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영’이 자신의 구두를 벗어 ‘인주’에게 신겨주는 장면을 보면서 영화 〈박쥐〉에서 ‘상현’이 ‘태주’의 맨발에 구두를 신겨주는 장면이 떠올랐어요.
제가 왜 자꾸 그러는지 모르겠네요.(웃음) 보시면 알겠지만 전 운동화밖에 안 신어요. 구두를 메타포로 자주 사용하는 건 어릴 때의 독서 경험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작가에겐 계속해서 울려 퍼지는 노래처럼 반복되는 테마가 있거든요. 제겐 그게 동화예요. 〈작은 아씨들〉엔 여러 동화의 원형이 들어 있는데, 지배적 이미지는 〈분홍신〉과 〈푸른 수염〉이에요.
-여성 혐오적인 옛 동화를 레퍼런스로 여성이 주체가 되는 이야기를 완성했다는 게 인상적인데요.
주의해서 다뤄야 할 부분이죠. 브라이언 드 팔마의 〈블랙 달리아〉처럼 살해당한 참혹한 여성의 시체를 전시하는 영화가 많잖아요?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건 남자들은 도대체 왜 여자의 시체에 매혹될까 하는 궁금증이었어요. 우리에게 이런 장치는 수치심과 모멸감, 공포를 환기하는데 말이에요. 왜 시체는 구두를 신고 있는가. 저것은 여성성에 대한 경고인가, 욕망에 대한 경고인가. 그 끝없이 재현되는 이미지를 비틀어보고 싶었어요. 그걸 목격하고 파고드는 주체를 여자로 설정하고, 그녀가 죽은 여자를 버리고 돌아서지 않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죠.
-이번 작품에서 여자의 편은 여자이기도 하고, 여자의 적은 여자이기도 해요. 그것이 좋아요.
아주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두려웠어요, 어머니가 두려웠어요? 저는 엄마가 더 무서웠거든요. 물론 사회와 시대마다 다를 수 있지만, 우리가 자랄 시기에는 엄마가 자녀를 키우고 아빠는 부재했죠. 그래서 우리는 생각해요. 엄마가 나를 버리면 어떡하지?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렇기에 두려움은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그 아이디어에서 원상아라는 빌런이 탄생했군요.
한국 드라마 역사상 가장 미친 여자가 나오죠.(웃음) 엄지원 씨는 유머 감각이 있어요. 그 점이 너무 좋아요. 이런 역할을 연기하는 걸 보면서 너무 짜릿했죠. 사실 이 역할이 본색을 드러내기 전까진 숨어 있어야 하거든요. 1회에는 한 신만 나오고. 초반엔 비중이 크게 없어요. 그런데 저희가 엄지원 씨에게 대본을 5부까지 드렸거든요. 그런데 선뜻 하시겠다고 한 거예요. ‘이 역할의 포텐을 어떻게 알아봤지?’ 하고 놀랐죠. 엄지원 씨 같은 배우들이 초반에 그렇게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역할을 택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캐스팅에 대해 말하자면, 배우 추자현이 “내가 이런 사람인 거 몰랐지?”라는 듯이 나타나 화영을 연기한 것도 너무 좋았습니다.
-저희 세대 여자들은 어릴 때 〈작은 아씨들〉의 ‘메그’, ‘조’, ‘베스’, ‘에이미’ 놀이를 하면서 자랐거든요. 각각 개성을 가진 자매의 모습을 작가님은 어떻게 재해석했나요?
저는 이 이야기에서 ‘메그’가 매력 없이 그려지는 게 항상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일단 결혼한 ‘메그’, 그러니까 ‘인주’를 이혼시키고 시작합니다.(웃음) “결혼은 네 길이 아니었어, 이제 새 길을 찾아야 돼”라고 하면서. 약 130년 전 ‘조’의 목표는 직업인이 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여성이 일을 하는 시대잖아요. 그래서 이미 글을 쓰고 있지만 자신을 찾기 위해 세상을 파헤치는 사람으로 목표를 추가했죠. ‘베스’는 죽은 채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가족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로서요. 이 사회에서 가난의 결과가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막내 ‘에이미’는 가난한 여자아이가 재능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을 상상했어요. 가족 없이도 할 수 있다고, 내 재능으로 이 고난을 뚫고 나가야겠다고 결심한 미성년으로 그렸어요. 가장 힘이 있는 아이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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