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이라는 건 뭘까?
나는 9화 다른 이유들로 약간 불호였지만
류재숙은 물론이고 방구뽕조차 비현실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하지 않아.
비주류인 인물일 뿐.
(심지어 12화는 무슨 박원순이 모티브라느니...
펨코에서나 하는 소리인 줄 알았더니
여자들조차 이걸로 진보한남 미화다 어쩌다 하는 거 보고 눈물...)
나는 서울에서 학부-로스쿨 졸업한
90년대생(학부 1n학번) 현직 변호사톨인데,
굉장히 비슷한 사람들만 모여 있을 것 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이런 환경에서조차도 류재숙이나 방구뽕 같은 인물들 꽤 많이 봤어.
명문대 자퇴하고 환경운동, 교육운동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종교도 없는 동기는 인권 운동하면서 병역거부로 전과자가 됐어.
세월호나 정권탄핵 시위는 그나마 많이들 했다지만
대학가에서 임대차 횡포 막는다고 국수집, 치킨집에서
용역과 대치하며 버티다가 연행되어 벌금 수백씩 맞는 친구들 많았고,
학교 청소노동자 시위하다 정학 당한 친구들도 있었어.
한국에는 30대 중에도 국가보안법으로 재판받은 청년들이 있어.
난 방구뽕 보면서 강의석 생각도 많이 나더라.
그때도 지금도 이런 사람들 주변에서 죄다
꿘이다, 중2병이다, '촌스럽고' '대안학교 감성'이다 소리 들었어.
실제로 그들이 다 인격적으로 훌륭했던 사람들도 아니야.
만나보면 심각하게 재미없고 융통성 없는 사람들도 있고,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어.
옆에서 보기에도 걱정되는 사람들이 많지.
명문대까지 들어가서 취업도 생계도 불안하고,
남들 다 매진하는 스펙 쌓기 이런 건 관심도 없고.
저런 사람들 냉소하며 자기는 저럴 시간에 성공해서
세상을 바꾸겠다고 한 친구들도 정말 많았어.
어느 쪽이 옳은지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
전자가 현실감각이 없거나 자기 삶을 낭비한다기엔
어쩌면 그들은 삶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 현실을 바꿔내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 같기도 하거든.
나는 가정폭력으로 가족과 절연하고 살아가는 사람이야.
그래서 정상성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사람들에게
공감이 가고 관심도 많았지만
한 번도 그들만큼 실천적이지 못했어.
내가 변호사가 된 것조차
그저 어떤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일까 싶기도 해.
인권운동하고 농사짓고 시 읽는 변호사들,
요즘 좀 줄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류재숙 나이뻘 세대에서는 특히 정말 많아.
다수는 절대 아니지만, 누구라고 단번에 특정될 정도는 아니야.
인지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현실적'인 캐릭터와
'현실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는 달라.
우리가 '현실적'이고 '평범'하다고 쉽게 치부하는
그냥 취업준비하는 대학생 1, 회사 다니는 사람 1에
속하지 못하거나 속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아?
사실 나는 이 드라마의 어떤 인물도
우영우 그 자신보다 비현실적이진 않은 것 같거든.
드라마 꾸준히 보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최소한 영우의 비현실성이 거슬리지 않았던 걸텐데
류재숙이나 방구뽕이 왜 비현실적이고 불편한 걸까?
학교밖(자퇴)청소년으로 한국 대안학교 1세대인 작가가
철저히 제도권 교육 안에서 살아온 나보다
'현실'에서 저런 사람들을 적게 만났을까?
대안학교 감성, 중2병, 이상주의적인 캐릭터들이
비현실적이라기엔 작가 스스로 그런 삶을 살아온 것 같은데.
류재숙과 방구뽕이 너무 비현실적인 인물로 느껴진다면,
그건 그저
'나의 현실'과 '그들의 현실'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던 것 아닐까.
'우리의 현실'이 그들의 실존을 인정할 만큼 넓지 않은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