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영부영 살아가고 있는 직장인 토리당.
지난주 금요일에도 우리 팀에 퇴사자가 한 명 발생했어. 본인이 그만두고 싶다는데 뭐라 참견할 입장은 아니지만, 내 눈에는 그 친구의 몇 달 뒤 미래가 그려져서 걱정이 되더라. 그동안 주변에서 감정적으로 퇴사를 했다가 인생이 꼬인 경우를 워낙 많이 봐서.
만약 스펙업방에 퇴사를 결심한 토리가 있다면 아래 글을 참고해줬으면 좋겠어~
1. 퇴사 말고 이직을 할 것
몇년전부터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퇴사해야지'라고 하는 게 유행처럼 번지더라고. 물론 회사는 지옥일 때가 많은 게 사실임. 불합리한 지점도 많고. 나로서는 내 노동력+능력과 월급을 맞바꾸러 왔을 뿐인데 왜 이런 일을 당해야하나 싶을 때도 많아. 그래서 일단 사표를 던지는 걸 많이 봄. 근데 이건 정말 비추.
왜냐면 정말 기약없이 노는 백수가 되기 딱 좋음. 퇴사를 해서 또 다른 회사에 입사하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보장은 없어. 오히려 내 스펙은 상향되지 않은 상황에서 들어간 다른 회사는 그냥 내게 고통을 안겨줄 회사 2가 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음. 아니면 더 불합리한 처우를 받게될 수도 있어. 언젠가 모아놓은 돈과 실업급여는 바닥나기 마련이니까. 그럼 급한 마음에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됨. 게다가 공백기까지 길어지면 정말 힘들어짐. 내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 한트럭 있어. 심지어 눈도 안 낮춰서 3년째 놀고 있는 사람도 봄.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대체 불가능한 회사원은 없어. 그러므로 '회사가 날 못견디게 해서 퇴사'는 비추함. 회사에 대한 빡침을 이직 준비를 위한 동력으로 쓰는 걸 추천. 그리고 회사 생활 해보면 알겠지만, 실질적으로 월급의 절반 이상은 감정 노동+사람에게서 받는 스트레스에 대한 값으로 봐야하더라. 남의 돈을 받는다는 게 그래.
2. 자기 객관화를 분명히 할 것
회사에 대한 불만은 시스템/상사에 대한 것도 있지만,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닌데'라는 생각에서 출발하기도 함. 특히 이건 자기 자신을 고평가 하거나 허세가 심한 사람들이 그렇더라. (내 경험상 남자가 많았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건 좋지만, 본인이 얼마나 대우 받을지는 회사가 결정하는 거임.
보통 마음에 안 드는 회사에 입사하는 경우는 정해져있잖아. 본인이 가고 싶은 회사에 계속 낙방해서 목표 하향 조정을 하다가 그렇게 된 거지. 미안하지만 그게 본인의 가치인 거임. 같은 회사원 주제에 뭘 그렇게 말을 건방지게 하냐 싶다면 미안해. 하지만 남들이 다 가고 싶어하는 자리는 TO가 정해져있고, 본인은 그 경쟁에서 탈락한 거니까.
물론 진짜 운이 안 좋아서 그렇게 된 케이스도 있어. 근데 보통 '내가 여기서 이럴 사람이 아닌데'라고 하는 경우는 어떤 노력도 안 하고 그냥 불만만 터뜨리는 경우가 많더라.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기 PR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도 어떤 건덕지가 있어야 하는 거임. 없는 걸 만들어낼 수는 없잖아.
3. 퇴직금으로 여행가지 말 것
그동안 고생한 나를 위한 보상으로 퇴사 후 여행 많이 가지? 갑자기 큰 돈 마련하기 어려우니 퇴직금으로 가는 경우도 많고. 근데 이건 정말 말리고 싶음. 살다가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퇴직금처럼 목돈이 생기는 경우는 드물어. 차곡차곡 저축해도 모자를 판에 잠깐 즐겁겠다고 그 돈을 써버리는 건 너무 무모한 선택임. 그리고 여행을 다녀왔다고 해서, 내 인스타그램에 사진 몇장이 더 추가됐다고 해서 현실이 달라지진 않잖아. 나는 여전히 백수인거고, 월세는 나가고 있고, 생활비도 필요하지. 게다가 내 경력의 공백기는 늘어나고 있을 뿐임.
4. 통장 잔고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정확히 계산할 것
이게 제일 중요해. 특히 1인 가구인 토리들은.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에 딱 2달 정도 공백기를 가졌었음. 그때 내 수중에는 퇴직금 뿐이었는데, 이걸로 한 3~4달은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더라. 근데 실제로는 1달 반 정도 밖에 못 버텼음. 왜냐면 회사원일 때는 신용카드를 긁어도 들어오는 월급으로 막을 수 있었는데, 백수가 되고 나니 그럴 수가 없잖아. 신용카드 대금에 월세에 생활비까지 겹치니까 그냥 잔고가 훅~ 삭제됐어 ㅠㅠ 게다가 소비 규모를 줄이는 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음. 체감상 퇴사 후 씀씀이는 본인 계산보다 1.5배에서 2배 정도 더 들더라.
5. 웬만하면 자발적 퇴사 NO, 권고사직 YES
이건 실업 급여 때문이야. 물론 회사에서는 권고사직 잘 안 해주려고 하지. 하지만 어떻게든 상황을 만들어서 권고 사직으로 나오길 바람. 실업 급여 큰 돈은 아니지만, 이게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생활의 질+내가 버틸 수 있는 기간이 완전히 달라짐.
퇴사를 결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야. 나도 산전수전 다 겪어봤고, 세상에 얼마나 비합리적인 시스템과 또라이들이 많은지도 알아. 하지만 어차피 월급으로 먹고 살 수 밖에 없다면, 그래도 조금 더 지혜로운 선택을 하길 바라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