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너무 길면 빨간 부분만 읽어도 괜찮을거야
시간 나는 톨들은 꼭 읽어줬으면 좋겠어
글이 길어 다 읽기 힘들지만 그래도 잘 읽히고 많은 생각이 들어서
가져와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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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일본의 경제 보복을 지켜보면서
일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와 관련한 제 생각에 대해 말씀드려 보고자 합니다.
2.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습니다.
일본과 일본인들의 특성에 대해 알아보고,
일본의 과거 침략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면,
현 상황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3. 일본은 잘 아시다시피 섬나라죠.
아시아 대륙과 떨어져 있습니다.
섬나라이기 때문에 흔히 영국과도 많이 비교되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영국하고도 좀 틀린 것 같습니다.
특히 대륙과의 연계성 부분에 있어서는요.
영국은 지금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문제 때문에 많이 시끄럽기도 하지만
과거부터 유럽 대륙과 거리를 두려는 고립주의 노선을 많이 취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국 역사를 유럽과 별개로 두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지금 영국의 중심을 이루는 민족은 앵글로색슨족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로마 제국 시대 전에는 겔트족이 살고 있었고,
로마 제국 시대에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이후 지금의 주류인 앵글로색슨족이 들어왔고,
11세기 경에는 우리가 흔히 바이킹이라고 부르고 있는 노르만족이 침입해 와서
노르만 왕조가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외세의 침입과 지배가 많이 있었죠.
반면 일본은 외세의 큰 침입과 지배를 받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고려시대에 몽고-고려 연합군의 일본 침략이 있었지만 실패로 끝났었구요.
그래서 우리와 같은 아시아 대륙이긴 하지만
그들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 독특한 민족적 특성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4. 일본인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개인적으로 저는 일본인들에 대한 호감도가 높습니다. 좀 많이 높습니다.
그 이유는
(1) 예의 바르고 친절합니다.
(2)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뛰어납니다.
(3) 동일본 대지진(2011년) 때 보았던 것처럼 공공의식이 뛰어납니다.
재난 속에서도 일본인들의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고 세계인들이 감탄을 했죠.
비슷한 재난을 겪었던 다른 나라들과는 다른 모습이었으니까요.
(4) 치밀하고 꼼꼼합니다.
위와 같은 특징들 때문에
개인적으로 유럽이나 미국에서 일본인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앞섭니다.
5. 그런데 동전에 앞면과 뒷면이 있는 것처럼 모든 현상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1) 예의 바르고 친절한 일본인, 공공의식이 뛰어난 일본인이기에
그들은 저항을 잘 안하고 순종적입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순종적이기에 공공의식이 뛰어나고 예의 바르며 친절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일본 역사에는 제대로 된 민란의 역사가 거의 없습니다.
우리만 해도 많은 민란(국민 저항)이 있었습니다.
근대에는 동학농민운동(동학농민혁명)이 있었고,
더 가까운 시기에는 4.19 혁명, 부마항쟁, 광주민주화운동, 6.10 항쟁 등이 있었는데 말이죠.
그런데 일본 역사에는 그런 대규모의 국민 저항(민란)이 거의 없습니다.
국민(백성, 농민)들이 대규모로 광장에 모여 뭔가를 주장하거나 요구,
혹은 저항하는 역사가 거의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2) 한국인과 일본인의 위와 같은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2002년 한일월드컵 때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 개최국이었지만,
월드컵 기간에 우리나라는 수백만 명의 인파가 거리에 모여서 단체 응원을 했던 반면
일본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시민(국민)들이 광장에 모이는 것에 익숙하지만,
일본은 그런 문화가 생소합니다.
(3) 순종적인 특성 때문에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가
대체로 강한 자에 약하고 약한 자에 강합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강하다고 생각하는 자에게는 약하고,
약하다고 생각하는 자에게는 강합니다.
일본인들은 상대를 강하다고 인정하면 칭찬하는데 인색하지 않습니다.
반면 강한 상대가 자신에게 나쁜 소리를 해도 그들에게 쓴 소리는 잘 못합니다.
좋게 표현하자면 강한 자에게는 배워야 한다며 스스로를 합리화시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보기에는 굴욕스러울 정도로 강한 상대를 접대(?)하기도 하죠.
반면에 약하다고 생각하는 상대는 아예 무시하고 상대를 안 하거나
혹은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처럼 침략 전쟁을 일으켜 괴롭히기도 합니다.
(4)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의 사례를 다시 한 번 말씀드려 보면
우리는 그 때 수백만 명의 인파가 모여 거리 응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무질서와 폭력도 발생하지 않았고
또한 응원이 끝나고 해산할 때 자발적으로 거리의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까지 보여줬습니다.
이 모습에 세계인들은 감탄을 했고, 일본 역시 한국을 새로 보고 감탄을 했죠.
심지어는 한국과 독일의 준결승전 때에는
일본 신문에 한국어로 한국을 응원하는 기사가 뜨기도 했습니다.
참 감동이었죠.
과연 우리라면 일본처럼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일본에 대한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생겼습니다.
물론 일본이 그 당시 한국에 대해 저런 모습을 보인 가장 큰 이유는
수백만 명의 한국인들이 한마음으로 한곳에 모여 질서정연하게 응원하는 모습을 하고
또한 응원 후에 청소까지 자발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고
대한민국을 대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전에 떠올렸던 모습,
즉 미개하고 약한 대한민국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본 신문에 한국어로 우리를 응원’하는 일까지 발생한 것입니다.
(5) 2001년 1월 26일 일본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한 취객이 선로로 추락했고, 주변의 사람들은 지켜만 보고 있었죠.
그 때 한 청년이 선로로 뛰어들어 취객을 구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만 선로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 청년은 다름 아닌 바로 한국인 ‘이수현’이라는 분입니다.
이 사건은 그 당시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 사람이 한국인이라서 놀랐고,
(이 일로 일본인들의 한국인에 대한 호감이 많이 올라갔습니다.)
또한 지켜만 보고 있었던 일본인들의 특성에 대해 반성하는 소리가 높았죠.
이 사건에서 보듯 일본인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뛰어나기 때문에
남의 일에 간섭을 잘 안하려고 합니다.
우리 국민 중에는 ‘불의를 보고는 못 참는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남의 일에 간섭을 잘 안하려는 특성 때문에
남의 불의를 봐도 개입하려는 경향이 작습니다.
혹은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데 주저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6) 일본인들이 치밀하고 꼼꼼하다고 했는데,
치밀하고 꼼꼼하기 때문에 일을 아주 교묘하게, 심하게는 치졸하게 처리하는데 능숙합니다.
이번 일본의 경제 보복 내용을 보면 그러한 면을 잘 알 수 있죠.
사드 문제로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경제 보복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여행상품 판매 금지 등 몇 개가 있는데, 대부분 1차원적인 보복입니다.
피해도 주로 1차원적으로 발생합니다.
그런데 이번 일본의 경제 보복은
우리의 아킬레스 건을 건드리는, 고차 방정식 같은 보복입니다.
피해 양상도 복잡하게 나타나죠.
좀 심하게 이야기하면 남의 약점만 찾아 때리는 ‘참 졸렬한’ 보복 방식입니다.
우리 국민이 아주 싫어하는 방식이죠.
이러다 보니 중국의 경제 보복보다 일본의 경제 보복이
훨씬 더 기분 나쁘게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일본 아베 총리의 이번 경제 보복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반일 감정이라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입니다.
아베 총리도 여기까지는 계산 못한 듯합니다.
오판이라고 볼 수도 있죠.
그러다 보니 우리 국민의 반응도 이전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반일 감정이 높아졌습니다.
중국의 경제 보복 때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거죠.
만일 일본 역시 중국처럼 한국여행상품 판매 금지 같은 1차원적 보복을 했다고 하면
이렇게까지 불쾌하고 반일 감정이 높아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어쨌든 일본의 이번 경제 보복 내용을 보면
일본이 얼마나 치밀하고 꼼꼼하며,
동시에 얼마나 교묘하고 치졸(졸렬)한지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일본의 이러한 경제 보복은
우리뿐만 아니라 일본에게도 손해를 끼칩니다.
일본의 아베 총리도 그 점을 잘 알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 보복을 하는 이유는
일본의 손해보다는 한국의 손해가 더 클 것이라는 계산이 섰기 때문일 겁니다.
정치적 목적도 아주 크다고 생각하는데,
그 부분은 뒤에 자세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작업을 몰래 교묘하게 그리고 치밀하게 준비해온 일본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참 일본스럽다’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7) 치밀하고 꼼꼼한 성격이다 보니
일본인들은 micro(아주 작은 것) 혹은 mini(작은 것)에 강합니다.
일본식 조경이 잘된 곳을 가보면
정말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기 그지없습니다.
감탄스럽죠.
20~30년 전에는 일본 소니의 워크맨(소형 카세트)이 세계를 휩쓸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작은 것에 집중하다 보면 큰 것을 놓칠 수 있습니다.
나무만 보다 보면 숲 전체는 볼 수 없다는 것이죠.
소탐대실(작은 것을 얻고 큰 것을 잃음)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번 일본의 경제 보복도
우리 국민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일본에게 소탐대실하는 결과를 안겨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6. 일본의 또 다른 특성을 보여주는 단어로
‘혼네(실제 속내)’ 또는 ‘다테마에(겉마음)’를 많이 이야기합니다.
이미 많이들 알고 있는 단어들일 텐데,
일본인들은 본심, 즉 실제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실제 속내와 겉으로 드러나는 말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유독 일본인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사실 이 모습을 긍정적으로 보면
상대방을 배려하는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씩은 두려운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 아베 총리의 혼네, 즉 속마음(본심)은 어떨까 생각할 때입니다.
일단 이번 아베 총리의 경제 보복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아베 총리의 혼네(속마음)에는
‘이번 기회에 한국을 한번 혼내주자’ 가 들어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아, 이번 경제 보복이 단기간에 끝나지는 않겠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치밀한 일본인이니) 이 다음 시나리오도 꼼꼼하게 마련되어 있겠네’ 라는 생각도 듭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번 일본의 경제 보복은 경제적으로는 한국과 일본 어느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는 일이 아닙니다.
둘 다 손해가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게 조기에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더더욱 걱정되는 점은 이게 아닙니다.
요시다 쇼인이라는 일본의 유명한 사상가가 있습니다.
아베 총리가 가장 존경한다고 밝힌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주장한 내용 중에는 정한론(征韓論)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조선 정벌’입니다.
침략 전쟁 책임이 있는 전범들을 추모하고
그 당시 일본인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는 감추는데 급급하며
또한 이를 다음 세대에 가르치지 않으려는 현재 일본의 모습을 보면
어쩌면 아베의 진짜 본심(속네)은
세계 최강자였던 미국에 대해 진주만 침공을 해서 전쟁을 일으킨 것은 반성하지만
얕잡아봤던 조선을 침략하고
조선인들을 탄압하고 괴롭혔던 것에 대해서는
반성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일본이 진주만을 침략해서 미국과의 전쟁(태평양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어쩌면 한국은 지금까지도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아베의 본심(속내)은 무엇일까요?
그가 존경하는 요시다 쇼인이 주장한 ‘정한론’이 그의 본심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번 아베 총리의 경제 보복은
아베가 생각하는 ‘아베식 정한론’의 출발점은 아닐까요?
아베의 본심은 아베만이 알겠죠.
결코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본 아베와 극우 정치 세력들이
일본 제국주의 시절을 그리워하고 추모하며,
제국주의 시절의 강한 일본을 만들고 싶어 한다는 점입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우리 민족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잘 알고 있는 우리이기에
일본의 우경화 행보에 대해 경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일본인의 특성 중에는 ‘이중적’인 모습이 있다 라는 점도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느끼기에
친절하고 예의 바른 일본인과
과거에 우리 민족을 악랄하게 괴롭히고 탄압했던 일본인이
매치가 잘 안 됩니다.
또한 우리나라에 경제 보복을 하고 있는 아베 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최소 50% 이상 나오는 여론 조사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뛰어난 일본인들의 특성을 고려해 보면
이 수치가 정말인지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이보다 훨씬 더한 상황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1923년 일본의 간토(관동) 대지진 당시 발생한
조선인 학살 사건에 대해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관동)지방에 대지진이 일어납니다.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일본 자료에 따르면 이 지진으로 사망자 9만 9,331명,
행방불명 4만 3,476명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물적 피해도 엄청났었구요.
그런데 지진이 발생하자 일본 내각은 흉흉해진 민심을 잡기 위해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조선인이 방화를 하고,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집어넣었다’ 등의 유언비어를 조직적으로 유포시킵니다.
이 유언비어가 기정사실화돼 일본인들은 대대적인 조선인 색출을 시작했으며,
전국적으로 조직된 일본인 자경단에 의해 조선인 학살이 시작됐습니다.
이때 일본 정부와 언론은 오히려 이러한 상황을 더욱 선동하고 방조함으로써
조선인의 피해가 더욱 커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인에 의해 살해당한 조선인은
가장 보수적인 통계에 의하더라도 2,500명이 넘고,
문헌에 따라서는 6,000명에서 1만 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학살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에는 도쿄에 흐르는 스미다강과 아라카와강이
시체의 피로 인해 핏빛으로 물들었다고 하며,
살해 방법도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 합니다.
( https://blog.naver.com/haru8283/221484369994 참조 )
예의 바르고 친절한 일본인의 특성만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교묘함과 치밀함, 일본 우익(자경단)의 잔인함,
순종적이면서 불의를 바로 잡는 데에는 소극적인 일본인의 특성 등이 맞물리면서
수많은 조선인들이 비참하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뛰어난 민족이지만
동시에 아주 폭력적이고 잔인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일본인의 이중적인 모습은
다른 식으로도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일본인들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에 대해서는 그렇게 분노하면서
일본인들이 타민족 특히 우리 민족을 괴롭혔던 과거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무시합니다.
정말 이중적이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죠.
일본인들 자신의 인권은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일본인들에게 희생되었던 조선인 위안부(정확히는 성노예)나 징용공 등의 인권에 대해서는
감추려고 하거나 부정하려고만 하니까요.
앞서 언급했던 1923년 일본의 간토(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정부는 간토(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에 대해
최종적으로 유언비어임을 공식 확인하였으나 조선인 피해자의 수를 줄여서 발표하고,
일본 자경단의 일부를 조사했으나 형식상의 조치에 불과하였으며,
기소된 사람들도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 방면 하였습니다.
조선인 학살 사건으로 인한 사법적인 책임 또는 도의적인 책임을 진 사람이나 기구는 전혀 없었습니다.
또한 현재까지도 조선인 학살 사건에 대한 정확한 진상 조사는 물론
사과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 참조 : 네이버 위키백과 )
반면 간토(관동)대지진과 관련해서는 철저한 조사가 진행되었고,
이후 피해 도시였던 도쿄와 요코하마 등을 눈부신 속도로 화려하게 재건시켰습니다.
이상에서 보신 것처럼
친절하고 예의 바른 모습도 일본인이고
과거 우리 민족을 악랄하게 탄압하고 괴롭혔던 것도 일본인입니다.
일본인 자신들의 인권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일본인들이 탄압했던 우리 민족(위안부, 징용공 등)의 인권에 대해서는 감추려고 하거나 부정하려 합니다.
일본인에게는 이런 모순적인 두 가지 모습,
이중적인 모습이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8. 지금부터는 과거 일본의 침략 역사에 대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이 역사를 들여다보면 현재의 상황에 대해 정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일본은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국토를 침략하고 우리 민족을 괴롭혀 왔습니다.
삼국시대에도 많은 왜(일본)의 침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구려 광개토 대왕 때에는 왜를 격퇴하기 위해 신라에 고구려군 5만 명을 파병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는 민족 개념이 없을 때라
지금의 기준으로 상황을 판단하기에는 애매한 면이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도 왜는 우리 민족을 많이 괴롭혔습니다.
고려 말기에는 최영 장군, 이성계 장군 등이 왜를 무찌르고 백성의 영웅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힌 일본의 침략은
임진왜란(1592년)과 경술국치(한일합방, 1910년)라고 볼 수 있습니다.
(1) 임진왜란 (1592년)
일본의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의 전국 시대를 통일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나라이던 마찬가지인데,
건국 초기나 통일 초기에는 내부 불안 요소가 많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먼저 해보겠습니다.
후삼국시대를 통일했던 고려 태조 왕건이지만
지방 호족 세력들의 힘은 여전히 강했습니다.
그래서 태조 왕건은 지방의 호족 세력을 장악하기 위해 혼인 정책을 펼칩니다.
기록되어 있는 태조 왕건의 후비 숫자만 29명에 이릅니다.
왕건은 이들과 혼인관계를 통하여 인척지간이 되면서
고려 정권의 안정성을 도모합니다.
조선 태조 이성계도 조선을 건국하고 나서
정도전 등의 개국 공신 세력과 태종 이방원 세력 간의 권력 다툼이 치열하게 발생합니다.
결국 왕자의 난 등을 통해서
정도전 등의 개국 공신 세력이 제거되고 태종 이방원 세력이 최종 승자가 됩니다.
태종 이방원의 아들 세종 대왕은 이러한 시대 배경 하에 왕위에 오릅니다.
세종 대왕은 그에 대항하는 강한 정적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일, 즉 개혁적인 작업에 힘쓸 여력이 많았죠.
한글을 창제하고 측우기 등을 만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것들도 있었습니다.
다시 일본 이야기로 넘어가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내부의 불안 요소를 잠재우는 방법의 하나로
조선 정벌을 계획하게 됩니다.
그리고 치밀하게 준비한 후에
임진년(1592년)에 조선을 침략합니다.
이것이 임진왜란(1592년), 정유재란(1597년)의 시작입니다.
부산에 상륙했던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한양(서울)을 거쳐 평양까지 점령하게 됩니다.
조선 왕인 선조는 국경 지역인 의주까지 피신을 하게 되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은 7년 동안 이어졌고,
조선은 결국 일본을 물리쳤지만 엄청난 피해를 입습니다.
그런데 조선 정벌을 치밀하게 준비했던 일본이
무슨 이유로 조선 정벌에 실패하게 되었을까요?
그 중 2가지 큰 이유를 말씀드려 봅니다.
첫째, 조선의 관군은 일본의 예상대로 약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에 이순신 장군이 있으리라고는 일본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둘째, 조선의 관군이 아니라 민간인인 의병이 일어날 것을
일본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일본 민족은 순종적입니다.
순종적인 일본인의 특성상 의병 같은 조선 백성들의 저항이 있으리라고는
그들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일본 역사의 특수성 중에는 일반 농민들은 전쟁에 잘 참여하지 않았다 라는 점도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으니까요.
조선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의병은
조선이 일본을 물리치는데 아주 큰 역할을 합니다.
(2) 경술국치 (한일합방, 1910년)
만일 일본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후에
그들의 침략 행위에 대한 반성이 있었다면
일본의 조선 침략은 다시 발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지만 일본은 그들이 일으켰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반성하지 않았고,
약 280년 후인 1875년도에 윤요호 사건을 시작으로
조선을 다시 침략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 침략은 이전과는 달랐습니다.
임진왜란이 무력으로만 조선을 점령하려고 한 것이었다면
1875년 윤요호 사건으로 시작된 일본의 새로운 조선 침략은
단순한 무력 행사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교묘하고 치밀하게 전개됩니다.
1) 윤요호 사건 (1875년)
일본은 1875년 강화도 앞에 군함을 보내고,
일본군 수십 명을 데리고 담수 보급의 명목으로 작은 보트를 타고 강화도 초지진으로 접근합니다.
이때 해안 경비를 서고 있던 조선 수병은 예고도 없이 침투하는 일본군 보트에 포격을 가하였고
(이게 일본군의 의도였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이에 일본군은 모함으로 되돌아가 함포로서 조선에 보복 포격을 가합니다.
그리고 영종진(오늘날의 영종도)에 상륙하여 조선수군과 격전을 벌여
조선군에 큰 피해를 입히고 무기도 다량 탈취합니다.
그리고 주민에 대한 방화, 살육을 하고 퇴각합니다.
이후 일본은 다시 강화도 앞바다에 무력시위를 하며 나타나,
이 사건의 책임을 조선에 물으며 수교통상을 강요합니다.
그 결과 이듬해인 1876년 ‘강화도조약'을 체결하게 되고, 조선은 일본에 개항을 하게 됩니다.
( 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
사실 조선 수병의 일본군(불법침입자)에 대한 공격은 정당한 방어적 공격이었습니다.
지금 동해를 통해 북한의 목선 한 척만 몰래 들어와도
군 관계자가 심한 질책을 받고 있는 현 상황과 비교해 본다면,
불법침입자(일본군)에 대한 방어가 얼마나 정당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그 책임을 조선에 묻고 강제로 개항하게 한 것입니다.
일본은 사실 저러한 작업(조작)에 굉장히 능합니다.
우리의 윤요호 사건도 있었지만, 만주사변(1931년) 같은 사건도 있었습니다.
만주사변은 일본군이 자신의 관할이던 만주철도를 스스로 파괴한 후에
이를 중국 측 소행이라고 트집을 잡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일본군은 철도 보호를 구실로 군사 작전을 벌여 만주 전역을 점령한 후에
일본의 꼭두각시 국가인 만주국을 세웁니다.
최근에 일본의 초계기 사건으로 한국과 일본 간에 큰 갈등이 있었습니다.
일본의 과거 행적을 참조해 보면
혹시 이게 일본 정부가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우방국이라면 저렇게 키울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은 명분 만드는데 선수거든요.
지금의 경제 보복을 위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일본 국민의 반한(혐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일본 초계기 사건 갈등도 일본이 먼저 문제 제기를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과한 분석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일본이기에 그런 의심이 드는 겁니다.
워낙 치밀하고 교묘한 나라이기에...
이번 일본의 경제 보복에서도 일본 정부의 조작 행태가 보입니다.
일본의 아베 정부는 일본의 이번 경제 보복에 대해서
우리나라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경제 보복 조처가 아니라
안보상 이유로 취한 무역관리 재검토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그들 스스로 우리나라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불만으로
경제 보복을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해놓고 말이죠.
사실 이 상황을 정확하게 말해 보자면
강제징용 배상 판결, 위안부 문제 등
우리 나라에 쌓여 있던 불만(역사 문제, 정치 문제) 때문에 경제 보복을 했는데,
이게 WTO 제소, 세계 여론 등에서 불리할 것 같으니까 다른 변명거리를 찾았고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안보 문제인 것입니다.
역사 문제, 정치 문제 때문에 경제 보복을 하는 것이 빤히 보이는데,
안보 문제라고 우기고 있는, 조작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번 같은 경우는
조작이 너무 분명해 보이는 데도
계속 저렇게 우기고 있어서 좀 일본스럽지(?) 못하다 라는 생각도 듭니다.
일본답지 않게 너무 허술해 보여서...
2) 일본은 강화도조약 이후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기 시작합니다.
또한 조선 내부에 친일파를 포섭, 양성하고 후원합니다. 이완용, 송병준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러한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은 끊임없이 우리 내부를 분열시키고 갈등을 불러일으킵니다.
3) 조선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청, 러시아, 미국 등 외세의 제거도 필요했습니다.
청나라는 1894년~1895년 청일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러시아는 1904년~1905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미국은 1905년 카쓰라 태프트 밀약을 체결함으로써,
일본은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게 됩니다.
결국 일본은 1905년 을사조약(을사늑약), 1910년 한일합병조약(경술국치)을 체결하고,
조선을 병합하게 됩니다.
(3) 임진왜란과 경술국치(한일합방) 두 사건에서 우리 내부의 문제는 없었을까요?
이 두 사건에서 나타난 우리 내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내부 분열이었습니다.
임진왜란 전에는 이이의 10만 양병설 주장 등이 있었지만
당파 싸움에 바빠 일본의 침략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경술국치 전에도 조선 내부에는 이완용, 송병준 같은 친일파가 득세하면서
우리 내부를 분열시키고 갈등을 일으켰죠.
그 이외에도 다양한 이유로
조선 내부가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조선의 힘은 더욱 약해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경술국치까지 당하는 치욕을 맛봤습니다.
(4) 또한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일본이 한일합방(경술국치)에 이르는 데에는
일본에 동조하고 일본에 협력했던 조선인도 많았습니다.
한일합병조약(경술국치)에 합의한 이완용 등은 조선인이었습니다.
또한 우리 독립군을 토벌하는 데에도 많은 조선인들이 참여하였고,
우리 독립군 내부에는 일본군의 밀정 역할을 하는 조선인도 많았습니다.
일제 치하 조선인들을 탄압하고 괴롭히는 데에도
일본의 비호 아래 많은 조선인들이 참여했습니다.
또한 언론에서도 이런 언론들이 많이 나왔죠.
( 天皇陛下의 御威德 : 천황폐하의 거룩한 위엄과 덕망 )
부끄러운 우리 내부의 모습입니다.
(5)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법에 따라 그 사람을 처벌합니다.
왜 처벌하는 것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범죄를 저지르면 처벌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당연히 그 범죄는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을 연이어 일으켰던 독일은
전후 전범들을 아주 강력하게 처벌했습니다.
그 처벌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잘못했던 역사에 대해 후세에 자세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두 번이나 연이어 세계 대전을 일으킨 독일이었기에
강력한 처벌과 철저한 반성 교육을 통해서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확실하게 표명하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도 경우는 다르지만 처벌(청산) 경험이 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프랑스는 독일에 4년 정도 점령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독일에 협력했던 많은 프랑스인들이 있었고,
국토 회복 후에 프랑스는 독일에 협력했던 프랑스인들을 가혹하리만큼 처벌했습니다.
너무 가혹했기 때문에 논란도 많습니다.
또한 초반에는 초법적으로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야기로는 사형이 집행된 숫자만 최소 1만 명 이상이라고 합니다.
형을 선고 받은 사람의 숫자는 약 15만 8천명 정도 라고 하구요.
왜 이렇게까지 가혹하게 처벌했는지에 대해서는
2차 대전 당시 프랑스 망명 정부를 이끌었던 드골 대통령의 말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소설 등으로 유명한 알베르 카뮈의 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시 프랑스가 외세에 점령당하는 일이 있을지 몰라도,
다시 프랑스를 배반하는 프랑스인이 나올 일은 없을 것이다." (드골)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다.” (카뮈)
두 번 다시 프랑스를 배반하는 프랑스인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의지,
미래의 범죄를 막아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했을까요?
아쉽게도 우리는 광복 이후 친일 청산에 실패했습니다.
왜 실패했는지에 대해서는 진영(보수/진보)에 따른 입장 차이가 있어서 제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우리는 광복 이후 친일 청산에 실패했습니다.
독일의 프랑스 점령 기간 4년에 비하면 우리가 훨씬 길었으니
청산할 것도 훨씬 많았는데 말입니다.
(일제강점기만 35년이고, 강화도조약 이후로 계산하면 거의 70년입니다.)
그래서 사회 곳곳에 여전히 친일 잔재, 친일 세력들이 잠재되어 있거나 숨어 있습니다.
만일 제2의 경술국치(한일합방)가 진행된다면
우리 내부에서 제2의 이완용이나 제2의 친일 언론은 반드시 나타날 겁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광복 이후 친일 행위자들이 친일 청산에서 빠져나가는 방법도 보았기에
탈출 방법에 대한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광복 후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것은
우리 민족에게 두고두고 아쉬운 일입니다.
9. 프랑스와 독일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전쟁과 관련한 이 두 나라의 이야기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지금 유럽연합(EU)을 대표하는 두 나라이고 아주 친밀한 사이의 두 나라이기도 하지만
사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만 해도
두 나라 사이는 지금의 한국과 일본 이상으로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사실 이 두 나라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프랑크 왕국 당시에는 하나의 나라였습니다.)
프로이센(독일)-프랑스 전쟁(1870년~1871년),
제1차 세계대전(1914년~1918년),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 등을 치루면서
독일과 프랑스는 완전 앙숙이 되었죠.
수십만 명의 사상사가 발생하는 등 서로 엄청난 피해를 주고받았습니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에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당시 황제였던 나폴레옹 3세가 포로로 잡히고 파리가 점령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며,
(이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하고,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한 통일독일이 완성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은 독일이 먼저 도발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4년이나 독일에게 점령당했기에
독일에 대한 감정이 아주 안 좋았습니다.
프랑스가 독일에 협조했던 프랑스인을 아주 가혹하게 처벌했던 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앙숙이었던 두 나라가
어떻게 지금은 저렇게 사이좋은 두 나라가 되었을까요?
먼저 독일부터 살펴보면
전쟁 후에 독일(서독)의 지도자들은 프랑스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과합니다.
또한 전범자들을 철저하게 처벌합니다.
후세에게도 자신들의 잘못을 자세하게 가르치면서 철저한 반성 교육을 합니다.
프랑스도 친독일 청산을 철저하게 한 후에는
프랑스의 지도자들이 독일(서독) 지도자들과 끊임없이 교류하고
국민들도 독일(서독)인들과 많은 교류를 합니다.
위의 과정을 거치면서 두 나라는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고 결국 화해를 하게 되었죠.
그렇게 해서 1963년에 맺은 ‘독일 프랑스 화해 협력 조약(일명 엘리제 조약)’은
두 나라의 과거 불행한 역사를 청산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유럽연합(EU), 유럽 단일 화폐인 유로를 탄생시키는 산파 역할을 하게 됩니다.
독일과 프랑스의 화해 과정을 보면
참 안타깝고 동시에 부러운 생각이 많이 듭니다.
일본은 왜 독일처럼 하지 못할까?
독일은 저렇게 철저하게 반성하고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왜 일본은 그러지 못할까?
아니 왜 독일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걸까?
그리고 우리는 왜
프랑스처럼 친일 청산을 하지 못했을까?
생각할수록 아쉽기만 합니다.
말이 나온 김에 유명한 사진 하나 보여드리죠.
위 사진은 독일(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태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장면입니다.
사전 예고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 세계에 큰 감동을 안겨 주었습니다.
독일의 사죄에 대한 진정성을 알게 해준 사건이었죠.
사실 우리 국민은 성격이 좀 화통한 편입니다.
만일 일본의 아베 총리가, 혹은 역대 일본 총리가 자신의 재임 기간 중에
독일(서독) 브란트 총리와 같은 모습을 보여 줬다면
아마 우리의 일본에 대한 응어리진 감정은 많이 사그라졌을 겁니다.
진정한 반성의 모습을 보였다면 화통하게 용서했을 겁니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그리고 일본의 극우 세력들은
현재 그러한 모습과는 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죠.
그 근본에는 한국을 얕잡아보는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즉 한국은 프랑스 같은 강한 나라가 아니라
아프리카의 식민지 같은 약한 나라라고 보는 것이죠.
프랑스 같이 강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독일이 프랑스에게 하듯이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사실 영국이나 프랑스 등 과거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를 많이 가진 나라들이
자신들이 식민지 시절 잘못했던 일에 대해서는 사과를 잘 안합니다.
일본 역시 한국을 그런 아프리카의 식민지 같은 약한 나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제대로 된 사과와 반성을 하기 싫은 거죠.
일본인들의 특성 중에
강한 자에 약하고 약한 자에 강한 면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런 특성이 우리에게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 좀 많이 불쾌하죠.
결국 우리를 약하게 보기 때문에
지금의 일본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10. 일본이 자신들의 추악한 과거사를 숨기는데 급급하고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또 다시 반복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일본 아베 총리가 혹은 일본 극우주자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제 2 임진왜란, 제 2 한일합방(경술국치)을 다시 계획하거나 시도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민주주의 국가이고 자유와 평화, 인권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국가라는데
또 다시 침략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분명히 시대가 달라졌으니까요.
그러나 우리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전범자들을 계속 추모하는 일본의 아베 총리를 보면,
혐한을 공공연히 일삼고 일본의 과거 침략 전쟁을 반성하지 않는 극우 세력을 보면,
그들이 또 다시 침략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죠.
만약 그들이 진정으로 침략 전쟁을 다시 일으킬 생각이 없다면
추악한 과거사도 철저히 반성하고,
또한 후세에게도 자세하게 가르쳐야 할 겁니다.
독일처럼요.
그런데 이번 일본의 경제 보복을 지켜보면서
일본이 언제든지 우리에게 다시 총칼을 겨눌 수 있는 나라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전에는 이런 생각까지 들지는 않았죠.
저만의 생각은 아닐 겁니다.
만일 일본이 제 2 임진왜란, 제 2 한일합방(경술국치)을 시도한다면
이전보다 훨씬 더 치밀하고 교묘하게 진행할 것입니다.
그게 일본이니까요.
또한 한일합방이 이전의 임진왜란과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듯이
일본의 제3차 대규모 침략이 실제로 발생한다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것입니다.
지금처럼 경제 보복, 경제 장악도 포함될 수 있겠죠.
지금 일본은 극우 세력이 일본 정치의 주류 세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일의 과거사가 정리되고 청산되지 않는 한
사실 한국과 일본은 진정으로 가까운 사이가 되기 어렵죠.
그 키는 일본이 쥐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 극우 정치 세력의 부상과 그들의 주장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미래의 한일 관계에 대해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11. 일본과 우리는 “자유, 평화, 인권, 민주주의”라는 인류의 보편 가치를
아시아에서 가장 잘 실현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역사 문제만 없다면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는 나라죠.
한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 해결의 출발은
일본의 철저한 반성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습니다.
독일이 그러했듯이.
일본의 진정한 반성이 말이 아니라 행동(실천)으로 이어지면
두 나라 사이에 지도자들의 교류, 국민들의 교류를 통해서 신뢰를 쌓을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더욱 발전하면 한국과 일본은 프랑스와 독일 이상으로 가까운 나라도 될 수 있습니다.
전후 독일은 진정한 반성, 강력한 처벌, 그리고 철저한 반성 교육 등을 통해
과거의 침략자 이미지를 탈피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호감도가 높은 나라 중의 하나가 되었죠.
일본도 이 점을 알았으면 합니다.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그에 따른 실천이 있어야 함을...
그렇게 되면 독일이 그러했듯이
일본 역시 호감도가 더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만이
한일 관계가 제대로 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12. 결론입니다.
일본의 경제 보복은 아주 치밀하고 교묘하게 준비되어 왔고, 지금 실행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일본의 경제 보복을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는 일본 이상으로
냉정하고 치밀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1)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인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 도지사는
“(일본이 조선을) 무력으로 침략한 게 아니라 (조선이) 너무 분열돼서 정리가 안 되니까
그들의 총의에 따라 (일본과) 합병한 것“이라는 망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위 언급에서 보시는 것처럼
경술국치(한일합방)와 관련한 일본의 가장 큰 핑계거리 중 하나는
우리의 분열과 우리의 의지(총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열되어 힘도 없고 능력도 없었기 때문에
한일합방(경술국치)은 필연이고 합법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일본 극우주의자들(어쩌면 아베도)의 경술국치(한일합방)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입니다.
그런데 사실 분열은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합니다.
우리 민족이 잘 뭉치기도 하지만 또한 잘 분열되기도 하죠.
뭉쳤을 때에는 나라에 큰 위기가 닥쳐도
잘 이겨냈습니다.
고구려가 중국 수나라의 침공(병력 약 113만 명 추정)을 받았을 때에는
을지문덕 장군 등을 중심으로 단합해서
그들을 물리칠 수 있었고(살수대첩이 유명),
고려 시대 거란족의 침략을 받았을 때에는
강감찬 장군 등을 중심으로 단합해서
그들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귀주대첩이 유명).
최근인 1997년 외환위기(IMF 사태) 때에도
금 모으기 운동 등 국민의 단합된 힘으로
우리는 빠른 시간 안에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우리 내부가 분열되어 있을 때 외세의 침략을 받으면
큰 수난을 겪거나 나라가 멸망했습니다.
우리 민족 최강의 나라였다고 평가받는 고구려는
대막리지 연개소문의 생전에는 중국 당나라의 공격을 잘 막아냈지만
연개소문의 사후에 세 아들 간에 권력다툼이 벌어지면서 고구려는 크게 분열되었고,
이후 당나라의 공격을 받아 결국 나라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무신들이 난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뒤에
무신 내부에 분열이 생기고 권력 투쟁이 벌어졌습니다.
그 결과로 고려의 힘은 크게 약화되었고,
이 시기에 몽고의 침입을 받게 되면서 고려는 몽고에 항복을 하고,
나라는 초토화되었습니다.
임진왜란 전에도, 그리고 경술국치(한일합방) 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 내부는 분열되어 있었고,
일본의 침략에 엄청난 피해를 입고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이러한 점을 잘 파악하고 있는 일본이었기에
그들은 경술국치 전에도, 일제강점기에도
교묘하게 친일인사 등을 통해 우리 내부를 분열시키고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지금의 일본은 어떨까요?
마찬가지일 겁니다.
일본의 아베 총리 및 극우주의자들은
분열되었던 우리의 과거 역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 또한 그렇게 되기를 예상(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그 예상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경제 보복을 했을 겁니다.
그래서 분열되어 약해진 우리가 결국은 무릎을 꿇을 것으로 예상했을 겁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러한 결과를 얻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가 분열되도록 우리 내부에서 우리 몰래 교묘하게 작업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일본 우익 언론이나 우익 인사의 인터뷰 등을 통해
우리 내부를 분열시키고 우리 내부의 갈등을 일으키기 위한 기사 등도 계속 내보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예상과 기대대로 되지 않도록
우리가 분열되지 않고 단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겁니다.
왜냐구요?
방해 세력이 사회 곳곳에 숨어 있으니까요.
우리는 광복 후에 불행하게도
친일 청산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사회 곳곳에 여전히 친일 세력들이 숨어 있거나 친일 잔재가 남아 있습니다.
일본의 경제 공격(보복)이 시작되자
벌써 친일을 주장하는 정치인도 나옵니다.
범죄자가 처벌받지 않으면
반성하지 않으면
그리고 범죄로부터 얻은 이득이 있으면
그 범죄는 반드시 재발합니다.
독일이 종전 후에 나치 잔재 청산에 그렇게 노력을 했지만
여전히 독일에는 소수이긴 하지만 나치주의자가 존재합니다.
친일 청산에 실패한 우리는 더하겠죠?
분명 제 2 친일 반민족행위자들, 제 2 이완용, 제 2 친일 언론이 나타날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일본의 과거 조선 침략 시절에 했던 것처럼
교묘하게 우리 내부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우리 내부를 분열시키려고 노력할 겁니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입니다.
물론 지금 이 시점에서 특정 대상을 제 2 이완용, 제 2 친일 언론으로 특정 지을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반드시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항상 경계하며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일본의 경제 보복과 관련해서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도 있고 정부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 각자의 주장 나름대로 일리가 있을 겁니다.
또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에 대한 견제, 정부에 대한 건전한 비판은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해서
분열된 모습이 아니라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할 때입니다.
만일 일본의 경제 보복 문제가 정치 문제화 되면
우리나라 정치의 특성상 우리 국민이 분열되는 것은 필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경제 보복 문제를
우리 내부의 정치 문제로 만들면 안 됩니다.
우리 내부를 분열시킬 뿐이니까요.
우리 내부에서 우리끼리 싸우고 분열하는 것,
그 이유가 무엇이었던
이것은 결국 일본의 아베, 일본의 극우 세력이 가장 원하는 그림입니다.
가장 좋아하고, 가장 기대(예상)하는 그림입니다.
만일 일본의 경제 보복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 정부에 대한 비난을 하고 싶다면
일본의 경제 보복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이후에 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현명한 국민이라면 우리 내부를 비판하더라도 적절한 시기를 찾을 겁니다.
그게 진정한 애국자의 길일 겁니다.
최근에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아래와 같은 말을 했습니다. 한번 곱씹어 봤으면 합니다.
“입장차와 견해차가 있어도 지금 그것을 표명해 서로 비난하고 갑론을박할 때는 아닌 것 같다."
"서로 참기도 하고,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같이 대처하는 모습이 안 보여 아쉽다."
"일본은 치밀하게 정부 부처 간 공동 작업까지 하며 선택한 작전으로 보복을 해오는데,
우리는 서로 비난하기 바쁘다."
“밥 짓는 데 집중해야 하는데, 밥그릇 가지고 싸우는 모양"
"입장차를 드러낼 때마다 양국 언론에 민낯이 등장하니 지금은 차분하고 침착하게 뜻을 모아야 한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우리 내부에서 우리끼리 싸우고 분열하는 것,
그 이유가 무엇이었던
이것은 결국 일본의 아베, 일본의 극우 세력이 가장 원하는 그림,
가장 좋아하고, 가장 기대(예상)하는 그림임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2) 현 상황에 대한 진단을 해보겠습니다.
일본은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을
단기간에 끝내려고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1) 장기간 아주 치밀하고 꼼꼼하게, 그리고 아주 교묘하게 준비해 왔습니다.
그러니 경제 보복을 위한 장기 리스트도 마련되어 있을 겁니다.
일본의 과거 행적 등을 참조하면
최근 일본 초계기 사건도 처음부터 계획적이었을 가능성(명분으로 삼기 위해서)도 있습니다.
그만큼 일본은 치밀하고, 또 교묘합니다.
2) 일본 아베나 극우주의자들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를 그리워하고 추종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그들의 침략 전쟁의 범죄에 대해 반성하기 보다는
침략 전쟁을 일으킨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을 통해
추모를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일본 아베 총리의 최대 정치적 목적은
헌법을 개정해서 (일본 제국주의 시대처럼)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드는 것입니다.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일본 국민의 동의가 필요하고,
그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일본에게 적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는 북한을 그렇게 이용해 왔는데,
북한과 미국이 정상회담을 진행하는 등 긴장이 완화되고 가까워지자
아베도 난감한 상황에 빠집니다.
그래서 새로운 적이 필요했고 우리가 그 적이 된 것입니다.
우리를 적으로 만들기 위한 상황(예를 들면 작년 일본 초계기 사건)도 조성해 가면서,
일본 극우 언론(예를 들면 산케이 신문) 등을 이용해서 일본 국민들에 대한 여론 작업도 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전략은 지금 일본 국민들에게 먹히고 있구요.
(제가 여러 번 이야기 드리지만 지금 일본 아베 정부는 아주 치밀하고 꼼꼼하고 교묘합니다.)
따라서 아베 총리가 그의 최대 정치적 목적인 전쟁할 수 있는 나라 일본을 만들 때까지는
한국과의 갈등 상황(한국은 적)을 계속 끌어가고 싶은 욕심이 있을 겁니다.
제가 앞 글에서 과거 일본의 간토(관동) 대지진 당시 발생한 조선인 학살 사건이
일본 정부의 교묘함과 치밀함, 일본 우익(자경단)의 잔인함,
순종적이면서 불의를 바로 잡는 데에는 소극적인 일본인의 특성 등이 맞물리면서
일어났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의 상황도 그와 비슷하다고 봐야 할 겁니다.
일본 정부의 교묘함과 치밀함, 극우 세력들의 강력한 지지, 일본 언론의 동조,
순종적인 일본인의 특성 등이 맞물리면서
일본의 한국 비판 여론이 높아졌고,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교묘한 아베와 일본의 극우 정치인들이 이 상황을 그냥 포기할 리 없습니다.
답답한 상황이죠.
어쨌든 현 상황이 아주 엄중한 상황임에는 분명합니다.
(3) 그러면 현 상황이 최악으로까지 치닫게 될까요?
현 상황에서 최악이라 함은
우리의 반도체 공장이 가동을 멈추는, 그런 상황을 예상할 수 있는데요.
그런 상황까지 갈 것이냐?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반도체가 없으면 세계 경제에 재앙이 오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공장들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최악의 상황이 예상되면
미국이나 세계가 이 상황에 대해
지켜만 보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중재하려 하고 개입하려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의 부품 수출이 막혀서 반도체 공장 등이 멈춰 서게 된다면
그것은 거의 우리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죠.
한판 붙자는 의미입니다.
그 다음에는 어떤 불행한 상황이 닥칠지 구체적으로 예상하기 쉽지 않습니다.
또한 제어도 안 될 것이구요.
최악의 상황은 우리와 일본의 무력 충돌이겠죠.
이 정도 상황까지 갈 것 같으면
미국이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아시아 최우선 전략은 중국을 견제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 꼭 필요한 우방국인 한국과 일본의 무력 충돌까지 예상되는 상황이라면
미국에 있어서도 정말 안 좋은 상황인 거죠.
미국이 중재하면 일본은 따를 겁니다.
일본은 최강자인 미국에게는 굴욕적일 만큼 약하니까요.
(4) 최악의 상황까지 이야기 드렸지만
한국이나 일본이나 경제적으로는 빨리 이 사태를 해결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물론 정치적인 입장에서는 일본 아베나 일본 극우 세력들은 계속 끌어가고 싶을 겁니다.
새로운 적이 만들어질 때까지.
전쟁할 수 있는 나라 일본으로 헌법 개정 할 수 있을 때까지.
그런데 일본이 우리를 강하게 압박해서 나오면
사실 우리로서도 선택지가 단순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강하게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구요?
우리가 약하게 나가면,
그래서 우리가 약한 모습을 보이고 굴복하면,
일본은 우리를 얕잡아보고 앞으로 더 괴롭힐 테니까요.
그게 일본인의 특성이고, 과거에도 그랬습니다.
지금은 일본 경제 보복의 초반이니
우리는 강하지만 조용하게 강한 모습을 보이면 됩니다.
사태를 악화시킬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일본이 더 세게 나오면 우리도 더 세게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면 광장에서 태극기 집회와 촛불 집회가 함께 참여한 대규모 집회 등을 해볼 수 있겠죠.
그렇게 해서 수백만 명 이상 참여한 새로운 기록도 한번 만들어 봅시다.
우리 내부도 단결되니까 좋지 않겠습니까?
또한 우리는 이미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세계인들에게 저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그 모습에 세계인들은 감탄했고, 일본 역시 감탄했습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일본이 우리에 대한 경제 보복을 더 세게 밀어붙이면
우리는 항의의 표시로 2002년 월드컵 때의 모습을 재현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일본은 이런 거 잘 못합니다.
임진왜란 때, 그리고 경술국치를 당했을 때,
분열되고 약했던 우리 민족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 되어 강한 민족임을 보여 주면 됩니다.
역설적으로 그렇게 될 때
이러한 위기 상황이 더 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5) 상황이 장기화 될수록
중요한 것이 세계와 미국에서의 여론 전쟁입니다.
세계와 미국에서의 여론 전쟁에서 우리가 유리한 위치에 있을 때
미국과 세계가 개입하고 중재할 담판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결과물이 나올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이니까요.
미국 여론과 세계 여론 전쟁에서 우리가 이기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우리가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해 항의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1) 평화적(비폭력적)이고 합법적인 방법
2) 정부가 아닌 민간 자율
3) 엄청나게 단합된 힘
입니다.
일단 출발 배경은 우리가 나쁘지 않습니다.
일본이 말을 바꾸어서 부정하려고 하지만
일본의 경제 보복은 역사 문제, 정치 문제에서 시작됐다고 보는 게 보편적인 시각이니까요.
역사 문제, 정치 문제를 경제 문제로 비화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을 일본이 했다고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나쁜 상황은 아닌 것이죠.
만약 일본의 경제 보복을 비판하기 위한 (지금은 아직 아니지만) 대규모 집회가 열린다면
이 역시도 미국 여론과 세계 여론에 우리를 어필하는 데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단 평화적(비폭력적)이어야 하고 또한 정부가 아니라 민간 자율에 의해서 해야 합니다.
물론 그 규모도 외신들이 놀랄 만큼 커야 하구요.
(6) 이제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해볼 수 있는 단기 방안에 대해 말씀드려 봅니다.
우리가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해 단기간에 강력하게 대응해 볼 수 있는 방법은
이미 하고 있습니다.
일본제품 불매 운동과
일본 여행 안 가기 운동입니다.
단기간에 가장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들입니다.
이러한 방법들은
조선 백성들이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을 때처럼
2002년 월드컵 응원을 위해 광장에 모였을 때처럼
우리 자발적으로 행동하여 보여줄 때 가장 효과적입니다.
또한 그것이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일본 역시 우리의 피해도 크겠구나 라는 경계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들의 경제 보복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일본인들은 순종적이며 강한 자에 약한 특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단합해서 강력한 힘을 보여줄수록
그들은 더욱 더 그들이 행한 경제 보복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될 것입니다.
일본에서 나오는 뉴스들을 보면
우리의 일본제품 불매 운동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과거에 우리의 일본제품 불매 운동은 모두 실패했다,
이러한 내용들이 보입니다.
오기가 생기지 않습니까?
지금은 우리가 과거에 일본제품 불매 운동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죠.
이번 일본의 경제 보복은 아주 ‘졸렬한' 방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대일 감정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빠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오기가 발동하면 또 장난 아닙니다.
이번에는 일본제품 불매 운동, 일본 여행 안 가기 운동,
제대로 한번 보여줬으면 합니다.
(7) 장기 방안에 대해 말씀드려 봅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산케이신문의 구로다 가쓰히로 전 서울지국장이 이런 말들을 했더군요.
(이 분 전형적인 일본 극우 인사입니다. 산케이신문도 일본의 대표 극우 신문이구요.
내용을 보면 아주 교묘하게 우리를 분열시키려고 하고 우리 내부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려고 합니다.)
“한국은 1965년 수교 이후 한국의 발전에 대한 일본의 협력이나 공헌 등을 무시해왔다.”
“일본은 1965년 한국 정부에 경제협력금으로 무상 3억 달러의 청구권 자금,
공공차관으로 유상 2억 달러를 제공했었다. 이 자금은 한국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번 기회에 ‘(한국이) 일본에 신세를 져 왔다’는 숨겨진 실체가 알려지면, 대일 감정도 다소 개선될 수 있을까?”
이 내용을 보는 순간
화가 턱 밑까지 뻗쳐 올라오더군요.
왜냐구요?
저런 논리라면
우리가 해방 이후 일본에 준 것은 저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크니까요.
우리나라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2018년까지
일본에 대해 무역수지 적자 누적 금액만 총 6,046억 달러(약 708조원)에 달합니다.
우리에게 유상, 무상 합쳐서 5억 달러를 줬는데,
우리로부터 벌어간 돈은 그것의 1,200배가 넘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6.25 전쟁은 우리 민족 역사상 최대의 비극입니다.
그런데 일본에게는 어떠했을까요?
1945년 태평양전쟁에서 진 일본은 그야말로 처참한 상황이었습니다.
전쟁에 모든 것을 쏟아 부어 가진 것도 너무 부족했고,
원자폭탄도 2차례나 얻어맞아 국가 경제 자체가 엉망진창이었죠.
이런 상황에 우리나라에서 6.25 전쟁이 터졌습니다.
이 시기(1946년~1954년)에 일본은행 총재였던 이치마다 히사토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경제는 한국전쟁으로 구원받은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최대의 비극이었던 6.25 전쟁이
일본에게는 일본 경제를 구원하는 전쟁이었습니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우리 민족의 피와 눈물이 일본에게는 떼돈이 되었던 것입니다.
전쟁 중에 미군이 모든 물자를 일본에서 조달하게 되면서
일본은 거대한 공급기지 역할을 하게 됩니다.
1950년 일본의 경제성장률 10.9%, 1951년 13% 등
일본은 6.25 전쟁기간동안 연평균 10% 이상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1951년 외환 보유고는 9억 4000만 달러에 이르러 미국이 대일 원조를 종료할 정도였구요.
휴전 이후에도 미군은 일본에 계속 군수품을 발주하는데,
1960년에 이르기까지 그 금액이 연간 5억~6억 달러 수준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상에서 보시는 것처럼
해방 이후 한국은 일본에게 황금광이었습니다.
현금이 가득 찬 금고였죠.
일본은 한국으로 인해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챙겼습니다.
한국이 일본에 고마워해야 되는 수준이라면
일본은 한국에 절을 해도 모자라는 수준입니다.
만일 지금 이 글을 산케이신문의 구로다 가쓰히로 전 서울지국장이 읽는다면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위와 같은 주장은
(아마도 우리 내부를 분열시키고 우리 내부에 갈등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였겠지만)
한국인들의 대일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격노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아무튼 이상에서 보시는 것처럼 우리의 대일 무역수지 적자는 엄청난 규모입니다.
2018년 대일 무역 적자액만 따져 봐도 240억 8천말 달러입니다.
반면 일본의 2018년 전체 무역수지는 흑자가 아니라 1조 5854억 엔 적자입니다.
만약 우리가 대일 무역수지 적자를 줄일 수 있다면
그래서 대일 무역수지 적자를 제로로 만들 수 있다면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일본의 무역수지 적자 폭은 그만큼 크게 늘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일본의 경제 또한 그만큼 힘들어 지겠죠.
이번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해
우리가 일본에게 소탐대실하는 결과를 안겨줄 수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우리가 일본에 대해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부품이나 소재, 장비 조달을 일본에서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무역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본이 이번처럼 우리에 대한 수출 규제를 하게 되면
우리가 단기간에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방법은 세계 자유무역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으로서
WTO 규정 위반이 될 가능성이 크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국제적인 분업을 통해서 가장 효율적인 생산 방법을 찾은 것인데,
그걸 인위적으로 못하게 막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이번에 일본이 이를 무기화할 수 있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에
이제 우리는 장기적으로 부품(소재/장비) 국산화 작업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부품(소재/장비) 국산화가 되면
대일 무역수지 적자액도 줄일 수 있고 일본의 경제적 보복도 피할 수 있으며
동시에 일본 경제에 타격을 가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또한 시간도 충분히 필요할 겁니다.
그러나 20~30년 전만 해도
우리의 삼성전자가 일본 소니와 다른 일본 업체들을 물리치고
세계 최고의 반도체 회사, 전자 회사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총력을 기울이면
일본의 부품(소재/장비) 산업을 따라잡고 넘어서는 것도
우리 민족의 저력이 있기에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민간의 노력뿐만 아니라 정부와 대기업의 도움과 지원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일본의 부품(소재/장비) 산업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은
이번 일본의 경제 보복을 계기로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사항이 되었습니다.
이번 경제 보복이 해결되더라도
또 언제 일본이 다시 이를 무기화할지 알 수 없는 것이니까요.
우리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 국가 중에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거의 유일한 국가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이렇게 단기간에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룬 적이 없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IMF 사태)가 닥쳤을 때에도
우리 국민은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아
아주 고달팠지만 외환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 국민의 금 모으기 운동 등은 세계인들을 감탄하게 만들었죠.
2002년 월드컵 당시에도 광장에서 보여줬던 우리의 하나 된 모습은
세계인들에게 큰 감동을 줬습니다.
심지어 일본인들에게도요.
우리가 지금 일본으로부터 당하고 있는 이 경제 보복은
꼭 이겨내야만 하는 것이며
또한 우리는 이겨낼 힘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보다 더 큰 어려움도
보란 듯이 이겨낸 민족입니다.
이번 기회가
부품(소재/장비) 산업마저도 일본을 이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꼭 그럴 수 있도록
정부, 기업, 국민이 모두 힘을 합쳐 노력했으면 합니다.
부품(소재/장비) 산업에서도 일본 회사를 추월하는 제2의 삼성이 하루 빨리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8) 한 마디 보탭니다.
지금 이 글에서 저는 일본(정확히 말하면 일본 극우 세력)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일본 국민이 우리의 적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 가치인 “자유, 평화, 인권, 민주주의 등”을 실현하고 확대하기 위해
힘을 합쳐 같이 손잡고 나가야 하는 이웃임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반성보다는 부정,
화해보다는 대립,
평화보다는 전쟁을 원하는 듯한 일본 아베와 일본 극우 정치인들 때문에
우리 국민과 일본 국민의 틈이 많이 벌어져 있지만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일본 국민들은 좋은 점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점도 많이 있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 평화, 인권, 민주주의”라는 인류의 보편 가치를 공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지금은 아니지만
일본과 우리는 많은 교류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많은 교류를 통해 서로를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사실 역사 문제만 놓고 보면
일본 국민들은 과거 그들의 선조가 우리 민족을 얼마나 가혹하게 탄압하고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많은 만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가르치지 않으니까요.
혹은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니까요.
서로가 적극적으로 교류하게 되면
서로에 대한 이해 폭이 넓어지고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인들도 우리가 왜 그러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고,
우리 역시 일본인들이 침략이나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추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먼 훗날 한국과 일본 국민들이 서로 힘 모아
아시아의 자유, 평화, 인권, 민주주의 등을 위해,
그리고 세계의 자유, 평화, 인권, 민주주의 등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9) 마지막으로 정리하여 말씀드립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무엇보다 단결이 중요합니다.
절대 분열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분열은 일본의 아베와 극우 세력들이
가장 좋아하고 가장 예상(기대)하는 그림입니다.
그래서 분열된 우리가, 약해진 우리가
결국은 일본에 무릎을 꿇을 것으로 아베와 일본 극우 세력들은 예상(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더불어 제 2 민족반역자들, 제 2 이완용, 제 2 친일 언론의 등장을 경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반드시 나타날 것이고,
우리 내부를 교묘하게 분열시키고 갈등을 불러일으킬 겁니다.
물론 지금 이 시점에서 특정 대상을 그렇게 지목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시 한번
일본에게 우리의 분열된 모습이 아니라 단합된 모습을,
그것도 아주 강력하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는 사실을 말씀드리면서
긴 글을 맺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제 글은 공유, 퍼가기 등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제 글에 동의하신다면
이 글을 널리 알려주시기면 감사하겠습니다.