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수요일 밤, 잠에서 깼다. 목이 타는 듯이 말랐다. 부엌으로 비척비척 걸어가 냉장고 문을 여니 밑반찬 몇 개와 어제 먹다 남긴 수박이 있었다. 반으로 갈라져 시뻘건 속을 드러낸 채로 랩에 싸여있는 수박을 보니 문득 어제 꾼 꿈이 생각났다.
꿈 속에서 나는 우리집 부엌에 있다. 누군가가 냉장고 문을 열고 수박을 들여다보고 있다. 새빨간 수박으로 손가락을 가져가 속을 박박 긁어낸다. 긁어낼 때마다 튀어오르는 과즙이 창백한 냉장고 불빛에 비쳐 섬뜩하다. 그의 눈빛은 마치 무엇인가에 홀린 듯 몽롱하다. 나는 문득 그가 무서워진다. 근처를 더듬어보니 마침 김치 냉장고 근처에 처박아 둔 다듬이방망이가 하나 있다. 친할머니의 유품으로 오랫동안 쓰지 않은 물건이다. 미덥지는 않지만 없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나는 다듬이방망이를 쥐고 그의 뒤로 살금살금 걸어간다. 그는 계속해서 수박 속을 긁어내고 있다. 과즙이 이상하게 검붉고 끈적해 기분 나쁘다. 그가 파내고 있는 수박을 본다. 순간 수박 대신 새파란 얼굴이 나를 노려본다. 억!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다듬이방망이를 내려친다. 그는 비명 하나 없이 쓰러져 일어나지 않는다. 시뻘건 피가 울컥울컥 흘러 검붉은 과즙과 뒤섞인다. 설마 죽었나? 나는 그의 머리를 잘라 반으로 가른다. 랩으로 감싸 냉장고 안에 집어 넣는다. 피와 과즙이 뒤섞여서 끈적끈적한 바닥을 닦아낸 뒤 안심하고 침실로 향할 때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이었고 전부 꿈이었다. 정말로 기분 나쁘고 찝찝한 꿈이었다. 그 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피와 과즙의 끈적끈적한 감각이 생각나서 불쾌했다. 그래, 마치 이렇게...
손이 끈적했다. 왠지 모르게 소름이 끼쳐서 아래를 쳐다보니
박: 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박
내 손이 붉고 끈적한 과즙을 잔뜩 묻힌 채 수박 속을 긁어내고 있었다. 문득 누군가 내 뒤로 살금살금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