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상반기에 읽은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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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톨들... 하반기는 어쩌다가 책을 많이 봐서 두 편으로 나눴어...
-사회-
<김지은입니다> / 김지은
안희정 성폭력 사건을 세상에 알린 김지은의 이야기. 첫 여성 수행비서로 열심히 일했으나 존경했던 상사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더 이상 견디지 못해 미투를 결심하고,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고발 후 끊임없는 2차 가해에 시달리고, 사건이 일단락된 후에도 트라우마가 따라붙는 일상에 대한 기록이다. 읽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지만 의미는 컸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김지은처럼 버티고 용기를 낼 수 있을지, 혹은 그의 조력자들처럼 불이익을 감수하며 피해자를 지지해줄 수 있을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책에 담긴 554일 간의 이야기가 그 투쟁의 마지막이길, 앞으로 다가올 날들은 즐거움만 누리시길 바란다.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 김규진
가볍고 유머러스한 문장들 속에서도 씁쓸한 현실이 콕콕 박히는 책. 한국에서 성소수자로 산다는 건 의외로 별 일 아닌 것 같다가도 남들은 당연하게 넘기는 순간에서 턱턱 막히는 것. 하지만 저자는 주변에 끊임없이 커밍아웃을 하면서 지지를 얻고, 레즈비언 웨딩으로 회사 복지혜택을 받거나 항공 마일리지 가족결합을 하는 등 작고 단단한 성취를 이뤄나간다. '나 자신의 편의와 행복을 위해서' 행동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그 행보가 다른 성소수자에게도 용기를 주고 있다.
<여자가 운동을 한다는데> / 이은경
스포츠 기자인 저자가 각계각층의 운동하는 여자들을 인터뷰하고, 여성 체육의 현실과 대안을 진단한다. 공고에서 여자축구 동아리를 하는 학생, 주중에 회사를 다니고 주말에 라크로스 국가대표로 뛰는 직장인 등등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여성의 생애주기별 운동 경향, 기존 체육 교육의 문제점, 외국의 생활체육 정책 같은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겨우 시작한 입장에서 아주 흥미롭고 고무적인 책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홈트와 런데이를 하다말다 하는 게 고작이지만... 꾸준히 해서 나중에는 팀스포츠도 해보고 싶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김하나,황선우
생활동반자법과 관련해 추천을 받아서 읽은 책. 가족도 연인도 아닌 황선우와 김하나 두 사람이 살림을 합쳐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다른 환경, 다른 성격으로 살아온 두 사람이 부딪히기도 하고 또 그 다른 부분이 딱 맞물리기도 하면서 점차 안정된 생활을 확립해 나가는 에피소드들이 재미있었다. 사실 동거생활에 대한 로망이 크게 없는 편이라 그보다는 두 사람 모두 확고한 취향과 라이프스타일, 그에 뒷받침되는 경제력을 갖고 있으며, 마음 맞는 동네 지인들과 어울려 산다는 점이 부러웠다. 여자 2명과 고양이 4마리가 있는 자신들의 집을 'W2C4'라는 공식으로 표현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유성호
법의학자인 저자가 죽음의 의미를 고찰한 책. 1부는 법의학의 개념과 실제 형사사건의 부검 사례, 2부는 죽음에 대한 여러 정의와 관념, 3부는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과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책을 펼치면서 기대한 건 1부 같은 내용이었기 때문에 뒷부분은 좀 흥미가 떨어졌지만, 그래도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내용이긴 하다. 한국에서 노인과 젊은 여성의 자살률이 특히 높다는 대목이 씁쓸했다.
-환경-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 / 허유정
쓰레기 없는 삶, 제로웨이스트 라이프를 실천 중인 주부의 에세이. 솔직히 저자의 감성이 나랑은 좀 맞지 않았다. 그러나 제로웨이스트 라이프를 처음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부담 없이, 일단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고 마음먹게 도와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플라스틱 통에 든 샴푸 대신 샴푸바를 쓴다든가 하는, 일상생활에서 시도할 수 있는 구체적인 팁이 많다.
<나의 비거니즘 만화> / 보선
동물카페를 소비하지 말자, 모피를 사지 말자 같은 이야기는 쉽게 동의하면서도 동물성 원료를 전부 거부하는 비거니즘에 대해서는 내심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고기를 맛있게 먹고 덕다운 패딩을 입는 내가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환경오염이나 식량 문제, 동물 착취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을 많이 배웠고, 인간의 근시안적 이기심과 무신경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기후위기가 돌이킬 수 없이 심각해져 가는 시점에서 모두들 조금이라도 변화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인간 자신을 위해서라도.
-정치&경제-
<내가? 정치를? 왜?> / 이형관,문현경
젊은이들을 위해 사탐 '법과 정치'에 나올 것 같은, 정치 뉴스 이해에 도움이 될 용어와 상식들을 알려주는 책. 내용 자체보다도 모임원들과 이야기한 것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요즘 애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말을 듣는 세대이고 실제로 모르는 게 많기도 하지만, 사실은 뽑을 마음이 드는 후보를 뽑아보고 싶다는 열망, 더 나은 변화를 일으키기를 바라는 열망이 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 친절한 경제상식> / 토리텔러
독서모임에서 읽은 책. 처음에는 다른 경제 도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내용 같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뉴스 헤드라인을 예시로 들면서 정말로 경제 기사를 ‘읽는 법’을 가르쳐주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나는 저축은 좀 하는 편이지만 돈을 활용하는 감각도 없고 경제 상식도 없는 편이라 꽤 읽을 만했다. 부동산과 주식 챕터도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의 눈높이로 설명되어 있다.
<잘 쓰기 위한 재테크> / 토리텔러
<세상 친절한 경제상식>과 비슷한 주제이지만, 이 책에서는 특히 '직장을 다니며 월급을 받기 시작했지만 돈을 어떻게 굴려야 할지는 모르는 사회초년생'으로 구체적인 타깃을 설정하여 재테크 이야기를 하고 있다. 1부는 종잣돈 모으는 방법(현금흐름/통장쪼개기/예적금)을, 2부는 그 돈을 활용해 투자할 방법(펀드/주식/부동산)을, 3부는 경제생활을 하면서 주의해야 할 것들(대출/세금)을 다룬다.
<김미경의 리부트> / 김미경
코로나를 기점으로 사회와 산업의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으므로 개인은 자신의 역량을 강화해 인디펜던트 워커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 사실 그동안 이런 자기계발서 류는 누구나 다 알지만 실천을 못할 뿐인 내용을 늘어놓아 돈을 번다는 편견이 있어서 잘 읽지 않았다. 2020년에 여러 미디어에서 주워들은 내용과 크게 다를 바 없기도 하다. 그래도 막상 읽어보니 앞은 막막하지만 몸은 대책없이 퍼지는 상황에서 자극받기에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역사-
<중세의 사람들> / 아일린 파워
20세기 초에 경제사와 사회사 분야를 개척한 여성 역사학자 아일린 파워의 저술이다. 그는 소수 특권층 중심의 정치사였던 기존의 역사 서술에서 벗어나, 이름 없는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삶과 경제활동에 주목했다. 이 책에서 그는 교구 기록부, 상인의 장부, 편지 같은 시시콜콜한 기록을 통해 시골 영지의 농부, 수녀원장, 중산층의 젊은 부인, 양모 상인처럼 평범한 중세 사회구성원의 삶을 재구성하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중세가 사실은 아주 생동감 넘치는 시대였음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박물관 보는 법> / 황윤
우리나라 박물관과 그 안의 여러 유물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제의 식민주의적 의도로 설립되었던 이왕가 박물관부터 시작해, 일본인과 조선인 문화재 수집가들이 어떻게 탄생하고 어떤 유물이 그들의 손을 거쳐 오늘날까지 흘러왔는지, 3대 사립 미술관인 간송 미술관·호암 미술관·호림 박물관과 여러 대학 박물관은 또 어떻게 설립되었는지 등등 한 번씩 전시를 보러 다니면서도 잘 몰랐던 비화들이 펼쳐진다. 어디든 놀러가고 싶은 마음만 커지고 말았다.
-미술-
<방구석 미술관> / 조원재
읽지 마세요... 베스트셀러 타이틀에 혹하지 마세요... '미술관 앞 남자, 줄여서 미남이라고 불린다' 이러고 자빠진 저자소개부터 좀 빈정이 상했는데, 프리다 칼로를 소개하며 막장드라마의 주인공 운운하는 등 곳곳에서 자기가 재치있게 말하는 줄 아는 아저씨가 튀어나와서 정말 참을 수 없었다. 내용도 다른 미술사 입문서에 비해 딱히 새롭지 않은 것 같은데 차라리 다른 괜찮은 아동·청소년용 책을 찾아봤으면 좋겠다.
<클릭 서양미술사> / 캐롤 스트릭랜드
선사시대 동굴벽화부터 현대의 신 라이프치히 학파까지, 서양 미술사의 흐름을 이해하고 많은 작가들의 멋진 작품을 구경할 수 있었다. 특히 미국의 미술이나 20세기 이후 미술에 대해 거의 몰랐는데 많이 배웠고, 현대미술은 의미부여 놀음에 불과한 것 같다는 편견을 극복하는 계기도 되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각각의 작가들이 지닌 철학이다. 나는 내가 하는 무엇에도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는데, 다들 예술이란 무엇인지,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지에 대해 자신만의 확고한 가치관이 있는 것 같아서 부럽고 대단해 보였다.
<클릭 한국미술사> / 강민기 외
회화, 도자, 조각, 건축 등 한국미술의 모든 분야를 한 권에 담았는데, 그래서 정보량은 많지만 읽기엔 좀 피곤한 책이 되고 말았다. 나도 미술을 좋아하긴 하지만 불교미술에 나타나는 도상의 분류라든지 수인의 종류 같은 것들을 읽으며 내 어중간함에 신물이 났다... 그래도 불화 한구석에 조그맣게 그려진 중생은 귀엽고 인형의 집처럼 생긴 휴대용 불감도 귀엽고 영모화 안에서 총총 돌아다니는 고양이와 강아지도 귀엽고, 뭐 그래서 나름 괜찮았다. 구한말과 현대 한국 미술에 대해 처음으로 조금이나마 알게 되기도 했다.
<혼자 읽는 세계미술사 1,2> / 조은령,조은정
유럽뿐 아니라 이슬람, 중국, 인도 등의 아시아 문명과, 이들 문화권이 서로 주고받은 영향에 대한 내용을 포함시켜 세계미술사를 종합적으로 설명한 점이 돋보인다. 또 설명만 나열하지 않고 작품의 의미와 감동을 실제로 느끼게 해주려는 듯한 서술이 좋았다. 일반화되고 도식화된 미술사 서술에서 벗어나는 것이 작가들의 의도였다고 하는데, 여전히 유럽 미술사가 중심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그 내용을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동굴벽화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에 대해 설명하면서 인류에게 미술이 갖는 의미로 넘어가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