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황제(원제)의 후궁.
자신의 미모를 믿고 화공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기에 그림이 추하게 그려졌고, 그 때문에 총애를 받지 못했던 여자.
흉노 선우의 부인으로 내려진 뒤, 남편이 죽고 그 아들에게 또 시집을 갔다는 이유로 기구한 인생의 대명사가 된 사람.
漢道初全盛 한나라 비로소 번성하여
朝廷足武臣 조정에는 무신들 넘쳐나건만
何須薄命妾 어찌 하필 박명한 아녀자인고
辛苦遠和親 괴로워라 멀고도 먼 화친 길
掩涕辭丹鳳 눈물을 삼키며 궁궐을 작별하고
銜悲向白龍 슬픔을 머금은 채 흉노 땅으로 향하네
單于浪驚喜 선우는 놀라 그저 기뻐하지만
無復舊時容 예전의 낯빛을 다시 찾을 길은 없구나
胡地無花草 오랑캐 땅에는 꽃이 없으니
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
自然衣帶緩 자연히 허리띠가 헐렁해지는데
非是爲腰身 이는 가는 허리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네
후대의 남자들은 왕소군이 시집가는 길에 자살했다고 전설을 만들거나, 이런 시를 남기면서 왕소군의 인생이 불행했기를 빌었으나(해당 시는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소군원>)
글쎄, 왕소군이 정말로 기구하고 불행한 인생이었을까.
일단 왕소군은, 한나라 궁정에 존재했을 때 황제의 손을 탄 존재가 아니었어.
왕소군이 후궁에 있었던 원제 시기에, 황제는 태자의 모후인 왕황후를 총애하지 않고 정도공왕의 모후인 소의 부씨를 매우 총애했는데, 그 외에도 몇 명의 이름난 후궁들이 존재했거든.
그 외에도 수백 수천의 궁녀들이 있는데 미녀 하나 묻히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겠지. 전후의 수많은 황궁사가 증명하듯.
어쨌든 그렇게 수 년의 시간이 지나고, 호한야선우가 오십 정도의 나이에 한나라 황궁에 공주를 청하게 돼.
호한야선우의 등극 초기는, 흉노에게도 선우(=중국의 황제나 왕)의 난립 시기였거든.
매번 싸움을 거듭했던데다가, 제 형에게 공격당해서 패배한 뒤 어쩔 수 없이 한나라에 의탁하기로 마음먹었어.
그래서 호한야선우는 이미 선제(원제의 부황) 시기에 아들을 한나라에 입조시키고 곧 자신도 정식 신하로 입조했어.
하지만 호한야선우가 흉노를 통일한 뒤, 한나라에서 자꾸 자신들을 의심하니까 그럼 신하가 아니라 사위가 되겠다고 나서.
원나라와 고려의 사이가 그랬듯이, 상국의 공주를 받아서 사위가 되면 좀 더 긴밀한 사이가 될 테니까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지.
마침 호한야선우에게는 아들이 몇 있었지만, 정부인이 없었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공주는 당연히 제일 높은 정부인이 되니까.
하지만 원제와 선제의 딸들은 아주 어렸고 그럼 종실의 딸을 양녀로 삼아서 보내야 하나.. 싶던 찰나에 왕소군이 나서.
아무리 기다려도 총애를 받을 수 없는 상태로 황궁에서 썩어갈 판이었으니 이제는 탈출하고 싶었던 모양이야.
아주 굉장한 미녀가 자청해서 흉노로 시집가겠다고 나섰는데 본 적이 없는 여자이니 원제 입장에서는 황당.
하지만 어쩌겠어, 호한야선우와 같이 있는 자리에서 튀어나왔으니 어찌할 수도 없이 보내줄 수밖에.
야사에서는 혼수 준비가 덜 되었다고 속이고 사흘 밤낮을 원제가 취했다고 하는데 그랬다간 선우에게 쌍욕을 먹지 않았을까, 응......
어쨌든 왕소군은 이렇게 자청해서, 흉노로 시집가게 돼.
위치는 호한야선우의 정부인. 연지라고 불리는 이 자리는 당시 한나라의 황후보다 높은 권한을 자랑했어.
심지어 화번공주라고 불리던, 한나라에서 흉노로 시집가는 공주들은 선진 문물을 전파하는 지도자적 위치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왕소군은 한나라 궁정의 찬밥신세에서 완전히 달라진 인생을 살게 되었지.
이렇게 백팔십도 달라진 인생을 살게 된 왕소군은 호한야선우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하나 낳아.
그리고나서 이년만에 호한야선우가 사망.
흉노족에 존재했던 수계혼(자신의 친모를 제외한 아버지의 처첩을 대를 잇는 아들이 물려받는다) 관습에 따라 왕소군은 호한야의 아들에게 재가해.
한나라에서는 이와 같은 일을 패륜이라고 생각해서 왕소군이 비극적으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이 아들, 복주루약제선우가 왕소군보다 네댓살 어린 연하남이었거든.
연하의 새로운 남편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지, 왕소군은 복주루약제선우와의 사이에서 딸을 둘 낳아.
역시 후대의 남자들은 왕소군이 아들과의 합방을 거부해서 자살했다느니 하는 말을 꾸며내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던 거지.
복주루약제선우는 선우에 오른지 11년만에 죽었지만, 왕소군이 낳은 아들과 두 딸은 흉노족에서도 높은 지위를 누리고 살았고, 왕소군 또한 일흔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화번공주이자 두 선우의 연지로 아주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누리면서 살았다고 해.
기구하고 불행하길 바라는 동시대와 후대의 남자들의 상상과는 아주 다른 결말의 인생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