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신내림을 받았어야 하는 운명이었어.
운명이라기보다는 사주팔자에 더 가까운 것 같아. 둘의 차이가 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중학교 시절에 가위를 자주 눌렸어. 가위 눌릴 때 진짜 귀신은 모습이 안 나타나는 거 알아?
귀신의 모습이 보이는 가위는 그냥 잠이 덜 깨서 그런 게 대다수야. 몸을 못 움직이니까 무서워서 무서운 상상을 하게 되고 그게 보이는 거야.
난 안 보이는 무언가에게 목을 졸려서 숨을 못 쉬기도 하고, 몸 곳곳에 손톱으로 긁은 것처럼 생채기가 났어. 안 되겠다 싶어서 무당집을 찾았지.
무당집을 딱히 수소문하지도 않았어. 그냥 대충 지도에 무당집 검색하고 뜨는 곳 중에서 여기다, 하면서 갔어.
무당집을 마주하면서 여긴 믿을만 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고. 그땐 뭔가를 느꼈거든.
우리 친척 중에 어린 나이에 돌아가신 분이 계셔. 얘기도 안 했는데 무당이 먼저 어린 시절에 돌아가신 분이 있네? 하면서 나잇대도 성별도 성격도 심지어 외가쪽인지 친가쪽인지도 구분해서 말하더라.
지금 와서 보면 정말 신기한 일인데 당시에는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
당시에는 언뜻언뜻 귀신도 봤었어. 귀신을 보는 눈을 영안이라고 하는데, 나는 신내림을 받지 않아서 영안이 완전히 트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영력이 있어서 보는 거라고 하더라고.
조금 여담이지만, 귀신도 한때 사람이었던 것들이라 별반 다르진 않아. 아직도 옷 잘 입고 다니는 세련된 여자 귀신을 봤던 건 안 잊혀져.
아무튼, 나는 조상 중에 신을 받던 사람이 있었고, 그래서 그 신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하더라고. 내 사주팔자 때문에 성인이 되면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는 거야.
그런데 나는 싫었어. 당시에는 믿음이 좀 약하긴 해도 개신교였거든. 가위에 자주 눌리고, 몸에 생채기가 나는 건 내가 그렇게 거부해서 그런 거래. 조상들이 '너는 우리 말을 들어야 한다'고 겁주는 거라고 하더라고.
빡치지 않아? 아니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이 갑자기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하는 거잖아. 일단 무당집에서는 예예 하고 나왔는데,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까 너무 싫고 괘씸한 거야.
그래서 신내림을 안 받겠다고 결심했지.
그때부터 신병이 시작됐어.
이유도 없이 온 몸이 아팠어. 기운이 쭉 빠지고, 상황판단을 잘 못했어. 머리에 안개라도 낀 것처럼.
몸뚱아리 전체가 누군가한테 짓눌린 기분이었어. 특히 어깨가 가장 아프고 무거웠지. 꼭 누가 매달려 있는 것처럼.
내가 너무 아파하니까 병원 가서 검사도 해봤어. CT며 피검사며 MRI까지 찍었어. 멀쩡하다고 했지.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고등학교 3학년까지 그랬어. 중간에는 아픈 게 너무 심하니까 신을 받을까 해서 개신교를 배교도 했었어. 그러니까 몸이 아픈 게 조금 낫더라고.
그리고 영혼과 관련된 온갖 지식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어. 문학 표현 중에 '신을 받은 사람처럼 원천도 모르는 지식들이 머리 속으로 들어왔다'는 게 있잖아.
나도 딱 그런 거였어. 이걸 내가 어떻게 알지? 싶은 지식들을 그냥 알고 있더라고. 사람 얼굴을 보면 그 사람 기운도 읽혔고. 예지몽도 자주 꿨었어.
그런데 여전히 괘씸한 거야. 도대체 지들이 누군데 나한테 뭐라도 맡겨놓은 양 군담? 싶었지. 그래서 몸 아픈 거고 뭐고 다 무시하고 성인 되면서 가톨릭으로 개종했어.
지금 생각하면 나도 참 대단했어. 얼굴도 모르는 것들이 깽판친다고 나도 같이 깽판 친 꼴이니까. 교리공부 할 때는 여전히 몸이 아프다가, 세례 받고 나니까 정말 깨끗하게 사라졌어.
물론 내가 믿음이 강해진 것도 있겠지만. 괜히 큰 신을 믿는 게 아니구나- 싶기도 하더라고.
혹시 옛날의 나처럼 신병 앓는 사람이 있다면 가톨릭 한번 믿어봐. 껍데기만 가톨릭이어서는 안 되고, 진심으로 믿어야 해.
종교를 수단으로 삼는 걸 그놈들이 알면 더 난리치거든.
지금은 세례받은 후 몇 년이 흘렀어.
그 전 까지는 간간히 봤던 귀신들을 그 이후로 한 번도 본 적 없어. 사람 기운이 읽히지도 않고, 예지몽을 꾸지도 않아. 특이하다고 느낄만한 사건은 전혀 없었어.
그래서 난 내가 받았어야 했다던 신내림의 신이 허접쓰레기라고 생각해. 아니면 악령이거나. 지 맘대로 안 한다고 중딩 괴롭히는 꼴 보면 답이 나오지 않아?
물론 세상에는 진짜 신을 받은 무당들도 많아. 근데 그런 사람들의 신은 진짜 신이고, 나한테 왔던 건 그냥 쓰레기였던 거야. 어떻게든 지들 배 채워보려고 나한테 기생하려 했던 것들이지.
그런데 여전히 무언가를 느끼거나 읽히기는 해. 아주 약하긴 하지만. 귀신과 관련된 얘기를 할 때면 특히 그래. 온 몸의 신경이 기민해지는 느낌이야. 그리고 어깨를 짓누르는 느낌이 들어. 누군가가 올라 타 있는 것처럼.
지금도 그래. 본인 얘기 쓴다고 구경중인 것 같아.
영력이라고 할만한 건 지금은 거의 다 사라졌지만, 그 때 알았던 지식들은 여전히 머리에 남아있어. 시간이 흐르면서 지식들도 서서히 옅어지고 있지만.
그래서 다음에는 그런 지식들을 풀어보려고 해. 아마 불문율에 관련된 내용이 주가 될 것 같아. 이유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하게 되면 화를 입는, 하지 말아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 말이야.
언젠가 또 보자.
(20:35 +추가)
달아준 댓글 전부 잘 읽었어. 솔직히 고마워. 아무한테도 밝힌 적 없기는 했지만, 이런 내용으로 이렇게 응원받기는 처음이었거든.
댓글 하나하나에 전부 고맙다는 덧글을 달고 싶지만 부끄러움이 좀 많아서... 이해해줘.
마음이 튼튼하다거나 강단있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봤어. 난 내가 그냥 고집이 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도 볼 수 있구나. 고마워. 다들 친절하고 자상하네. 복 받을 거야.
잡신이라는 단어가 있었네. 쓰다보니까 화가 나서 허접쓰레기라는 단어밖에 생각이 안 났어. 나한테 왔던 건 잡신이 맞는 것 같아. 그래서 내가 더 거부했던 것 같고.
만신까지는 아니어도 어느정도 끗발 있는 신이었으면 받았을지도 몰라. 받아야만 하는 것일 테지만. 힘이 세면 그만큼 거부하기도 어렵거든. 나한테 왔던 건 능력도 뭐도 없어서 내가 싫다고 씩씩거리기만 했는데도 간 거지.
결국 허접쓰레기지 뭐. 지금도 내 어깨 눌러대는 것밖에 못하는 허접. 후려침 당해서 기분 나쁘겠지만, 허접인 건 사실인걸.
근데 생각해보면 얘네도 참 징하긴 하다. 꺼지라고 발광한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여태까지 내 주위에 있는 걸 보면. 조상이라 그런 걸까? 하지만 난 핏줄에 딱히 연연 안 하는데 말이야.
얘네들 있다고 딱히 득이 된 적은 없어. 학생 때 찍었던 문제나 맞추게 해주지. 이상한 것들만 예지하고 맞추게 했었거든. 진짜 하등 쓸모없는 이상한 녀석들이야.
내 일화들을 듣고 싶다고 했는데, 딱히 일화라고 할 건 없어. 머리가 나빠서 기억을 잘 못 하기도 하고.
그냥 꿈에 흰 옷을 입게 되면 꼭 주변 누가 죽는다던지, 이상한 예감이 들면 그게 맞아 떨어진다던지, 무작위인 무언가가 나올 때 다음에 뭐가 나올 지 맞춘다던지... 이상한가? 그래도 로또 번호는 몰랐단 말이야. 그게 더 억울해.
무당을 만났을 때 무당이 내가 남들보다 기가 몇 배라고 한 게 기억나긴 해. 하지만 얼굴이 맹하게 생겨서 맨날 밖에서 도를 아십니까가 꼬여. 내가 도다 임마, 하고 싶지만 참고 있어.
진짜 소개해 줄 일화가 몇 개 없어. 신 받아야 한다는 얘기 듣고 나서 혼자 분신사바 했다가 귀신이 붙을 뻔한 적은 있어. 다들 분신사바는 하지 마. 이상한 게 꼬일 수 있어.
사실 이상한 게 꼬여도 "꺼져 이 ㅆㅂ로마!!!" 하는 마음이면 거의 꺼지긴 해. 걔네도 결국 사람이었으니까 미친 놈 보면 도망가거든. 그런 각오로 살아. 더 재밌는 일화가 생각나면 다음 글 마지막에 짧게 써 볼게.
가톨릭 신자가 되어 믿음으로 물리쳤다는 말에 조금 쑥쓰러웠어. 사실 난 양아치 신자거든. 성당 안 나간지도 3년 넘었고. 아마 난 지옥에 가지 않을까, 생각하고는 있어. 양아치 신자여서 뿐만이 아니라, 한 번 배교를 했었잖아. 스스로 빠져나간 양인데 다시 그 울타리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 싶고.
소소하게 신성모독도 많이 했어. 신ㅊㅈ 이ㅁㅎ 터지고 나서 그렇게 머리 까진 놈이 어떻게 재림예수냐, 우리 예수님 머리숱 풍성하시거든? 하면서 농담도 따 먹고... 난 양성애자인데 주님께선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그 말을 경건하게 실천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시간 혹시 남는다면 나를 위해 빌어줘. 이 양아치가 부디 천국에 갈 수 있게.
그리고 가톨릭 신자면서 다른 신과 귀신의 존재를 믿는 거냐는 얘기도 있었는데, 믿는다기 보다는 느끼고 경험한 거니까 부정할 수는 없더라고. 유일신 사상인 종교에서 이렇게 생각해서 더 지옥행 특급열차일 것 같긴 한데... 어떻게든 되겠지. 나중에 심판대에 가서 싹싹 빌어보려고.
사실 잡신은 신이라고 생각 안 해. 이름만 신이지, 그냥 이승 떠도는 조금 기 센 영혼들이야. 걔네도 그냥 귀신이지 뭐. 만신은 함부로 말하면 나한테 화 내실 수도 있으니까 말 아낄게. 하지만 잡신들은 산 사람 그만 괴롭히고 그냥 곱게 저승으로 갔으면 좋겠다. 지금 이 글 보는 애 뒤에 있는 너 말이야.
미안. 놀랐어? 장난 좀 쳐봤어. 하지만 어딘가에는 분명 내 뒤에서 찌그러져 있는 얘처럼 산 사람이 읽는 글 훔쳐보는 거 좋아하는 변태같은 귀신들도 많아.
이승에 미련 좀 그만 버려. 그러다 영영 구천 떠돌고 이상한 거에 먹히는 수가 있어.
이렇게 관심을 많이 받을 줄은 몰랐어. 그냥 넋두리처럼 쓴 글이었거든. 이곳만큼 익명성이 잘 보장되면서도 깔끔한 곳은 없잖아. 그래서 한번 털어놓고 싶었어.
털어놓는 것도 있지만, 내가 말한 '지식들을 풀어보겠다'고 한 게 본 목적이긴 해. 예전부터 쭉 그런 느낌을 받았어. 내가 알고 있는 걸 말해서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아마 이것도 내 주위에 있는 걔네들이 불어넣는 생각일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남 돕는 거니까 이건 굳이 마다하지는 않으려고. 천기를 누설하는 것도 아니니까 화를 입지도 않을 것 같고.
혹시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줘. 개인의 사주팔자를 해석하거나 꿈을 풀이하는 거, 앞날을 내다보는 것 같은 건 못해. 난 신을 받지 않았으니까. 영험함이 없거든.
하지만 궁금증에 대해서는 내가 알고 있는 지식 선에서 알려줄 수 있어.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미신 관련된 내용들 있잖아. "~는 하지 마라"고 하는데 아무도 왜 그런지는 모르는 거. 누구한테 물어보기도 뭐했던 거. 최대한 대답해볼게. 모르는 건 모르겠다고 선 긋겠지만... 이해해줘. 난 지금 그저 남들보다 기가 세고 조금 영력이 있는 일반인이니까.
빨리 돌아와 달라는 얘기도 봤어. 남들처럼 현생에 치여 살고 있어서 빨리는 안 되겠지만, 언젠가 돌아올게. 그때 이런 애도 있었지, 하고 살짝만 기억해주면 좋을 것 같아.
그동안 즐겁게 살고 있어.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많이 웃고, 즐기고. 그게 영혼에 좋아. 다음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