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경고
괴담, 인명 사고, 가족의 사망, 스토킹
"달마다 낯선 사람이 택배를 보냅니다"
그 이상한 상담을 받은 것은 8월 하순 경이었다.
택배 |
상담자는 우라카와 미츠토시라는 40대 남성분이었다. 도쿄에 위치한 연립주택 '코마키다 맨션'에서 혼자 산다고 한다.
평소에 기묘한 사건을 취재 · 조사하던 나의 존재를 SNS에서 알게 되어 메일을 통해 상담을 요청했다.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우케츠 님께
갑작스럽게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우라카와 미츠토시라고 합니다.
(중략)
상담드릴 내용은 다름이 아닌 정체 불명의 우편물에 대한 건입니다.
달마다 제 방에 음식이 든 상자가 배송됩니다.
발송자는 매번 다른 이름을 쓰지만, 어느 이름 하나 처음 듣는 사람입니다.
메일에 첨부한 사진은 이번 달 초순에 도착한 것입니다.
(필자 주 : 본 메일은 8월 20일에 도착했음)
상당히 불쾌하고 공포를 느낍니다.
진상을 밝히기 위해 협력해주신다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우라카와 미츠토시
메일에는 사진 한 장이 첨부되었다.
※ 기업명 · 브랜드 명에는 필자가 모자이크 처리를 했음
마치 상경한 대학생에게 부모가 보내는 살림살이 같다.
사진으로 보는 한 "불쾌한 물건을 보내서 겁을 주려고" 하는 장난기나 악의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누굴 위해서 이런 짓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더욱 불쾌했다.
여러 명의 발송자 |
이튿날 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우라카와 씨와 전화로 이야기하기로 했다.
아래는 그 대화 내용이다.
~~~~~~~~~~~~~~~~~~
우케츠(필자) : 우라카와 씨, 연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라카와 : 아뇨……. 갑자기 상담을 드려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겸손이 전화 너머로 전해지는 듯한 심약한 목소리다.
우케츠 : 본론으로 들어가서, 누가 택배를 보냈는지 정말로 감이 안 잡히십니까? 이를테면 부모님이나 친구들 말입니다.
우라카와 :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고, 요 십수 년 간은 친구도 제대로 사귀지 못 했으니…….
처자식도 없어서, 저에게 음식을 보내줄 만한 사람은…… 전혀 떠오르지 않네요.
우케츠 : 그렇군요…….
우라카와 : 그래서 처음 택배가 도착했을 때는 잘못 배송된 줄 알았습니다. 근처에 사는 다른 "우라카와" 씨에게 온 택배가 잘못 왔나 싶었어요…….
그래도 이웃집을 찾아봤지만 같은 성을 쓰는 집은 한 집도 없었습니다.
우케츠 : 음—. 그럼 혹시나 해서 말인데, 이전에 살던 사람에게 온 택배 아닙니까?
이사한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아서 그 집에 이제 살지 않는데도 그 사람에게 택배가 도착하는 경우는 자주 있으니 말이죠.
우라카와 : 그것도 생각해봤습니다. 하지만 부동산업자에게 사정을 설명했더니, 이전에 "우라카와"라는 사람이 산 기록은 없다고 했습니다.
———즉, 택배는 틀림없이 우라카와 씨에게 배송되었다는 것이다.
우케츠 : 그런데, 택배는 언제쯤부터 배송되기 시작했습니까?
우라카와 : 이사하고 나서 바로입니다. 작년 10월 초순에 이 아파트에서 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도착한 건 그 달 말경이었습니다.
우케츠 : 그때는 어떤 게 들어 있었습니까?
우라카와 : 이전에 보내드린 사진과 똑같아요. 레토르트 식품이나, 생활용 잡화나…….
우케츠 : 편지나 메시지는 없습니까?
우라카와 :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달 다른 이름으로 비슷한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우케츠 : "다른 이름으로"라는 게 이해가 안 되네요. 이를테면 어떤 이름이 있던가요?
우라카와 : 음~ ……매번 택배가 도착하면 사진을 찍는데, 방금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메일을 확인한다. 택배의 내용물과 송장을 찍은 사진이 전송되었다.
우케츠 : '요코타 마이코' '니시모토 아이' '야마자키 카에데'
……발송자의 이름은 전부 여자 이름이군요.
그리고 주소도 매번 다르지만 가나가와현 에비나시라는 곳은 공통점이네요…….
우라카와 씨, 이 지명에 대해 아는 바 있으십니까?
우라카와 : ……아뇨. 에비나시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친척이나 지인 중에 이 지역에 사는 사람도 없어요.
우케츠 : 그렇군요. 여기 적힌 주소를 한 번 전부 조사해보기로 할까요?
우라카와 : 그거라면 이미 했는데요…… 전부 실존하지 않는 주소였어요.
도로명 · 번지수 · 호수가 전부 제멋대로인 모양이라…….
———가짜 주소. 그말인 즉슨 여러 명이 아닌 한 명이 이름과 주소를 바꾸어가며 몇 번이고 택배를 보낸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이름도 전부 가명일 것이다.
가명을 쓰는 건 우라카와 씨에게 본명을 알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도, 어째서 매번 이름을 바꿔야만 하는 걸까? 발송자의 동기를 알 수가 없다.
방문자 |
우케츠 : 그런데 택배가 오는 것 말고도 다른 이상한 일은 없습니까? 이를테면 전화를 받았는데 아무 말이 없다든가 하는, 그런 일이요.
우라카와 : …………그렇군요……. 상관이 있을런지는 모르겠는데요…….
우케츠 : 사소한 일도 좋으니 뭐든 말씀해주세요.
우라카와 : 네. 사실은 딱 한 번, 저희 집 앞에 누가 온 적이 있어요.
이사 와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예요. 작년 10월 중순 즈음이겠네요. 밤에 자려고 했더니 문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평범한 발소리가 아니라 "끼익 끼익"거리는, 한쪽 발을 끌면서 움직이는 듯한 소리였어요.
그 발소리가 제 방 앞에서 멈췄어요. 손님인가 싶었는데, 1분 정도 지나도 인터폰이 울리지 않길래 신경쓰여서 상황을 보러 갔어요.
제가 현관에 다가가자 다시 "끼익 끼익" 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문을 열자 사람의 실루엣이 멀어지는 게 보였습니다.
우케츠 : 즉, 우라카와 씨가 방에서 나올 듯한 기척이 들어서 황급히 도망쳤다는 말이군요?
그 사람의 체격이나 성별은요?
우라카와 : 체격은 작은 편이었을 걸요……?
성별은…… 밤인데다가 저희 맨션은 공동 복도에 전등이 없어서 어두웠던 탓에 잘 모르겠어요.
다만…… 분명히 왼발을 끌고 다녔던 것 같아요.
쫓아갈 정도로 큰일은 아닌 것 같아서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지만요.
우케츠 : 혹시 그때 현관에 뭔가 적혀 있지는 않았습니까?
우라카와 : 아뇨, 전혀요.
———알 수 없는 방문자와 택배 발송자가 동일인물이라면,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오른다.
우케츠 : 혹시 스토커는 아닐까요?
선물을 자주 보내고 집 앞까지 슬금슬금 찾아오는 건…… 스토커 피해 사건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
우라카와 : 마흔이 넘은 남자를 스토킹하나요……?
제가 말하기도 한심하지만, 최근에는 머리숱도 꽤나 없어지고 있어서 도무지 여성들의 호의를 살 만한 외모는 아닌데요…….
우케츠 : 머리숱이 없어도 인기 있을 사람은 있습니다.
스토커라면 내버려두면 위험할 테니 이를테면 경찰에게 문의하거나, 아니면 아예 이사를 가는 등 도망칠 준비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우라카와 : 경찰이라면 아까 전에 만나고 왔어요.
그치만, 택배가 오는 것만으로는 사건으로서 의미가 없는 모양이라 그다지 진지하게 상대해주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이사를 하자니…… 돈이 없습니다.
계속 일해온 회사가 작년에 도산해서, 사원 기숙사도 폐쇄된 탓에 도망치듯이 들어온 곳이 코마키다 맨션 102호실이란 말이에요.
지금 하는 일로는 달에 2만엔을 내는 게 고작이라서…… 이사 비용은 도저히…….
———도망칠 수도 없고,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다. 진퇴양난이다.
생면부지의 오컬트 작가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을 거다.
우라카와 씨가 딱하게 느껴졌다.
우케츠 : 알겠습니다. 제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불안하시겠지만,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우라카와 : 정말 죄송합니다.
우케츠 : 다만, 지금 상태로는 단서가 너무 적군요…… 맞다.
지금까지 받은 택배는 아직 가지고 계십니까?
우라카와 : 네. 일단 전부 보관해 놨습니다.
우케츠 : 저에게 보내주실 수 있습니까?
우라카와 : ……글쎄요. 하나하나가 다 크기가 커서, 전부 보내드리는 건…….
우케츠 : 힘들겠군요. 그럼 이번 달에 받은 것만 보내주실 수 있습니까?
우라카와 : 네…… 알겠습니다. 바로 보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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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끊은 뒤,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택배 안에는 즉석 밥, 레토르트 식품, 티슈나 주방용품 등의 생활용품이 들어 있었다.
역시 아무리 봐도 살림살이 택배다.
이어서 송장 사진을 보았다.
모두 똑같은 형식으로 작성되었다.
필적도 비슷한 것으로 보아 역시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진들에는 또 하나 주목할 점이 있다.
송장 옆에 붙어 있는 증지다.
증지란 우체국 창구에서 직원이 우표 대신에 뽑는 스티커다.
즉 택배를 전부 우체국 창구에 가져가서 보냈음을 알 수 있다.
(딱 하나 붙어 있지 않은 택배가 있었는데, 택배 상자 표면에 찢어진 흔적이 있었다. 아마 원래는 증지가 붙어 있었으나 떨어졌을 것이다.)
발송자가 굳이 이 방법을 고른 이유는 우라카와 씨에게 자신의 정보를 알리지 않기 위함이라고 생각된다.
편의점 택배나 사설 회사의 택배로 보내려면 더 자세한 개인정보를 적어야 하는데다가 담당자의 이름도 기재된다.
이로 인해 자신의 신상이 파헤쳐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정보가 있다.
우체국의 이름이다.
증지에는 모두 우체국의 이름이 적혀 있다.
찾아본 결과 발송자는
· 키시에 초등학교 앞 우체국
· 카자미역 앞 우체국
· 스즈하라 우체국
이라는 세 우체국을 나누어 이용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우체국들은 모두 가나가와현 에비나시에 있다고 한다.
주소는 가짜지만 발송자가 에비나시에 산다는 점은 틀림없는 모양이다.
실물 |
이튿날 우라카와 씨에게서 택배가 왔다.
사진에서도 보이듯이, 음식이나 생활용품이 들어차 있을 뿐 그밖에 이상한 것…… 편지나 메시지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실물을 본 순간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우라카와 씨가 보낸 사진을 다시 본다.
그때, 나는 이 사진들의 이상한 점을 알아챘다.
다만 그건 너무나도 사소해서 이 시점에선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택배 사건"의 핵심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힌트라는 사실을 이후에 알게 된다.
지인 |
우체국의 장소로부터 발송자가 사는 지역을 알았다.
그러나 가명을 쓰는 이상,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주소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진상에 한 발도 다가서지 못한 채 며칠이 흘렀다.
나는 혼자서 해결하는 것을 단념하고 한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이전부터 여러 번 기사에 협력해준 쿠리하라 씨라는 남자다.
본업은 설계사인데, 다방면으로 지식이 풍부하고 머리도 좋아서 이번에도 그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경위를 정리해서 메일로 보냈더니,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전화가 걸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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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하라 : 여보세요. 쿠리하라입니다.
우케츠 :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메일은 읽으셨나요?
쿠리하라 : 네. 내용은 거의 파악했습니다. 정리하자면 이거네요.
우케츠 : 다시 생각해보니, 역시 스토커 설이 유력할 것 같네요. 다만 그 앞에서부터 막혀서…….
쿠리하라 : 그런가요? 저는 지금 나온 정보만으로 꽤나 자세한 '범인'의 몽타주가 보였습니다.
우케츠 : 네?
쿠리하라 : 우선, 범인은 스토커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케츠 : 말하자 마자 부정당했네요. ……어째선가요?
쿠리하라 : 스토커가 피해자에게 선물을 보냈다는 케이스는 상당히 많습니다.
그럼 어째서 그런 짓을 하느냐,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너를 사랑하는 한 사람이 있다"는 과격한 자기주장입니다.
그러나 우라카와 씨가 받은 택배에는 전부 다른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이건 마치 여자 여러 명이 선물을 하는 듯한 구도가 되고 맙니다.
"자신"을 과시하려는 스토커의 심리와는 동떨어져 있습니다.
우케츠 : 그렇군요…….
쿠리하라 : 그럼 반대로, 우라카와 씨를 원망하는 누군가가 그를 괴롭히는 것이냐면…… 그럴 가능성도 낮을 것 같습니다.
우케츠 : 그건 동감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좀 더 상대가 싫어할 만한 걸 보냈을 테니까요.
쿠리하라 : 네. 그러므로 지금 단계에선 범인의 동기는 알 수 없습니다.
모르는 걸 아무리 잡고 있어도 해결되지 않으니 다른 쪽을 파고들기로 합시다.
우선 아까 언급했던 "이름"의 문제부터 보죠.
범인은 어째서 매번 이름을 바꾸는가?
우케츠 씨, 어떻게 생각하나요?
우케츠 : 으—음……. 우라카와 씨가 "여러 명이 택배를 보낸다"고 믿게 하기 위해서……?
아니, 근데 그렇다면 송장의 형식이 매번 같은 게 이상한가…….
쿠리하라 : 네. 사진을 봤는데, 이래선 이름만 바꿔봤자 같은 사람이 보낸다는 게 곧바로 들통납니다.
즉 범인은 자신이 "단독범"임을 우라카와 씨에게서 숨길 생각은 없습니다.
우케츠 : 그럼 대체 어째서……?
쿠리하라 : 아마도 우체국을 속이기 위해서겠죠.
우케츠 : 우체국?
수취 거부 |
쿠리하라 : 우케츠 씨는 "수취 거부"라는 제도를 아십니까?
우케츠 :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쿠리하라 : 자신에게 온 배송품을 받지 않고, 배송업자에게 돌려줄 수 있다는 제도입니다.
저라면 모르는 사람이 보낸 이상한 택배따위 두말없이 수취 거부할 겁니다.
쿠리하라 : 그럼 그 경우 택배는 발송자에게 반송되는데, 발송자의 주소와 이름이 거짓일 경우 어디로도 보낼 수 없겠죠.
갈 곳을 잃은 택배는 일정 기간 보관된 뒤 폐기됩니다. 직원 입장에서는 쓸데없는 고생만 할 뿐이죠.
우케츠 : 업무 방해군요.
쿠리하라 : 네. 그래서 이런 일이 여러 번 계속되면 발송자의 이름이 "불량 고객"으로서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됩니다.
다시는 그 이름으로 택배를 보내지 못하게 되죠.
우라카와 씨는 매번 직접 택배를 수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 그가 "수취 거부" 제도를 알게 되어 그것을 이용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우케츠 : 범인은 그렇게 될 것을 가정하고 매번 이름과 주소를 바꿔서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것을 방지한다는 말입니까?
……그래도, 그럴 거면 굳이 가명을 안 쓰고 무기명으로 보내면 되지 않습니까?
쿠리하라 : 그럴 수는 없습니다. 분쟁 방지를 위해서……
① 수취인의 이름
② 수취인의 주소
③ 발송자의 이름
④ 발송자의 주소
이 네 가지가 기재되지 않은 택배는 창구에서 접수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범인은 매번 가명을 열심히 지어내야만 합니다.
우케츠 : 고육지책이군요.
쿠리하라 : 범인도 필사적이네요.
———"필사적" ……그 말에 지금까지는 흐려서 보이지 않던 범인의 윤곽이 조금 드러난 것만 같았다.
우라카와 씨에게 택배를 계속 보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계획을 짜내는 인간.
그렇다. 범인은 괴물도 유령도 아닌 한 명의 인간이다.
그러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우라카와 씨에게 택배를 보내고 싶어하는가?
쿠리하라 : 발송자의 동기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행동의 논리는 분명합니다.
· 우라카와 씨에게 택배를 계속 보내고 싶다.
· 그러므로 우체국에 들키고 싶지 않다.
이 두 가지를 이해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범인이 여러 우체국을 사용하고 있는 건 직원이 자신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고 가명이 전부 여성의 이름인 것은 범인 자신이 여성이라서겠죠.
여성이 남성의 이름으로 택배를 보내면 직원이 이상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범인은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닐까요?
우케츠 : 그렇군요. 모든 것은 우체국의 눈을 속이기 위함이었다니…….
제4의 우체국 |
쿠리하라 : 점점 범인에게 다가가고 있네요.
그런데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우체국의 위치에 주목하세요.
쿠리하라 : 범인이 이용한 우체국은 가나가와현 에비나시 카자미역을 중심으로 분포합니다.
그말인 즉, 범인의 집은 카자미역 주변에 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겠죠.
우케츠 : 그렇네요.
쿠리하라 : 다만,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어째서 전철을 쓰지 않는가?
우케츠 : 네?
쿠리하라 : 범인은 역에서 2km 넘게 떨어진 키시에 초등학교 앞 우체국까지도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전철을 타고 다음 역 앞에 있는 우체국에 가는 게 편하지 않습니까?
우케츠 : ……뭐, 듣고 보니 그렇네요.
쿠리하라 :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아까 찾아본 결과 카자미역 부근에는 또 하나의 우체국이 있다고 합니다.
쿠리하라 : '사쿠라가오카 우체국'…… 세 우체국과 같은 지역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긴 한 번도 이용하지 않습니다.
우케츠 : 그건…… 이상하군요.
쿠리하라 : 범인은 사쿠라가오카 우체국을 이용할 수 없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해서 이 우체국을 이것저것 조사해봤더니,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사쿠라가오카(桜丘)'는 벚꽃 고개라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약간 높은 곳에 있다고 합니다.
도보로 가려면 계단을 몇 번 올라가야 하죠.
즉 범인은 어떠한 이유로 '전철'과 '계단'을 피하고 있는 게 아닙니까?
우케츠 : 전철과 계단……
쿠리하라 : 범인은 휠체어를 탄 게 아닐까요?
우케츠 : 네……?
쿠리하라 : 아마도 고령자…… 내지는, 다리가 불편한 사람.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진다. 우라카와 씨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문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렸어요.
평범한 발소리가 아니라 "끼익 끼익"거리는, 한쪽 발을 끌면서 움직이는 듯……"
우케츠 : 그러면 우라카와 씨가 들은 발소리는…….
쿠리하라 : 틀림없이 범인의 소리입니다.
———발송자는 다리가 불편한 여성이다. 홀로 걸을 수는 있으나 평소에는 휠체어를 탄다.
작년 10월, 여성은 우라카와 씨가 사는 "코마키다 맨션"을 방문했다. 맨션 앞에 휠체어를 세우고 걸어서 공동 복도로 들어가 발을 끌면서 102호실 앞으로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라카와 씨가 나오는 기척을 느끼자, 서둘러 물러났다.
그러나 그녀는 무엇을 위해 그런 짓을 한 것인가?
평소에 전철로 다음 역으로 가는 것조차 피하는 사람이, 일부러 가나가와에서 도쿄까지 찾아왔다……. 꽤나 중요한 용무가 틀림없다.
우케츠 : 쿠리하라 씨……. 범인은 우라카와 씨의 방 앞에서 무엇을 한 걸까요?
쿠리하라 : 그 힌트는 송장에 있습니다. 수취인명을 보세요.
쿠리하라 : "우라카와 님"…… 어째서 수취인명에 성씨만 적혀 있을까요?
우케츠 : ……그건 항상 신경쓰였습니다.
쿠리하라 : 주소가 적혀 있다면 성씨만 적더라도 배달은 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수취인명에는 풀네임을 적는 게 상식입니다.
우체국 직원에게 주목받고 싶지 않은 범인이라면 조금이라도 눈에 띄는 행동은 피했을 겁니다.
어째서 이름은 쓰지 않았을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안 쓴 게 아니라, 못 쓴 겁니다.
범인은 우라카와 씨의 이름을 몰랐던 것이 아닐까요?
우케츠 : ……그래도 풀네임조차 모르는 사람에게 매달 택배를 보낸다니…….
쿠리하라 : 이상하죠. 평범하게 생각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평범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두뇌를 180도 회전시켜서 상식을 버려야만 범인의 사고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우케츠 : 상식을 버리라고 하셔도…….
쿠리하라 : 범인은 우라카와 씨에게 택배를 보내는 게 아니라, 우라카와 씨의 방에 택배를 보내는 게 아닐까요?
우케츠 : 뭐라구요!?
102호실 |
우케츠 : 주민이 아니라 방 그 자체에 선물을 보낸다는 말입니까?
쿠리하라 : 그렇습니다. 그거라면 범인이 우라카와 씨의 방 앞에 와서 아무것도 안 하고 돌아간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범인은 문패를 본 겁니다.
"코마키다 맨션 102호실에 택배를 보내고 싶다"
"그러려면 송장에 거주자의 이름을 적어야만 한다"
"하지만 102호실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
……그래서 방 앞까지 보러 온 거죠.
문패에는 보통 성씨만 써둡니다. 그래서 송장에도 성씨밖에 적을 수 없었습니다.
우케츠 : 그래도 방 앞까지 갈 수 있다면 본인이 직접 전달해주면 될 텐데…….
쿠리하라 : 사실 그게 가장 이상적이겠죠. 하지만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무거운 짐을 들고 가나가와에서 도쿄까지 매달 오는 건 상당한 중노동입니다.
우케츠 : 그런가……. 그러면, 애초에 범인은 어째서 "102호실"에 선물을 보내려는 마음을 먹은 걸까요?
쿠리하라 :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우케츠 씨는 이미 눈치채지 않으셨나요?
우케츠 : …….
———뻔히 보이는 사실이다. 이미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불길한 상상이 부풀어 올랐다.
사람이 아닌 방…… 즉 "장소"에게 물건을 보낸다. 그 행위는……
우케츠 : 공양…….
쿠리하라 : 그게 가장 들어맞는군요.
즉, 제삿상입니다.
예전에 102호실에서 누군가가 죽었습니다.
범인은 그 사람에게 공양하기 위해서 방에 매달 공물을 보내는 겁니다.
사고 현장에 꽃을 바치는 것과 같습니다.
우케츠 : 그래도…… 택배에는 생활용품이 들어 있었는데요? 일용품을 공양하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쿠리하라 : 아마도 위장일 겁니다.
겉으로는 공물로 보이지 않도록 포장해서 자신의 의도를 감추려고 한 게 아닐까요?
그도 그럴 게, 택배가 "공양"이라는 걸 안다면 중요한 정보가 들통날 테니까요.
우케츠 : 중요한 정보요?
쿠리하라 : 범인은 예전에 102호에서 죽은 거주자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다, 라는 사실입니다.
우케츠 : 아……
쿠리하라 : 범인에게 이어지는 중요한 단서를 발견했습니다. 102호실에서 죽은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죠.
우케츠 : 그러면 부동산업자에게 물어볼까요?
쿠리하라 : 아니요, 부동산업자는 안됩니다. 기밀 유지 의무가 있기 때문에 안 가르쳐줄 겁니다.
우케츠 :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쿠리하라 : 집주인입니다. 코마키다 맨션은 도쿄에서 월세가 2만엔인 파격적인 물건입니다. 이렇게 말하긴 뭣하지만, 낡아빠진 맨션입니다.
우케츠 : 너무 뭣하잖아요.
쿠리하라 : 이런 맨션의 집주인분들은 수십 년 전부터 임대를 해온 노인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정이 두텁고 기밀 유지 의무도 잘 모릅니다.
눈물로 애원하면 먹힌다는 말이죠.
———쿠리하라 씨와 대화를 끝내고, 나는 우라카와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금 망설여지긴 했지만, 방에서 있었던 사고와 공양에 대해선 솔직하게 전하기로 했다. 그는 혼란한 기색도 없이 냉정하게 이야기를 들은 뒤 이렇게 말했다.
우라카와 : 방에서 사고가 있었다는 건 분명 다소 찝찝하긴 하지만, 유령을 믿는 성격은 아니라서 괜찮습니다.
그것보다도 발송자께서 적대심이 없다는 걸 안 것만으로도 안심이네요.
다음에 과자 선물세트를 들고 집주인 댁에 찾아가 볼게요.
사실 |
며칠 뒤, 우라카와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 이상으로 잠겨 있었다.
~~~~~~~~~~~~~~~~~
우라카와 : 오늘 집주인과 이야기를 하고 왔습니다.
우케츠 : 오오! 그래서…… 어땠나요?
우라카와 : 102호실에서, 사망 사건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우케츠 : 네?
우라카와 : 거짓말을 하거나 사실을 숨기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그 뒤로 다른 방에 사시는 분들께도 여쭤봤는데, 역시 102호실에서 사람이 죽은 적은 없다고 합니다.
우케츠 : 정말인가요…….
우라카와: 이것참…… 면목이 없습니다.
우케츠 : 아뇨…! 사과하실 것 없습니다. ……다만, 이래서는 원점으로 되돌아온 꼴이네요.
우라카와 : 그렇군요……. 아, 그래도 집주인과 이야기하면서 수확도 있었습니다.
우케츠 : 네?
———우라카와 씨의 말에 따르면, 코마키다 맨션의 집주인은 쿠리하라 씨의 예상대로 70세를 넘긴 할머니였다.
혼자 살면서 외로우셨던 모양인지 우라카와 씨가 방문하자 크게 기뻐하셨다고 한다.
그 결과 5시간 가까이 잡담에 시달리게 되었지만, 그 대신 큰 선물을 받았다.
예전에 102호실에 살던 사람들의 명부를 보여준 것이다.
거기에는 주민의 이름과 당시의 전화번호가 기재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메모를 할 수는 없었기에, 5시간에 걸쳐 필사적으로 머리에 집어넣었다고 한다.
우라카와 : 기억나는 건 지난 20년의 내용 뿐이었어요.
우케츠 : 그것만으로도 대단합니다.
우라카와 : 지금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가 보내온 과거의 주민 일람을 보며, 나는 숨을 들이쉬었다.
———내가 주목한 곳은 우라카와 씨 이전에 산 타나베 료이치와 아키야마 요스케 · 미키 부부였다.
———타나베 씨는 4개월, 아키야마 부부는 3개월만에 방을 나갔다. 너무 짧다.
순간 머릿속을 맴돈다.
방에서의 사고. 괴기 현상.
아니, 아니다. 이 방에선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렇다면 떠오르는 것은……
“택배"다.
아마도 우라카와 씨가 살기 시작하기 전부터, 102호실에는 택배가 배송되었을 것이다.
그것을 불쾌하게 여긴 두 가정은 곧바로 이사를 나간 게 아닐까?
우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타나베 씨와 아키야마 부부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
과거 |
타나베 씨는 부재중이었지만, 아키야마 요스케 씨와는 전화가 연결되었다.
내가 102호실에 대해 묻자 그는 가벼운 분위기로 당시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
아키야마 : 아, 맞아. 그런 택배라면 자주 왔었지.
우케츠 : 정말입니까?
아키야마 : 매번 다른 여자 이름으로 보내오니까, 바람 피는 거 아니냐고 아내가 의심해서 꽤나 고생했다고. 기분 나빠서 바로 이사했어.
역시, 우라카와 씨 이전에도 택배는 도착했었다.
나는 이어서 아키야마 씨 이전의 세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키리무라 마코 · 유이 (모녀)
102호실에 살았던 기간은 7년 전후. 타나베 씨 · 아키야마 부부보다도 길다.
과연…….
~~~~~~~~~~~~~~~~~
키리무라 : 네…… 여보세요.
우케츠 : 갑작스레 전화드려 죄송합니다. 키리무라 마코 씨 전화 맞습니까?
키리무라 : 네…… 맞는데요…… 누구시죠?
———비교적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나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도중에 맞장구를 치던 키리무라 씨의 목소리에 점차 긴장이 섞이는 것을 느꼈다.
우케츠 : ……그래서 말인데, 102호실의 택배에 대해서 조사하고 있습니다. 무언가 알고 계십니까?
키리무라 : …………몰라요.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거절하듯 그녀는 말했다.
우케츠 : 그러니까, 키리무라 씨가 102호실에 사실 때는 택배가 오지 않았다, 이 말씀이신가요?
키리무라 : 그러니까, 그렇다고 하잖아요! 저기요, 이제 끊어도 될까요? 바쁘다구요.
우케츠 : 아, 죄송합니다. 저기, 마지막으로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지금은 어디에 살고 계십니까?
키리무라 : 왜 그런 것까지 말해줘야 하는데요!? 다신 전화하지 말아 주세요.
———전화는 끊겼다.
그리고 나서, 키리무라 씨 이전의 주민, 쿠라모토 에이타 · 사나 부부와 미즈하라 케이치 씨에게도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그들이 102호실에 산 것은 10년 이상 전의 일이다. 이제 휴대전화도 계약을 해지했을지도 모른다.
~~~~~~~~~~~~~~~~~~
쿠리하라 : 그렇군요. 가장 수상한 건 키리무라 마코라는 여자입니까?
우케츠 : 네. 택배 이야기를 꺼내자 마자 금새 태도가 이상해졌어요.
무언가 감추는 듯한 기분이 든단 말이죠…….
쿠리하라 : 감추고 있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 딸이 있다고 했죠.
우케츠 : 네. "유이"라는 여자아이네요. 키리무라 씨의 목소리가 젊어 보였으니, 유이는 아직 어린아이인 것 같습니다.
쿠리하라 : 그 아이, 살아 있을까요?
우케츠 : …………
———쿠리하라 씨가 말하려는 것은 알겠다.
범인은 예전에 102호실에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이다.
키리무라 마코 씨의 딸 유이는, 102호실에서 세상을 떠난 게 아닐까?
그렇다면 키리무라 씨의 기묘한 태도도 납득이 간다.
그녀는 택배를 보낸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따님은 건강하십니까?" ……그 질문을 받기 전에 전화를 끊고 싶었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케츠 : 혹여 유이가 102호실에서 세상을 떠났다면, 코마키다 맨션의 집주인과 세입자들은 그 사실을 우라카와 씨에게 숨겼다는 게 되네요. 어째서죠?
쿠리하라 : 우케츠 씨. 저는 딱히 "102호실에서 유이가 죽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우케츠 : 네?
쿠리하라 : 혹여 유이가 죽었다고 한다면, 맨션 바깥
……더 자세히 말하자면 자동차 도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우케츠 : 도로!? 왜 갑자기…?
쿠리하라 : 뭐, 단순한 억측에 불과하지만, 지금까지의 정보를 종합해보면 그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왼발 |
쿠리하라 : 만약 지금까지의 제 추리가 모두 맞다고 가정하죠.
그렇다면 키리무라 마코 씨는 한쪽 발이 불편하고, 과거에 딸 유이를 잃었다는 게 됩니다.
우케츠 : 네.
쿠리하라 : 그런데, 범인은 어느 발이 불편했었죠?
분명 왼발을 끌고 다녔을 겁니다.
우케츠 : 우라카와 씨가 본 실루엣은 왼발을 끌고 있었다고 합니다.
쿠리하라 : 왼쪽이군요. 그러면 범인은 어째서 왼발이 불편해졌을까요?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저는 이렇게 추리했습니다.
마코 씨는 딸 유이를 자동차 조수석에 앉히고 운전했습니다.
쿠리하라 : 유이는 마코 씨의 왼편에 앉아 있게 됩니다.
쿠리하라 : 설령 마코 씨가 핸들 조작 중 실수로 차가 도로 좌측에 충돌했다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왼쪽에 앉은 유이가 가장 큰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그리고 마코 씨는 왼발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우케츠 : 즉, 유이는 사고사했다는 말이죠……. 그래도, 그렇다면 어째서 사고 현장과는 무관한 코마키다 맨션에 공양을 하는 거죠?
쿠리하라 : …………우케츠 씨. 조금 뜬금없지만 "무덤"이라는 게 왜 있는지 아십니까?
우케츠 : 네? 왜 갑자기…………. 음, 죽은 사람이 편히 쉬기 위해서…… 일까요?
쿠리하라 : 아닙니다. 산 사람이 참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케츠 : 현실적이네요.
쿠리하라 : 있잖아요, 사람은 죽으면 사라집니다. 그것도 아주 눈 깜빡할 새에 말이죠. 잿가루만 남기고 사라집니다.
하지만 남은 사람들은 그걸 견딜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이 "머물 장소"를 만듭니다.
그게 무덤입니다.
"여기에 그 사람의 영혼이 있다"고 멋대로 믿습니다. 스스로를 속이는 겁니다.
자신을 속여서 쓸쓸함을 달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우케츠 : …….
쿠리하라 : 물론 그 "머물 장소"란 무덤만이 아닙니다. 불단도 있고 납골당도 있습니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도로변에 꽃을 바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도로변에 영혼이 있다고 "멋대로 믿기로" 한 겁니다. 영혼이 어디에 있는지는 산 사람이 멋대로 정하는 겁니다.
유이는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도로변에 유이의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겠죠.
그러나 어머니인 마코 씨는 그렇게 생각하기 싫었습니다.
배기가스가 자욱하고 자동차와 사람으로 북적이는 장소에 유이를 두고 싶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그녀는 유이의 영혼이 코마키다 맨션 102호실에 "있다"고 믿기로 한 거겠죠.
쿠리하라 : 두 사람이 102호실에서 지낸 시간은 7년 전후입니다. 우케츠 씨가 본 바에 의하면 마코 씨는 젊고, 그래서 유이는 아직 어린 여자아이입니다.
즉, 유이는 인생 대부분을 102호실에서 보낸 게 됩니다.
마코 씨에게 있어 유이가 "있기에" 적절한 곳은 102호실밖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우케츠 : …….
———쿠리하라 씨의 말에 반쯤은 납득하면서도, 의문이 남았다.
유이의 공양을 하고 싶다면, 102호실에 계속 살면 되는 거 아닌가?
일부러 멀리 살면서 거기에 사는 사람의 이름을 찾아보고, 가명까지 써가면서 공물을 보내는 건 아무리 봐도 너무 번거로운 일이다.
그리고 더욱 알 수 없는 건 공양한 물건들이다.
어린아이에게 공양을 한다면, 과자나 장난감을 바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은가?
레토르트 식품에 즉석 밥…… 아무래도 어린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다만 이래저래 생각해봤자, 내가 쿠리하라 씨를 뛰어넘는 추리를 할 수 있을 리는 없다.
납득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케츠 : 그런…… 걸까요…….
쿠리하라 : 뭐, 그저 억측이지만요.
전화를 끊은 뒤 나는 인터넷에서 "키리무라 유이"를 검색해봤다.
혹여 사망 사고가 있었다면 어딘가에 뉴스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듯한 정보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 뒤로도 "키리무라 마코" "키리무라 유이 사고" "키리무라 마코 사고" 등으로 검색해봤지만, 역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혹시라도 사망한 게 어린 아이였다면, 익명으로 보도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사고의 내용…… "도로변에 자동차가 추돌하여 발생한 사망 사고"를 검색하기로 했다.
조사를 시작한 지 수십 분 뒤, 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도메이 고속도로서 차량이 도로변에 추돌 · 1명 사망》
그 내용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조수석 |
우케츠 : 여보세요, 쿠리하라 씨. 찾았습니다. 사망 사고의 기사요.
쿠리하라 : 오! 해내셨군요.
우케츠 : 다만…… 쿠리하라 씨의 추리와 다소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쿠리하라 : 네?
2013년 3월 19일, 도메이 고속도로 · 요코하마-마치다 IC 부근에서, 경형 트럭이 도로변에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당시 차량은 우측 차선으로 주행하고 있었고, 핸들 조작 미숙으로 인해 우측 가드레일에 충돌한 것으로 보인다.
운전자 쿠라모토 에이타 씨(27)는 사망했다. 조수석에 탄 아내 쿠라모토 사나(27) 씨는 좌반신에 중상을 입었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에이타 씨는 4월부터 가나가와현 에비나시의 회사에 취직이 결정되어, 부부는 이사를 진행하던 도중이었다.
쿠리하라 : 쿠라모토 에이타…… 사나…….
우케츠 : 네.
우케츠 : 2005년부터 2013년까지 102호실에 살았던 부부입니다.
범인은 쿠라모토 사나였습니다.
쿠리하라 : ……그렇다면, 어째서 왼쪽 다리를………… 아! 그렇군요………….
우케츠 : 네. …………쿠리하라 씨는 아까 "차량은 핸들 조작 미숙으로 왼쪽 도로변에 충돌했고, 그 순간 범인은 왼발이 불편해졌다"고 추리했었죠.
하지만 반대였습니다.
사고 당시 차량은 우측 차선으로 주행했고, 핸들 조작 미숙으로 우측 가드레일에 충돌한 것으로 보인다.
조수석에 탄 아내 사나(27) 씨는 좌반신에 중상을 입었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우케츠 : 차량은 우측 도로변에 충돌했습니다. 그런데 쿠라모토 사나는 좌반신에 중상을 입었죠.
다소 혼란스럽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간단한 문제였습니다.
쿠라모토 사나는 조수석에 탔습니다.
우케츠 : 달리던 차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을 경우, 관성의 법칙을 따라 조수석에 탄 사람은 차량 안쪽에서 왼쪽에 몸이 부딪치게 됩니다.
쿠리하라 : 쿠라모토 사나가 살아남은 건, 그녀의 몸이 차량의 왼쪽으로 기울어서 오른쪽의 충격을 겨우겨우 피해나갔기 때문……인 건가요?
우케츠 : 네.
쿠리하라 : 그렇군요. 제 패배입니다.
우케츠 : 아뇨, 그래도 "자동차 사고"라는 해석은 맞았고, 대부분 쿠리하라 씨가 해결한 거니까요.
쿠리하라 : 뭐, 따지고 보니 그렇네요.
우케츠 : 겸손이란 걸 모르는구만……. 그래도, 이렇게 된 이상 키리무라 마코 씨의 태도가 신경쓰이네요.
범인이 아니라면 그녀는 뭘 숨기려고 한 걸까요……?
쿠리하라 : 아, 그거라면 아마………… 아뇨, 이건 말하지 않겠습니다.
우케츠 : 네? 어째서죠? 아는 게 있다면 말해주세요.
쿠리하라 : 아뇨, 이건 말해선 안될 것 같아서요.
……뜬금없지만 우케츠 씨. 가난하게 살아본 적이 있나요?
우케츠 : 꽤나 뜬금없네요……. 가난하게 산 적은…… 없습니다.
쿠리하라 : 저도 그렇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은행원이라서, 유복하진 않지만 먹고 사는 게 곤란했던 적은 없습니다.
우케츠 : 아니, 쿠리하라 씨의 성장 배경은 궁금하지 않은데…… 그게 이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죠?
쿠리하라 : ……어쩌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 사건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케츠 : ……무슨 뜻이죠?
쿠리하라 : 죄송합니다. 지금 잠시 나가야 할 일이 생겨서, 다음에 또 전화하겠습니다.
———의미심장한 말만을 남기고 쿠리하라 씨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우선 우라카와 씨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까지 알아낸 것들을 모두 전했다.
우라카와 : 감사합니다. 그런 거였군요.
이유를 알기만 하면 됩니다. 보내시는 분에게 불평을 할 생각은 없어요.
덕분에 속이 편해졌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속이 편해졌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그의 목소리는 불안이 섞여 잠긴 것처럼 느껴졌다.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전화 |
사태가 돌변한 것은 며칠 전이었다.
집에서 일을 하고 있다가 연락처에 없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어째선지 그 번호는 낯이 익었다. 두뇌를 풀가동해서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한 가지 기억에 다다랐다.
쿠라모토 사나…… 택배 발송자의 번호다.
일전에 과거 102호 세입자들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쿠라모토 사나의 번호로도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저쪽에서 전화를 걸어올 줄이야…….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전화 너머로 가녀린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실례합니다. 마츠하라 리에라고 합니다."
귀를 의심했다.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다. 이어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며칠 전에 이쪽 번호로 전화를 주신 것 같아서…. 제가 다시 전화드렸습니다."
"네…… 분명 전화를 드렸습니다. ……저, 실례지만 이건 쿠라모토 사나 씨의 전화번호 아닌가요?"
"네, 맞아요. 말씀이 늦었습니다. 저는 사나의 언니인 리에라고 합니다.
"네? ……아! 그랬군요. 실례했습니다."
———머릿속을 정리하자. 쿠라모토 에이타와 결혼해서, 사나는 "쿠라모토"로 성을 바꿨다.
"마츠하라"는 사나의 옛 성씨일 것이다.
그러나 어째서 사나에게 건 전화를 언니가 받는 걸까?
생각만 해선 답이 없다. 나는 전화하기까지 이른 사정을 설명하기로 했다.
리에 : 그렇군요…… 동생이 그런 짓을……
우케츠 : 언니분께선 모르고 계셨습니까?
리에 : 네. 에이타 씨를 잃고 나서부터 줄곧 혼자 자기 집에 틀어박혀서, 저희 가족에게도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우케츠 : 그랬군요……. 사나 씨는 지금도 방에만 계신 상태인가요?
리에 : 아뇨…… 3개월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케츠 : 뭐라구요!?
리에 : 올해 봄에 암이 발견돼서요……. 그걸 알았을 때는 이미 손쓸 방도가 없을 만큼 진행된 상태였어요.
세상을 떠난 건 5월이었습니다. 정말로 눈 깜짝할 새였죠.
우케츠 : 5월……. 돌아가신 게 정말로 "5월"인가요?
리에 : 네………… 무슨 일이죠……?
———이상하다. 우라카와 씨의 댁에는 이번달인 8월 초순에 택배가 도착했다.
사나 씨가 5월에 죽었다면, 대체 누가……?
우케츠 : 저…… 실례되는 질문입니다만, 언니분께서 사나 씨 대신 택배를 보내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리에 : 아니요. 애초에 동생이 택배를 보낸다는 것 자체를 방금 알았어요.
우케츠 : 그렇군요……. 아, 그러면 혹시나 사나 씨가 돌아가시기 전에 누군가에게 택배를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다든가…… 그런 적은 없었나요?
리에 : 아니요. 그 애는 마지막 몇 년 동안은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았으니까요.
우케츠 : 그렇군요…….
리에 : 다만……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모양이긴 했어요.
우케츠 : 네?
리에 : "안 오네" "와주지 않을까"라면서, 떠나기 직전까지 병실에서 잠꼬대처럼 중얼거렸어요.
우케츠 : ……누굴 기다렸나요?
리에 : 모르겠어요. 어쩌면 약물 치료 때문에 기억이 몽롱해졌을지도 모르겠네요.
———전화를 끊은 뒤로도 한동안 멍한 채 앉아 있었다.
사나 씨가 죽은 건 3개월 전이다. 그러나 택배는 이번달에도 도착했다.
이건 누가 보낸 걸까?
잠시 생각한 뒤 나는 문득 떠올렸다.
처음에 이 택배를 봤을 때 느낀,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쾌함.
그리고 우라카와 씨가 보낸 사진의 위화감.
지금까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면 이 위화감이 사건의 진상으로 이어지는 힌트가 아닐까?
그때 쿠리하라 씨의 의미심장한 말이 뇌리를 스쳤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 사건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본질.
문득 전화 너머로 들었던 키리무라 마코의 말이 떠오른다.
"몰라요" ……그 속에 담긴 거절.
어쩌면
흩어진 정보의 조각이 머릿속에서 이어진다.
그리고 하나의 형상으로 엮인다.
이 사건의 본질, 그것은……
8월 |
나는 우라카와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
우케츠 : 여보세요, 우케츠입니다.
우라카와 : 아! 큰 신세를 졌습니다.
우케츠 : 우라카와 씨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침착하고 들어주세요.
우라카와 : 네?
우케츠 : 택배를 보낸 쿠라모토 사나 씨는 올해 5월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우라카와 : ……………
———긴 침묵 끝에 그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라카와 : ……역시, 그랬군요.
우케츠 : "역시" ……무언가 짐작가는 게 있으시군요.
우라카와 씨. 슬슬 진실을 가르쳐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라카와 : ………………………….
우케츠 : 보내주신 사진을 봤을 때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케츠 : 택배를 찍은 사진은 8개월 분밖에 없었습니다.
첫 택배가 도착한 건 작년 10월이죠.
우라카와 씨는 "택배가 매달 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우케츠 : 사진은 전부 11개월 분이 있어야 할 겁니다. 그렇다면 남은 3개월 분은 어떻게 됐나요?
힌트는 증지에 있었습니다.
우케츠 : 증지에는 우체국 이름 이외에도 날짜가 기재되어 있습니다.
날짜 순서대로 사진을 나열하면 이상한 부분을 알 수 있습니다.
우케츠 : 5월과 6월과 7월이 없습니다. 그리고 8월의 택배는 어째선지 증지가 뜯겨 있습니다.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상합니다.
증지는 말하자면 우표 같은 것. 쉽게 떨어지지 않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즉 누군가가 일부러 뜯은 겁니다.
그렇다면 누가 뜯은 것인가…… 우라카와 씨밖에 없죠.
우라카와 : ……네. ……말씀대로, 제가 뜯었습니다.
우케츠 : 그렇죠. 우라카와 씨는 저에게 8월 택배의 증지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왜냐하면 거기엔 "5월"의 날짜가 인쇄되어 있었으니까요.
사실 이 택배는, 5월에 배달되었죠.
우케츠 : 사나 씨는 5월에 돌아가셨습니다. 다시 말해 6월부터는 택배가 도착하지 않았을 겁니다.
당신은 5월에 도착한 "마지막" 택배를 "8월에 도착한 택배"라고 속였습니다.
"지금도 택배가 오고 있다고"…… 제가 그렇게 믿도록 하기 위해서요.
왜일까요?
단서는 택배 안에 있었습니다.
우케츠 : 우라카와 씨가 보내주신 택배를 봤을 때,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우케츠 : 사진을 봤을 때 어딘가 다른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디가 다른지는 몰랐습니다.
틀린 그림 찾기처럼, 몇 번을 비교했을 때 이윽고 알아챘습니다.
우케츠 : 레토르트 카레의 측면에 적힌 소비기한입니다.
사진에 찍힌 건 [2023.12.29]인데, 제가 받은 실물에는 [2024.1.24]라고 적혀 있습니다.
아예 다른 상품입니다.
카레만이 아니라 아마 다른 레토르트 식품들도, 즉석 밥도 전부 다른 거겠죠.
이 택배는 언뜻 보기엔 똑같지만, 내용물은 완전히 새로 갈아치운 거군요.
우라카와 : …………
우케츠 : 제가 우라카와 씨에게 "8월에 온 택배를 저에게 보내주세요"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우케츠 : 그 시점에서 택배 속의 음식은 이미 없었던 거 아닙니까?
그래서 당신은 서둘러 똑같은 제품들을 사서 똑같이 상자에 담아 저에게 보냈습니다.
음식이 이미 없다는 사실이 들키지 않도록.
어째서 그런 짓을 해야만 했을까요?
그리고, 들어 있던 음식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우라카와 : …………제발, 그만해주시면 안될까요……?
우케츠 : 그만해요……? 저는 우라카와 씨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택배에 든 음식을 먹었던 겁니다.
———전화 너머로 우라카와 씨의 괴로운 신음이 들렸다.
우케츠 : "정체불명의 사람이 보낸 정체불명의 택배에 든 음식을 먹을 사람은 없다"……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행복한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인인 쿠리하라 씨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 사건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라구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란 무엇인가. 이제야 알겠습니다.
"굶주린 적 없이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지난 10월에 우라카와 씨는 직장을 잃고 도망치듯 코마키다 맨션에 들어왔습니다.
월세 2만엔조차 힘겹게 낼 정도로 돈이 없었습니다.
그럴 때 갑자기 택배가 왔죠. 안에는 음식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갈등했을 겁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음식을 먹을 수는 없다고.
그건 인간성을 버리는 부끄러운 짓이라고요.
그러나 배가 고파졌습니다. 돈도 없었고요.
우라카와 씨는 결국 참지 못하고 음식에 손을 댔겠죠.
그로부터 매달 택배가 왔습니다. 우라카와 씨는 그걸 계속 드셨죠.
우라카와 씨에게 있어 정체불명의 발송자란, 삶을 도와주는 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올해 6월 이후로 무슨 이유에서인지 택배가 오지 않았습니다. 우라카와 씨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셨나요?
"발송자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그러나 송장에 적힌 주소는 존재하지 않았고, 이름도 가명이었죠. 찾을 방법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부탁하기로 했습니다.
우라카와 씨의 진짜 목적은 발송자의 주소를 찾고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솔직하게 말하면 "출처도 모르는 음식을 먹었다"는 사실을 제게 들키고 맙니다. 그건 당신의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었죠.
그래서 "택배가 매달 도착해서 곤란하니, 진상을 밝혀 주세요"라는 거짓 고민을 지어냈습니다.
그렇죠?
———우라카와 씨는 훌쩍이고 있다. 이윽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우라카와 : 속여서…… 죄송합니다. ……그때는, 너무나도 배가 고팠어요.
재취직을 위해 면접을 보기만 해도…… 교통비니 뭐니 해서 돈은 나가고, 알바도 안 받아주니…….
우케츠 : 힘드셨겠군요…….
우라카와 : 며칠 동안 아무 것도 못 먹으니…… 정말로 움직일 수 없더군요.
정말, 팔과 다리가, 마치 신경이 끊어진 것처럼 말을 듣지 않아서……. 생명의 위기라는 게 바로 이런 거였죠.
배가 고파서 먹거나, 맛있어서 먹는 그런 게 아니라, 죽고 싶지 않아서 먹었습니다. 목숨을 지키기 위해, 먹었다구요. 그런 느낌은 태어나서 처음이었습니다.
우케츠 : …………
우라카와 : 올해 4월에 드디어 꿈꾸던 재취업에 성공했습니다. 작은 시골 공장인데, 월급은 적지만 먹고 사는데 문제는 없어졌죠. 그리고 머지 않아서 그 택배는 뚝 끊기고 말았어요.
발송자가 누구인지, 어째서 이런 걸 보냈는지 알 수 없었어요.
그래도 그 택배가 없었다면 저는 죽었을 거예요.
생명의 은인이라구요.
적어도 감사 인사는 드리고 싶었어요…….
우케츠 : …………이건 말할지 말지 망설였는데, 그 택배 덕에 목숨을 건진 건 우라카와 씨만이 아닙니다.
우라카와 : ……네?
목적지 |
나는 이어서 키리무라 마코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
키리무라 : ……여보세요.
우케츠 : 바쁘신 와중에 죄송합니다. 웹 작가인…
키리무라 : 또 당신인가요!? 적당히 좀 하세요!
우케츠 : 죄송합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전화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끊으시기 전에 한 가지만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코마키다 맨션 102호실에, 달마다 택배를 보낸 이는 쿠라모토 사나라는 여성입니다.
사나 씨는 3개월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키리무라 : 네……?
———그녀는 놀란 듯 말했다. 역시……
우케츠 : 키리무라 씨가 사실 때도 택배는 왔었죠.
키리무라 : ………………그분, 어째서 돌아가셨나요?
———그때부터 키리무라 씨는 자신의 과거를 띄엄띄엄 전해 주었다.
역시 그녀도 우라카와 씨와 같은 처지였다.
10년 전 당시 18세의 프리터였던 키리무라 씨는 아르바이트의 선배의 아이를 임신했다. 이를 알린 다음날 그는 어딘가로 떠나버렸다.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낙담하진 않았다. 그러나 돈은 그녀를 힘들게 했다.
2013년 8월, 갈 곳 없던 그녀는 갓 태어난 유이를 안고서 코마키다 맨션의 방에 들어왔다.
아이를 돌보는 동안 출근을 할 수는 없었다.
당시 증가하던 인터넷 제휴 마케팅으로 일당을 벌긴 했지만, 그럼에도 월세는 크게 밀렸다.
그녀는 먹는 것을 참았다. 먹지 않아도 모유는 나왔다.
"이 아이라도 배부르면 충분하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키리무라 : 엄마가 밥을 못 먹으면, 젖도 잘 안 나오게 되잖아요.
날이 갈수록 밤마다 아이는 더욱 크게 울었다. 배를 곪고 있다.
가장 영양이 필요할 때 마음껏 젖을 먹지 못한다.
키리무라 씨는 모유를 짜내려고 했다. 너무나 초조했던 나머지 가슴에는 상처만이 남았고, 모유보다도 출혈이 더 많아졌다.
"아이에게 나눠줄 영양따위 없다" ……그녀의 몸은 스스로의 뜻을 거슬러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녀는 스스로의 몸을 원망했다.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럴 때 택배가 왔다.
음식이 들어 있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음식을 탐했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리기 위해서, 음식을 입안에, 위장에 쑤셔 넣었다.
수 년 뒤, 유이가 보육원에 갈 수 있게 되자 키리무라 씨는 드디어 직장을 얻었다.
여전히 빈곤했지만 배를 곪지는 않게 되었다.
그녀는 순조롭게 커리어를 쌓아, 요 몇 년 새에 남들 못지 않은 수입을 벌게 되었다.
그리고 제작년에 코마키다 맨션을 나와서 큰 아파트로 이사했다.
유이는 올해로 9살이 된다고 한다.
키리무라 : 정말, 힘이 넘쳐서 곤란할 지경이라니까요. 남자아이들처럼 곧잘 떼를 써대고, 혼자 어디로 가버리려고 한다구요. 매일이 큰일이에요.
그녀도 우라카와 씨와 마찬가지로 출처를 모르는 식품을 먹은 탓에 떳떳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나 씨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 생각은 변한 모양이었다.
전화를 끊기 전에 그녀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키리무라 : 혹시 괜찮으시다면…… 그분의 묘가 어디인지 말씀해주시겠어요? ……다음에 딸을 데리고 인사를 드리러 가려구요.
우케츠 : 그건 좋네요. 사나 씨의 언니분과도 연락이 되니까 여쭤보겠습니다.
키리무라 : 감사합니다.
목적 |
모든 게 끝났다.
수수께끼는 풀렸다
……그랬어야 한다.
그러나 머릿속 한켠에선 석연치 않은 부분이 남아 있다. 결코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쿠라모토 사나 씨가 102호에 택배를 보낸 이유는, 정말로 "공양"이었을까?
사진을 볼 때마다 그런 의문이 깊어졌다. 아무리 봐도 이게 "공물"로는 보이지 않는다.
즉석 밥은 그렇다 쳐도 레토르트 식품을 영혼에게 바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아무리 봐도 이건 산 사람에게 보내는 택배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102호실의 거주자에게 음식을 보낸대서, 사나 씨에게 대체 무슨 득이 있는가?
어딘가에 힌트가 숨겨져 있지 않을지, 사진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본다.
그때 사진 한 장의 기묘한 부분을 발견했다.
작년 10월에 받은 택배. 그 부분에 눈길이 향한다.
테이프를 뗐을 때 찢어졌을 것이다.
골판지 끄트머리의 얇은 종이가 뜯어져서 내부가 보인다.
그 안에 무언가가 있다.
분명 골판지와는 색감이 다르다. 이건 뭘까?
생각해보자 무언가 번뜩 떠올랐다.
골판지는 파형의 심을 종이 2장이 감싸는 구조로 되어 있다.
때문에 골판지 내부에는 수많은 틈이 존재한다.
무언가를 숨기기엔 이곳이 가장 제격이지 않을까?
나는 가지고 있는 택배의 겉장을 뜯어 봤다. 그러자…
역시, 무언가 숨겨져 있었다.
신중하게 꺼냈다.
종이를 길게 만 것 같다.
열어보았다.
"乞母神、以此魂代价、使霊回生"
붓으로 쓴 글자.
일본어와 중국어가 섞인 것 같다. 의미를 이해할수록 가슴이 점점 더 두근거렸다.
"어머니 신께 비나이다, 이 혼령을 대가로 바치겠사오니 영을 되살려 주시옵소서"
대가 |
"乞母神、以此魂代价、使霊回生"이라는 말을 인터넷에 검색해보자, 사이트 하나에 도착했다.
"乞母神、以此魂代价、使霊回生"이라는 말을 인터넷에 검색해보자, 사이트 하나에 도착했다.
이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고, "입들림"에 대해 작성한 사이트는 이것 말고는 하나도 없다.
아마도 이 기사를 쓴 사람이 지어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혹시나 생전의 사나 씨가 우연히 이 사이트를 발견해서, 진지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면…….
거울과 쌀……. 짐작가는 부분이 있다.
항상 신경쓰이던 택배 속의 생활용품.
알루미늄 호일, 알루미늄 양푼이, 알루미늄 접시…… 전부 거울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매번 택배 안에는 즉석 밥이 들어 있다.
거울과 쌀이다.
설마 사나 씨가 102호실 거주자를 내림몸으로 이용해서, 강령술로 에이타 씨를 불러내려고 한 게 아닐까…….
"다만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모양이긴 했어요"
"안 오네" "와주지 않을까"라면서, 떠나기 직전까지 병실에서 잠꼬대처럼 중얼거렸어요"
사나 씨는 거주자에게 빙의한 에이타 씨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는 걸까?
아니, 그러나 그건 불가능하다.
102호에 "강령술" 도구를 보내봤자 거주자가 의식을 진행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사나 씨 입장에선 신에게 빌 정도로 절박한 계획이었겠지만, 그렇다 쳐도 가능성이 너무 희박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도구가 부족하다.
"피가 스며든 종이" ……그런 건 어디에도 없었다.
이걸로는 부족하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기분 나쁜 상상은 커져만 갔다.
레토르트 식품.
택배에 든 레토르트 식품은 마파두부, 치킨 카레, 토마토 페이스트 ……어느 것이든 강한 붉은색 액체다.
설령 레토르트 팩에 주사바늘을 넣고 혈액을 섞었다고 해도, 소량이라면 눈치채지 못하지 않을까?
기분 나쁜 상상은 커져만 간다.
우라카와 씨와 키리무라 씨는 배송된 음식을 먹었다.
레토르트 식품을 반찬으로, 즉석 밥을 먹은 적도 있을 것이다.
입 안에는 쌀.
혈액이 든 레토르트 식품이 입가에 묻는다. 그리고……
티슈로 닦는다.
그러면 티슈에는 피가 스며든다.
도중에 무심코 택배 안에 든 알루미늄에 눈이 간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성립해버린다. 일상적인 동작이 그대로 강령술의 의식이 되어버린다.
그정도로 계산적이었을 줄이야.
아니다,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뭐가 어쨌다는 건가?
우라카와 씨도 키리무라 씨도 지금 건강하게 살고 있다. 사나 씨에겐 안타깝지만 강령술은 효과가 없었다는 거다.
애초에 피와 쌀과 거울로 죽은 자가 되살아난다니, 뭐 이런 멍청한 소리가 다 있나.
다만……
키리무라 마코 씨가 딸 유이에 대해 이야기하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정말, 힘이 넘쳐서 곤란할 지경이라니까요.
남자아이들처럼 곧잘 떼를 써대고, 혼자 어디로 가버리려고 한다구요. 매일이 큰일이에요."
나는 그것을 애써 부정했다.
(끝)
출처 : 다문블로그 https://blog.naver.com/bladesoul12/223025704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