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메리 클리프트 (1920.10.17 ~ 1966.7.23)
예민함, 연약함, 고뇌하는 캐릭터들로 마초적인 남배우 풀에서 독보적이었던 배우
제임스 딘을 비롯해 후대에 예민하고 섬세한 연기를 선보였던 남배우들의 선배로 불림
평생 대장 질환을 달고 살았고 (이 덕분에 2차 세계대전 당시 징집을 면하기도)
동성애자였지만 그런 자신을 혐오했던 것으로 유명함
그 때문인지 몬티의 친구들, 연인들, 동료들은 몬티가 거의 늘 불행해보였다고 기억하며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일삼으며 죽을 때까지 술, 마약 중독자로 살았음
몬티의 연기 선생님이었던 로버트 루이스는 몬티가 사망했을 때 '역사상 가장 오래 걸린 자살'이라는 말을 남김
부유한 집안 출신이지만 대공황을 거치면서 가계가 몰락하자 15살 때부터 연극배우로 일했고
브로드웨이에서 뛰어난 연기력으로 인지도와 업계의 신뢰를 얻으며 할리우드에 진출하라는 권유를 받음
25살의 나이에 연극무대를 떠나 할리우드로 이주했고
하워드 혹스 감독, 존 웨인 주연의 대작영화 '붉은 강'에서 2롤을 맡으며 화려하게 영화 데뷔
두 번째 작품인 '수색'에서는 1롤을 맡아 데뷔 직후에 주연급으로 굳혔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됨
윌리엄 와일러의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를 찍었고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나, 몬티와 드 하빌랜드는 서로의 연기 스타일을 극혐해서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함)
네 번째 작품이 몬티의 대표작인 '젊은이의 양지'
부유한 여자를 만나 임신까지 한 기존 여자친구를 버리는 썅놈(...) 캐릭터인데 연기를 잘해서 응원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카더라가 있음..
몬티를 명실상부한 무비스타로 만든 영화이기도 함
또 다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아직까지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기 중 하나로 꼽힘
청춘의 덫의 이종원 캐릭터가 이 영화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알려짐
이후 '지상에서 영원으로' (세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 알프레드 히치콕의 '나는 고백한다' 등의 주연을 맡았고
'작품활동만 더 많이 했어도 할리우드를 제패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작품을 가리고 또 가려서 출연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안타깝게도 1956년 영화 '애정이 꽃피는 나무' 촬영 중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함
영화 촬영을 중단하고 수개월간 입원해야 했으며
영화는 흥행했는데 그 이유가 '관객들이 몽고메리 클리프트의 사고 전 얼굴과 사고 후 얼굴을 비교하려고'였다는 불쾌한 썰까지 잡지에 실렸음
이 사고로 인해 몬티는 왼쪽 안면마비에 시달렸고
치료 중 복용한 약들 때문에 그전까진 어느 정도 조절 가능했던 술, 마약 중독이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치달음
몬티가 네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던 '뉘른베르크의 재판' 때는
이미 중독이 너무 심해서 대사는 기억 못하는 게 당연한 수준이었고
이에 지친 감독이 그냥 시나리오는 포기하고 그때그때 느끼는 표현과 하고싶은 말을 하라고 주문함
그럼에도 감독은 촬영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몬티의 연기에 만족했다고 밝혔음
(사고+중독 때문에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고통받았지만 그래도 이 연기로 생애 마지막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음)
몇몇 루머가 있지만 공식적으로 인정될만큼 장기간 연애했던 상대는 없는 듯하고
동성애 성향은 어쩔 수 없어서 술집 남자들이나 배우를 꿈꾸는 젊은 남자들과 잠자리를 했지만
동성애자이면서도 내면의 호모포비아가 심해서 잠자리 후에는 자신을 끔찍하게 여겨 우울감에 빠졌으며 상대 남자들에 대한 대우도 좋지 않았다고 함
45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자택에서 수면 중 심장마비로 사망
흔히 약물중독으로 인한 사망으로 알려져있기도 한데
약물중독이 건강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과 적절한 치료를 방해했을 가능성은 있으나
부검 결과 심장마비의 직접적 원인은 이질, 대장염, 갑상선 기능 저하로 인한 저혈압이었다고 함
'젊은이의 양지', '애정이 꽃피는 나무', '지난 여름 갑자기' 등에 함께 출연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스캔들이 있었고 한동안 공식 커플로도 인정됐지만 사실 절친이었음
몬티가 말년에 지인들과 절연하고 잠적하다시피 했을 때도 테일러와는 깊은 친분을 유지
엘리자베스 테일러 본인도 어쩌면 몇몇 남편들보다도 더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적이 있음 (테일러가 결혼 여러 번 했던 걸로 유명하기에..)
제작진은 위험요소가 많은 몬티를 원하지 않았지만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영화의 보험료를 자비로 지불하면서
본인 출연작인 '황금 눈에 비친 모습' 촬영을 1년 동안 지연시키면서 몬티를 복귀시키려고 애썼는데
마지막으로 확정된 촬영 날짜 3개월 전에 몬티가 사망하면서 성사되지 않았음
공교롭게도 몬티가 연기하려고 했던 캐릭터는 자신의 성향을 숨기는 동성애자 군인 역할
대신 캐스팅된 배우는 말론 브란도 (바이섹슈얼이고, 그 사실을 인터뷰에서도 전혀 숨기지 않았던 걸로 유명한 배우. 다만 브란도는 워낙 호색가로 유명해서 말론 브란도라면 당연히 남자랑도 자겠지..라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성향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몬티와는 달리
몬티의 형을 비롯한 유족들은 그가 동성애자로 생존하는 것도 어려웠던 시기에 성공했던 무비스타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발언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2000년 GLAAD 시상식(LGBTQ 미디어에 상을 주는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으면서
게이였지만 당당하게 게이로 살지 못했던 몽고메리 클리프트에게 영광을 바친다는 수상소감을 남김
할리우드에 진출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았더라면 좀 더 나았을까 궁금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