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장르가 될 수 있다는 건
이영애의 <구경이>는 다른 대척점에 있다. 경찰이었으나 남편의 죽음으로 폐인이 된 구경이는 현재는 사설 탐정처럼 활약 중이다. 촉과 감은 그대로지만 외양은 뜨악하다. 더벅머리에 추리닝, 술을 먹고 넉살을 부리는 이영애를 상상해본 적이 있나. 추리와 CG, 연극과 B급 연출이 교차하는 이 이상한 드라마에서 이영애가 이영애로 보였다면 드라마는 더 이상해졌을 것이다. 뜻밖에 이영애는 구경이로 보인다. 살 의미를 잃고 씻지 않는 구경이, 알콜에 의존해 하루를 살아가는 구경이. 그럼에도 이 게임의 판을 훤히 읽고 있는 구경이.
OTT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넷플릭스가 전세계에 방영되는 시대에 시청률은 더욱 유의미하기도 그래서 더 무의미하기도 하다. 그만큼 다양한 채널에서 뜻밖의 장르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배우들의 복귀가 이어지는 것도 다양성과 다면성의 측면에서 반가운 일이다.
시청률이 중요하지, 시청률만 중요한 건 아니다
<너를 닮은 사람>은 무겁고 진지하다. <구경이>는 음습하고 이상하다. 한 드라마가 10%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과 10개의 드라마가 1%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 중 어떤 게 더 좋은 일일까. 만약 전자만 옳다면 모든 채널에는 시종일관 마라맛 드라마가 상영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후자가 가능하다면 이들은 모두 제각기의 이야기와 생명력을 갖고 성장할 발판을 마련 할 수 있다.
<구경이>의 이영애는 삶의 의미를 잃고 게임에 빠진 인물이다
고현정과 이영애는 이미 시청률로 세상을 제패한 바 있는 배우들이다. 고현정의 <모래시계>는 귀가를 앞당기는 '퇴근시계'였고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길에는 사람이 없었다. 이영애의 <대장금>은 한국 뿐 아니라 아사아, 아랍, 미국, 아프리카, 아스라엘 등지에서 방영됐고 이란에서는 무려 86%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고현정과 이영애가, <인간실격>의 전도연과 <지리산>의 전지현이 시청률을 잃었기에 체면을 구겼는가. 그런 체면이라면 구겨지면 어떤가. 시청률에 목숨거는 대신 이들은 각자 새로운 지평을 활짝 폈다. 이들은 각자의 작품에서 여전히 빼어났고 50대의 배우가 여전히 한 장르의 드라마를 넉넉히 끌고 갈 수 있다는 것도 증명했다. 수많은 스태프가 모여 만드는 드라마인데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떤 작품의 성패를, 한 배우의 가치를 오직 시청률로만 이야기하는 것도 불공정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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