족이나 내가 치매에 걸릴 경우 결코 이런 수준의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이 사랑스럽고 가슴 아픈 이야기를 마냥 좋은 마음으로 보는 게 힘들더라.

 


 

123.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 장강명 ★★★☆☆


총 10편의 다양한 SF 모음집.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적 사상과 어려운 첨단기술 용어가 난무하지는 않아. 대신, 그런 기술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사람 간의 관계의 가장 중요한 근간은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는지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를 그려내차가운 미래시대의 배경에서 조용히 숨어 빛나는 인간미를 조명하는 느낌이라 좋았어.


 

'저 여자는 내 인생이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어머니를 향해 수십 년째 부리는 앙탈?'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4천만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상태에서도마리는 유진에게 휘말려들었다

마리에게 어머니의 영향력은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어떤 특수한 종류의 인력과 척력이 두 사람 사이에만 작용하는 것 같았다

그것도 공평하지 않게핏줄을 따라 내려오는 힘이 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반발력보다 훨씬 더 크게.

 

인간은 싸고무게도 70킬로그램밖에 나가지 않는 비선형(non-linear) 다목적 컴퓨터 시스템이다

그것도 비숙련 노동자가 대량생산할 수 있는.”

 

아픈 기억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다가 나는 과거의 기억들이 이 문제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이식된 기억들에서는 아무런 고통도 느낄 수 없었다후회도뉘우침도미련도 없었다

그것들은 깔끔하게 정리되고 분류된완결된 정보들이었다

그 기억들이 너무 오래됐기 때문에 거기에서 내가 아무런 회한을 맛볼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 기억들이 디지털 신호로 삽입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124. 악스 이사카 코타로 ★★★☆☆


낮에는 문구회사 영업직으로낮에는 몇십년차 베테랑 킬러로 일하는 주인공눈도 깜짝하지 않고 무미건조하게 사람을 죽이지만동시에 한밤중에 아내를 깨워서 야단을 맞고 싶지 않아 최대한 조용히 야식을 먹는 법을 터득하고 그걸 팁으로 주변에 전파하기까지 하는 이중적인(혹은 입체적인인간.

젊은 시절과는 달리 점점 자기가 죽이는 타깃에 대한 죄책감도 커지고아이를 키우는 가장으로서 이래저래 생각도 많고그래서 암살업에서 손을 떼고 싶은데 업계는 좀처럼 그를 놓아주지 않는데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한 특이한 일거리를 맡게 되는데...


무난하게 훌훌 읽을 수 있는 흡입력 좋은 스토리밤에 사람을 죽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적인 가정문제와 회사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인간적인 킬러들을 볼 수 있어.

 


 

125.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 듀나김보영배영훈장강명 ★★★☆☆


4명의 SF 작가가 태양계의 행성을 하나씩 맡아서 그걸 배경으로 써낸 단편집.



1) 당신은 뜨거운 별에 장강명

금성탐사에 파견되어 수년간 금성에서 연구를 계속하던 천재과학자 어머니는어느 날 사이가 소원하던 딸에게 갑자기 SOS 신호를 보낸다비밀스러운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딸은 어머니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서서히 밝혀내는데...

 

2) 외합절 휴가 배명훈

휴가 기간 동안 홀로 근무를 서며 화성식민지 청사를 지키던 여성 공무원은 갑자기 촉발된 비상상황에 자신을 총책임자로 임명한 후 벙커에 틀어박히고그곳에서 바깥 상황을 알아보려 고군분투한다.

 

3) 얼마나 닮았는가 김보영

타이탄의 주거민들에게 비상식량 및 물품을 지원하기 위해 떠난 우주선 속에는 다섯 명의 우주비행사들과 하나의 A인공지능 컴퓨터가 있다하지만 AI는 느닷없이 자신을 인간의 신체 속에 집어넣어 달라고 요청하며 그 조건이 수락될 때까지 업무를 수행하기를 거부하고결국 AI는 인공 인체 속에서 눈을 뜨지만 기억이 일부분 날아가 버린다갑작스레 인간의 신체로 옮겨 달라고 요구했던 이유도 함께.

 

4) 두 번째 유모 듀나

거대 인공지능의 지배하에 트리톤에 살고 있던 아이들에게 어느 날 이상한 여자가 찾아온다.

 

첫 번째 이야기(장강명)는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에 나오는 내용이고,

두 번째 이야기(배명훈)는 정치적 제도와 쿠데타에 대한 내용이라 솔직히 무슨 이야기인지 파악하기가 힘들었어.

세 번째 이야기(김보영)가 제일 신선하고 마음에 들어! 인공지능이 왜 인간의 몸에 들어가는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는지마지막에 밝혀지는 그 이유가 지극히 논리적이고 기계다운 선택이라 인상적이었어.

네 번째 이야기(듀나)는 인공지능인 어머니-사람의 관념과 결합된 인공지능인 아버지그리고 '아이들'의 개념에 대한 설명이 다소 모호하여 이해하기가 힘들었음.

 

두 번째와 네 번째 이야기를 읽으며 왜 내가 SF소설을 기피했는지 다시금 깨달았음... 첨단과학과 그 기술 뭔소린지 1도 모르겠스ㅠㅠ


 

 

126. 한 시간만 그 방에 요나스 칼손 ★★★☆☆


단조로운 업무만 반복하며자신의 생각에 가장 효율적이라 생각되는 50분 일하고 10분 쉬는 스케줄에 맞춰 일하고자신 이외의 다른 모두가 요령 없고 의욕 없는 멍청이들이라 생각하는 냉소적인 주인공그는 어느 날 회사 화장실 벽에 나 있는 정체 모를 문을 발견한다그 문 안에는 딱 한 사람이 일할 만한 깔끔하게 잘 정돈된 작은 사무실이 있는데이상하게 그 방 안에 들어가 있을 때는 생각이 차분하게 정리되고 마음이 침착해진다그 날부터 그는 매일 그 방에 들르기 시작하는데어째서인지 다른 사람들은 그 방에 들르는 것 같지가 않다그러다 옆 책상의 동료가 그에게 왜 매번 화장실 벽을 쳐다보고 있냐는 질문을 던지는데...?

 

분량도 짧고 문체도 흡입력 넘쳐서 순식간에 술술 잘 읽히는 책.

중간에 세상 모두가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주인공의 생각이 심화될 때 심한 공감성 수치가 올 수도 있는데그 고비만 넘기면 갑자기 엄청나게 흥미로운 구간이 나타나니 잘 버텨보자.


 

 

127. 나를 지워줄게 클레어 맥킨토시 ★★☆☆☆


절벽에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 캐럴라인의 남편 탐그리고 일곱 달 뒤캐럴라인 역시 남편이 택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잔인하게 자신의 삶을 끝낸다그들의 딸 애나는 부모를 잃은 이후 줄곧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애쓰지만캐럴라인이 죽은 지 정확히 일 년이 되던 날 한 장의 카드를 받는다.

자살일까다시 생각해봐.’

한국에 출판된 클레어 맥킨토시 소설은 전부 읽어봤는데 대체적으로 무난한 흐름에 예상 가능한 반전으로 전체적으로 평작이란 느낌하지만 항상 마지막에 뜬금없는 반전을 넣어 전체적인 개연성을 망쳐버리는 과유불급이 반복돼.

 

 


128-130. 티어링 시리즈 1-3권 에리카 조핸슨 ★★☆☆☆


전형적인 용두사미. 1,2권은 그래도 재밌었기에 별점 2.

1권과 2권까지는 속도감 있게 봤는데마지막 3권부터는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파악하기 힘들 만큼 묘사가 모호해지고특히 가장 중요한 사파이어의 마법이 대체 어떤 원리로무엇을 대가로 작동하는지 끝까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아.

 

작가가 그려내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역량이 부족해 그걸 분명하게 만들어내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마쳤다는 느낌주인공을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그려내려다 오히려 뜬구름 잡는 성격으로 만들어 버린 것 또한 실책이고정말로 주인공을 매력적으로 만들고 싶었다면 오히려 결점과 실수와 이기심을 넣어서 입체적인 인물로 만들어 냈어야 한다고 생각해훌륭한 캐릭터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캐릭터가 아니라 진짜로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살아 있는 캐릭터니까.

 

전시 성범죄와 뒷세계에서의 아동 성착취 등 여성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포인트를 넣었으나 그걸 제대로 다뤄냈느냐면 글쎄... 오히려 '현실적인 묘사'라는 이름 아래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그려냈고작가 자신이 넣어 놓은 문제를 제대로 비판하지도 해결하지도 못했다고 생각했으며심지어 마무리조차 터무니없이 무책임해여성문제를 다루려는 시도는 물론 훌륭하고 이런 시도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어설픈 건 어설픈 거야.

 

 


131. 다크 플레이스 길리언 플린 ★★★☆☆


주인공 이비는 어린 시절 하룻밤 사이에 오빠에게 가족이 전부 살해당하는 동안 혼자 살아남은 생존자이고지금껏 그녀를 동정한 사람들의 기부금으로 살아왔다집안일을 할 줄도 모르고 세금을 내는 것도 몰라 기본적인 생활조차 제대로 꾸릴 줄 모르고이제 세월이 너무 흘러 더 이상 기부금을 보내는 사람들도 없어 30대 중반에 생전 처음으로 자기 손으로 돈을 벌어 보아야 하는 신세가 된다그 때 피비린내 나는 살인사건에 관심이 많은 일명 '살인사건 오타쿠단체가 그녀에게 연락을 해서 자신들의 행사에 얼굴을 비춰 줄 수 있느냐고 하고그녀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그녀의 오빠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마주하는데...

 


<나를 찾아줘>의 작가가 쓴 책.

내가 길리언 플린에 관해 정말 좋아하는 점은 다른 사람들이 경멸하고 싫어할 만한 여성 주인공을 전면으로 내세우고 힘있게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점이야자기 캐릭터가 독자들의 악평과 비호감을 받는 걸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함과 과감함이 존경스럽움.

여러 가지 일이 얼키고 설켜 하나의 커다란 파국을 만드는 과정을 잘 보여준 수작사람의 허례허식과 나약함에 대한 심리묘사가 정말 냉정하고 통렬해서 나까지 뜨끔하니 상처받는 기분.

 


 

132. 매혹당한 사람들 토머스 컬리넌 ★★★★★


미국 남북전쟁 시기남부에 있는 한 여학교에 부상당한 북부 군인이 찾아온다그 군인이 자신의 매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두 명의 교사와 다섯 명의 학생그리고 한 명의 가정부는 파국의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그야말로 고전이라는 느낌사람의 심리와 관계 변화를 정말 섬세하고 날카롭게 다뤘어.

시점이 5~6개를 오가는데도 혼란스럽지 않고 작품의 스토리가 뚜렷하게 진행되는 게 대단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필력.

마지막의 결말도 생각할 여지를 깊게 남겨.


 

 

133. 조용한 무더위 와카타케 나나미 ★★★★☆


주인공은 40대 중년 여성 탐정으로젊은 시절 탐정사무소에서 직원으로 일하다가 그 사무소가 망한 후에는 한 동네 서점에 취직하여 서점 일과 탐정 업무를 병행하는 중그렇다 해도 딱히 열정적인 건 아니라서 직접 일거리를 찾아다니지는 않고어쩌다 가끔 들어오는 의뢰를 맡아 수행할 뿐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아주 간단해 보이는 의뢰를 하면서도 온갖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엮어 들어오는데...

 

정말 재미있어오랜만에 매력적인 탐정 단편집.

옛 상사의 전화를 받았는데 그게 TV뉴스에 나오는 사건과 실시간 연계 중이라든가유명 작가를 사칭한 범인을 찾는 탐문 과정에서 작가가 철석같이 죽었다 생각한 사람들이 속속들이 살아 있는 걸로 판명난다든가크리스마스 선물을 전해주러 가는 길에 칼부림 사건에 엮인다든가... 사건의 곁가지가 많은데도 그 흐름이 어지럽지 않고 이해하기 쉽게 연결되기에 빠르고 편하게 읽을 수 있어추천!

 

 

134. 스틸 미 조조 모예스 ★★★☆☆


미 비포 유 3부작의 마지막.

주인공 로는 2편 마지막에서 잡았던 일자리를 시작하는데상류층 귀부인의 비서가 되는 건 꽤 힘들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밝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고용주와 유대를 맺어 가지만어째 고용주의 행동거지가 점점 이상해지고거기에 더해 이미 남자친구가 있는 그녀에게 다른 남자도 호감을 보이는데..

 

3부작을 잘 끝맺는 마무리였어마지막에 로가 윌을 이 세상에 남긴 방식도 감동적.

 

 


135. 기억을 잃어버린 앨리스를 부탁해 리안 모리아티 ★★☆☆☆


38살의 앨리스는 그룹 클래스에서 운동을 하다가 넘어져서 머리를 부딪힌 후 10년간의 기억을 잃어버리고남편 닉과 막 결혼해 첫째를 임신한 상태였던 28살의 앨리스밖에 남지 않는다사고 후 깨어난 앨리스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남편과 현재 이혼 소송 중이며절친했던 언니와는 소원해졌으며, 28살 때는 정반대의 사람으로 변해 있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고 대체 지나는 누구야?

 

리안 모리아티의 다른 책들에서는 일상이 흘러가다 사건이 생겨난다면이번 책은 사건부터 생겨나고 그 다음에 일상을 되찾는 내용.

작가가 묘사하는 28살 앨리스의 생각의 흐름이나 행동거지가 28살이 아니라 마치 18살처럼 어설프고 유치해서 당황했어..머리를 다친 후유증이라고 생각하면 이해되긴 함.

 

 


136. 폴리팩스 부인과 여덟 개의 여권 ★★★☆☆


긍정적이고 다부진 성품에 행동력 넘치는 할머니 스파이인 폴리팩스 부인 시리즈 3.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시리즈답게 이번 권도 재미있는데갓 20살이 된 대학생 데비와 함께 세대차이를 뛰어넘어 펼치는 모험이 흡입력 넘쳐.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목숨을 살리고자 하는 선한 의지가 나비효과를 불러와 엄청난 일을 해내는 플롯은 꾸준히 되풀이되지만 항상 카타르시스를 줌.

 

 


137. 버드박스 조시 맬러먼 ★★☆☆☆


어느 날보는 것만으로 사람을 광기로 몰아넣어 자살에 이르게 만드는 괴물들이 나타난다살기 위해서는 시각을 포기해야 한다.

 

사실 소설보다 넷플릭스 영화로 먼저 봤는데영화가 아포칼립스물 클리셰에 맞게 많이 각색을 했더라나는 소설 원작의 덜 정형화된 인물들이 더 마음에 듬!

하지만 플롯이 밍숭맹숭한 것은 영화도 소설도 똑같아.

 


 

138. 나는 언제나 옳다 길리언 플린 ★★★★☆


사기 점쟁이로 살아가는 주인공은 어느 날 자기 저택을 퇴마해달라는 중산층 여자 손님을 만난다.

 

완성도 높은 꽉 짜인 단편처음부터 끝까지 순식간에 읽을 수 있고마지막에 독자에게 추리할 여지를 남겨주는 것도 실력부족으로 어쩔 수 없이 남기는 애매함이 아니라 제대로 된 상상의 여지라서 좋아.

 


 

139.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


마을과 동떨어진 습지에 사는 가난한 백인 가족의 막내로 태어난 카야는 자연을 벗 삼으며 살아가고가족이 하나씩 떠날수록 점점 스스로를 고립시킨다채집한 먹을거리를 마을에 팔아 돈을 벌며 스스로를 건사해 나가던 카야는 마을 사람들에게 꺼림칙한 인물인 늪지대 소녀(mash girl)이라고 불리게 되지만그 독특한 매력에 끌려 다가온 마을 청년 둘이 있다카야에게 숨겨진 학자로서의 열정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테이트와거부할 수 없는 남성적 매력을 지닌 마을의 인기 스타 체이스하지만 체이스는 어느 날 시체로 발견되는데…….

 

너무너무 좋다! 2019년 읽은 책 중 베스트3에 들어갈 책작가의 첫 소설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훌륭함다 읽고 난 후엔 이야기가 가슴 속에서 먹먹하게 반짝이는 것 같아.

특히 작가가 생태학자로서의 경험을 살려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습지의 생태 묘사가 정말 탁월해생명이 태동하고 박동하는 자연의 경이로움이 여실히 느껴져.

 


 

140. 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


잘 쓴 단편집임은 분명한데너무 우울하고 긍정적인 면모도 없고 개선 없는 현상유지의 삶뿐이라 읽고 난 후 나까지 축축 처져내 취향은 진짜 아님.

 

 


141. 바람의 열두 방향 어슐러 K. 르 귄 ★★★☆☆


SF 단편 모음집일단 제목이 너무 아름답고필력 또한 필사하고 싶을 만큼 유려해특히 손에 잡힐 듯한 배경 묘사가 압권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에 나온 숫자 관련 단편의 모티브가 된 듯한 작품도 있었어.

각 단편마다 상상력 넘치고 독특한 설정이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기승전결이 뭔가 밍숭맹숭한 느낌이었음.

 

 


142. 스켈리튼 키 미치오 슈스케 ★★★☆☆


고아원에서 자란 사이코패스가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게 되고자기 어머니를 죽인 남자를 추적하며 사건을 일으키는 이야기.

 

서술트릭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소설은 오랜만갈수록 미친놈들이 늘어나서 혼란스러워지는데 그게 결말에서 싹 깔끔하게 정리되는 게 묘미.

 

 

143. 설레는 일그런 거 없습니다 ★★★★☆


딱히 특별한 사건은 없고그저 직장인 두 명의 일상을 담담하고 섬세하게 묘사해 나가는 것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입도가 높다는 점에서 작가의 필력이 엿보여문장이 좋다.

 

 


144. 아파트먼트 / S.L.그레이 ★☆☆☆☆


강도의 침입을 경험한 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한 부부는 우울감과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파리에 있는 한 커플과 일주일간 서로의 집을 바꾸어 여행을 하기로 한다하지만 막상 파리에 도착하자 집은 사진에 있는 것과는 딴판으로사람이 산 흔적도 없는 폐가에 가깝다설상가상으로 옷장 속에서는 머리카락이 가득 담긴 양동이가 발견되는데...

 

작중에서 제시된 많은 수의 미스터리가 끝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찜찜하게 끝나는 책.

뒷맛이 찝찝한 일본 괴담 느낌으로추천하지 않음.

 

 


145. 동급생 히가시노 게이고 ★★★☆☆

어느 날 한 여학생이 교통사고로 죽고그 학생이 사망 당시 임신 중이었다는 게 밝혀진다그 여학생과 모종의 관계였던 남학생은 수업시간에 자기가 그 아기의 친부라고 밝히고어딘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 여학생의 죽음을 파고들기 시작하는데그 과정에서 더이상 사건을 키우고 싶지 않은 학교와 마찰을 빚는다그러다 두 번째 사건이 터지는데...

 

후기에 보니까 작가가 학생 때 친구들과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고 해.

'어른 사회에 나가지 못하는 겁쟁이들이 아이를 상대로 하는 교사가 되는 거야저런 녀석들에게 교육을 받고 싶은 마음은 없어.'

생각지도 못한 관점이라 동의하지는 않아도 굉장히 새로웠음이런 시각으로 볼 수도 있구나... 작품 내내 학교와 교사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에 대해 엄청나게 날이 서 있기에 저렇게까지싶어서 의아했는데자전적 경험을 살려서 쓴 거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가.


그렇다 해도 나이든 여자교사를 조롱할 목적으로 음담패설을 주고받는 남학생들이 어른들은 가식적이라느니 하는 비판을 해봤자 전혀 와닿지 않지만.

 


 

146. 백래시 수전 팔루디 ★★★★☆


페미니즘의 기념비적인 고전.


1980년대 레이건 시대의 신보수주의 물결 아래 정치언론비즈니스 등 사회 각계각층의 스피커들이 어떻게 서로 결탁하여 활발해지던 미국의 페미니즘을 억압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반페미니즘을 선전했는지 그들의 글/광고/인터뷰 vs 실제적인 통계/실제 여성들의 인터뷰를 대조하는 방식으로 철저하게 파고든다이곳저곳에서 종종 보이는 그 백래시라는 단어가 대체 뭔지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음다만 백래시를 반격이라고 번역한 건 정말 아쉽다백래시는 부정적이고 사회고발적인 뉘앙스지만 반격은 오히려 긍정적인 뉘앙스에 가깝기에 그냥 원어 그대로 백래시라고 쓰는 게 더 나았을 텐데.

 

1991년에 출간되어서 지금의 독자에게는 너무 옛날 일로 느껴질 수 있고철저하게 미국의 현상을 분석한 거라 몇몇 사례가 다른 나라 독자에게는 비교적 생소하게 와 닿을 수 있다는 게 아쉽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모든 나라에 적용될 수 있는 날카로운 통찰을 담고 있다특히 몇몇 사례들은 2010년대에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놀랍도록 똑같아서 소름 돋을 지경


수많은 통계와 인용문을 적확하고 적절하게 사용하면서도 비교적 내용을 이해하기 쉽고여성학이나 사회학의 기본 지식이 있다면 생각보다 쉽게 읽힐 책이니 너무 부담갖지 말았으면!

 

 

여성의 권리를 상대로 한 반격은 그것이 정치적인 일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

전혀 투쟁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 성공을 거둔다

그것이 사적인 색채를 띨 때한 여성의 내부에 똬리를 틀고 안에서 그녀의 관점을 바꿔 버릴 때

그래서 그녀가 억압은 모두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상상하게 될 때

리고 결국 그녀 역시 자발적으로 이 반격에 동참하게 될 때 반격은 가장 위력을 갖는다.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의 뜻은 (…)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끝까지 투쟁할 역량을 품고 있는” 여성을 묘사하기 위해 

처음으로 등장한 이후 사실상 바뀌지 않았다한 세기 전 입센의 인형의 집에서 노라가 말했듯 

페미니즘은 다른 모든 것 이전에 나는 인간이라는 기본적인 진술이다.

 


페미니즘의 의제는 기초적이다페미니즘은 여성들에게 

공적인 정의와 사적인 행복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정체성을 그 문화와 남성들이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스스로가 규정할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비정상회담에서 여성 게스트 나와서 육아 vs 커리어로 토론할 때 

타일러가 왜 여자만 일vs가정의 양자택일을 요구받냐고 하던 거 생각났어)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남성다움은 절대적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이는 매일 유지하고 다시 획득해야 하는데그것을 규정하는 데 본질적인 요소 중 하나는 

양성이 진행하는 모든 경기에서 여성을 이기는 것이다.” 

남성성의 꽃잎을 가장 처절하게 짓뭉갠 것은 페미니즘의 가는 빗방울인 것 같다

그리고 여기서는 단 몇 방울도 폭우로 인식된다.

 


이 시대의 경제적 희생자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미래를 훔쳐 달아났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그 절도범이 여성이라고 의심한다.


 

1980년대 말 패션 광고에서는 구타당하고 묶여 있거나 시체 운반용 가방에 들어간 여성이 주 메뉴였다

주요 백화점 창문에 서 있는 여성 마네킹들은 난데없이 가죽옷을 입은 남성에게 구타당한 피정복자로

쓰레기통에 쑤셔 박힌 시체로 연출되고 있었다. 

(= 여자를 청테이프로 결박하고 얼굴도 보이지 않게 차트렁크에 집어넣고 

그 옆에 남자가 야구방망이 들고 있던 맥심 화보 사건 생각났음)

 


그건 내부의 문제였어요.” 그녀는 청중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오랫동안 생각했죠. ‘어째서 이 모든 나쁜 일들이 나에게 일어나는 걸까?’ 

그건 내가 그런 일들을 선택했기 때문이었어요우리가 알코올중독자를 택한 거죠

우리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 남자들을 택한 게 바로 우리란 말이에요.”

(= ‘여성은 스스로 자기 일을 선택할 능력과 권리가 있다그러니까 폭력남편을 선택한 건 여자의 자유의지였고 

지 팔자 지가 꼰 거다라며 남자의 가정폭력을 피해자인 여자 탓으로 돌리는 전형적인 백래시)

 


 

147. 7일 위화 ★★★★☆


어느 날 식당 화재 사고에 휘말려 죽은 주인공은 무덤이 없어 죽은 자의 세계를 떠돌게 되고그러는 과정에서 자기 인생을 되짚어 보게 된다.

 

읽으면서 엉엉 울었던 책.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같은 책인가 했는데 훨씬 현실적이고 먹먹해.

 


 

148. 구원의 길 존 하트 ★★★☆☆


유력한 기업가의 딸 채닝이 괴한에게 납치되고채닝을 찾던 형사 엘리자베스 블랙은 범인들을 죽이고 채닝을 구하여 영웅이 된다그러나 이미 부상을 입은 범인들에게 총알 열여덟 발을 발사한 과잉 진압과 백인 경찰이 흑인 범인을 쏘았다는 정치적 문제로 엘리자베스는 큰 난관에 처한다.

한편, 13년 전 엄마가 잔인하게 살해되고 교회에 버려진 후 엘리자베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소년 기드온은 범인 애드리안 월이 모범수로 가석방된다는 소식을 접한 후 애드리안을 쏘아 죽이기 위해 총을 들고 그가 있는 술집으로 간다그리고 13년 전과 똑같은 방식의 살인이 다시 발생하고모든 이들이 애드리안을 의심하기 시작하는데……

 


묵직하게 정제된 문장이 작품의 분위기를 일관적으로 힘 있게 끌어가고통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마음이 아프지만 그 고통을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음. 하지만 마지막 밝혀지는 범인의 정체와 이유는 아쉬웠어.

 

 

149. 312호에서는 303호 여자가 보인다 피터 스완슨 ★★★☆☆


전 남자친구의 데이트폭력으로 불안 장애와 신경증에 시달리는 케이트는 어느 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육촌 친척 코빈의 제안으로 몇 달간 서로 집을 바꿔 생활하게 된다하지만 보스턴에 온 첫날옆집 303호의 문을 두드리며 오드리를 찾는 여자를 보는데그 오드리는 죽은 채 발견된다그리고 케이트는 코빈 집의 서랍 속에서 303호 아파트의 열쇠를 발견하는데…….

 


보다 보면 여자 좀 그만죽여 10새야... 하는 소리가 나오게 됨각종 여성살해범 중에서도 제일 저열하고 재수 없는 유형인 남자는 남자를 사랑한다’ 유형인데솔직히 말해 이제 이런 범인은 좀 그만 보고 싶음.

 

 

150. 뒤에 올 여성들에게 마이라 스트로버 ★★★★☆


남성의 세계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남성 학자가 지배해온 학문인 경제학에서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로써 50년간 부단히 싸워오며 놀라운 성과를 이뤄낸 마리아 스트로버의 자서전어떤 직업이 여초 직종이 되는 이유는 그게 여자에게 알맞아서가 아니라 남자들이 그 일자리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연구를 해낸 바로 그 사람이다 (예를 들어초기에 비서라는 직업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비서직의 사회적 지위가 낮아지고 임금도 낮아지자 비서가 되려는 남자들이 적어져 그 빈자리가 여성들로 채워짐).

 

버클리대학교 경제학과에서 여성과 노동이라는 과목을 처음 개설했고, 50여 년의 역사 동안 한 번도 여성을 교수로 임용한 적이 없었던 스탠퍼드대학교 경영대학원(GSB)에서 최초의 여성 교수로 임명되었으며그 과정에서 한때 밀의 말을 인용하며 네 커리어를 쌓아라고 그녀를 격려했던 남편에게서 나는 남자의 게임을 하려는 여자를 부인으로 원했던 게 아니다라는 말을 들으며 그와 이혼하고다양한 분야의 학문에 종사하는 여성 학자들을 모아 여성학 연구 센터를 개설한다.

 

작가가 여성 간의 연대의 힘을 스스로 느꼈던 만큼설령 자기와 스탠스가 다르다 해도 그 여성들을 결코 폄하하지 않고 그들의 삶에서 이뤄낸 성과를 인정하고 존경하는 게 좋았어.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여성으로써 읽어 보면 힘이 될 책.

 

 

151. 죽음을 선택한 남자 데이비드 발다치 ★★☆☆☆


한 부유한 백인 남성이 길을 가던 여자를 총으로 쏜 후 자기 머리에도 총알을 박아 넣는다그것도 FBI 워싱턴 본부 바로 앞에서 보란 듯이한 번 본 것은 완벽하게 기억하는 능력을 지닌 주인공 에이머스 데커를 포함해 그곳에 있던 수십 명의 사람들이 그 광경을 목격했기에 정확히 어떠한 일이 벌어졌으며누가 그 범죄를 저질렀느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문제는 왜 그가 그런 일을 저질렀느냐이다.

가해자는 FBI 프로젝트와 관련된 컨설팅 회사를 경영하는 재벌이며희생자는 지역 호스피스 병동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가톨릭 학교의 여교사이다외관상으로 그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으나사건에 대해 깊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분명해지는 사실이 하나 있다면 뭔가 아주 거대한 어둠의 세력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뿐인데…….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시리즈의 3.

이번 건 국제정세와 외국 스파이가 얽힌 첩보물인데첩보물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그냥저냥.

첩보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듯.

 


 

152. 찾아올 이를 그리워하는 밤의 달 미치오 슈스케 ★★★★☆


찾아올 이를 그리워하는 밤의 달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을 하나로 엮어주는 키워드는 거짓말이다작품 속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명예를 위해누군가는 부끄러운 과거를 감추기 위해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그러나 이 작은 거짓말들은 곧 또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거나혹은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게 되거나누군가의 인생을 아예 다른 길로 인도하기도 한다거짓말로 인한 영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아무런 관계가 없는 인물한테까지 그 손길이 닿는다. (출판사 서평)

 

 한 시골 마을을 무대로 한 3편의 이야기가 정말 촘촘하고 섬세하게 서로 엮여 있어그저 우연이나 실수로만 보였던 사건들의 뒤에 어떤 관계도가 숨어 있었는지 점점 드러나면서 작가의 큰 그림에 탄복하게 됨.

 초반부엔 살짝 늘어지지만본격적으로 사건들의 연결고리가 나오는 부분에서부터 확 재미있어져.

 

 

153. 거짓말을 먹는 나무 프랜시스 하딩 ★★★★★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명망 높은 과학자를 아버지로 둔 14세 소녀 페이스는 언젠가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딸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살아간다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출간 이후 혼란에 휩싸여 있던 사회는 아버지의 네피림 화석 발견에 크게 열광했지만그 화석이 조작이라고 밝혀지자 아버지는 가족을 이끌고 외딴 섬의 발굴지로 도피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곳에서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하고아버지의 유품을 조사하던 소녀는 거짓말 나무에 대한 기록을 발견한다그 나무에 대고 거짓말을 한 후 그 거짓말로 많은 사람들을 속이면열매를 맺어 그 사람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진실을 알려준다는 나무그리고 체이스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무에게 거짓말을 속삭이기 시작하는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플롯이 다이나믹하고 빠르게 진행돼서 중반부부터 페이지 확확 넘어가.


 빅토리아 시대가 배경이라 몰랐던 지식들(사람이 죽으면 그 집안의 시계를 멈춰 놓고 거울을 천으로 가리는 관습서양에서도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로 바꾸려 애썼다는 것드레스가 그냥 현대 옷처럼 한 벌인 게 아니라 크레놀린에 천 한 조각 한 조각 풀로 붙여서 잇는 거라 비를 맞으면 그 천이 떨어져 나가는 것 등등...)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어서 너무 재밌다그 시대의 고고학 지식과 발굴/보존 과정 묘사도 흥미롭고.


 고고학 내 종교vs진화의 대립이 가부장제vs여성인권의 대립과 짝을 이루는 연출그리고 그 여성억압적인 사회에서도 어떻게든 살 길을 찾아 역동하는 여자들의 생명력이 인상 깊었음.

 아버지가 진화를 부정하는 화석을 위조하며 시작한 이야기에 딸이 난 진화를 돕고 싶어요라 대답하며 마무리를 맺는너무나도 가슴 벅차는 이야기.



네가 아들이라면 언젠가는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고 가족의 재산을 늘려서 그 은혜에 보답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딸은 절대로 그러지 못해넌 절대로 명예롭게 군대에 복무할 수도 없고

과학 분야에서 명성을 얻을 수도 없고성직이나 의회에서 명성을 얻을 수도 없고일을 해서 잘 살 수도 없어.

어차피 넌 평생 내 지갑을 털어가는 짐밖에 안 돼

네가 결혼한다고 해도 지참금 때문에 우리 집 재산이 크게 축날 거다

넌 하워드를 그렇게 깔보면서 말하지만 네가 시집가지 않으면 

언젠가는 하워드가 널 거둬주길 빌든가 아니면 집도 절도 없이 쫓겨날 거야.”



그러면 박사님은 두개골 측정학 전문가이신가요?” 

그 말이 페이스의 입에서 나오자마자 박사의 미소가 흐려졌다페이스는 실수를 한 걸 알아차렸다

박사는 지금 페이스에게 설명하면서 즐거워하고 있었는데 페이스가 너무 아는 체해서 그 재미를 망친 것이다

…… 이게 맞는 용어인가요?” 페이스는 그렇다는 것을 알았지만 침을 꿀꺽 삼키고 망설이는 것처럼 말했다

제가…… 어딘가에서 그 말을 들은 것 같아서요.”

그렇지정확히 맞는 말이에요아가씨잘했어요.” 페이스가 수줍어하자 박사의 자신감이 서서히 돌아왔다.



머틀은 페이스를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페이스가 자연과학 연구를 계속하면 

여자이기 때문에 아마 평생 동안 남자들에게 조롱당하고비하되고무시를 받고하대를 당할 것이다. (...)

어쩌면 돈 한 푼 없이 노처녀로 이야기할 상대 하나 없이 늙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중에 다른 소녀가 아버지의 서재에 있는 책을 대충 훑어보다가 

학계 저널에 있는 각주를 우연히 발견하고 거기 적힌 페이스 선더리라는 이름을 읽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페이스라고소녀는 생각할 것이다이건 여자 이름이잖아여자가 이걸 했단 말이지.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있겠네.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머틀이 물었다.

난 진화를 돕고 싶어요.”

페이스는 진화란 말에서 아버지가 느꼈던 그런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자연에 대해 어떤 것도 확정된 사실은 없다는 말을 듣고 왜 페이스가 울어야 하는가모든 것은 변할 수 있다

모든 것은 더 나아질 수 있다모든 것은 조금씩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천천히 나아지고 있지만 

그걸 아는 것만으로도 페이스는 힘이 생겼다.

사랑하는 아가도대체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구나.”

페이스는 자신의 결심을 다시 표현할 최선의 방법을 생각해봤다.

난 나쁜 선례가 되고 싶어요.” 페이스가 말했다.



 

 

154. 눈보라 체이스 히가시노 게이고 ★★☆☆☆

대학생인 주인공은 어느 날 난데없이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되고지금 경찰서에 출두하면 자백을 강요당한다는 생각에 얼떨결에 친구와 함께 도주한다도주의 목적은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날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해 줄 이름 모를 여성 스노보더를 찾는 것아는 것은 그녀의 얼굴스키복그리고 코스를 벗어난 지역에서 스키 타는 걸 좋아한다는 것과연 이들은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있을까?

 

이름이 엄청 헷갈려서 초중반부에 누가 누군지 파악하느라 고생했던 책.

옮긴이의 말에 '이것저것 복잡하게 생각하는 대신 일단 무작정 몸으로 부딪히고 보는호쾌한 스토리라고 했는데그 말이 딱 맞다.

 



155. 도리스의 빨간 수첩 소피아 룬드베리 ★★☆☆☆

 

96세의 도리스는 지금까지 그녀의 인생에 깊은 족적을 남긴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한 붉은 수첩에 그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적기 시작한다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며 펼쳐지는 도리스의 인생.

 

그냥저냥 읽을 만해딱히 다이나믹하거나 반전 같은 건 없이 물흐르듯 흘러가는 잔잔한 이야기.

중간에 피해자 시점 성폭행 묘사가 있으니 주의.






끝! 여기까지 읽은 톨들 정말 수고했어ㅋㅋㅋㅋㅋ

그럼 난 2020년 6월에 돌아올게!


  • tory_1 2019.12.31 19:22
    와우 재밌어 보이는 책 많다 대다나다 톨아 멋져!!!
  • W 2019.12.31 23:03

    톨도 좋은 독서라이프 보내~!

  • tory_2 2019.12.31 20:14

    와 토리 진짜 대단하다ㅋㅋ 책 고를때 엄청 도움될 것 같아!! 고마워 토리 'w'

  • W 2019.12.31 23:03

    참고가 된다면 좋겠어ㅎㅎ 고마워!

  • tory_3 2019.12.31 20:30
    톨아 정말 대단하다ㅠㅠ 나는 50권 읽기도 못이뤘는데ㅠㅠㅋㅋㅋ
    톨 글 읽으면서 다시 다짐 다졌어
    상반기/하반기 목록도 내년 독서리스트 짤때 참고할게 고마워:)
  • W 2019.12.31 23:04

    100~150p 내외의 분량 짧은 책이나 단편집으로 짬짬이 읽으면 시간사용 효율적이고 좋더라!

    톨이 내년엔 목표 꼭 이루길 바랄게

  • tory_4 2019.12.31 21:28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0/06/01 00:57:01)
  • W 2019.12.31 23:05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4/01/24 20:43:14)
  • tory_5 2019.12.31 22:11
    와우 다 읽고 감명받아서 저번링크도 다 보고왔어. 너무 좋다. 특히 이번편이 설명 길어서 더 좋아ㅋㅋ 2020년 버전도 기대할게
  • W 2019.12.31 23:05

    설명 열심히 썼는데 알아줘서 고마워! 반년후에 봐~^^

  • tory_7 2019.12.31 23:50
    내년에 토리가 추천해준 책들 하나하나 다 읽어볼거야
    이렇게 정성스런 글 써줘서 고마워
    새해 복 많이 받아♡
  • W 2020.01.01 15:16

    톨도 새해복 많이받아~! 톨취향에 잘 맞았으면 좋겠다ㅎㅎ 

  • tory_8 2020.01.01 01:07
    정성글 대단해!
    난 읽고나서도 돌아서면 내용을 까먹어서 이렇게 정리 잘 하는 톨들보면 신기하고 대단해
    읽은 권수도 엄청나!
    책 고를때 참고할게 고마워ㅎㅎㅎ
  • W 2020.01.01 17:42

    고마워~! 나도 리뷰적는거 힘들어서 제목만 적어놨다가 주말에 하기도 해ㅋㅋㅋ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 tory_9 2020.01.01 01:31

    와 정말 대단해. 읽어봤던 책은 감상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고, 읽어보지 못한 책들은 막 독서욕구를 자극하네ㅋㅋ

    작년에는 책을 몇 권 읽지 못했는데 올해는 분발해야겠어!! 허잇짜

  • W 2020.01.01 17:42

    톨이 감상도 궁금하다! 올해도 좋은 독서라이프 보내~

  • tory_10 2020.01.01 02:07

    와 저번 리스트도 재밋게 봤었는데 느무 반갑당ㅋㅋㅋㅋ 

    지금 좀 졸려서 후룩후룩 봤는데 나도 본책은 느낌 비슷하다 그래서 별점 높은 책들 더 흥미롭고 궁금쓰ㅋㅋㅋㅋ

    토리가 별 다섯개 준것중에 내가 빌려놓고 바빠서 앞쪽밖에 못본거 있어서 넘나 아쉽당ㅠ

    낼 낮에 다시 이 리스트 정독해야지 히히 재밋는 후기 고마워~ 2020년도 좋은책 많이 보시고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ㅋㅋㅋㅋ

  • W 2020.01.01 17:43

    나도 앞쪽만 읽고 허무하게 보낸 책들 많아서 그 마음 공감간다ㅋㅋㅋㅠㅠ

    재밌게 봐줘서 고마워!

  • tory_11 2020.01.01 03:47
    우와 책 하나하나 읽을때마다 써 두는 거야? 정리 진짜 잘 했다 톨 독후감 읽는데 재미있어ㅎㅎ 책 살 때 참고할게♡♡
  • W 2020.01.01 17:45

    최대한 바로바로 적으려 노력하긴 하는데 바쁠땐 제목만 일단 적어두고 나중에 시간날때 내용 적고 그래.

    아무쪼록 이 리스트가 도움이 되면 좋겠다ㅎㅎ

  • tory_12 2020.01.01 12:43
    하나하나 정성이 가득하고 감상, 발췌된 부분 등등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보는 내내 감탄했어. 잘 봤어 톨아! 이런 글은 무조건 추천!
  • W 2020.01.01 17:45

    발췌 넣을까말까 했는데 좋은반응이라 다행이다! 새해복많이받아~

  • tory_13 2020.01.01 22:39

    재밌어 보이는 책들이 많아!!

    나도 이 리스트 참고해서 2020년 리스트를 작성해볼까해 고맙다능!

  • tory_14 2020.01.01 23:24
    와 넘 정성글 ㅠㅠㅠㅠ 고마워
  • tory_15 2020.01.02 04:04

    와.. 책 수량도 그렇고 찐톨이 이미 가지고 있는 배경지식도 놀랍다 비판을 하려면 알아야 평을 하잖아. 

    책 선택할때 많은 도움이 될 거 같아. 고마워. 새해 복 많이 받아 !! 

  • tory_16 2020.01.02 09:05

    정성글은 추천이야 ㅠㅠㅠ

  • tory_17 2020.01.02 11:27

    와 대박 정성글! 너무고마워 읽고싶은책 엄청많다!

  • tory_18 2020.01.02 11:54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3/05/24 06:44:23)
  • tory_19 2020.01.02 12:17
    무조건 추천에 스크랩ㅋㅋ
  • tory_20 2020.01.02 17:29

    몇개만 읽어봤는데 다음에 차근차근 읽어봐야겠다 토리 시간 많이 걸렸겠다 ㄷㄷ 정성글 고마워!!!

  • tory_21 2020.01.02 17:32

    2020년 6월 기다린다 토라~~~~ 혹시 리디셀렉트 이용하는 거야? 너무 좋은 리스트 고마워. 책 읽고 싶어 ㅎㅎㅎ

  • W 2020.01.05 13:47
    응 리디셀렉트 이용해!
  • tory_22 2020.01.02 18:09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2/09/08 22:26:32)
  • tory_23 2020.01.02 19:28
    정성글 고마워! 겨울방학때 하나씩 읽어볼게
  • tory_24 2020.01.03 01:09
    추천 고마워 토리야! 정리글도 강같아서 너무너무 책이 읽고싶어진다 ㅡ 새해 복 많이 받어
  • tory_25 2020.01.03 14:44
    책 어떤 거 읽어야할지 몰랐는데 유용하당!!
  • tory_26 2020.01.03 17:32
    와 별점보고 나도읽고싶은책 추려봤어
    책소개 정말길게고마웡!!
  • tory_27 2020.01.03 17:37
    우와 공유해줘서 고마워!! 톨이 별 많이준 책 읽어보고 싶다! 이번에 산 책 다 읽고 봐야겠어!!
  • tory_28 2020.01.03 23:17
    고마워고마워!!!=새해복많이받아
  • tory_29 2020.01.04 02:07
    정말 하나하나 너무 정성이 담겨있다ㅠㅠㅠ 고마워! 꼭 읽어 볼게~ㅎ
  • tory_30 2020.01.05 10:15

    추천 고마워!

  • tory_31 2020.01.05 11:34
    나도 읽고 싶어지는 책이 많다 고마워 토리야!
  • tory_32 2020.01.05 18:15
    진짜 대박 정성글.... 이북리더기 사고 뭐 읽을까 고민하던 중이 토리 글 최고야ㅠㅠ 글 쪄줘서 고마워!
  • tory_33 2020.01.08 07:01
    정성글 고마워 다독한 토리 멋져 대단해! 나도 올해에는 책 좀 읽어야겠어
  • tory_34 2020.01.14 22:32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 많다. 올해 독서 자극 팍팍 됐어. 좋은 글 써 줘서 고마워~!
  • tory_35 2020.01.19 05:15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1/08/11 00:40:14)
  • tory_36 2020.01.24 12:08
    고마워 ㅠㅠ 몇개 따로 메모해놨다! 잘 읽을게~~
  • tory_37 2020.02.12 04:39
    고마웦퓨ㅠ스크랩하께
  • tory_38 2020.05.14 15:53
    검색하다가 토리글 발견하고 셈을 할줄아는 이거랑 내가 너에게 말하지 않는것들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 고마워!
  • tory_39 2021.05.03 22:24
    정성글 너무 잘 읽었어ㅠㅠ 스쿠랩해서 읽을 책들 메모해줘야지.. 고마워!!
  • tory_40 2022.04.28 21:17
    멋지다
  • tory_41 2022.05.02 00:37

    정성글 고마워!!

  • tory_42 2022.09.30 07:51
    책 스크랩!
  • tory_43 2023.01.01 16:20

    최근 글 보고 온건데 읽다보니 토리 점점 속도도 느나봐 이때도 많이 읽었는데 지금은 장난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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