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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 틀 뒤집기, ‘남자친구’ 박보검과 송혜교 역할이 바뀌었다는 건

[엔터미디어=정덕현]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 첫 회식을 하고 술에 취해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는 진혁(박보검)을 야근을 하고 늦게 퇴근하다 보게 된 대표 차수현(송혜교)이 보고는 차를 돌린다. 그냥 지나치려다 멈춰서 경적을 울리자 깜짝 놀라 깨어난 진혁이 술에 취해 꼬인 혀로 대표를 반가워한다. 대표는 차에 진혁을 태워 데려다주는데, 술 취한 진혁은 혼자 가는데 졸릴 것 같다고 주머니에서 안주로 가져왔던 오징어를 꺼내 굳이 대표의 입에 물려주고 차에서 내린다. 혼자 차를 몰고 가던 대표는 입에 오징어를 문 채 미소를 짓는다.

평범한 시퀀스지만 tvN 수목드라마 <남자친구>의 이 장면은 익숙한 듯 낯설다. 익숙한 건 우리가 그토록 멜로드라마에서 많이 봐왔던 신데렐라, 캔디와 실장님, 대표님의 흔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장면이 낯설기도 한 건 그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뒤바뀌어 있어서다. 이 드라마에서는 진혁이 평범한 서민의 삶을 살면서도 밝고 건강한 캔디이고, 수현은 호텔체인의 오너로서 모든 걸 가진 듯한 특별한 삶을 살지만 웃을 일이 별로 없는 대표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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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는 단지 성 역할 설정만 바꿔놓은 게 아니라, 그 클리셰들이 그려내던 풍경까지 모두 바꿔놓았다. 이를 테면 신입사원들에게 환영사를 하는 자리에서 진혁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수현이 비서에게 신입들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달라고 하고, 이를 통해 진혁의 자기소개서를 읽은 후 거기 등장하는 오래된 놀이터에 갔다가 거기서 진혁을 만나는 장면 같은 것도 우리가 많이 봐왔던 신데렐라 이야기의 남녀를 바꿔놓은 버전이다.

인형 뽑기를 하는 장면도 그렇고, 술 취해 진혁이 실수한 대목을 계속 물고 늘어지며 장난을 치는 수현의 모습이나, 주말에 휴게소에 가서 라면이나 먹자고 제안하는 대목도 그렇다. 그 주말 데이트에 멋진 차를 끌고 나와 진혁을 태우고 가는 장면도 그렇고. 이런 세세한 대목들까지 모두 기존의 여성 신데렐라 클리셰를 뒤집고 있다는 건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볼 수 있다. 늘 힘 있고 능력 있으며 심지어 지위까지 있는 캐릭터로 그려지는 남성이 리드하고 힘은 없어도 밝고 맑고 건강한 여성캐릭터가 따르곤 하던 연애방식을 이 드라마는 정반대로 담아낸다.

그러고 보면 <남자친구>라는 제목 또한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과거의 흔한 멜로드라마의 틀이었다면 ‘여자친구’라는 제목이 더 어울렸을 게다. 연애의 대상으로서 여성을 지목하는 우리네 성 고정관념이 그런 제목을 더 자연스럽게 여기게 했던 시대였으니. 하지만 이 드라마는 정반대로 ‘남자친구’라는 제목을 달고 연애의 대상으로서 남성을 지목하고 있다. 주체는 당연히 여성이 된다.

이렇게 보면 단순히 이 드라마를 ‘남자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니냐고 말할 수 있을 게다. 하지만 이렇게 성 역할을 바꿔놓은 대목만을 통해 이 드라마가 남성판 신데렐라 이야기를 재연하고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그 흔한 신데렐라의 멜로를 통한 신분상승을 담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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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이 드라마는 성공한 삶이 갖는 화려함보다는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더 큰 가치로 내세우고 있어서다. 그래서 수현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자신이 하는 일에서의 성취와 성공이 아니다. 데드 마스크처럼 공식적인 일정 속에서 살아가다 잠시라도 숨통을 트일 수 있는 일상의 틈입 속에서 비로소 수현은 잊고 있었던 듯한 웃음과 표정이 살아난다. 그 일상의 틈입을 가능하게 해주는 인물이 바로 진혁이다.

그래서 진혁에게 수현이 처음 제안한 데이트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소소하게 보이는 휴게소에서 라면 먹기다. 그것 하나 하기가 쉽지 않은, 화려해 보여도 속은 텅 비어있는 그 삶에서 수현은 탈출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라면을 먹는 장면을 누군가 사진에 담고, 그것이 대서특필되면서 그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일조차 쉽지 않다는 걸 수현은 알게 된다. 심지어 그건 진혁의 일상까지 파괴시킬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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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는 단지 성 역할만 남자와 여자를 뒤집어 놓은 게 아니다. 그걸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도 바꿔 놓았다. 화려한 성공보다는 소소한 행복을, 부유하고 힘 있는 공적 생활보다는 가난해도 가슴을 뛰게 하는 사적인 삶을 가치로 세웠다. 이건 그래서 ‘신데렐라’ 이야기 자체도 뒤집는다. 수직상승하는 성공의 꿈이 아니라, 평범한 삶을 공유하려는 행복의 꿈을 담고 있어서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https://entertain.v.daum.net/v/20181130163938461?rcmd=re&f=m
  • tory_1 2018.11.30 23:06
    이 글 진짜 좋더라ㅠㅠ드잘알이야 드라마가 말하고자 한 거 제대로 파악한 글 같아
  • tory_2 2018.11.30 23:09
    그저그런 드라마겠거니.했는데 어제보고 짜릿했지
  • tory_3 2018.11.30 23:11
    이래서 송혜교 박보검이 복귀작으로 이 드라마 선택한거 같어
  • tory_4 2018.11.30 23:21

    그냥 성별 바뀐건데 너무 좋아 ㅋㅋㅋㅋ게다가 저 둘한테 너무잘어울려 캐릭터가

  • tory_5 2018.11.30 23:41
    넘 좋아 ㅎㅎㅎ
  • tory_6 2018.11.30 23:51
    오 기사 좋아
  • tory_7 2018.12.01 00:08

    오 이 칼럼 좋다, 맞어. 이 드라마가 마음에 든 이유가 이거였어

  • tory_8 2018.12.01 03:08
    1화 보고 대사 때문에 볼까 말까 고민 많이 했는데 2화에 이런 저런거 다 뒤집는거 보고 이건 계속 봐야겠다 생각했어. 재밌음! 좋더라.
  • tory_9 2018.12.01 05:43
    아 백퍼공감 이래서 이 드라마가 끌려ㅋㅋㅋ 박보검 송혜교도 왜 선택했는지 알거같고 캐릭이랑도 너무 잘어울려서 보기 재밌다
  • tory_10 2018.12.01 13:53
    1화 보면선 그냥 그런 로맨스구나 했는데 2화 여주 남주 관계 뒤집어 놓은 것도 그렇고 남주가 사무실의 꽃이 되면서 나오는 팀원 여조 반응들 보면서 쾌감 느껴짐ㅋㅋㅋ 박진주 질투의화신때도 좋았는데 캐릭터 씹어먹는 능력 진짜 다시 반해ㅋㅋㅋㅋ
  • tory_11 2018.12.01 21:49
    신데렐라 이야기도 뒤집는다는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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