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에서 내려다 본 서울은
마치 황량한 황무지와도 같았다.
땅바닥과 거의 구분이 안 되는 납작한 황토빛 초가집 투성이에
도로도 없고, 고층 건물도 없고 나무들과 정원도 없었다.
서울을 통틀어 2층 높이의 건물은 두세 채에 불과할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도시 중에서도
서울은 확실히 가장 기묘한 도시다.
서울은 산업도, 굴뚝도, 유리창도, 계단도 없는 도시,
극장과 커피숍이나 찻집, 공원과 정원, 이발소도 없는 도시다.
25만 명이나 거주하는 전 세계 대도시 중에서
5만여 채의 집이 대부분 초가지붕의 흙집인 곳이 또 어디에 있을까?
거리로 그대로 하수가 내다 버려 도랑이 되어버린 도시가 또 있을까?
집들은 오물과 쓰레기를 그대로 집 앞에 버려 상당히 더러웠고
7~8세의 발가벗은 아이들이 길에서 그냥 용변을 보는 일이 흔했다.
특이한 점은 이들은 오물 한가운데 살면서도
흰옷을 입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몸이 지저분해져도 목욕을 하지 않고
머리카락과 수염에는 결코 가위를 대지 않으며,
거주지는 묵은 때와 해충으로 가득하다.
그런데도 이들의 민족의상은
아랍인들의 의상보다 더 하얀색이다!
바지저고리, 치마저고리, 버선,
속옷, 외출용 도포까지 모두 하얗다.
그러나 불쌍한 여인네들은
이 흰 옷을 빨래하고 다림질하는 데에 하루의 반을 써야 한다.
이 나라에서는 아무리 귀부인의 옷이라도
무늬가 새겨진 옷감을 본 적이 없다.
기생이나 무희의 경우 화려한 색의 옷을 입지만
옷에 무늬가 그려진 것은 결코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누구를 위해서
여인들은 외모를 가꾼단 말인가?"
조선의 여자들은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남자들의 노리개였다가,
나중에는 노예 상태가 되고 마는데..
나는 이 곳에서 남자들이 일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남자들은 하루 종일 곰방대를 입에 물고 빈둥거리거나,
골목길 한가운데 옹기종기 모여 앉아 노닥거리거나 낮잠을 잤다.
반면에 조선에서 여성이 한가롭게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으며
남성과 함께 있는 것도 본 적이 없다.
남자들이 집 앞에서 잠을 자거나 담배를 피우고, 노는 동안
여자들은 집 안이나 마당에서 쉬지 않고 일을 했다.
힘든 일도 척척 해냈다.
끙끙거리며 우물에서 물을 퍼 올리고,
밭에서 일을 했고, 무거운 짐을 날랐다.
또 밤늦게까지 길쌈을 하고 다림질을 했다.
조선의 여성들은 짐 싣는 동물보다
나은 존재가 아니다.
바로 여기서,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민족일수록
문화 수준이 낮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출처 - 헤세 바르텍 <조선, 1894년 여름>
당시 19세기 제국주의 시절인만큼 서양인 특유의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시선이나
오리엔탈리즘이 묻어나는 글이긴 한데
구한말 조선 견문록 중에서 이렇게 여성인권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된게 특이해서 가져와 봄
솔직히 19세기 말이면 서양도 남녀인권 절대 동등하지 않았는데
(아직 여성참정권도 보장되지 않았고, 여성투표권을 외치던 페미니스트는 조롱당하던 시절)
여성도 아닌 '남성' 여행가의 눈에도
당시 우리나라 여성 인권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이었으면 저런 언급이 들어갔을까
특히 마지막 문장은 아시아에 대한 오만한 시선에 기분이 나쁘면서도
솔직히 틀린 말 아니라서 더 뼈아프고
외국인한테 저런 말까지 듣게만든 당시 남자들이 한심하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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