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때 아빠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주말에 가족끼리 등산을 가자고 했어
동네 뒷산 이런거도 아니고 관광버스 타고 멀리 가야 나오는 엄청 큰산이라는데 귀찮아서 가기 싫대도 억지로 가게 됐어
등산가던 날 아침, 하늘이 꾸물꾸물하고 먹구름이 잔뜩 낀 게 가기 전부터 뭔가 이상했어
가기 싫다고 나랑 오빠가 그렇게 말렸는데도 이미 여행사에 참가비 내서 가야한다고 갔지
대둔산이라고 전라도? 어디 엄청 멀리 있는 곳이었는데 아빠가 거기 구름다리가 그렇게 유명하다고 장관일거라고 해서 좀 기대도 됐어
근데 올라가보니 그 구름다리라는 게 내가 상상하던 나무 다리가 아니라 쇠로 돼있더라고..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10년도 더 전엔 거기가 계단도 쇠로 돼있었어
온 산의 등산로가 죄다 쇠로 돼있었어.. 계단, 구름다리...
하필이면 올라가는 도중에 빗방울까지 떨어지더라
다른 등산객들은 비 오니까 하나 둘씩 내려갔고 아빠가 우리도 이만 내려가자 했는데
엄마가 여기까지 몇시간 걸려 왔는데 그냥 갈 순 없다고 꼭대기까지 꼭 가야겠다고 우겨서 정상까지 갔어
정상으로 갈 수록 빗줄기는 더 거세졌고 정상엔 기념 바위같은거랑 우리 가족만 있고 개미새끼 한마리 없더라
유명한 산 꼭대기인데다 비가 와서 구름이 낮게 깔려서 그런가 손을 좀만 뻗으면 하늘에 손이 닿을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어
이제 내려가자니까 엄마가 정상까지 왔는데 기념사진 찍어야한다고 해서 사진 여러장 찍는데
하늘 전체가 ‘쿠르르릉...’하면서 천둥소리가 낮게 치는데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엄마도 그제서야 내려가자고 하더라
아빠가 우산을 챙겨와서 나랑 엄마, 아빠랑 오빠 이렇게 둘둘씩 우산 쓰고 내려가는데
하필 아빠가 챙겨온 우산 중 하나가 할머니 레이스 양산이었어..
우산을 쓴건지 만건지도 모르게 비를 다 맞고 내려오고 있었는데
그때 ‘콰콰과과광!!!!!!̆̈!’하면서 하늘 전체에 커다란 폭팔음 마냥 천둥이 쳤고 우린 무서워서 우산을 쓰는 둥 마는 둥
온 몸이 푹 젖은 줄도 모르고 내려가고 있었어
그때 사진 속으로만 보던 파란 번개가 우리 내려가던 길목 나무에 내리 꽂혔는데
비가 그렇게 거세게 내려서 축축하게 젖은 나무에서 연기가 솟아오르더라.. 아마 그 낙뢰를 우리가 직접 맞았으면 다 죽었을거야
그 와중에 심각성을 못느낀 엄마는 ‘이야 벼락맞은 나무가 재수에 좋다던데 우리 저거 잘라갈까?’하는 시덥잖은 농담이나 했고
아빠는 그때부터 화가 나서 ‘지금 다 죽게 생겼는데 그딴 말이 나오냐’며 욕하면서 걸음을 재촉했어
그때 우리가 들고있던 우산대를 타고 손잡이를 타고 내 가슴까지 강렬한 전류가 흘렀어
전류가 흐르자마자 엄마를 쳐다봤는데 엄마도 나를 쳐다봤고 우리 둘다 비명을 지르고 울었어
방금 느꼈냐고 우리 낙뢰 감전된거냐고 엉엉 소리지르면서 우는데
오빠랑 아빠도 우리도 느꼈다고 우산이 문제인거 같다고 우산을 내다던졌어
그 와중에 엄마가 할머니 양산 비싼건데 왜 마음대로 버리냐고 하고 아빤 그럼 다같이 뒤지고 싶냐고 싸우면서 겨우 무사히 내려왔어
산을 내려오고 기운이 다 빠진채로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식당 티비에서 뉴스가 나왔어
속보였는데 등산하던 남자가 기상이변 때문에 낙뢰에 감전돼 죽었다는거야..
그날 뉴스에서 계속 나왔어 기상이변으로 낙뢰에 감전돼 사망...
낙뢰를 직접 맞은 게 아니라 다행이었지 맞았으면 어땠을까..
우리 가족 전부 아직도 다 기억하는 일이야
다행히 후유증이나 이런건 없는데 그 후로 천둥소리를 무서워하게 됐어
천둥소리를 들으면 그때일이 생각나서 몸이 먼저 반응하더라 바들바들 떨리고 무서웠음
지금은 10년도 더 지나서 많이 나아졌어
벼락 맞으면 운이 좋다던데 그런건 없더라..
여튼 내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 베스트에 꼽히는 일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