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정원

1) 내가 시집갈 날을 받아놓고

얼마 안 있어

어느 날엔가 나는 괜시리 서글픈 마음이 들어

지난 나의 사람들을 찾아보려 했을 때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고

믿을 수 없이 텅 비어진 사진첩을 마주해야 했다.

김서방이 보면 불쾌해할까 다 버렸다는

어머니를 그대로 서서 바라보다가 

비에 젖은 쓰레기통을 뒤지고

뒤지고 사라진 너의 얼굴을 찾아

울었다.

이것이 무슨 일인가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었다고

마음대로 이래도 될 거라는 내 어머니의 당당함도

나의 얼음같은 분노에 숨 죽였다.

그렇게 사진은 단 한 장도 남은 것이 없게 되었다.

상황이 그러하니 살다가 문득이라도 너와 나의 기억

하나 떠오를 때면

나는 사진도 한 장 없는 딱한 것이니

기어이 그 하나 가는 기억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사진 한 번 꺼내어 보고 웃고 말 일을

이렇게 하루가 다 가도록 우울히

만들었다.


2)벌써 6월이네요.

일년의 절반을 잘들 보내고 계신가요.

올해도 뭐그리 달라진거는 없지요.

특별히 큰 혜성이 지구와 부딪히는 일도

주변사람이 복권에 당첨되는 일도

없었지요.

예전처럼 저녁 아홉시에는 뉴스를 하고 

동네 개들은 멸종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날아다니는 자동차도 없는 세상입니다.

십년전에는 오늘이 마치 대단한 미래사회가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그때는, 십년이나 지난 오늘에 나는 정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물냉면을 좋아하구 늦게자는 습관도 그대로예요.

그렇지만 달라진것도 분명히 있지요.

그렇게도 친하던 몇몇사람들과 소원해졌고 내 살갖과 표정도 조금은 나이를 먹었네요.

그래요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예요. 그때와는 조금은 같아도 또 

조금은 다른 나예요.

3)두부와 콩나물을 사고 부츠도 한켤레 사고 집에 들어와 저녁을 먹고

무한도전을 봅니다.

또 어떤날엔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되어 가라오케에도 갑니다.

빅뱅의 거짓말을 부르려다 실패하고 결국 사랑은 창밖에 빗물같아요를 부릅니다.

오늘은 오다기리조의 도쿄타워를 보고 고등어 자반을 사가지고 집에 돌아와 어제와 비슷한 시간에 저녁밥을 먹습니다.

자반은 그대로 냉장고에 넣어두고 왠지 귀찮아 어제 먹다만 갈치를 다시 데워먹고 침대에 눕습니다.

독한술을 한 두잔하고 신문도 좀 보다가 잠에 듭니다.

저는 이렇게 지내고 있어요. 뭐 늘 그렇죠.

그러다가도 잘 지내다가도 당신이 그리워 또 참을수가 없는 날이 있습니다.

어떤가요 당신이 계신곳. 그곳에도 바람이 부나요. 그곳에도 달이 뜨나요.

날아다니는 천사를 혹시 보았나요. 그렇게 그리워하던 어머니도 만났나요.

당신이 없는 저는 그래도 그런대로 씩씩하려고 노력해요.

저도 이제 어른이고 다 컸으니까요.

아버지. 그래도 가끔은 아이처럼 궁금해요.

지금 어디에서 무얼하고 계신지.

어쩔때는 그런게 막 궁금해서 하늘을 보며 아버지의 얼굴을 찾아 봅니다.

그곳에서는 밥을 안먹어도 배가 부른가요.

꽃밭도 과일나무도 시냇가도 있나요.

우리가 보이나요.

엄마하고 나하고 경한이가. 아버지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우리들이

보이나요.


4)하얀 쌀밥에 가재미얹어 한술뜨고 보니 낮부터 잠이 온다.

이 잠을 몇번 더 자야지만 나는 노인이 되는걸까.

나는 잠이들며 생각한다.

다시 눈을뜨면 다 키워논 새끼들이랑 손주들도 있었으면 좋겠다.

수고스러운 젊음일랑 끝이나고 정갈하게 늙는일만 남았으면 좋겠다.

그날의 계절은 겨울이였으면 좋겠다.

하얀눈이 펑펑 내려 온통을 가리우면 나는 그리움도 없는 노인의 걸음으로 새벽 미사에 갈 것이다.

젊은날 뛰어다니던 그 성당 문턱을 지나 여느날과 같은 용서를 빌고

늙은 아침을 향해 걸어 나올 때 그날의 계절은 마침 여름이였으면 좋겠다.

청명한 푸르름에 서러운 세월을 숨기우고 나는 그리움도 없는 노인의 걸음으로 바삭한 발걸음을 뗄 것이다.


5)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살고 있는 이 성의없는 시대는

도무지 수고할 필요가 없는

이상한 시간속에 정체되어 있는 듯 하다


배고픈 낭만 시인

땀 흘리는 거장

고집스러운 장인은 어디에 있는가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뭐든 쉽게 알아버리고

가지고

편안하고

당연하고

이렇게도 쉽다


우리는 모나리자를 원판 뺨치게 칼라복사 하고

사카모토의 RAIN도 공짜로 다운받고

몇시간이면 유럽에 도착해 아침을 먹고

로빈슨크루소가 표류되었던 고독한 섬

야자나무 아래에서 살을 태운다


얻기 위해서

만나기 위해서

안부를 전하기 위해서

빨간 우체통 앞에 서야했던 시절은

이제 가고 없다


에집트로 가는 배삯을 마련하기 위해

일년이고 이년이고

유리그릇을 팔아본 적 없다


우리의 사랑은

더이상 위대한 개츠비 같지도 않다


6)정신에게

취향과 감흥이 다른 여러사람 알면 뭐해.

그것은 자랑거리도 못되고 그저 불려다녀야만하니 몸만 피곤한것.

나는 성격이 좀 모가나도 삐짝해도 너의 파리한 손끝과 예민한 핏대에

순종하여 함께있는 시간이 달다.

그리하여 이제껏 본적없는 내가 된다.

이런것은 참 좋은것.

뭐라해도 달콤한 것.

네가 참 못됐어도 내가 취향과 감흥이 다른 여러 착한 사람을 알면 무엇해.

그것은 역시 자랑거리도 못되고 많은 이들 가운데에 외롭기만 그지 없다.



홍진경이 되게 글을 잘 썼더라고 ㅠㅠ 요새는 여러 논란도 쉽게 나고 해서 잘 글 안 쓴다던데 (보그 인터뷰에서 한 말) 예전 글들 보다가 아쉬워서 올려봄 1차 출처는 홍진경 싸이월드고 2차는 텀블러야

  • tory_1 2017.12.14 21:29
    진짜 홍진경이 쓴 글이야..??
    되게 담백하고 리듬감있네
    글들 다 좋은거같음데 수필집 내잔 출판사 없었나?ㅋㅋ
  • tory_2 2017.12.14 21:40
    시써도 되게 잘할거같다
    너무 좋아 메모장에 저장했어
    토리야 글전해줘서 고마워
  • tory_3 2017.12.14 21:42
    맞아 홍진경 글 잘 써 ㅋㅋ 첨엔 이미지랑 달라서 의외였는데 논란 쉽게 나는 거 같아서 글 안쓴다는 얘기 보니까 선택도 현명하게 한 거 같다
  • tory_4 2017.12.14 22:10
    와 글 잘 쓴다 진짜.. 언슬 보면서 가사 느낌있게 쓰는거 보고 오..! 했었는데 글 하나하나 마음에 와닿는 느낌이야. 덕분에 잘 읽었어!
  • tory_5 2017.12.14 22:27
    1번 너무 좋다 깜짝 놀랐어
  • tory_6 2017.12.14 22:29
    느낌있게 쓴다 홍진경 수필집 내면 좋겠다
  • tory_7 2017.12.14 22:41
    와 진짜 수필 내면 사보고싶을 정도여
  • tory_8 2017.12.14 23:01
    와 대박 수필집 내줬으면 좋겠다...
  • tory_9 2017.12.15 00:26
    와 내가 알던 웃긴 이미지 홍진경과 너무 달라서 놀랬어. 보니까 참 여러 방면으로 재능있는 사람같아. 재능이 넘치는 사람들 보면 진짜 어떤 방식으로든 표출되는것 같아서 부럽기도 하고.
  • tory_10 2017.12.15 01:06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4/06/13 14:20:32)
  • tory_11 2017.12.15 01:35
    시집으로 내도 좋을 것 같은 글을이네
  • tory_12 2017.12.15 01:48
    보다가 울컥했어ㅜㅜ
  • tory_13 2017.12.15 03:20
    오랜만에 글다운 글 읽은거 같아서 좋다... 책 나오면 무조건 살텐데!
  • tory_14 2017.12.15 04:18
    이런 분인지 몰랐네... 글 공유해줘서 고마워 토리야 잘 읽었어
  • tory_15 2017.12.15 05:03
    읽다가 눈물 찔끔 났다. ㅠㅠ 찐톨아 고마워!!!
  • tory_16 2017.12.15 07:54
    고마워
  • tory_17 2017.12.15 07:57
    넘 좋아
  • tory_18 2017.12.15 08:46
    1번 너무 좋다. 가슴이 아려
  • tory_19 2017.12.15 09:15
    와... 공개하지 않더라도 꾸준히 글 쓰고 있으면 좋겠다.
    좋네...
  • tory_20 2017.12.15 09:46
    헐... 의외다
  • tory_21 2017.12.15 10:08
    되게 의외다! 무한도전 나왔던 그 홍진경? 김치 사업한다는? 진짜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같아ㅠ
  • tory_22 2017.12.15 10:30
    헐.... 책 냈으면 좋겠다 진짜 너무 글이 좋아서 놀랐어
  • tory_23 2017.12.15 10:37
    와 아버지 글보고 진짜 눈물 날뻔해써ㅠ
  • tory_24 2017.12.15 10:50
    너무 의외다.. 난 첫번째 글도 너무 좋고 아버지에 대한 글도 너무 좋아.. 수필집 냈으면 좋겠다 진짜
  • tory_25 2017.12.15 10:54
    보다가 울컥했어 ㅜㅜ
  • tory_26 2017.12.15 11:38
    멋지다. 담백해
  • tory_27 2017.12.15 13:24
    진짜 글 좋다. 책 내줬으면 좋겠다. ㅠ
  • tory_28 2017.12.15 13:42
    담백하면서도 감성적이야..
  • tory_29 2017.12.15 13:46
    옛날에 싸이월드 가끔 들어가서 글읽곤 했었는데...요즘엔 안쓴다니 아쉽다
  • tory_30 2017.12.15 13:48
    우와 정말 반전이다..글 너무 좋은데
  • tory_31 2017.12.15 14:12
    멋있다.. 더 읽고싶어져
  • tory_32 2017.12.15 14:59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3/07/24 13:31:42)
  • tory_33 2017.12.15 21:38
    와.. 좋다...
  • tory_34 2017.12.15 23:12
    맞아 홍진경 글 진짜 담백하게 잘 써. 예전에는 싸이월드에서 볼 수 있었는데 아쉽다
  • tory_35 2017.12.16 04:14
    헐... 너무 좋다..
  • tory_36 2017.12.16 11:22
    헐 나도 옛날에 싸이월드에서 이 글들 보고 홍진경 달리 보게 됨. 기본적으로 사고의 과정(?)이란게 있는 사람인 듯. 요즘 차이나는 클라스 패널로 나와서 질문하거나 의견내는 것도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인가 싶더라
  • tory_36 2017.12.16 11:27
    그리고 저 4번 글은 아마 최진실 사망 이후 첨 쓴 글일거야. 사건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도 저리 심정을 정리해서 농도가 더 짙은 느낌이었음..
  • tory_37 2017.12.16 20:44
    홍진경 글 잘쓴다...책내면 사고싶다 눈물이 찔끔 났어 ㅠㅠ
  • tory_38 2017.12.16 23:24
    3번..ㅠㅠㅠ 읽는데 눈물흘러ㅠㅠㅠ 아빠...ㅠㅠㅠㅠ
  • tory_39 2017.12.17 00:12
    와 뭐야????? 나 아까 차이나는클라스 페미니즘 편 보고왔는데 어렵다는 식의 발언 있었어서 아... 그냥 사회에 편입된, 순응하는 사람이구나 했는데 이런 글을 쓴다고??? 정말 놀랍다. 진짜 놀라워. 이런 사람이 글을 잘 쓰는거지.
  • tory_40 2017.12.17 04:47
    아 진짜 좋다.. 만약에 책이었으면 바로 샀을거 같애...
  • tory_41 2017.12.18 21:57
    나 진짜 깜짝놀랐어.. 내가 생각하던 홍진경이랑 너무 달라서.. 정말 좋다
  • tory_42 2017.12.23 18:42
    읽다가 울었어8ㅅ8
  • tory_43 2017.12.23 22:45
    글 되게 잘쓴다
  • tory_44 2017.12.24 00:33
    우와 진짜 글 잘쓴다ㅜㅜㅜ
  • tory_45 2017.12.24 13:39
    오 좋다..... 나도 책 살듯ㅋㅋㅋㅋㅋ
  • tory_46 2017.12.25 02:02
    이제 동네개들은 멸종했는데, 세상이 바뀌긴 했는가봐;

    그리고 요즘 VR엄청 리얼하고 잘 만들어졌더라구... 진짜 내가 살아서 VR같은 기계를 써보게될줄은...
    어렸을때 상상은 했었지. 가상현실기계. 진짜 10년만 지나도 VR엄청 더 발전할거같아.
    우리자식세대땐 진짜 VR로 출퇴근하고 그럴지도 모르겠더라...
  • tory_47 2017.12.26 09:24
    잘쓰네..
  • tory_48 2017.12.29 02:22
    고마워
  • tory_49 2018.01.01 03:21
    우와 글이 너무 좋다
  • tory_50 2018.01.01 20:11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18/09/13 12:48:22)
  • tory_51 2018.01.11 01:30
    아진짜 대박이다...........글 감성이 화아.....진짜....
  • tory_52 2018.02.02 10:01
    와 글 너무 좋다....
  • tory_53 2019.12.14 03:19

    하얀 쌀밥위에 가재미 친했던 사람이 안좋게 떠난후 덤덤하게 써내려간 글인데 비통한 맘이 전해져서 엄청 울었던 기억이 있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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