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캐슬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주인공을 비롯하여 부도덕한 사람들이 많은데
고작 고등학생에 가진 것도 없는 혜나에게 상대적으로 욕이 더 많다는 걸 두고
가난혐오에서 비롯된 거라고 많이들 말하잖아
몇몇 과한 댓글들 보면 가난혐오라는 것도 없진 않을 것 같은데 난 그게 전적이라는 생각은 안 들거든
1. 혜나와 예서가 서로 다른 타입의 혐성이라는 점에서는
현실에서 혜나같은 타입의 인물에게 데여본 사람들이 더 치를 떠는 것 같기도 해
실제로 그런 타입의 사람이 환경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부자인 경우도 많아서
아무래도 가난의 문제보단 이성관계를 두고 이용하거나 견제하는 방법 등이
현실에서 접하거나 당하기 쉬워서가 아닐까 싶고
2. 혜나를 제외한 혐성인 어른들이나 아이들은 하찮게, 혹은 코믹하게 그려져서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 반해
혜나는 그런 지점이 없어서 거리감이 느껴지는 이유도 있을 것 같아
당연히 이 드라마 속 최고 개차반은 강준상과 차교수 등인데
이 사람들은 드라마에서 자주 우스꽝스러워지고 이 덕에 시청자들이 긴장을 풀게 되니까
심리적으로 싫지만 친근하게, 그리고 하찮게 여겨져서 화가 조금 가라 앉는 것 같고
예서도 우주 앞에서는 너무 하찮고 쑥맥이라는 점에서 사람들 마음이 말랑해지는 것 같아
만약 예서가 짝사랑 설정없이 드라마 초반처럼 맨날 소리나 지르고
독서토론에서 웃으면서 헛소리하는 것만 나왔다면 지금보다는 옹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까
찐찐도 별명부터 성격까지 이 기빨리는 드라마에서 긴장을 풀어주는 편안한 역할을 맡아서
속물적인 모습이 있긴 해도 쉽게 공감받게 되는 것 같구
3. 그런데 1번에서 언급한 혜나의 행동, 사고방식 그대로 행하는 드라마 '주인공'들도 있는데
그런 주인공들 중에서는 청소년기 환경이 혜나처럼 가난하다는 설정이 있어도 전적인 응원을 받는 경우가 많잖아
인어아가씨의 은아리영이나, 미스티의 고혜란, 백야행의 유키호, 여인천하 정난정 등등?
남자로 치면 하얀거탑의 장준혁이나 펀치의 박정환 등이고
하얀거탑을 기점으로 이런 모랄리스 캐릭터들의 교활하면서도 영리한 모습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는데
한서진이라는 캐릭터도 어차피 혜나랑 같은 본성을 지닌 사람이고
둘 다 모랄리스 주인공들의 공통된 특징인 이기적이면서도 아주 쓰레기는 아닌,
필연적으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는 비슷한 설정을 지녔음에도 반응 차이가 나는 건
당연히 '주인공'인 한서진에 비하면 혜나의 심리나 행동기제는 적게 묘사되기 때문이고
그 어떤 이유보다도 이 점이 혜나에 대한 불호를 결정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는 것 같아
중심서사를 전적으로 부여 받는 주인공은 사람을 이용하든 뭘 하든 응원을 쉽게 받을 수 있는 것 같고
그 주인공인 한서진에게 '가장 치명적인 반대급부의 존재'가 혜나가 된다는 점에서 혜나에 대한 반감이 큰 것 같아
(사실 한서진에게는 김주영이 제일 암적인 존재지만 초기에 한서진이 절대적으로 원하던 존재였고
이 때문에 한서진네가 코디 받게 되길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상황이 좀 다른 거 같음)
그래서 처음에 그 반대급부 역할을 했던 이수임에 대한 반항들이 심했던 거라고 생각되는데
이수임의 선함과 정의로움이 일차원적으로 묘사되었다는 측면 역시
주인공 한서진에 비해 이수임에 대한 설정에는 힘을 많이 주지 못해서가 아닐까 싶어
그리고 후반으로 갈수록 이수임 캐릭터가 개선되기도 했지만
한서진이 이수임을 원하고 교류하면서부터
주인공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로 바뀌었기 때문에 이수임에 대한 여론이 변화한 것이라 생각돼
그래서 혜나가 주인공이고 혜나 중심의 서사로 전개되는 스카이캐슬이었다면
혜나라는 주인공이 '가난한' 청소년이라 하더라도 앞서 언급한 주인공들처럼 전적인 지지를 받았을 거 같아
반대로 한서진 포지션은 엄청난 미움을 받았을 거고
4. 3번에서 말한 것처럼 혜나와 관련된 정보나 서사가 더 촘촘했다면
캐슬에 입성할 때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을텐데 이미 한서진에 이입된 사람들이 많은 데다가
예서는 혐성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 아끼는 딸'이자 '주인공의 최대 목표'이니까
그냥 필연처럼 좋은 면모를 쉽게 발견하게 되면서 응원하게 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
물론 한서진 혜나 둘 다 좋거나 둘 다 싫은 사람도 있을 거구
예서는 좋지만 한서진은 너무 싫거나, 한서진 괴롭히는 예서가 너무 마음에 안 든다거나 등등 다 있겠지만
5.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앞에서 말한 이유들은 차치하고, 혜나라는 캐릭터가 '주인공 한서진'과 애증을 나누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면
나쁘지만 똑똑한 사람들의 아찔한 콜라보를 볼 때 느끼는 쾌감+'주인공이 정을 주는 라이벌'이라는 점에서
재미와 매력을 느끼고 혜나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감이 지금보다는 더 커졌을 거라고 생각이 되거든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그런 씬들이 거의 나오지 않았던 거 같아
개인적으로는 한서진이 혜나 뺨 때려놓고 허허벌판에 놓고 가는가 싶더니
차 세워서 혜나 기다리고 있고, 혜나는 또 찰떡같이 알아듣고 조수석에 올라타서는 서로 딜하는 것까지...
동족끼리 싫어하면서도 서로 착착 합이 맞는 게 정말 재밌었거든
그리고 가짜 스포였지만 밤 늦게까지 공부하다 배고파서 주방을 뒤적이는 혜나를 보고
한서진이 라면 한 그릇 끓여주는 등의 장면이 있을 거라고 해서 그것도 되게 기대했었는데
그냥 으르렁대면서 서로 긁기만 하고 끝나버렸어..
이런 부분들은 혜나 외에 한서진 캐릭터에도 더 힘을 실어주는 장면들이 됐을 거라 생각되는데
나는 혜나가 죽었을 때 그 누구보다도 한서진이 혜나 때문에 슬퍼하면서 챙겨주기를 바랬거든
근데 핸드폰 숨기고 노트북 부숴서 악착같이 쓰레기 수거차에 쳐박는 것까지 정말 충격적인 혐성이었고
거기서 사람 완전히 정 떨어지게 만들더라고...
근데 그 와중에 강준상한테 골프 약속 말고 혜나 장례식에 가야 한다면서 화낼 때나
혜나에 대한 강준상의 태도 때문에 현타 맞는 눈빛을 보일 땐 한서진에 대한 미움이 흔들려...
이게 바로 주인공 서사의 힘인가 싶고
6. 아무튼 별 생각없이 몇 줄만 써보려다가 갑자기 글이 너무 길어졌는데;;
내 결론은 그거야
그냥 이 드라마 주인공이 한서진이라서 그렇다는 거
혜나가 주인공이었으면 가난하든 말든 지금같은 불호없이 은아리영처럼 응원 받았을 거라고 생각!
사람들은 캐릭터 설정이 너무 노잼인 것만 아니면 주인공에게 쉽게 마음을 주는 것 같고
혜나 설정은 주인공으로 만들어서 촘촘히 쌓으면 아주 재밌을 설정이라고 생각돼
지금이야 한서진이 주인공이니까 혜나가 여우같이 딜하는 게 싫다는 반응이 있는 거지
혜나가 주인공이였으면 딜하면서 멕일 때마다 완전 쎄고 영리하다면서 훨씬 많은 사람들이 박수쳤을 거 같아
드라마는 결국 작감이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따라 시청자 평가가 갈리게 돼있고
다른 극혐캐릭터들과 달리 혜나는 그 포인트를 틀어줄 무언가가 없어서 더 욕먹는 거 같아
나는 개인적으로 혜나캐 너무 신선하고 존멋이라 좋음ㅋㅋㅋㅋㅋ
예서도 귀엽고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