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쇼룸이 아니다
건축가 조성룡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512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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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는 삶의 보금자리가 아니라 재테크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아파트에 하자가 발생하고 부실공사의 증거가 발견되면 주민들은 집값이 떨어질세라 일제히 입단속을 한다. 주변을 압도하는 스펙터클로 우뚝 솟은 아파트는 경외의 대상이 되고, 거기 사는 사람들은 쇼룸의 마네킹처럼 ‘풍족한 중산층’의 로망을 재현하는 배우가 된다. 보여주기 위한 주택, 보이기 위한 삶을 위해서 공간은 깊어지고 삶은 공허해진다. 내 인생과 내 가족과 내 이웃의 애틋한 발자취가 담긴 아파트 오솔길, 낡은 벤치, 나와 함께 나이 먹은 느티나무의 추억은 둔중한 불도저 아래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왜 그렇게 오르려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죽을 힘 다해 기어오르는 애벌레들처럼, 우리는 더 넓고 높은 곳에 내 명의의 주택을 가지기 위해 평생 한 뼘씩 기어오르다가 끝내 한 평 땅속에 묻힌다. 우린 그 위에 어떤 현수막을 내걸까. “경축, 인생무상 체험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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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아니면 뭐예요?
“건축사죠. 국가에서 준 면허를 가지고 내가 의뢰받고 위임받은 일을 법규와 예산에 맞춰서 진행하는 건축사.”
―우리가 통상적으로 건축사라고 하면 엔지니어를 말하잖아요. 건축가라고 하면 뭔가 예술가로서의 자질을 갖춘 사람이고.
“원래 영어의 아키텍트(Architect)는 의사나 변호사처럼 면허가 있는 사람을 말해요. 그걸 우리나라에선 건축가라고 번역하죠. ‘면허와 무관하게 자기를 예술가로 규정하는 사람들’로 의미가 바뀌어 버렸고요. 내가 생각하는 내 직업은 ‘건축사 면허를 가지고 사람들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해주는 일이에요. 잘못하면 굉장히 많은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거든요. 음… 이런 적이 있었어요. 경찰에서 조사받으러 오라고 한 거예요.”
―언제요? 왜요?
“그러니까… 그게 1995년인데….”
그가 망설이다가 운을 뗀 얘기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종합사무소 제도라는 것이 있어서 큰 건물의 설계 용역을 맡을 때는 건축가 단독이 아니라 최소 3명의 건축가 이름이 필요했다. 삼풍 일을 맡은, 같은 사무실 동료의 부탁을 받고 별생각 없이 이름을 빌려주는 데 동의했다.
“형사가 질문을 하는데, ‘돈 받았냐?’ 그래서, ‘안 받았다’, ‘계약했냐?’, ‘안 했다’ 그러니까, ‘근데 여기 왜 왔냐?’ 묻더라고요. ‘당신이 불러서 왔다’고 하니까 형사가 껄껄 웃어요. ‘당신 바보냐? 돈도 안 받고 계약도 안 했는데 왜 도장을 찍어주냐?’면서… 그렇게 중요한 일을 하는 직업인데 내가 별 자각이 없었던 거죠. 그러고 나와서 엄청 울었어요. 국가의 면허를 가지고 먹고사는 사람이 그 모양이었다는 게 얼마나 부끄러운지.”
별다른 혐의 없이 풀려났지만 그는 자괴감에 가슴을 쳤다. 건축사의 기본임무는 안전과 생명을 보장하는 것이란 생각을 그때 뼈저리게 가슴에 새겼다. 지하에 매몰되어 구조만 기다리는 사람들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 없어 삼풍백화점 설계도면에 따라 직접 지하구조물 모형을 만들어 경찰에 전달했다. 뒤늦게나마 뭐든 도움이 되고 싶었다.
―구조에 도움이 되었겠네요.
“셋째 날에야 모형을 만들어 갖다줄 생각을 했으니 내가 모자란 놈이죠. 첫날 했으면 100명은 더 살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게 두고두고 가슴 아파서 세월호 때도 어렵사리 배 설계도면을 구해서 모형을 만들었어요.”
―잠수사들 참고하라고요?
“해경에도, 청해진해운에도 전화했는데 설계도면을 구할 길이 없어서 애태우다가 겨우 손에 넣었어요. 밤새도록 그걸로 모형을 만들어서 진도까지 내려가 해경에 전달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구조에 쓰인 게 아니라 보고용으로 쓰였대요.”
―뭐라고요?
“담날 청와대에서 전화 와서 하나 더 만들어 달래. 그게 왜 필요하냐고 하니까, 자기들도 보고용으로 쓰려고 한다고. 우린 보고용 만드는 사람 아니라고 하고 전화 끊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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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유명한 건축가들은 모두 그림 같은 단독주택에 사시는 줄 알았어요. 왜 아파트에 사세요?
“아파트에 대해 흔히 사람들이 가지는 두 가지 상반된 편견이 있는데, 하나는 ‘인간답게 사는 곳이 아니다’, 둘째는 ‘아파트가 돈을 번다’는 생각이에요. 둘 다 잘못되었죠. 아파트는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모여든 ‘실향민’들을 위한 거예요. 우리 아파트의 역사는 대략 40년 안팎이지만 원래 아파트, 공공주택의 역사는 자본주의의 역사와 맞닿아 있어요.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도시노동자들이 생기면서 노동착취와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해졌죠.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이상주의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좀 더 평등하게 잘사는 세상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사회적 유토피아’를 꿈꿔요.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노동자들에게 좋은 집을 제공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고 오랜 기간에 걸쳐 법과 제도가 바뀌면서 오늘날 유럽의 아파트 역사가 시작된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출발부터 노동자,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주택이 아니라 중산층을 위한 아파트로 출발했어요. 오히려 노동자, 서민들이 살던 집을 대대적으로 철거하고 쫓아내면서 목동이나 상계동에 대규모 중산층 아파트가 지어졌죠.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마포아파트 축사를 할 때부터 ‘우리가 지향해야 할 중산층의 표준’으로 아파트를 규정한 거예요. 처음부터 공공주택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거죠.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파트라고 부르지만 법적인 용어는 공동주택인데, 이걸 통칭해서 ‘하우징’(housing)이라고 하거든요. 하우스(집)에 ‘-ing’가 붙어요. 집을 만들어서 ‘공급하는 것’까지가 다 포함되는 거죠. 도시에서 일하는 실향민들을 위해 그들에게 공동주택을 지어 공급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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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이 내세웠던 ‘중산층 표준’이 우리 뇌리에 저주처럼 각인된 걸까요?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이라고 불리려면 일단 ‘아파트 30평대 이상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요. 공간의 역사나 문화적 의미를 곱씹기 전에 일단 돈으로 환산하죠.
“아파트의 발달이 아주 이상한 쪽으로 간 거예요. 바닥에 대리석 깔고, 샹들리에 달고,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집 안에 홈바도 만들고, 룸살롱식 인테리어를 자꾸 주거공간 안으로 끌어들이는 거죠. 바닥에 물고기 왔다 갔다 하고.(웃음) 남한테 보여주기 식으로 만드니까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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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이라 중간중간 내용을 발췌해왔는데 좋은 인터뷰라 다들 한번씩 읽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가져와봤어.
중간에 어처구니없는 에피소드도 있지만....ㅠㅠㅠㅠㅠㅠㅠ
건축이나 주거에 관해 관심있는 토리들에게 특히 괜찮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