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숲 육아방에 써야하나 꽤 고민했어...ㅎㅎㅎ
근데 여기 쓰는 이유는 아기가 보기 위한 것도 있지만 그냥 이 책은 내가 품고 계속 읽고 싶은 책이라서!
내 아기는 아직 책은 입으로 가져가는 7개월짜리라 이건 내 책 맞음
신문 칼럼에서 책 소개글을 읽고 바로 질렀던 책이야.
고 박완서씨가 손주가 태어날 때 자녀들에게 썼던 편지를 증손주가 태어날 때 동화로 엮은 책이라고 함
일러스트레이터도 직접 구하시고 공을 많이 들이신 책인데 책 나오기 조금 전에 돌아가셔서 완성된 책은 못 보셨대. ㅠ
(관련 링크 https://www.asiae.co.kr/article/2011050315270384903)
읽다가 눈물났음.
그리고 와 진짜 이 분은 천재다 라고 생각했어.
몇 개 구절 옮겨 써 볼게.
이게 은근 스토리가(?) 있어서 이 정도의 발췌로는 감동이 옮겨지지가 않는다...ㅠ
토리들 꼭 많이들 읽어봤으면...
——
골목 속의 작은 집 젊은 새댁이 아기를 뱄습니다.
처음으로 엄마가 되는 것입니다.
첫아기 맞을 준비가 대단합니다.
웬만한 감기나 배탈쯤 나 가지곤
병원은커녕 약 한 봉지 안 사 먹고 견디던 엄마가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병원에 가서
아기가 뱃속에 편안히 앉았나를 의사 선생님한테 진찰을 받습니다.
또 뱃속의 아기가 엄마의 몸에서 뼈와 살과 피를
마음 놓고 빼앗아다가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엄마가 맛있는 것을 골고루 찾아 먹습니다.
아기를 갖기 전에 엄마는 밖에서 고된 일을 하는 아빠와
늙어서 입맛이 까다로워진 할머니를 위해
맛있는 것은 아끼고 자기는 찌꺼기만 먹었습니다.
그러나 아기를 갖고 나선 어림도 없습니다.
빛깔 곱고 향기로운 과일도, 싱싱한 채소도, 물 좋은 생선도,
맛 좋은 고기도 다 엄마의 몫입니다.
엄마는 사양하지 않고 이런 것들을 골고루 먹습니다.
——
아빠의 마음도 분주합니다.
아빠는 아기가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놀랍고 아름다운 일을
엄마와 함께 경험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아빠는 믿음직스러운 것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믿음직스러운 것과 믿음직스럽지 못한 것으로
구별해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중략)
아기는 이 세상을 믿기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나려 하고 있건만,
이 세상에는 믿을 수 없는 것 천지입니다.
만일 아기가 자라면서 그러한 것을 알게 된다면,
아기는 이 세상에 괜히 태어났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에 괜히 태어났다고 생각하면서 자라는 아기는 얼마나 불쌍한 아기일까?
그런 아기의 아빠는 얼마나 못난 아빠일까?
생각만 해도 부끄럽고 부끄러워 아빠는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중략)
어떻게 하면 아기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하게 할 수 있을까?
——
아기가 태어날 골목 속의 작은 집에는 엄마와 아빠 말고 할머니도 계십니다.
할머니는 오래오래 사셨습니다.
사람들의 행복과 불행, 태어나고 죽어 감을 수없이 보아 오시는 사이에
눈빛은 흐려지고 살갗은 고목나무의 껍질처럼 찌들고 깊게 주름졌습니다.
(중략)
그렇기 때문에 아기가 태어나는 놀랍고 아름다운 일을
할머니도 같이할 수 있으리라고는 엄마도 아빠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렇지 않습니다.
할머니는 벌써부터 아기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중략)
할머니가 몰래몰래 마련하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으나, 눈에 보이는 어떤 선물보다도 으뜸가는 선물이란
다름 아닌 이야기입니다.
(중략)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가 할머니의 마음속에서는 벌써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는 아기의 걸음마를 따라 오래간만에 마당으로 내려갑니다.
마당에는 마침 빨간 장미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아기에게 이야기를 시킵니다.
“꽃, 꽃, 꽃.......” 아기의 작은 입이 그 소리를 흉내 냅니다.
그다음에 할머니는 조금 긴 이야기를 시킵니다.
“빨간 꽃, 빨간 꽃.......”
아기는 그 긴 이야기를 따라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생전 처음 빨간빛을 보는 기쁨으로 눈은 빛나고 볼은 상기됩니다.
할머니는 이제껏 너무 많은 빨강을 보아 왔습니다.
빨간 꽃, 빨간 사과, 빨간 고추, 빨간 치마, 빨간 신호등, 빨간 피.......
이렇게 빨강을 수없이 거듭해서 보는 동안에 빨강은 점점 시들해지고
마침내 사위어 재가 된 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처음 고운 빛깔을 본 아기의 기쁨을 같이 느끼고 싶은 나머지
할머니에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다 사윈 재가 다시 노을처럼 곱게 타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할머니는 오랜만에, 정말로 오랜만에 본 대로 느끼게 된 것입니다.
할머니는 아기와 함께 예쁜 꽃을 보며 황홀한 기쁨을 맛봅니다.
기쁨은 할머니의 둔해진 마음의 운동을 활발하게 하고
잠자던 상상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중략)
할머니와 아기가 함께 우러러보는 노을 진 하늘에
새가 날고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새, 새, 새.......”
할머니는 아기에게 새라고 가르쳐 줍니다.
아기의 눈이 하늘을 나는 새를 뒤쫓습니다.
새는 순식간에 하늘을 가로질러 산 너머로 사라졌습니다.
아기의 눈이 아쉬운 듯 먼 하늘에서 떠나지 못합니다.
이때 할머니의 삭정이 같은 손은 아기의 가슴이 아직 가 보지 못한
먼 곳에 대한 동경으로 힘차게 두근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할머니는 오래오래 살았기 때문에 여태까지 수많은 새를 보았습니다.
참새, 제비, 까치, 까마귀, 종달새, 기러기.......
어떤 새든지 보기만 하면 그 이름을 단박 알아맞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날지를 않습니다.
할머니의 마음속에 갇혀 표본이 되어 버렸습니다.
마음속의 새가 날지 않기 때문에
하늘을 나는 새를 보아도 가슴이 두근대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기와 더불어 먼 하늘로 날아가버린 새를 뒤쫓고 있는 사이에
할머니의 마음속에서 먼 고장에 대한 그리움이 되살아나고,
죽어 표본이 되어 버린 새들이 푸드득대며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할머니가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한 마디 한 마디씩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꽃’과 ‘새’는 할머니가 서리서리 간직하고 있는
긴 이야기의 아주 작은 마디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략)
이야기 선물을 마련해 놓고 아기를 기다리는 할머니의 마음은
마냥 찬란하기만 합니다.
쓰다 보니 길어져서 이건 책을 다 옮길 기세라 그만 두었어.
여기의 ‘할머니’는 아마 고인이 되신 박완서 님이시겠지.
뒤에는 이야기가 불러일으키는 사람의 꿈만이 사물의 비밀, 겉핥기가 아닌 모든 사물의 진실을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철학적인 이야기까지 담담하지만 아름답게 펼쳐진단다.
어떻게 글을 마무리해야 할 지 모르겠네.
난 이 책 마르고 닳도록 보고 애기한테도 애가 글 깨치기만 하면 엄마 아빠 할머니는 널 사랑한단다 하면서 맨날 읽어줄 생각을 하고 있당... 넘 낙관적인가..ㅋ
중요한 삶의 진리를 동화에 담아버리는 슨생님 클라스...ㅠ
모두 아름다운 글 보며 힐링 되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