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3개월 1일..
통틀어 4842일을 함께 한 우리집 귀염둥이 모란앵무가 오늘 새벽 떠나갔어
나이가 나이인지라 언젠간 이별을 겪겠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었고
그 뒤로 장례같은 것도 찾아보면서 약간은 대비하고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오늘일거라고는 전혀..
마음은 아직 준비가 안됐나봐 막상 들이닥치니까 받아들이기 쉽지 않아
슬픔보다 후회가 너무 커
왜 더 많이 못 놀아줬을까, 왜 내가 데려와서 고생만 시키다 갔을까 하고..
요 한두달사이에 애기 상태가 너무 안좋아져서 병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차도가 없었어
처음 갔을 때부터 내원 할 때마다 꾸준하게 '나이가 있어서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을 들었고
당연히 그게 사실인건 아는데 매번 들을 때마다 너무 속상하더라
엊그제 혹시나 해서 다른 병원가서 진료를 봤는데 의사가 너무 무성의했고
본인은 해줄수 있는게 없다며 약은 타오지도 못했어..
항의하기엔 애 기력이 너무 없어서 얼른 집으로 가는게 낫겠다싶어서 걍 빨리 왔고
그 와중에 어제 아침엔 상태가 더 안좋길래 어쩔수없이 조금만 버티자~ 하고
원래 다니던 병원 다시 데리고가서 산소치료하고 약받아왔는데 그게 너무 힘들었나봐
새벽에 하도 끙끙거리길래 안아서 침대에서 재우다가 느낌이 이상해서 보니까.. 가기 직전이더라
상황을 인정하기 싫었어 왜 갑자기? 왜 지금?
그래도 마지막이니까 손으로 안아서
고마웠다고 고생많았다고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넌 세계최고의 앵무새였다고 해줬어
와중에 침대 차가운 것 같아서 전기장판 잠깐 키느라 이불에 내려놓았는데
손에 득달같이 와서 엉겨붙더라 놓지 말라고..
가면서 마지막으로 본 풍경이 못난 주인 우는 얼굴이라니 그것도 너무 미안하네
눈맞춤하면서 보낸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할지도 모르지만
병원을 다녀오지 않았었다면 좀 더 편하게 눈감을 수 있었을텐데 싶어서 내가 너무 쓰레기같고
근데 병원을 가지않은 상태에서 보냈다면 '병원을 갔으면 살렸을수도 있지 않았을까?'하고 후회했을 것 같아
(이 와중에 앵무새같은 특수동물봐주는 병원은 너무 없어서 현타 지리게 옴..
거진 다 서울에 위치해서 이틀 내내 먼 길 차태우고 고생시키다 보냈다는 사실이 너무 마음아파)
좀 더 버텨줄 수 있을 줄 알았어
식욕은 왕성해서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나봐
감기한번 안걸렸었고 누구보다 튼튼한 아이라고 생각해서 잘 이겨낼 줄 알았어
너무 힘들었던건지 급하게 갔네
우스갯소리로 내년에 중학교 들어가야지~ 그리고 또 20살되서 대학교 들어가야지~ 했었는데
그것도 얘한테 부담이었을까 미안한 것들만 자꾸 생각나
너무 미안해서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만나자고도 못하겠어
거지같던 주인 다 잊고 다른 앵무새 친구들 많이 사귀고 맛있는거 많이 먹고 즐겁게 지냈으면 해
기억하고 슬퍼하는건 나만 하면 되니까 애기는 걱정없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이따 보내주러 갈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장례 잘 치뤄줘야 우리 새 잘 갈 수 있겠지
내 생각보다 내가 얘를 정말 많이 사랑했었다는걸 깨달았어
부리 쓰다듬어주고 볼 긁어주는게 내 낙이었는데 이것도 오늘로 마지막이네
꼬소한 냄새 난다고 등에 코박고 킁킁거리던것도, 말 안듣는 앵무새라고 놀리던 것도
무염국수 오독오독 씹어먹는 소리 듣던 것도
사실 우리 귀염둥이 보내고싶지 않아
다시 일어나서 내 귀에 대고 빽빽 소리질러주고 성질내면서 손가락 콱 물어줄 것 같은데
이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미어져
아직 남아있는 먹이랑 장난감들.. 새로 사주려고 했던 것들도 많은데
당분간은 너무 슬플 것 같아
구구절절 쓰게됐는데 읽어줘서 고마워 사실 여기 아니면 얘기할 데도 없어서ㅠ
그리고 괜찮다면 우리 애기 잘 가라고 한번쯤 생각해줬으면 좋겠어..!
마지막으로 세계최고앵무새 노랑아
고생많았어 사랑해
앵무 너무 예쁘네ㅠㅠ 토리 마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앵무 많이 아꼈던 게 느껴진다. 앵무도 토리가 주인이어서, 마지막으로 토리 얼굴 보고 가서 기뻤을거야.
앵무 조심히 잘 떠나고 토리도 힘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