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떤 카페에 들어갔는데, 동네 할머니들이 마실 나오는 곳이었어요. 할머니가 운영하시고. 그 할머니들이 다 담배를 피워서 담배 연기가 자욱한 카페였는데, 한 분이 '눈이 언제쯤 그칠까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여기가 1월부터 4월까지 눈이 오는 곳인데 어떻게 저런 말을 할까? 막막하니까 저런 말씀을 하시나 보다 했어요. 그런 막막한 정서가 제가 생각한 이 영화의 정서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았고, 공간에 대한 인상으로 남았어요. 이 공간을 영화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고요. 또,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은 영화를 찍고 싶었어요. 그런 제 마음속 여러 가지 욕구가 모여서 차근차근 대본의 형태로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윤희와 쥰, 각각 한국과 일본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에 관해서도 자세한 설명을 들려줬다. 임 감독은 "한국과 일본이 정말 다른 나라이지만 둘 다 정말 배타적인 민족주의 국가이고 소수자 혐오, 차별이 일상화된 국가이고 또, 남성 중심적인 시스템이 아주 오랫동안 견고하게 확립된 국가인 것 같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제 페미니즘이 시대정신이고 그래서 저도 창작자로서 부족하지만 지나칠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어떤 만용을 부려본 것"이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페미니즘 이슈가 시대정신으로 있는데, 동아시아 여성들이 서로 연대하고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라는 언론 시사회에서 한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영화는 "윤희에게. 잘 지내니? 오랫동안 이렇게 묻고 싶었어"라는 쥰의 편지로 문을 연다. 영화 후반부에는 그 편지에 대한 윤희의 답장이 나온다. 편지 형식을 가져온 이유를 묻자, 임 감독은 원래 편지나 일기 같은 사적인 글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특히 서간체 글을 좋아한다고.

임 감독은 "편지가 아주 중요한 모티프로 활용되는 영화를 초고에서부터 구상했던 것 같다. 정말 내밀한… 그 편지가 향하고 있는 상대방이 아니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둘만의 내밀한 감정이 담긴 글을 그냥 내레이션으로 읽어주면, 뭐랄까 사람들의 마음에 와닿을 거로 생각했다. 누구나 그런 경험은 있을 것이라서"라고 전했다.

쥰이 윤희에게 쓴 편지, 윤희가 쥰에게 쓴 편지는 내용도 다르지만 묻어나는 분위기도 제법 차이가 있다. 전자가 은유적이라면 후자는 꽤 직설적이다. 캐릭터에 따라 다르게 설정한 것이냐고 물으니 임 감독은 "네, 맞다"라며 미소지었다.

한일 혼혈인 쥰은 독신인 수의사로 일본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임 감독은 쥰을 "살아남기 위해 공부도 많이 했을"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반면 윤희는 대학도 가지 못했고 오빠(김학선 분)가 소개해 준 남자(유재명 분)와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그사이에 낳은 딸도 있다.

임 감독은 "둘의 캐릭터가 다르기에 편지를 쓴다면 좀 다르게 쓰지 않을까 했다. 윤희는 좀 더 직설적으로, 솔직하게, 꾸미지 않고 썼을 것 같다. 쥰은 조금 더 에둘러서, 조금 더 언어 표현을 유려하게… 자기가 볼 때도 납득해야 하니까 그렇게 쓰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저는 이 영화가 윤희와 쥰의 러브 스토리라고 생각했어요. 명백하게 규정하고 시작했죠. 그렇지 않았으면 제가 이 영화를 찍을 하등의 이유가 없었을 것 같아요." 임 감독은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누구'가 그렇게 중요한 걸까 생각했다. '누가 하는 사랑이든 크게 다를까. 결국 똑같다'는 시각으로 접근했다.

"윤희와 쥰이 오랫동안 서로 그리워해요. 보내지 못할 편지를 쓰고요. 어떻게 보면 (요새는) 메시지를 그냥 바로바로 주고받을 수 있는 빠른 속도의 시대잖아요. 근데 '이전 시대'의 사랑과 연애라고 하면, 뭐랄까 기다리고 기대하죠. 그런 시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애틋하고요. 그런 감정을 담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20년 동안이나 만나지 못했던 윤희와 쥰의 재회 때도 두 사람은 아주 짧게 인사를 하고, 조용히 걸을 뿐이다. 어떤 해후를 했는지는 관객의 상상에 맡긴다.

연출 의도가 명백히 있으리라고 추측했다. 확인하고 싶어 물으니, 임 감독은 두 사람이 '마침내' 만났다고 해서 어떤 대화나 성애 묘사를 꼭 보여줘야 할까, 의문이 들었다고 답했다. 20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며 각자 풍파도 겪었을 두 사람의 표정에서, 그간의 일상에서, 서로에게 쓴 편지에서 관객들은 충분히 보지 않았겠냐는 설명이다. 아마도 '사랑'을.

"저희 영화 대사 중에 쥰이 무슨 꿈을 꿨냐는 고모 질문에 그냥 꿈속에서 같이 있다고 하는 게 있어요. 그냥 같이 있는 것만으로 감동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냥 같이 있는 게 정말 어려웠기 때문에.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쉽게 산책하고 집에도 놀러 갈 수 있는데 왜 이 둘은 그게 그렇게 힘들었을까요. 그게 이 둘의 잘못이 아니고 사회 시스템의 잘못이 분명히 있다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둘이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보다 앞으로 두 사람에게 펼쳐질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첫사랑을 다시 마주치고 돌아온 여행 후, 윤희의 태도가 달라진 이유다. 오빠가 소개한 직장을 그만두고 자기 힘으로 새 일을 찾아보기 시작하는 게 대표적이다.

임 감독은 "과거 멈췄던 시계가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라며 "윤희가 지금까지 자기 자신을 학대하고 벌주면서 살아왔다고 했는데, 그 만남 이후로 (자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되지 않았을까. 한 번 잘못 꿴 단추를 다시 끼운 게 아닌가. 20년이 지나서 비로소 자기 삶을 시작할 수 있고, 그제야 쥰도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 만남은 정말 중요하지만, 만나고 난 뒤의 디테일을 보여주는 것보다 앞으로의 삶을 보여주는 게 목표였다"라고 밝혔다.

영화에서 '달'이 차지하는 의미가 큰 것 같다고 하자, 임 감독은 "이 영화에서는 달이 순서대로 간다. 쥰이 편지를 보낸 게 앞선 시점인데 거기 떠 있는 달은 그믐달이다. 그다음 한국에서 편지 받을 때 일상에서 보이는 달은 초승달이다. 그믐달→초승달→반달에서 점점 차올라서 마침내 보름달이 되는 과정을 그린다"라고 답했다.

"달이 자기 존재를 숨기고 있다가 점점 지구에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영화 속 인물도 숨기지 않고 자기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그런 이야기인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중의적 의미가 있죠. 관객분들이 어떻게 해석해서 보실지… 그게(관객들 해석이) 정답일 거 같아요. 달이 차올랐을 때, 보름달이 떴을 때 그 시점이 되게 중요해요. 보름달이 딱 뜨고 그다음부터 펼쳐지는 윤희의 삶. 달이 기울고 차고 그런 게 삶이 아닐까요. 저한테는 영화 찍는 일이 그렇듯이." <계속>

인터뷰 너무 좋아서 가져왔어. 전체도 꼭 읽어봐!
기사 전문 : https://n.news.naver.com/entertain/article/079/0003294591?lfrom=twitter
  • tory_1 2019.11.26 17:58

    저희 영화 대사 중에 쥰이 무슨 꿈을 꿨냐는 고모 질문에 그냥 꿈속에서 같이 있다고 하는 게 있어요. 그냥 같이 있는 것만으로 감동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냥 같이 있는 게 정말 어려웠기 때문에.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쉽게 산책하고 집에도 놀러 갈 수 있는데 왜 이 둘은 그게 그렇게 힘들었을까요.


    이 부분 너무 마음아프다

  • tory_2 2019.11.26 18:04
    아 인터뷰 읽는데 왜 눈물이 나지?;; 감독님 좋은 사람 같아.
    한번 더 보고 싶은데 상영관이ㅠㅠㅠㅍ흑흑
  • tory_3 2019.11.26 18:08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1/08/13 13:58:56)
  • tory_4 2019.11.26 18:27
    기사 고마워 . 며칠 전에 보고 와서 이런저런 생각과 여운에 잠겨있었는데 마무리로 정리하기에 좋은 글인 것 같아.
  • tory_5 2019.11.26 18:30

    이따가 윤희에게 보러가는데 다녀오고 나서 꼭 읽어야지!!!

  • tory_6 2019.11.26 18:36
    나도 보고싶은데 대전에 상영하는데가 없는것같네...
  • tory_7 2019.11.26 18:51
    인터뷰 좋다. 영화 장면이나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져서 울컥하네..
  • tory_8 2019.11.26 19:35
    인터뷰 너무좋다 진짜..
  • tory_9 2019.11.27 00:13
    인터뷰 진짜 영화 분위기랑 너무 닮았다
  • tory_10 2019.11.27 01:08
    소복히 쌓인 눈이 다시 생각나는 인터뷰야. 또 보고 싶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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