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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정원] 정원의 겨울. 上
1.
정원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40살이 될 동안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 어떤 것도 신부가 되려는 정원의 결심을 넘어서는 것은 없었다. 사랑도 있었고, 자신과 함께하는 수많은 아이들도 정원에게 중요했지만, 그 이상으로 정원에겐 그 꿈이 중요했다. 신부가 되려는 꿈, 정원의 어렸을 적부터 결심한 그 꿈은 더 단단해졌으면 단단해졌지, 흔들리거나 넘어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단단한 그 결심은 아주 조그만 틈으로 물이 스며들어 균열이 생겼고, 결국은 산산 조각나 먼지처럼 날아가 버렸다.
헛웃음과 함께 입 꼬리가 올라갔다. 묘한 얼굴의 정원이었다. 허탈하면서도 행복한.
누군가가 물었다. 신부가 되지 않겠다는 것뿐인데 서랍을 그리 깨끗하게 치울 필요가 있었느냐고. 그 또한 정원은 다짐이었다. 신부가 아닌 의사로서의 삶을 살아낼 것을 신께 다짐하는 것.
생각에 잠겨있던 정원은 환기를 시킨다고 열어놓았던 시간이 너무 길었는지 손끝이 차가워짐을 느꼈다. 창문의 프레임 너머 하얀 눈이 날리고 있었다. 눈에 이끌리듯 정원은 창가에 섰다. 얼마 전 송화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진짜 겨울이네. 겨울이 왔어. 겨울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반복되던 정원의 마음에도 더 긴 겨울의 때가 찾아왔다.
2.
ER에서의 첫 만남은 그리 좋지 못했다. 겨울이 자신의 의견대로 보호자에게 여과 없이 말하는 것이 정원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송화와 익준, 준완, 석형 그리고 율제의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알다시피 정원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때도 친절을 베이스로 깔고 가는 사람이었지만 그 날만큼은 겨울이 정원의 기준에서 아주 틀린 행동을 했고, 정원은 나름 겨울을 호되게 혼냈다. 물론 커튼을 닫은 건 겨울의 부끄러움을 조금이나마 막아줄 정원의 배려였다. 그리고 정원은 생각했다. 자신과 좀 안 맞구나.
그 일 이후 ER에서 부딪히는 일들이 많아질 쯤 구더기에 쌓인 다리를 가진 환자분이 왔을 때 누구도 선뜻 다가서서 치료할 생각을 못했지만, 겨울은 다가가서 아무렇지 않게 구더기를 떼어내었다. 정원은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무뚝뚝하긴 해도 성실하던데?’ 정원은 겨울의 같은 면에서 다른 점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 즈음 익준은 정원과 준완의 방에 모여 겨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기 시작했고, 수상하게도 정원의 사진을 자주 찍어갔다. 익준이 겨울과 바람난 건 아니냐며 언급한 준완의 말에 설마 하던 정원은 테라스에서 익준과 대화하던 겨울이 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나가는 겨울의 인사를 받아준 정원은 익준에게 말했었다.
“장겨울은 안 된다!!! 정신 차려 이새끼야 맞아 뒤지기 전에 어디서 유부남 새끼가.”
그 때는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말이 이상했다. 자신의 친구 유부남 이익준이 누군가와 바람난 것이 먼저가 아니라 겨울이 안 된다니. 주, 이익준 객, 장겨울이어야하는 정원에게 그 말은 주객이 한참 전도되고도 남은 말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정원은 겨울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익준이었나, 소아외과 간호사에게였는지 출처가 기억나지 않으나(익준일 가능성이 100%.) 겨울이 어마어마하게 먹는다는 것이 정원의 귀로 들려왔다. 겨울을 신경 쓰지 않았을 때는 몰랐을 테지만 정원이 걷는 곳 어디에서든 겨울이 보이기 시작했다. 테라스에서 빵을 우물거리며 먹고 있거나, 1층 카페에서 민하와 같이 케이크를 먹고 있거나, 의국을 지나치며 보인 작은 창문 안으로 컵라면 2개와 잠든 겨울이 보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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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 감정선 따라가고 싶어서 글 써봐 ㅋㅋㅋㅋㅋ
드라마에 나온 부분이 대부분이지만 내가 그냥 덧붙인 부분도 있고 그래.ㅋㅋㅋㅋ
정원이 결심이랑 첫만남이 상편이고 봄여름이 중편 가을겨울이 하편이 될 것 같아.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