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 1차 불판: http://www.dmitory.com/novel/11770757
메카니스트 힐러에 난곡동이라는 지명이 나오니?
여기가 원래 낙골동이라는 지명이었는데 일제시대때 뼈가 많이 묻혀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거든...
영 찜찜하다 헬기 뜨는 장면 배경이 여기라고 들었는데 자세히 알고싶어ㅠㅠ
내가 확신이 안가서 인터넷에 다시 찾아봤어
난곡에서는 예부터 난초를 많이 길러서 난곡이라 불렸는데 일제시대에는 납골당과 공동묘지가 있어 낙골이라고도 하였다.
이렇게 나와....
*팩트 정리*
수는 극중에서 자기가 죽은사람이라고 한다
공은 시체 애호가다
수가 살던 동네는 난곡동이다
난곡동은 실제 일제강점기때 공동묘지였다
+참고자료
http://radio.ytn.co.kr/program/index.php?f=2&id=48432&s_mcd=0201&s_hcd=09
◆ 박: 네, 원래 난곡이란 이름은 조선시대 때부터 이어진, 근 400년간의 유래가 있는 지명인데요. 그런데 68년, 70년도 초에 대방동, 용산, 이촌동, 창신동의 철거민들이 집단적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정착할 때, 이곳이 당시 일제강점기 때 공동묘지 구역이었던가 봐요. 그래서 뼈가 많이 나와서 낙골이란 이름을 주민들이 사용하게 됐습니다. 이 이름에는 당시 이주한 주민들이 스스로 처지를 한탄하는 아픈 마음이 섞인 것이기도 하죠.
http://blog.ohmynews.com/nangok/183187
낙골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뭘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초창기 원주민 분들이 공통적인 의견을 주셨습니다.
달동네 난곡이 처음 만들어질 즈음에, 사람들이 와 보니 곳곳에 뼈가 많이 나오더랍니다. 일제시대 때 공동묘지였기 때문이죠. 뼈가 많이 나와서 낙골이라고 불렀다가, 거기에 '떨어질 낙(落)'자의 의미가 더해집니다. 더 이상 떨어질 데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자조 섞인 난곡 주민들의 마음이 실렸다는 겁니다.
1991년에 나온 도시빈민연구소의 자료집에도 이와 같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시에서 이들 철거민들에게 한 가구당 대지 8평씩을 주었는데 당시엔 사방이 나무와 논밭, 웅덩이들이 많아 수 천 세대들이 정착하기엔 땅이 모자라서 공동묘지를 이장한 뒤에 터를 닦아 집을 짓게 했다. 원래 이 지역의 이름은 ‘난곡’이었는데 이주과정에서 공동묘지의 이장과 이주가 동시에 이루어져서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한 이주민들이 해골이 쓰레기 모양 뒹구는 것이나 자신들이 청소차 위에서 뒹구는 것이나 같다고 하여 ‘낙골’이라고 불렀다 한다. (도시빈민연구소 1991년)
그럼 낙골과 난곡 중 어떤 게 더 오래된 지명일까요? 70년대 말, 80년대 초까지 많이 불렸던 낙골과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르고 있는 난곡. 더 오래된 지명은 ‘난곡’입니다. 오래됐을 뿐만 아니라 예전에 그 일대를 부르던 공식 지명도 ‘난곡’이지요.
로그인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