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떤 글에 댓글을 달고 있었는데 글이 없어졌거든.
근데 댓글을 내가 엄청 길게 썼더라구; 그래서 그냥 버릴까하다가 길게 쓴 게 아까워서 글로 올려.
저격하는 거 아니고 앞으로도 꾸준히 논란될 것으로 예상되는 '늙은남자 젊은여자 커플'에 관한 내 생각이고
처음 썼던 댓글보다 내용을 더 추가하고 개별 게시물 성격이 되도록 다듬었어.
*미리 말해두는데 실제 연상남/연하녀 커플들이 문제있다는 것도 아니고 비난하는 것도 아니야.
내 의견에 부족함이 있겠지만 미디어가 내놓는 프레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서 써보는 거.
적은 나이 차이라도 미디어에는 연상남 커플이 연상녀 커플보다 더 많이 존재하는데 사실 몇살정도 차이나는 건 신경쓰이지도 않고 중요하다 생각하지도 않지만 미스터선샤인처럼 부녀급의 늙은남자 젊은여자 조합은 상당히 꼴사납다 싶을 정도로 거부감 드는 구석이 있음. 여태까지 헐리웃, 유럽, 한중일 등을 막론하고 영화, 드라마, 쇼 등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남자는 중년(술배 좀 나와도 괜춘)일지라도 여자만큼은 20대(반드시 쭉쭉빵빵)인 구도가 많음. 007을 대표로하는 스파이물(심지어 코미디 스파이물도)들은 물론, 히치콕의 스릴러 영화, 어드벤처물, 남자는 고정MC인 것에 비해 여자MC는 계속해서 젊은 여자로 갈아치워지던 가족오락관 등, 구시대적이지만 사실 너무너무 오래된 클래식같은 거라 그런 구도가 익숙하면서도 일반적이었고 나 역시 예전엔 익숙하게 봤었음. 물론 늙은여자와 젊은남자 조합의 작품도 당연히 존재하지만 연상남 작품에 비하면 연상녀 작품은 손에 꼽힐 정도라 통계를 내면 훨씬 적은 퍼센테이지로 나옴. 게다가 연상녀가 주인공인 로맨스물에서 여자는 자신의 나이, 즉 늙고 시듦을 끝없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경우가 연상남보다 훨씬 많으며 아예 연상녀의 늙고 시듦이 테마가 되는 경우가 빈번함. 연상남은 나이가 많아도 자연스럽게 고민이 없거나, 그냥 귀엽게 질투하는 에피가 되거나, 만일 테마가 된다면 영화 은교처럼 처녀뮤즈 운운하거나;
그리고 요즘 중년 여배우들 일거리가 적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일단 중년 여배우 원탑 작품이 거의 없는 게 첫번째 이유지만, 중년 남배우 중심 작품엔 주로 젊은 여배우들이 얽히도록 극이 짜여지기 때문인 것도 있음. 늙남젊여 조합은 남자는 능력이 있으면 젊고 예쁜 여자를 획득할 수 있다는 소유물(트로피)로서의 전제를 기반으로 하는데, 더 웃긴 건 해당 작품의 남주 능력이 굳이 쩔지 않아도;;; 기본에 충실한 것마냥 늙남젊여 조합으로 고수되어옴. 실제 일상에서 남자는 능력 중심, 여자는 외모 중심 사회를 오래 살아온 게 맞으니 현실반영적인 측면+미디어 양산의 주축이 남성중심 사회인 것, 이 두 가지 영향을 크게 받은 결과라 생각함. 그러나 여자만을 겨냥한 핀잔인 '여자는 25세가 되면 꺾인다'는 소릴 지겹도록 들었어도 여성 당사자들이 쉽게 수긍하며 자기검열하던 시대는 지났고, 이제 그 딴 헛소리 들으면 개정색하고 반박하는 시대가 왔음. 제 능력 중심으로 살면서 스스로 여권그릇 챙기는 여자들의 수와 비혼률이 서로 비례하며 높아지고 있는 사회인데, 아빠/삼촌뻘 남친들이 미디어에 등장해서 여자를 또 다시 악세사리화하는 모양새를 보면 불편할 수 밖에 없음. 만약 늙남젊여 조합의 기저에 처음부터 여성멸시(남자는 늘 나이에 구애받지 않지만, 여자는 과일취급하며 그 시듦을 평가하는)가 없었다면 병헌태리같은 커플형태를 순수한 사랑의 다양성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을 거임. 그러나 이미 그 관습이 여성멸시에서 비롯된 양상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빠/삼촌뻘 연상남이 반갑지 않은 거. 게다가 '산삼보다 몸에 좋은 고3', '10대 여자가 호두같은 이유는 까기도 힘들고 먹을 것도 별로 없어서~중략~30대 여자가 귤인 이유는 까기도 쉽고 물도 많이 나와서~중략' 등의 말들이 남자들 사이에선 오랜 은어로 돌고 있듯, 연하/연상을 상대로 한 성적 취급에서 남자와 여자의 태도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늙남젊여와 늙여젊남 커플을 같은 선상에 두고 보기 힘들다고 생각함.
병헌태리 조합같은 경우 김은숙의 첫 늙남 시도라할지라도 거부감 드는 건 마찬가지이나, 이미 김은숙이 전작 도깨비에서 아예 여고생과 30대 후반 남자를 붙여놨었던 게 지금같은 캐스팅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격이라고 봄. 나도 처음에 도깨비에서 낙엽 떨어지는 배경으로 계집아이 어쩌구하는 시 읊을 때까진 사람들이 이걸 가지고 로리타를 논하는 것은 너무 작품의 다양성을 제한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회차를 거듭할 수록 김고은이 공유를 상대로 이상한 대사(이 집에서 좀 크겠다, 섹시한 아내가 좋냐 아니면 ㅇㅇ한 아내가 좋냐 골라달라, 5백만원만 달라) 날리면서 합법 원조/로리 느낌을 물씬 풍기는 걸 보고 여고생을 상대로한 성인의 로맨스같은 게 나오면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해야겠다고 생각했음; 그리고 도깨비 사진 끌어다쓰면서 어린 여자들한테 들이대는 아재, 진지하지 않은 척 아재개그용으로 도깨비 대사 씨부리면서 끼부리는 아재 등 각양각색의 개저씨들이 출몰해서 추태부리는 걸 직접 봤는데 이게 바로 '아재 미디어'가 '아재에게 미친 영향'이라고 봄. 지 주제도 모르고 자기가 공유나 이병헌쯤 된다고 착각하는 남자들이 많은지 당장 주변에 알바 등 서비스업 하는 여자들이 기겁스러운 할아저씨들 만났다는 이야기 자주 들음(반드시 작품을 인용하지 않아도). 젊은여자는 '오늘은 좀 잘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늙은남자의 접근이 불편하고 짜증나 죽겠는데 미디어에서는 그것을 평범한 일상처럼, 하물며 멋진 서사를 통해 세기의 사랑으로 엮어서 방송하는 게 거북한 거임. 그런 정신나간 늙은남자들이 사라지고 어느 정도 균형이 맞춰진 사회가 왔을 때가 작품 내의 연상연하 커플들을 다양하게 조합하여 방영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때라고 생각함. 짜증날 사람, 피해입을 미성년자가 없으니 무슨 상관이겠어. 하지만 지금은 나이에 대한 핍박 및 편견의 성비가 이미 기울어 있고 페도필리아들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활개를 치는데 이런 작품이 나와도 될 판국이냐는 게 내 입장임. 나는 오락이든 예술이든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그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검열할 필요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 뭐 다들 입장차야 있겠지.
그리고 비윤리적인 미디어라해도 실제 사회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의 예시로 막장 드라마를 들기는 어려운 게, 이건 아예 막장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비현실성에 대한 질타 및 조롱 대상이 되는 걸 감수하고 자극적으로 끌고가는 전개이기 때문에 호의적이고 설레는 마음으로 시청할 것을 목적에 두는 로맨스물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봄. 많은 사람들이 왔다장보리의 연민정을 사랑했지만 그녀는 악녀 '엿'민정이지 롤모델이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