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짧은 토요일 오후에 오늘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직도 현실감이 없어서
얼얼한 돈고를 붙잡고 어리둥절해하는 중이야
오늘을 잊지 않기 위해 후기를 적어볼게
약 3주전 샤워를 하다가 갑자기 돈고 왼쪽에 뭔가 만져진다
대충 새끼손가락 한마디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만지니 엄청 아프다
땡땡하게 부은 것이 딱 봐도 뭔가 들어차있다
...셀프집도로 안에 들은 걸 터뜨려냈다..결과물은 끔찍했지만 그래도 시원했다
대충 검색을 해보니 불길한 키워드들이 보인다. 치...루? ㄷㄷ
터뜨려 가라앉았으니 재발하지만 않으면 돼...! 하며 애써 외면해본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약 닷새 전쯤...?
주말에 간만에 마신 술과 매운 안주가 ㅅㅅ를 일으키며 기어이 문제가 생겼다
말썽이었던 그부위가 다시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계속 터지는거면 뭔가 문제가 있지 않나 다시 이것저것 찾아보니
치루의심증상을 계속 냅두면 제2의 돈고가 생길 수 있다는 끔찍한 글이 보인다....... 안돼에ㅔㅔㅔ
마음의 준비를 단디 하고, 내키지 않지만 이번주 토요일 오후 항문외과 진료를 예약해두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날은 상담만 하고 올거라고 생각했어서, 금요일저녁-토요일오전에 빡세게 운동도 했다
그러고 대망의 토요일 아침에 일어났더니만 왕뽀드락지 두개가 사타구니에 까꿍 하며 추가로 나타나있다 하하핳핳 어쩜 병원가는 날 아침에 딱 생기지 요것들
빡센 운동의 여파로 온몸에 근육통을 달고 골골 하면서 항문외과로 향했다
가면서 왠지 수치심에 현타가 와서 실소가 계속 나왔다
행인들도 많았는데 미친여자가 지나간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병원에 도착해서 과거 항문관련 병력을 확인하고 문진표도 작성하고 드디어 진료를 보게 되었다
의사쌤께 증상을 자세히 설명하며
이러저러해서 블라블라한데 좀 봐주실수있을까요...(쭈굴) 했더니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그럼요 당연히 봐드려야죠 어디 한번 봅시다! 하고 유쾌하게 말씀하신 의사쌤......감사합니다
덕분에 엄청 긴장이 좀 풀렸다
하의를 까고, 새우등 자세로 누워서 돈고를 까니 열심히 환부를 살피시던 의사쌤
흠 애매한데.....육안으로는 치루는 아닐 것 같았는데 막상 만져보니 애매하네....를 중얼거리셨다.
이때부터는 수치심이고 뭐고 그저 제발 큰병만 아니게 해주소서....하고 간절하게 기도할 뿐이었다
진단이 끝나고, 소견을 들었다
치루면 환부 주변을 만져봤을 때 전선을 심어놓은 것 같은 길이 나 있는데, 환자분은 일단 촉진으로는 애매한 상태다
하지만 양상이 치루는 아닐 것 같다 치루보다는 화농성 한선염이라든지 그런 항문 주위 피부질환의 부류로 짐작된다
그렇지만 어쨌든 같은 자리에 앞으로도 계속 재발할 테니 확실하게 없애버리는게 낫겠다 그냥 수술하자
국소마취로 진행할거라 입원 필요없으나, 만약 수술 전 다시 체크했을 때 치루가 맞으면 수술 중단하고 날 따로 잡아 다시 진행할거다
(+치핵도 좀 진행됐는데 이건 그냥 둬도되는수준이니 넘어가자)
하시길래 그럼 언제쯤 해야하나요....물으니 지금바로! 라고 하신다
네...??? 지금이요??????? 저 낼모레 월요일에 출근해야하는데 그럼 출근할수있나요...? 하니
출근은 수술 끝나고 바로라도 하셔도 됩니다 라는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너무 확고한 의사쌤의 의견에 홀린듯이 오케이 하고, 절차를 밟기로 했다
당일 수술이라니! (사실 수술보다는 시술에 가깝겠지만)
환복하고 잠시 대기하는동안 간호사 선생님이 스몰톡으로 긴장을 풀어주시는가 싶었는데,
마취주사 잘 참으시라는 말씀 한마디에 날아간 긴장이 다시 다 돌아왔다
얼마나 아프길래 따로 당부까지 하시는 것인가, 불길한 예감.
수술실로 이동하고, 하의 내리고 엎드린 자세로 대기했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테이프 떼는 소리가 들렸다. 아....저걸로 나의 궁둥쓰를 벌려 고정하는거구나. 급 현타가 다시 몰려왔다.
하루종일 인간의 존엄성과 나의 돈고가 유린당하는 이 기분 하지만 건강하기 위해서 다 견뎌내야 한다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다시 마음을 다잡아본다
좀 대기하니 의사쌤이 들어오셨고 수술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내 환부는 왼쪽에 두개 오른쪽에 하나인 걸로 알고 왔는데, 오른쪽부터 섬세한 밑작업(?)이 생각보다 오래 들어갔다
뭐지 내 주요 병변은 왼쪽인데...?
며칠 전 티비에서 본, 다친 다리 대신 멀쩡한 다리를 수술해놓는 바람에 난리가 난 이야기가 생각났지만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다행히 왼쪽 환부도 곧 밑작업을 시작하시길래 일단 한숨 돌린 찰나
따끔합니다...라는 의사쌤의 말씀과 함께 마취주사가 들어왔다
Wow... 왜 간호사쌤이 미리 경고하셨는지 알 것 같은, 짜릿하고 날카로운 아픔이었다
버둥거림을 대비하셨는지 간호사쌤이 상체를 살짝 손으로 잡아주셨다
다행히 고통에 강한 스타일이라 침착하게 참아내긴 했다
마취주사가 지나간 뒤, 통각은 없어졌지만 뭔가를 하고있구나 하는 촉감은 다 느껴졌다
누르는 느낌과 소리만 없었으면 잠이 들었을 수도 있을 만큼 아픈 느낌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릴랙스할만 하면 수시로 들어오는 마취주사
제일 아팠던 주요부위 마취주사는, 손끝까지 짜릿해져오는 아픔이었다....카흑 다시 생각해도 이건 짜릿하다
무슨일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뭔가 슥슥 하는 느낌과 지지직 타는 소리, 오징어굽는 냄새(..)로 추측할때
아 칼로 째서 병변을 빼내고 레이저로 지지는 건가부다.... 싶었다
한 20분?? 걸려서 수술은 끝났고
간호사쌤이 친절하게 적출물을 보여주셨다....(악 궁금한데 안궁금해요) 아니 그런데 여섯개요???
세군데인 줄 알았던 염증 부위는 막상 까보니 여섯군데였던 것이다.... 그래서 의사쌤 밑작업이 양쪽으로 길었던 것...의심해서 죄송합니다 선생님...
충격받은 모습으로 적출물을 바라보는 나에게 의사선생님께서는
하나를 없애든 여섯개를 없애든 가격은 똑같다 but 그렇다고 이 이후에 일부러 또 여러개 키워서 모아오진 마시라며 농담을 던지셨다
운동은 언제부터 할수있냐 여쭤보니 내일이라도 하세요! 하시기에 저 크로스핏 하는데요? 했더니 아무 상관없다 하셨다
그러면서 꼭 다들 평소에 운동 안하면서 이런 수술 하면 운동부터 물어보시더라 하시길래 쌤들과 다같이 한바탕 웃었다 ㅋㅋ
의사쌤과 간호사쌤들 모두 긴장을 풀어주시려 수술시간 내내 힘써주셔서 매우 감사했다
환부를 드레싱하고, 양쪽 궁둥쓰에 진통제와 항생제를 각각 놔주시며 수술은 다 마무리가 되었다
오늘 하루는 샤워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보통 치질수술에서 보던 무통주사같은 건 따로 달아주지 않으시길래, 아 그런게 필요할 정도로 아픈 건 아닌거구나 싶어 맘이 놓였다
비용은 얼마가 들려나... 약간 긴장하며 수납하러 갔더니 76,000원이라고 하셨다 우왕..... 생각보다 많이 나오지 않아서 놀랐다
1일치 약을 함께 주시며, 내일도 오라고 하셨다. 내일은 일요일인데요? 했더니 2시간 정도 진료보신다며 오전 10시에 오세요 하셨다
마취가 채 풀리지 않은 돈고와 함께 병원 문을 나서는데 현실감이 없어서 또 웃음이 났다
또 혼자 처웃다가 문득 내일 약속이 생각이 났다.... 지금 처웃을때가 아니다
아무리 의사쌤이 출근도 가능하다고는 했지만 솔직히 최소 주말까지는 돈고에 무리를 안 줘야할 것 같은 예감.
쪽팔림을 무릅쓰고 사정설명을 한 뒤 약속을 미뤘다..... 정말 몰랐다 오늘아침까지만 해도 내가 오후에 돈고를 쨀 줄은.
저 혹시 배변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고 간호사쌤께 물으니 웬만하면 내일 진료보러 오시기 전까진 안 하시는게.... 라고 말씀하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덕분에 배가 너무 고픈데 먹기가 너무 무서워서 오늘 하루 강제 다이어트 중이다
약을 먹기 위한 최소한의 식사만 클린식으로 먹었다. 여기다 엽떡같은 걸 먹었다가는 불지옥을 경험하겠지 껄껄
수술 후 대충 8시간이 경과하고 있고, 마취는 진즉에 풀렸지만 놀랍게도 많이 아프지 않다. 오히려 약간의 간지러움과 드레싱 이물감이 더 거슬리는?
소변은 시도했는데 난이도 하여서 한숨 돌렸다.
딱딱한 바닥에 앉으라면 앉을 수는 있지만 좀 거슬려서, 급히 도넛방석을 주문해두고(검색키워드 입력했더니 치질 도넛방석으로 자동완성되더라...)
없는 동안 급한대로 목베개를 방석 대신 쓰고 있다.
그런데 뭔가 도넛방석이든 목베개든 앉아있는 자체가 좋지 않은 것 같아서 누워 지내는 게 최선인듯하다.
내일 드레싱하러 다녀와서 또 추가로 후기 남길 수 있으면 남겨볼게.
결과적으로 치루가 아니어서 너무너무 다행이었지만, 보통의 뽀드락지 같더라도 그냥 가벼이 넘기면 이게 치루로 발전될 수도 있다 하니
돈고에 문제 있으면 꼭 고민말고 항문외과로 가보자.
치료과정이 좀....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들긴 하지만 그래도 그건 잠깐이고 나중엔 전혀 부끄럽지 않아지더라고.
무엇보다도 돈고가 아프면 삶의 질이 너무 떨어지니까 ㅠㅠ 우리 건강한 배변생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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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환부 드레싱하러 다시 방문
의사쌤이 많이 아팠냐 물으시기에 생각보단 괜찮았다고 했다
진통제 필요하냐 물으시기에 있으면 좋을것같다 대답하니
괜찮으시다면서?? ㅎㅎ 라고 말하시면서 처방전을 써주셨다
그리고는 환부를 보는데
훠우…마취주사의 아픔이 10이었다면 드레싱은 8~9쯤…
쓰라리고도 뻐근한 아픔이었다 악 다시생각해도 개아파
큰 부위는 괜찮은데, 오히려 작은 부위가 아직 피가 나고 있다며 오늘 하루만 더 지혈하라고 하셨다
오늘부터는 샤워가 가능하다 하셨지만 너무 두렵다
아직 배변은 의식적으로 미루고 있는데 회사가기 전엔 해결해야할 것 같아 마음의 준비 중이다
돌아오는 금토 쯤 재방문하라고 하시는 걸 보니 그래도 별 문제없이 낫고 있구나 싶어 안심했다
이제 후기 정말 끝!!! 토리들 무서워하지말고 증상있으면 꼭 병원에 가도록 하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