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정원
처음 읽고 너무 재밌어서 홀린듯이 세번째 재탕중인데 세번 보면서도 또 울었네 ㅠㅠ 아무래도 난 좀 격렬하고 사람 많이 죽어나가고 이념이 대립하고 각자의 신념에 따라 비열하거나 고귀하게 살고 이런 인간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나봐 로설인데 둘만 나와서 둘만의 감정선으로 움직이는건 취향이 아니고 사람 잔뜩 나오고 전투에 막장에 혁명 스토리가 좀 나와야해.



0. 신념과 선택의 문제에 관하여

이 소설의 거대한 줄기는 사실 필립 K. 딕의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동일한 내용임. 톰 크루즈 주연 영화로도 있지. 마이너리티 리포트 소설 원작과 영화, 낙원의 이론 셋 모두가 다른 디테일의 이야기를 하고있지만 결국 메세지는 모두 지정된 미래를 알게된다면 잠재적 범죄자를 제거하는 것이 옳은가? 라는 주제야.

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단편이고 한 사람의 개인이 어떻게 미래를 알게되면서 그 미래자체가 완성되어 버리는가에 대한 강렬한 명작임.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그보다 훨씬 개인적인 관점을 할리웃 식으로 다루고 있어. 인간이 미래를 알기 원하는 동기는 무엇인가, 인간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추구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개인의 가족사를 통해 가족영화다운 감동을 담았거든. 마지막으로, 낙원의 이론은 이런 개인들을 확장시켜서 수많은 개인이 미래예측 시스템에 휘둘려 살아가고 있음을 알 때 각자는 어떤 신념을 가지고 무슨 선택을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음.

유은우도 서재희도 정윤환도 다들 “사랑이 세상을 바꿀거야”라는 말을 하는데, 사실 이건 겉에 보이는만큼 낭만적이거나 이상적인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함. 실상, 그들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선택했을 뿐 좀 더 정확한 표현은 사랑이란 단어보다 개인의 욕망이겠지. 개개인의 욕망이 선택을 좌우하고 그것이 세상을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바꾼다는게 결국 이 소설 전체가 보여주는 이야기였음.

서재희처럼 한 개인이 자신의 모든 기준점이 되면 그것은 어쩌면 연인간의 사랑이라는 껍질을 입을 수 있을지 몰라도, 정윤환이 택한 것은 의심하고 깨어있는 삶에 대한 사랑이었고, 차인호도 그 아내와 딸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삶을 살고 죽었으며, 김서혁도 좀 다른 의미로 거짓에 무뎌지지 않는 삶을 추구하고 사랑했고, 임유현은 아마도 권력을 사랑했을테고, 그리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무언가를 사랑하고 욕망해서 그것을 최우선으로 선택한 이야기.

난 말하자면 전통적 의미에서의 보수주의자라서, 이 책이 말하는 궁극적 주제에 동의했음. 난 개개인이 속으로 가진 욕망이나 보다 좋은 지위, 더 나은 환경에 대한 욕구를 국가가 행하고 사람을 통제하는 대책보다 더 신뢰하고 있어. 저것이 집단적 힘을 가지게 되면 세상을 바꾸게 되는거지. 물론 바뀌는 방향이 도덕적으로 옳은가와는 별개의 문제가 되겠지만.



1. 유은우 - 자신의 생존을 걸고 부모의 원죄를 짊어져야 했던 주인공

유은우는 신념이라거나 뜻이 있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라 나에겐 상당히 미묘한 캐릭터였음. 유은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생존을 추구하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이미 절박한 상황에 내내 처해있었단 말이야. 유은우의 입장에서는 사실 낙원의 이론을 파괴하는거나 낙원의 이론을 주무르는 사람들을 교체하는거나 차이가 없었을테고, 중요한 건 자신을 위협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위협하는 요소가 제거되어야할 뿐이었지. 신념을 가진 이들에게 유은우는 너무 큰 변수라서 각자의 입장에 따라 주로 제거해야할 대상이 되어버렸는데 양쪽의 적이 되면 당연히 살아남기 위해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거 같음. 유은우는 그런 의미에서 생존과 사회적 이상이 어쩌다보니 맞물려서 얻어걸린 거지만 개인이 선하고 매력이 있어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한복판에서 무력이 아닌 다른 변수로 작용하는 역할을 맡고있음.

위에서 “신념이 없고 생존이 최우선이었던 사람”이라고 평했던 것에 대해 좀 더 부연설명을 해야할 필요성을 느껴서 덧붙이자면, 어떤 이는 "유은우가 신념이 없다고 하기엔 너무 박한 평가가 아닌가, 유은우는 군에서 사람들을 의미없이 죽이는 일에 대해 회의를 가졌고 낙원의 이론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가에 대해 알게된 다음에는 그것을 때려부수고 싶어할만큼 분노했으니까..."라고 반론할 수도 있겠지.

근데 나는 유은우가 가진 것이 신념보다는 인간 본연의 도덕성에 가깝다고 생각함. 내가 생존에 치중한 평가를 한 건, 글쎄, 유은우는 다른 인물들과 달리 신념을 시험받을만한 일을 겪은 적이 없잖아. 유은우는 기득권 층에 서있거나 그 혜택을 누린 적이 없고 이미 처음부터 가진 것이 없어서 뺏길 것도 없었어. 당연히 태생부터 밑바닥이고 억압한 윗계층에 대한 반발밖에 없거든... 그들을 척파하는 건 유은우에게는 당연한 일이지 자신의 입장에 따라 시험에 빠지는 형태가 아니야.

친구가 초반부 읽다가 "은우 너무 불쌍한거 아녜요? ㅜㅜ" 라고 했는데 내가 미적지근하게 "걔 정도는 저 세계관에서 별로 안불쌍한 축이라.." 이랬는데 친구도 나중에 되어서야 "유은우 본인 무력이 너무 세서 생각못했는데 생각보다 되게 보호받는 공주님 포지션이네요... 반란군 연구실에선 정윤환이 온몸바쳐 지켜주다 군에 가서는 김서혁이 지켜주고 학교가니 서재희가 지켜주고... 제일 인생이 편한 캐릭 중 하나인듯 ㅜㅜ" 해서 웃었음ㅋㅋ

사실 은우의 가장 큰 역경은 부모의 원죄를 본인이 감당해야했던거겠지. 친구도 외전에서 부모가 용뼈랑 기계장치 합쳐서 "남의 자식한테" 넣을 생각을 신나게 하는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고 마음이 아팠다고 하더라. 참 평범하게 착하고 유능한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는, 악인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사람들이 그토록 악한 일을 저지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인간의 다면성을 극명하게 묘사하고 있는거 같음. 그 집단에서는 각광받는 천재 커플이 획기적인 연구성과를 낸 것에 대해 다들 축하하고 들뜬 분위기였고. 그 무리에서 한발자국만 벗어나서 생각하면 그것이 얼마나 소름돋는 일인지 알 수 있는데도 그 내부에서는 잘못된 것이란 인지조차 하기 힘든 거지. 이러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것이 유은우가 감당해야할 원죄와 책임이 되어버렸어.

유은우가 이미 뺏긴 건 사실 많긴 하지. 부모님을 잃었고, 부모가 남의 자식 이용해 먹으려고 개발한 용의 뼈 기계장치도 몸에 강제 삽입당하고, 인간이 아닌 전리품으로 취급받고, 반란군도 정부도 유은우를 정치적 목적에서 제거하고 싶어하지. 문제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용의 뼈를 삽입하며 기억마저 잃어버려서 유은우에게 자신이 당한 심각한 일들은 실재한다기보다 책으로 읽는 것같은 어떤 먼 경험인거야. 자신이 행복한 가정을 누려본 적이 없고 인간으로서 대접받아본 적이 아예 없고 정신이 든 다음부터는 늘 정치적 핵심에 서있었으니까.


1-1. 유은우와 이선규 - 도덕과 타협의 길은 어떻게 갈리는가

이선규의 케이스를 보면 좀 더 명확하지. 유은우는 이선규가 선망하던 높은 계층과 고급 교육 등을 이미 가지고 있던 정윤환과 이선규를 비교했지만, 나는 잃은 것이 많은 밑바닥 생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이선규를 유은우와 비교하게 되었어. 둘다 생존이 최우선이었는데도 왜 이선규는 도덕성을 택하기보다 타협을 택했고 유은우는 도덕성을 택했는가. 유은우는 누린 것과 잃은 것에 대한 기억이 아예 없거든. 만나지 않은 부모의 죽음에 분노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 그렇지만 이선규는 아버지가 낙원의 이론의 선별에 의해 목숨을 잃은 순간 자신은 이 시스템의 위로 올라가서 자신이 선택받아야겠단 생각을 했지. 유은우는 이런 점에서는 특혜계층이야. 전리품으로 등록되고 이성을 되찾아 깨어난 다음에는 김서혁의 보호하에 있었고, 학교로 간 이후에는 서재희의 보호하에 있을 수 있었으니까. 유은우는 낙원의 이론에 의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잃어본 적이 없고 본인도 낙원의 이론의 선별법에서 예외적인 특별케이스 취급을 받고 있어. 나는 솔직히 유은우가 이선규를 비난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했어. 유은우는 도덕성을 택하기 너무나 쉬운 입장에 서있으니까.

나는 이선규를 너무나 이해할 수 있고 실은 나같은 사람이 사회구성원의 대다수라는 생각을 함. 정윤환이 “그래도 진실은 알아야하는게 아니야?”라는 말을 했을때, 이선규는 걱정하면서 “중요한 건 진실을 밝히느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야. 진실이든 거짓이든 네 자신과 네 주변이 감당할 수 있느냐가 문제지. 본인이 책임지지 못할 진실로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본다면 그게 옳은 거야?”라는 말을 했는데...여기서 나는 이선규가 무슨 소리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200% 이해해. 결국 다시 말하지만 내가 이 소설에서 정윤환을 제일 좋아하는 건 내가 가지지 못한 가치에 대한 동경이겠지. 나는 이선규와 서재희를 동정하고 그들에게 이입하거든.



2. 서재희 - 괴물로서 현실의 바닥을 걸어 끝내 인간의 삶에 도달한 남자

"아주 예쁘고 섬세한 것이 언젠가 존재했던 껍데기같은 사람." 손도연의 표현을 빌자면 서재희는 그런 사람이지. 사실 서재희가 주인공의 롤을 맡고 있어서 악인의 편에 서있지 않았을 뿐이지 (라기엔 악인 짓을 많이하긴 했는데 아무튼) 근본적으로 서재희는 차인호와 다를게 1도 없는 사람임. 차인호는 낙원의 이론을 폭로하는 것에 앞장서다가 아내를 잃고 딸을 잃을까 겁먹어서 낙원의 이론에 순응하며 살고 철저히 자신과 딸을 보호하는 것에만 집중했을 뿐이니까. 서재희라고 다를 건 없어. 서재희는 그 어린 시절 모두가 너는 천재고 더 높은 곳으로 가야한다고 말했을 때도 그냥 제8지구 깡촌에서 부모님과 농사짓고 살고싶어했던 아이였지만, 결국 가장 개인적이고 소중한 한 두가지가 무엇보다 절실하고 이것들이 한번 망가진 다음에는 무엇도 붙잡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

김서혁이나 한세연, 또 기타 많은 사람들이 서재희가 가장 두려운 시한폭탄인 것처럼 여기고 견제하는 것도 이해가 갔음. 유은우야 사랑에 눈이 먼 상태인데다가 서재희를 너무 절대적으로 믿어서 서재희가 뭔가를 한다면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서재희는 내가 저 세계관에 살면 진짜 위험1급 인물임. 사람의 인망을 얻어서 조종하고 통제하는 것에 능하고 사람을 부추기고 선동하는 법에 통달해있으며 어떠한 신념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저 본인이 너무 고통스러웠기에 안이 망가져있고 사회에 복수하려는 생각밖에 없는 사람이라... 그나마 유은우를 만나 유은우를 빛처럼 여겨서 유은우를 위한 환경을 만드는 것에 모든 힘을 집중해서 그럭저럭 순조롭게 풀린거지, 한세연 말마따나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세상을 구축해도 된다고 믿는 사람에게 사회 전체를 맡기는 건 미친 짓이고 사회구성원 입장에서는 자살행위임. 그리고 그 좋은 예시가 차인호였고.

그래도 내가 서재희에 대해 가장 감회가 남달랐던 부분은, 혁명의 성공 이후 그토록 원했던 대지를 매만지고 잃었던 인간성을 점차적으로 회복해가며 자신은 임유현을 죽인 것을 후회한다고, 개인이 개인을 단죄해서는 안되며 자신은 임유현을 죽임으로써 다시 한번 피해자가 되었다고 한 말이 인상깊었음. 물론 보통 사람들도 뉴스보면서 때려죽었으면 싶은 사람들 많고 부패경찰 부패판검사 보면 세상에 정의가 어디에 있나 데스노트 키라가 존재해서 심판했으면 싶을때 있지. 근데 사회적 합의라는 건 어느 한 개인의 판단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고 기준은 시대와 사회가 쌓아온 판례에 의존하는게 맞는 거잖아. 사법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개혁을 해야하는 것이 맞는 것이고.

최근에 읽은 다른 장르소설 중에 개인이 정의를 심판해도 된다는, 법치국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사상이 너무 전면에 등장해서 당황한게 있었는데, 그 소설이 왜 인기를 얻었는지는 이해했지만 난 그게 사상적으로 굉장히 위험한 소설이라고 생각했고 생명경시사상 또한 보였으며 그걸 정의구현으로 포장하는게 뒷맛이 너무 썼거든. 근데 낙원의 이론에서는 서재희의 입을 빌려 그것이 옳지 않음을 전면적으로 말해주는 문장이 있었어서 감동했음.

서재희가 인간답게 살아가는 삶을 되찾아가며 유은우가 자기는 그냥 그 사람이 사랑하는 많은 것들 중 하나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 걸 보고 이게 비록 로맨스 소설에서 내가 선호하는 타입의 불타는 세기의 사랑은 아닐지라도 현실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사랑이 아닌가 하는 마음은 들었음.


2-1. 서재희와 정윤환 - 인간과 시스템에 대한 냉소, 혹은 희망

내가 망가진 상태에서의 서재희에 대해 안좋은 소리를 많이 했지만 그건 동족혐오 같은 느낌으로 내가 내 자신에 대해 싫은 점을 서재희 안에서 발견하기 때문이겠지. 망가진 이후의 서재희는 인간에 대한 냉소와 그 어떤 신념도 없이 한사람에 대한 맹목적인 감정만으로 유지되는 삶을 살았으니까. 정윤환이 그렇게 경탄하고 몇번이고 자신의 리더가 되어주길 바랐던 어리고 행복했던 시절의 서재희, 망가진 다음에도 정윤환이 어쩔줄 모르고 주위를 빙빙 돌며 구해내고 싶어했지만 끝끝내 실패한 사람. 정윤환과 서재희는 어린 시절에 만나 서로가 아무근심없고 행복하던 시절을 함께 지나 무서운 재능이 있다는 같은 이유만으로 둘 모두 처절한 지옥에 빠져야했고 아픔을 서로 숨기다가도 결국은 서로에게 들키고 만단 말이야. 서로가 서로에게 피를 나눈 형제 이상으로 소중한 무언가라서,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증오하고 질투하고 싶은데도 서로 끝내 대립할 수 없어서 서글프고 애틋한 마음이 들더라.

사실 서재희와 정윤환은 거울의 양면같은 존재고, 둘이 유은우에게 빠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큰 맥락에서는 같아. 정윤환이 진창에서 구르고 그 어디도 시궁창이어서 삶의 매 순간이 악몽같을 때 유은우가 유일한 위안이었듯 서재희 역시 친절한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매일이 지옥인 순간을 견디고 고문당하며 간신히 숨만 쉬고 살다가 앞에서 껍데기를 쓰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존재인 유은우를 만나 구원받았지. 서재희 스스로도 알듯이 그는 운이 좋았어. 자신의 약한 치부를 들키고 마음을 저도 모르게 뺏기고 유은우와 감정적인 교류를 하고... 김서혁은 약한 면을 내보인 적 없는 굳건한 기둥같은 사람이라 유은우가 일방적으로 의지하는 남자였고, 정윤환은 유은우와 감정적 교류를 하지 못하고 유은우는 기억조차 못하는 작은 생체반응에 의지해 일방적으로 매달려왔었지. 유은우는 사실 그 누구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었지만 저 모든 조건이 겹친건 서재희일수밖에 없었고, 또한 김서혁과 정윤환에게는 유은우 말고도 너무 많은 것들에 대한 신념과 책임이 있었어. 서재희는 다르지. 서재희가 가진 신념은 낙원의 이론과 도시의 파괴에 있고 서재희는 책임을 질 생각이 전혀 없이 응 깽판치고 죽어버리지 뭐 하고 계획했다보니 모든걸 내면에서 지워왔는데 유은우 하나만이 고스란히 걸렸거든.

정윤환이나 서재희는 모두 신이 내린 완성된 천재로 표현되지만 그 재능이 스스로를 옥죄는 지옥이요 저주 같은 것이라... 그들에게 그 무시무시한 능력과 재능이 없었다면 고통을 받을 이유가 없었을테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 서재희는 자신들의 재능이 시민들을 위해 쓰여져야한다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주창하는 연설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내심 인간이란 다 똑같고 새로운 시대를 연다한들 시스템이란 결국 불완전한 인간이 다루는 것인데 또다른 문제점이 있을 거라며 냉소하지만, 정윤환은 결정적인 순간에 모두를 구할 수 있는, 자신을 지옥에 밀어넣었던 그 재능이 손안에 있음에 감사하며 그걸 모두의 미래를 구하는데 쓰고 단 한사람이라도 더 살릴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어.

실은... 난 서재희 쪽에 훨씬 공감을 많이 할수밖에 없더라.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ㅜㅜ 낙원의 이론이 부서져야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에는 동의하면서도 그보다 더 나은 시스템이 나올까하면 회의적이긴 하거든. 정윤환은 사람이 죄를 지으면 적법한 처벌이 이루어지고 윤리를 준수하며 사는 이상적인 세상을 추구해야한다고 말했지만 우리는 역사상 그런 사회를 본 적이 없으니까. 서재희 말마따나 낙원의 이론이 없어지면 또다른 권력의 재편이 일어나고 낙원의 이론 하에서 일어났던 것과 엇비슷한 일은 계속 일어나겠지. 김서혁이 우매한 민주주의 운운하는 부분에서 나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미적지근한 반응을 했을 거라고 생각함. 우리는 아직까지 민주주의보다 더 나은 정치체계를 발견하지 못했으니까. 이것도 같은 맥락이라는거지.



3. 정윤환 - 깨어있는 삶을 추구하기 위해 매 순간을 고뇌한 남자

결국 내가 제일 좋아한 건 정윤환이었는데, 로맨스적인 면이랑 상관없이 내가 서재희 같은 타입의 사람에 가까워서 정윤환 같은 사람을 동경하는 것 때문인듯. 어떤 한사람에 대해 맹목적인 감정을 가질 수는 있지만 대의에 잡히지 않는 실낱같은 미래를 꿈꾸며 나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망가지는 걸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잘 없으니까.

서재희가 남주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실 뚜렷함. 서재희는 소중한게 다 부서졌고 모든 기준점이 유은우로 남아서 살아숨쉬게 된 사람이니까... 서재희는 미래나 시민을 위해 싸운적이 없어. 그냥 유은우가 살아야하니까, 자신이 몸담고 있는 현실이 유은우가 살아야할 사회라서 모든 전쟁을 치렀고 그걸 견뎠을 뿐이지.

근데 정윤환은, 말하자면 로설남주보다 소년만화 주인공에 가까운 인물이거든. 정윤환이 가진게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포기하지 못하고 지키기 위해 급급했다곤 하지만... 그 어느 순간이 다시 와도 정윤환은 결국 자기 자신도, 유은우도, 가족도 선택하지 않고 사람들의 미래를 선택했을 사람임. 몇번이나 이러한 정윤환의 성향이 강조되길래 읽으면서도 아 얘는 남주는 절대 아니겠구나 했지만 심정적으로는 얘한테 제일 마음이 가더라 ㅜㅜ 난 로맨스보다 소년만화를 더 좋아하는 사람인가봐.

정윤환은 어떻게 보면 책 전체에서 가장 나약하고 부서질만큼 연약한 사람이지. 군에 속한 주제에 살인이 싫어서 어떻게든 살인을 피하기 위해 그 천재적인 능력을 군에서 살인하지 않고 남들의 이목을 속이는 것에 써야했고, 동조자의 시체를 갈아서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에도 결국 끝까지 적응하지 못하고 매번 처음보는 것처럼 구역질하고 못견뎌하고. 가슴 속에 신념을 품고 대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약한 것에 대한 연민을 놓지 못해 한순간의 선택으로 많은 이들을 죽음에 몰아넣고, 필사적으로 어떻게든 하나하나를 지키려고 하면서도 지키지 못하고 잃어버려서 괴로워하고... 사실 강진욱 말마따나 정윤환의 편에 선다는 것은 저 약한 마음 때문에 아군에게 치명적인 해가 될 가능성이 있어서 너무 위험함. 적에게 아량을 베풀었다가 뒤통수 쳐맞으면 그건 더이상 정윤환 혼자의 문제가 아니라 그 편에 서있던 모두의 목숨이 위험해지니까. 정윤환은 정말 내 개인의 안위만을 생각할 경우 적의 편에 있는 쪽이 마음이 편한 인물인 것도 맞음.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옆에 서있고 눈앞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윤환은 내가 그의 편이든 아니든 살리기 위해 노력할 사람이라,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매 순간 다할 인물이라는 점에서 또 내 편이라면 신뢰가 가긴 할거야. 이건 전투가 아니라 평화로운 시간대에서는 정말 소중한 인성이고, 그래서 모든 이들이 그에게 지도자의 자리를 맡기고 싶어하는 거겠지. 자신에게 잔인했던 사람들조차도 포함해 모든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미래를 주고싶어하는 사람... 나도 내가 속한 단체의 수장이어야 한다면 정윤환을 원할거야.

사실 정윤환 어릴때 생각하면 좀 웃긴게 ㅋㅋ 자기도 리더 시켜달라고 징징대니까 부모가 서재희 같은 애야말로 리더지 넌 아니야! 하고 단호박 먹이고 정윤환 본인도 서재희 전투스타일 보고는 반해서 자기 팀에 넣어달라고 졸졸 쫓아다녔는데 ㅋㅋㅋㅋ 의외로 서재희는 전투에 있어서만 리더를 차지할 수 있는 존재고 정윤환은 전투에 있어서는 개인전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인데 정치적으로는 서재희보다 정윤환이 더 뛰어난 리더라는 게 인간의 복잡한 면인듯.

내가 정윤환을 계속 빨고 있었더니 친구가 아니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섭남인 애잖아요... 하고 시큰둥하다가 내가 소년만화 주인공같은 애잖아요! 했더니 한참 더 보다가 울면서 윤환아 ㅠㅜㅠ 아이고 우리 윤환이 ㅜㅜㅠ 소년만화 주인공이 아니라 화초같은 애잖아요! 하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정윤환 지가 예수예요 뭐예요 ㅠㅠㅠ 하고 오열해서 거봐요!! 내가 뭐랬어요 정윤환 모두의 아픈손가락이랬자나요!! 했음ㅋㅋㅋㅋㅋ


3-1. 정윤환과 유은우 - 사랑이라는 감정을 정의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정윤환이 실험체 시절의 유은우를 사랑했다고 믿진 않아. 그렇지만 그때의 유은우가 정윤환에게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중요한 무언가였음은 틀림없다고 봐. 정윤환은 그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더이상 구분할 수 없는 상태에서 정부군과 반란군 양쪽의 밑바닥만을 계속해서 강제로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권력유지와 정치적인 문제로 정보를 통제하고 은폐하는 정부와 정부군, 살아있는 사람을 잔혹한 실험도구로 사용하는 반란군, 동조자의 시체 하나도 알뜰하게 써먹으려고 주기적으로 죄를 뒤집어씌워 죽이고 연료로 갈아넣는 양측, 대립하는줄로만 알았던 정부와 반란군이 실은 돈 문제가 얽히면 뒤로 손잡고 서로간에 속고 속이는 연극을 하고... 이 모든 걸 바라보다 보면 정의의 편에 서고 싶어도 정의란 어디에도 없는거지. 어딜 가도 개판이고 어디서도 자신은 재능을 빌미로 협박당하고 스파이짓을 강요당하고 매일이 그냥 끔찍한거야. 이런 현실이 견디기 너무나 어렵고, 현실을 알게한 신을 저주하며 그전까지는 정신이 명료하지 못하다며 흡입한 적 없던 약물을 서슴없이 흡입하기 시작하고 완전히 맛이 간 무렵에 만나게 된 실험체 유은우는 정윤환에게 있어서 너무나 연약하여 보살피지 않으면 바로 죽어버릴거 같은, 아무 계산없이 믿고 붙들수 있고 안고 잠들수 있는 유일한 애착대상이었겠지. 당시의 정윤환에게 유은우는... 자신이 괴물이 아니라 인간으로 남아있다는 단 하나의 증거였거든.

정윤환이 유은우를 사랑하게 된 건 결국 살아움직이고 말하고 웃고 화내고 소리치고 여러가지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유은우를 만난 이후였을거야. 그렇지만 그건 필연과도 같은 사랑이었을 거라고 생각함. 몇년이나 보듬고 끌어안으며 살던 인형이 그 얼굴과 몸짓으로, 그 체온으로 어느날 살아움직이기 시작하면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이가 있을까? 난 피그말리온이 갈라테아를 진정으로 사랑한 건 조각상이 아닌 숨쉬는 인간이 된 순간부터라고 생각해. 한세연도 그렇기에 “그건 사랑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이후에 “그 아이가 널 보고 웃고 살아움직이면, 넌 그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라고 물었겠지. 정윤환 본인도 알았을거야. 그래서 마주치지 않기 위해 군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깨어나기 전에 어떻게든 죽여보려고 노력했겠지. 사랑하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든 발버둥을 쳤는데... 그런데 어쩔수 없잖아. 정윤환은 결국 유은우 본인에게도 나도 널 사랑하는 내가 싫다고, 그런데 내가 널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아니지 않냐고 절규하지. 사랑하고 싶지 않은데도 어쩔수 없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마음은 안타깝고 처참할 뿐이지만... 정윤환에게도 유은우는 뜻하지 않게 동료를 죽이게 된 재앙의 씨앗이었고 스스로에겐 배신의 낙인과도 같은 존재거든. 그래서 정윤환은 자의로 사랑하는 마음을 멈출수 없으면서도 스스로의 강한 결벽성으로 사랑을 억누름.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내가 하면 로맨스로 남이 하면 불륜이라 자신에게는 너그러워지는 경향이 있는데, 얘는 본인에 대한 잣대도 엄격한게 마음에 들었음. 정윤환은 스스로를 유은우를 사랑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하니까. 끝까지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 없는 사람인거지.


3-2. 정성민, 한세연, 그리고 정윤환 - 고결한 이상은 어떻게 인간의 속에서 자라나고, 또 살아남는가를 증명하는 이들

정윤환, 한세연 정성민은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타협하는 인간들과 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야. 셋은 조금씩 다르지만 근본적인 부분에서 같은 것을 공유하는데, 이사람들은 인류애가 가장 바닥날 것 같은 현장을 매일 목격하면서도 인류애를 놓지 못하고 악인을 위한 미래까지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란 점이 바로 그것임. 이게 좀 웃긴게, 결국 사람들이 보는 건 똑같은데 같은 걸 보고서 전혀 다른 생각을 한단 말야. 정부군이나 반란군이나 선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지만 결국은 돈때문에 야합하고, 비인간적이고 잔혹한 짓을 서로 내부간에, 외부에 저지르고, 적에도 아군에도 정의란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끔찍한 상황인데 여기서 미래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고 오히려 그 모두를 위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겠다고 믿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언제나 사회의 소수겠지만, 결국 인간은 이런 이들에게서 희망을 찾고 구원을 받지 않는가 싶어.

사실 정성민은 본편 타임라인에선 이미 죽어서 등장하는데에다가 그야말로 완성된 인격을 가진, 누구나 이상으로서 추구할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박제되어 있어서 인간의 냄새는 좀 덜나는데, 그렇기에 정윤환이 더욱 매달리고 동경할 수밖에 없고 자신의 기준점이자 목표로 삼았던거 같아. 정성민은 결코 정부군에서도 반란군에서도 요직을 차지하거나 능력자로 이름을 날리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정윤환이 한세연의 질문에 “형처럼 되고 싶다”고, “안주하지 않고 끝없이 의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던 것으로 설명 가능하지. 정성민은 살아있던 시절 그 누구에게도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지만 죽어서 가장 거대한 그림자가 되어 정윤환의 생 전반을 지배한게 아닐까. 정윤환은 정성민의 그림자를 쫓다가 똑똑하고 따뜻한 사람으로서 서재희를 대안으로 생각했지만 실은 그 본인이 가장 정성민을 계승하는 부류의 사람이 되었어. 가장 나약한 인간이면서도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가지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이악물고 최선을 다하는, 모두가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로서 꼽을 수밖에 없는 존재.

한세연은 그에 반해 정성민과 같은 이상을 공유하지만 말단이어서 오히려 가장 이상을 향할 수 있었던 정성민과 다르게 반란군의 정점에 있는 사람으로서 타협하거나 더러운 일을 하거나 잔혹한 결정을 내리며 살아숨쉬는 모든 이들과 함께 지독한 삶을 연명하면서도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이더라. 한세연이 서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적지 않지만 한세연 쪽의 시점이 적다보니 이 사람의 고통과 견뎌야했던 시간은 상대적으로 안나와서 독자의 입장에서 심정적으로는 크게 정이 안갔음. 그래도 상황만으로 보았을때 이사람이 정윤환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두번째 사람이자 정윤환의 가치관을 정립한 이인만큼 어쨌든 손에 피를 묻혀도 위대한 롤을 맡고 있다는 건 알수 있었음.



4. 김서혁 - 인류를 위한 최선을 고민하면서도 약자에 대한 연민과 책임감을 잃지 않는 남자

그리고 김서혁은... 나는 김서혁이 왜 낙원의 이론을 유지하고자 하는 쪽에 섰는가에 대한 의견이 납득은 갔음. 사실 낙원의 이론이라는게 미래예측시스템이라는 이름이지만 실제로는 빅데이터 수집이고 방대한 사회와 인간의 자료에 불과하기에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문제며 부패한 인간을 갈아치우고 제대로 사용하는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면 된다는 것.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지금 사는 현대 사회도 이미 낙원의 이론 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고 우리의 행동거지와 인간관계는 이미 데이터로 수집되고 있는걸. 이것을 부순다고 부술 수 있는 종류의 것인가? 라는 의문도 들더라.

좋은 사회는 내가 생각할 때 어차피 좀 더 적극적인 자, 정직한 자, 지혜로운 자, 재능있는 자가 지도적인 위치에 임할 수 있는 사회인데... 사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시스템은 놔두고 올바른 수뇌부를 세워야한다는 김서혁의 발상은 내 기준에서 잘못되지 않았어서 낙원의 이론 시스템에 대한 존폐여부를 내 안에서 딱 자르기 어려웠음. 낙원의 이론이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단순 범죄 예측이거나 단순 미래예지 시스템이었으면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기존 데이터를 취합하여 미래를 비교적 정확히 예측가능하다는 점에서 인류는 미래를 알수 있는 예지나 운명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는 것이 주 목적일 경우 시스템을 폐기하는 것은 올바른 선택이었겠지.

나는 스스로가 사상적으로 서재희나 이선규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나에게 정윤환은 결코 되고 싶지도 않고 될 수 없기에 내가 동경하는 인물상이라면, 김서혁은 내가 되고 싶은 인물상이었어. 김서혁은 사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다면 정말 좋은 아버지와 남편이 되었을거야. 스스로 냉혹한 선택을 망설이지 않고 돌아보고 후회를 하거나 하지도 않기 위해 가정을 가지지 않는 길을 택했을 뿐이지. 군을 장악하고 자신의 신념대로 살기위해 현실적인 일들을 차곡차곡 해내면서도 자신이 남의 고통에 무뎌질까봐 경계하고, 낙원의 이론을 비틀기 위해 손을 쓰면서도 가능한 약한 아이들을 어른으로서 보호하기 위해 손이 닿는 한 모든 애를 쓰지. 서재희가 아닌 정윤환을 택한 것도 더 약한 아이를 보호해주고 싶었기 때문이고, 정윤환을 학교로 보내지 않으려 기를 썼던 것도 학교가 끔찍한 곳임을 알기에 그런걸 모르게 해주고 싶었던 거고, 유은우를 데려와서도 애지중지 하나하나 가르치며 속으로 매번 잘 자라야하는데, 하고 생각하던 김서혁.

난 김서혁은 유은우를 연애대상으로 여겼다기보다 좀 더 보호자의 마음에 가까웠을 거라고 생각함. 어쩌면 연애가 될 수도 있는 감정이었겠지만 김서혁은 시간을 되돌이킨다고 해도 유은우의 마음을 남자로서 얻기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할 사람은 아닐거란 생각이 들어. 왜냐하면 이사람에게도 결국은 신념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김서혁은 정말로 어른이고, 심정적으로 유은우를 뺏어갔다는 생각에 서재희를 결코 좋아하지 못하면서도 정윤환을 택함으로서 서재희를 보호해주지 못했던 것에 죄책감을 가지고,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거두어 아끼고, 유은우가 단순히 어리게 굴고 사랑스럽게 자신을 따르기 때문이 아니라 유은우가 일방적인 학살을 못견디고 그것에 익숙해지고 순응하기를 택하지 않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 마음을 지켜주고 싶어하는 사람임. 나도 김서혁처럼 약자에 대한 연민을 느끼고 그들을 보호하려는 책임감을 가지는 어른이 되어야겠단 생각을 많이 했음. 김서혁 나이설정이 나보다 어린데 더 어른스럽게 느껴졌다는 건 웃기지 않았지만 ㅠㅠ



5. 단점이 없는 소설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맨스적으로 두근거리는 부분이 없는건 아닌데... 서재희도 정윤환도 각자의 나름대로 절박하게 유은우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거든. 근데 이 소설은 로맨스보다 권력의 흐름과 체재 하에서 고통받는 사람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더 재밌었던것도 사실인듯. 로맨스 소설로서는 솔직히 큰 점수를 주기 어려움. 초반부의 학원물 로맨스 분위기를 제외하면 서재희와 유은우의 연애로서의 서사가 모자랐어. 그리고 학원물로서의 내 평가는 사실 좀 미묘함. 나쁘지는 않았는데 얘네 나이대가 10대도 아니고 20대 중반 즈음이라 우리 사회 시스템으로 보면 대학-대학원생 또래다보니 좀 위화감이 드는 설정이었음. 근미래세계를 표방하지만 학교라는 것에서 오는 이미지가 있어서 초반부는 다소 2000년대 초반 인소로 느껴지기도 했음.

어쨌든 낙원의 이론을 폐기하고 용이 온을 정화하고 혁명이 성공한 다음에 남은 것들이 평화와 완벽한 일상이 아니라 동조자들이 사라져서 오는 정치적 뒤틀림과 불안, 임시정부가 지탱하는 혼돈과 새로운 정책과 방안에 대해 매일 모두가 죽을만큼 일해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어느정도의 가식과 불안에 기반하여 살아가는 것으로 끝난 점이 마음에 들었음. 고작 혁명에 성공했다고 유토피아가 도래할리 없고 기존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오는 혼란을 수습하는 것에 몇십년이 걸릴지 알수 없는게 현실일테니까. 또한 시민집단도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여기지 않는 민주주의 찬양론도 아니었어서 좋았어. 시민은 사실 정치적 내막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알수도 없고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비리와 범죄에 대한 속죄를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여러모로 복잡한 상황인데 그게 꽤 그럴듯 했거든. 물론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에게 독자가 이입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꾸준히 이 인물들 모두가 결백하지 않다는 것을 계속 작가가 강조했다는 것이 나는 인상깊었어. 비록 중간 과정 어딘가를 급격히 생략했다는 느낌을 지우진 못했지만 결말 자체는 괜찮았단 얘기야 ㅋㅋ

친구랑 둘이 대화를 하면서 작가분의 사상이 매우 건전하고 도덕적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이 소설을 좋아한다는 걸 새삼 확인했음. 비록 우리 둘 다 저 세계관에 있으면 이선규 같은 행동양식을 가지지 않았을까 얘기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다소 냉정하게 보일 수 있는 다양한 인간에 대한 고찰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희망적인 메세지, 노력하는 삶에 대한 찬양과 동시에 너무 사회와 동떨어진 이상향을 제시하는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일상적인 삶에 대한 반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어서. 우리 둘 다 이게 장르소설로 분류되어서 특정 독자들만 읽는다는게 너무 아깝고 가능한 많은 이들이 읽어줬으면 좋겠단 얘기를 했음.

어쨌거나 내 인생은 그렇게 도덕적이지 못하고 대충 살고 현실과 타협해도 이런 픽션을 보는 건 행복했어. 그리고 이런 소설이 많이 나와줘야 사람들이 한번씩 도덕과 신념과 사회에 대해 환기하고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거 같아. 작가님 많이 버세요...글도 더 써주세요...ㅠㅠ
  • tory_1 2022.03.03 15:07
    비회원은 댓글 열람이 불가능합니다.
    로그인 해주세요.
  • W 2022.03.03 15:09
    비회원은 댓글 열람이 불가능합니다.
    로그인 해주세요.
  • tory_3 2022.03.03 15:15
    비회원은 댓글 열람이 불가능합니다.
    로그인 해주세요.
  • W 2022.03.03 15:17
    비회원은 댓글 열람이 불가능합니다.
    로그인 해주세요.
  • tory_4 2022.03.03 15:35
    비회원은 댓글 열람이 불가능합니다.
    로그인 해주세요.
  • W 2022.03.03 20:19
    비회원은 댓글 열람이 불가능합니다.
    로그인 해주세요.
  • tory_5 2022.03.04 01:08
    비회원은 댓글 열람이 불가능합니다.
    로그인 해주세요.
  • W 2022.03.04 01:25
    비회원은 댓글 열람이 불가능합니다.
    로그인 해주세요.
  • tory_5 2022.03.04 02:04
    @W 비회원은 댓글 열람이 불가능합니다.
    로그인 해주세요.
  • W 2022.03.04 02:19
    @5 비회원은 댓글 열람이 불가능합니다.
    로그인 해주세요.
  • tory_5 2022.03.04 02:26
    @W 비회원은 댓글 열람이 불가능합니다.
    로그인 해주세요.
  • W 2022.03.04 02:54
    @5 비회원은 댓글 열람이 불가능합니다.
    로그인 해주세요.
  • tory_6 2022.03.09 15:39
    비회원은 댓글 열람이 불가능합니다.
    로그인 해주세요.
  • W 2022.03.09 20:19
    비회원은 댓글 열람이 불가능합니다.
    로그인 해주세요.
  • tory_7 2022.04.07 03:25
    비회원은 댓글 열람이 불가능합니다.
    로그인 해주세요.
  • W 2022.04.18 13:19
    비회원은 댓글 열람이 불가능합니다.
    로그인 해주세요.
  • tory_8 2022.04.20 18:10
    비회원은 댓글 열람이 불가능합니다.
    로그인 해주세요.
  • W 2022.04.30 10:39
    비회원은 댓글 열람이 불가능합니다.
    로그인 해주세요.
  • tory_9 2022.05.15 14:12
    비회원은 댓글 열람이 불가능합니다.
    로그인 해주세요.
  • W 2022.05.29 13:01
    비회원은 댓글 열람이 불가능합니다.
    로그인 해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조회
전체 【영화이벤트】 제76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작 🎬 <퍼펙트 데이즈> 시사회 18 2024.06.10 3061
전체 디미토리 전체 이용규칙 2021.04.26 586137
공지 로설 🏆2023 노정 로설 어워즈 ~올해 가장 좋았던 작품~ 투표 결과🏆 37 2023.12.18 24959
공지 로설 🏆 2022 로맨스소설 인생작&올해 최애작 투표 결과 🏆 57 2022.12.19 174029
공지 로설 가끔은.. 여기에 현로톨들도 같이 있다는 걸 생각해주지 않는다는 기분이 든다.. 63 2022.06.17 195875
공지 비난, 악플성, 악성, 인신공격성 게시물은 불호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2022.05.04 232506
공지 BL잡담 딴 건 모르겠는데 추천글에 동정 여부 묻는건 제발ㅠㅠ 63 2022.04.08 187295
공지 기타장르 💌 나눔/이벤트 후기+불판 게시물 정리 💌 (+4.4) 135 2021.11.05 236683
공지 정보 BL 작가님들 포스타입 / 네이버 블로그 주소 📝 229 2020.10.21 250125
공지 정보 크레마 사고나서 해야할 것들 Tip(1114) 49 2018.12.28 225498
공지 노벨정원은 텍본을 요청/공유하거나 텍본러들을 위한 사이트가 아닙니다. 57 2018.11.13 305476
공지 노벨정원 공지 (23년 09월 13일+)-↓'모든 공지 확인하기'를 눌러주세요 2018.07.16 460930
공지 나래아/톡신/힐러 리뷰금지, 쉴드글 금지 135 2018.03.13 236788
모든 공지 확인하기()
1339 로설 정치물 좋아하면 이리리 님 작품 꼭 읽어보셈 (+기타 추천) 12 2022.03.22 595
1338 로설 여주 중심 판타지에 로맨스가 들어간 게 로판이지! < 싶은 토리들 들어와봐 (ver.2) 32 2022.03.18 2017
1337 로설 우리는 함께 인생을 바닥에 쏟았다 4 2022.03.14 459
1336 로설 이걸 오마주라고 할 수 있는지 한번 봐줘 (영원한 너의 거짓말 스포) 78 2022.03.12 3895
1335 로설 집착쩌는 남주 생각나는 대로 적어봄(+추천도 해주라) 27 2022.03.12 1683
1334 로설 벨토리가 생전 처음으로 로설 본 얘기 18 2022.03.07 662
» 로설 낙원의 이론, 다양한 인간상과 시스템에 대한 단상 모음 (스압, 스포많음) 20 2022.03.03 1258
1332 로설 주기적으로 울빌 취좆하는 애들은 핀트 존나 이상한 걸 지들만 몰라 ㅋㅋㅋ 59 2022.02.20 1559
1331 로설 ㄹㄷ 실시간에 있는 수보수책 = 혐한 중국 작가 작품 12 2022.02.08 991
1330 로설 나도 천원 받고싶은데…. 29 2022.02.04 703
1329 로설 최근에 읽은 로판들 리뷰 8 2022.02.02 1074
1328 로설 1월 재밌게 읽은 로설 5개 리뷰! 6 2022.02.01 750
1327 로설 #주체적인여주 #필력 #스토리위주 키워드 추천 좀 (개취 100% 추천작 있음) 58 2022.01.31 1751
1326 로설 리디신작 재밌다! 삶의 의지가 없는 기사남주 X 워커홀릭 연구소장 왕녀여주 5 2022.01.27 662
1325 로설 누군가의 인생작이란 이런 것이다 [짧은 영업글, 제발 봐줘 !!] 24 2022.01.24 1056
1324 로설 그림자의 아이 외전 내용 요약?(ㅅㅍ) 16 2022.01.18 1211
1323 로설 내가 보려고 쓰는 만족했던 후회남 목록 13 2022.01.05 2923
1322 로설 맠다작@@@헌터매드 작가님의 대한민국 선협역사상 가장 완벽한 여성서사 작품@@@@장문...논문..... 강추소개... 10 2021.12.28 1034
1321 로설 내가 지금까지 읽은 로설 목록 1탄 14 2021.12.28 1741
1320 로설 피폐물 좋아하는 톨들!! 읽고 싶은 톨들!! 제발 들어와줘!!!!ㅠㅠ 6 2021.12.25 1480
목록  BEST 인기글
Board Pagination 1 2 3 4 5 6 7 8 9 10 11 ...
/

Copyright ⓒ 2017 - dmitor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